17화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결투가 끝이 난 후, 파티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당연한 것이 전 세계 실시간 중계로 자국의 S급 헌터가 자칭 라이벌 국가의 S급 헌터에게 그야말로 처절하게 패배했다.
만약에 정말 격렬한 전투 끝에 아쉽게 패배했다면, 운이 작용했다는 일말의 핑계라도 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사키는 그야말로 요한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한마디로 발렸다.
그야말로 국제적인 망신이라고밖에 평가할 수가 없었다.
“칙쇼!!”
몇몇 일본인들은 분함에 눈물까지 흘렸다.
“수고했어.”
“봤지, 이 오빠 이제 장난 아니지?”
“네이, 네이. 장난 아니세요. 오빠님.”
"큭큭."
“수고가 많았어요. 이번 의뢰 비용이랑 풍림화산 비용은 같이 처리해 드릴게요.”
“오, 그래 주면 저야 고맙죠.”
이런 여유 만만한 승자들의 분위기를 그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한국에 국제 순위를 역전 당한 이후 그야말로 범국가적인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익 세력이 아니더라도 과거부터 이리저리 엮이는 게 많고, 국력이 아래였던 국가에 역전당한 것은 명예를 안다고 자부하는 일본인들에겐 크나큰 충격이자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포탈로 인해서 열도 전체가 혼란스러울 때는 그런 감정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그때의 주적은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포탈이 안정화되고 평화가 찾아와 나라가 안정되었다.
어느새 국제적 위상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아진 한국을 보자 변화는 있을지라도 발전은 없는 일본 자국 사정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옛날에 그랬듯이 이젠 일본이 한국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모든 일에 자기들끼리 열불을 내었다.
‘음, 아니. 옛날에도 그랬던가?’
어쨌든 그런 한일 관계에서 요한이 너무나도 쉽게 같은 등급의 헌터를 이겨 버리니 좋은 분위기가 나올 리가 없었다.
특히 이번 파티엔 일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일본 헌터 협회 관계자와 정부 관계자가 주로 참석했다.
그러니 이런 국제적인 망신에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될 리가 없었다.
덕분에 축하 파티는 흐지부지 끝이 나 버렸다.
“에이, 아쉽다. 시끌시끌한 게 재밌었는데.”
“뭐야, 너. 나랑 밥이나 먹었잖아.”
“흠흠, 그냥 분위기가 좋았어. 그 뿐이야.”
“그럼, 우리끼리라도 파티 계속 할까요?”
“응, 무슨 말이에요?”
“제가 묵고 있는 호텔 파티 룸을 빌리면 30분 안에 파티할 수 있어요.”
“와, 진짜요? 재밌겠다!!”
“그럼, 바로 준비하도록 할게요.”
“오오. 엘레노아 씨 짱!”
미연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아쉬웠는지 엘레노아의 파티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아니, 격하게 동의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그날 저녁부터 시작된 엘레노아 주관의 러셀 길드 파티는 밤새 이어졌다.
엘레노아나 요한, 미연뿐만이 아니라, 러셀 길드 소속 직원에, 근처에 있던 한국인들까지 참여하다 보니 규모가 조금씩 커졌기 때문이다.
“건배!!”
“위하여!!”
“푸하하. 저도 그 영상, 실시간으로 봤습니다. 김요한 헌터님이 그 눈이 옆으로 쫙 째진 사사키라는 헌터 놈을 그야말로 곤죽으로 만들어 놓았지요.”
“크하, 일본이란 나라는 정말 주는 거 없이 미운 거 같습니다.”
“아니, 주는 게 없긴 왜 없어. 혐한이란 것을 마음껏 퍼 주는 데 말이야.”
“아, 그렇네. 하하하!”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일본과 밀접한 일을 하는 그들임에도 일본인들이 알게 모르게 한국인이라고 차별하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자자, 오늘은 김요한 헌터님의 정신 계열 포탈 레이드 성공과 사사키인지 사자인지 개떡 같은 놈을 떡 문지르듯이 발라 버린 것에 대한 축하 파티니 마시고 죽자고요!!”
“와아아아!!”
그날 엘레노아가 머무는 H호텔은 비축해 두었던 술이 단 하루 만에 1/4로 줄어드는 기현상을 목격했다.
그야말로 의지의 한국인들이 일본 땅에서 이룬 3번째 업적이었다.
***
“으으, 속이야. 왜, 마나는 숙취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 걸까.”
“그러게, 숙취를 100% 방지하는 약이 개발되면 참 좋을 텐데. 우웁!"
정말 죽을 듯이 마신 여파는 바로 다음 날에 벌어졌다.
밤새워 놀은 덕분에 점심 즈음해서 비실비실 자리에서 일어나 뒤집히는 속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뒤집힌 속을 부여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요한과 미연은 엘레노아의 전용기를 타고 오후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
“어, 어서 오십이오. 미스 러셀 그리고 김요한 헌터님.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꿈틀.
“지금 뭐라고?”
엘레노아의 냉랭한 되물음.
“예, 예?”
귀국 예정자 명단에 귀빈이라고 할 수 있는 러셀 길드원들이 있어서 얼른 마중 나온 매니저는 순간 당황했다.
“쯧쯧.”
요한은 대놓고 들리게 혀를 찼다.
“나는 왜 헌터님이고 마스터는 왜 미스 러셀이죠?”
“아, 저, 그, 그게......."
‘아……!’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당황한 매니저는 식은땀을 바가지째로 흘리기 시작했다.
여성 헌터는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가 직접 이렇게 응대해야 할 정도로 유명한 여성 헌터는 지금까진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헌터는 대부분 남성 헌터였고 일반인이라고 해도 직분이 높은 일반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미스란 표현이 어울리는 상대였다.
그 습관이 그대로 이번 대화에 반영된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펴, 평소 스, 습관이 잘못된지라. 죄, 죄송합니다, 마스터 러셀.”
“조심해, 2번은 용서 안 할 테니까.”
“예, 죄,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정말 허리가 끊어져라, 90도로 숙여서 사죄했다.
상부에서 절대, 절대 요한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라고 엄명이 내려온 상태였다.
화를 풀 수만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요한은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아, 그리고…… 밖에 문제가 있습니다. VIP 전용 통로로 가시지요.”
“무슨 일이죠?”
“지금 요한 헌터님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과 각종 언론사에서 보낸 기자들로 밖이 인산인해입니다. 물론 VIP 통로 쪽에도 기자가 있긴 하지만, 훨씬 적습니다.”
“아, 역시……."
대충 예상은 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일본인 헌터를 처바른 일이었다.
이미 역전했음에도 일본은 여전히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 국가였다.
인류는 등수 놀이를 참 좋아했다.
그래서 많은 언론사나 연구소 같은 곳에서 발표하는 국제 헌터 순위는 늘 인기 만점이었다.
특히 S급 헌터 중에서 누가 가장 강할지는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하는 주제였다.
하지만 그런 관심과 달리 실제로 S급끼리 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어쩔래요?”
“네?”
엘레노아가 요한에게 물었다.
“이대로 그냥 갈래요. 아니면, 기자 회견이라도 한번 하실래요?”
"음......."
그는 잠시 고민했다.
평소였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찮은 일이니까.
‘흠, 그래도 이번에는 해야겠지?’
그 꼴 보기 싫은 일본을 떡 주무르듯이 발라 버렸다.
이 정도 일이라면 기자 회견에서 대놓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저는 기자 회견할게요. 마스터는요?”
절레절레.
“전 먼저 가 있을게요. 할 일도 있고, 그동안 일본에 있느라고 못 한 일이 꽤 있거든요.”
“그럼, 나도 여기서 이만.”
“뭐야, 미연이 너도 가려고?”
“히히, 사실 나도 바로 내일 클럽에서 공연 있거든. 그리고 즐길 거는 다 즐겼으니까, 내 할 일 해야지.”
“껍, 아쉽네. 오랜만에 만나서 재 밌었는데.”
“뭐, 다음에 이런 재밌는 일이 있으면 또 끼지, 뭐.”
미연은 양손을 깍지 끼고 뒤통수에 얹었다.
그러면서 얼굴엔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이 맺혔다.
“히히.”
“그래, 그거면 됐지. 정말 수고가 많았어.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오빠. 바이바이~.”
미연과는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었다.
그러니 일이 끝나면 쿨하게 헤어지는 게 맞았다.
미연은 3명 중에서 얼굴 팔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VIP 통로가 아닌 일반 통로로 쿨하게 나갔다.
문이 열리고 잠시 시선이 모이긴 했지만,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크게 집중을 받지는 않았다.
다른 비행기 손님도 있어서 그들 중 1명이라고 생각했다.
“요한 씨, 전 이만 먼저 가 볼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네, 마스터는 지금부터 수고해요.”
“……네.”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요한을 본 엘레노아는 먼저 VIP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갔다.
잠시 엘레노아에 시선이 집중됐지만, 굳이 크게 열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순수 한국인인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매니저님.”
“아, 네!”
“기자 회견을 할 테니까. 20분 안에 좀 준비해 주실래요. 장소 협조할 수 있죠?”
“그, 그럼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인천 공항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어 보았다.
처음엔 이런 대규모 기자 회견은 근처 호텔을 빌려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항 측은 공항을 홍보하는 데 매번 호텔을 빌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항 일부를 증축하여 대형 프레스룸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젠 대규모 기자 회견은 그곳에서 할 수가 있었다.
잠깐의 준비 시간이 지나고 기자 회견이 시작되었다.
차차차차차차차착-!
엄청난 취재 열기였다.
헌터를 싫어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김요한 헌터님, 일단 이번 정신 계열 포탈 레이드에 성공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요식 행위로 이런저런 축하 멘트가 오갔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이런 시시한 내용이 아니었다.
“이번에 일본의 S급 헌터이자 사쿠라 길드의 마스터인 사사키 가즈히로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다 계획했던 일입니까?”
“아니죠. 그저 사사키가 저한테 시비를 걸었고, 저는 그 시비를 내기로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겼죠.”
보통 이런 기자 회견에선 상대방을 존경하는 태도로 언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구설에 오를 수가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요한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일본 X한테 존중은 무슨. 그리고 구설수, 오르라고 해.’
어차피 그는 인기나 이미지로 먹고사는 헌터나 연예인이 아니었다.
오로지 실력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러니 굳이 이미지를 생각하며 말을 뱉을 필요는 없었다.
“오오-!”
기자들은 자극적인 요한의 발언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자극적인 인터뷰는 당사자에겐 나쁠지 몰라도 자극으로 먹고사는 기자에겐 아주 귀한 자료였다.
“그렇다면, 이번의 압도적인 승리에, 혹시 비결이 있습니까?”
“비결이라고 할 게 뭐 있을까요. 전 강했고, 그는 약했죠. 그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인 헌터와 또 붙을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 그거 재밌는 질문이네요. 음……."
이 질문은 정말 생각지도 못해 본 말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요한.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제가 일본에 직접 가는 건 귀찮고. 저와 승부를 원하는 S급 헌터라면 누구든지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상관하지 말고 덤비세요.”
“오오-!!”
“와아, 대박.”
차자자자자자작-!
그야말로 빅뉴스, 대형 뉴스가 터진 것이었다.
이 뉴스는 생방송으로 전국에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