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엘레노아는 이번에 걸린 의뢰금 7억 1,000만 달러를 걸고 결투를 벌이자는 사사키의 제안을 통역해 주었다.
“제법 재밌는 제안이네요. 이번 승부에 제가 8,100억 걸면 쟤는 뭘 걸겠데요?”
엘레노아는 이 말을 역시 통역해 주었다.
무려 러셀 가문의 막내딸이 통역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애지중지 여기는 러셀 가문의 가주가 봤다면 입에 거품을 물 일이었다.
러셀 가문의 보물, 가주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귀하디귀한 막내딸을 겨우 통역 따위에 쓰다니, 라고 말이다.
하지만 엘레노아 그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통역해 주었다.
분노하면서도 뭔가 재밌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다만, 그 기색은 매우 작았기에 잘 느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사키는 잠시 고민했다.
100% 이길 자신이 있었기에 자신은 무엇을 걸어야 할지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사키의 고민이 깊어지기도 전에 엘레노아의 입이 열렸다.
“그쪽에 8,000억짜리 보물인 풍림화산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거는 게 어떨까?”
“무, 무례한!!”
엘레노아의 파격적인 제안에 사사키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일본인들도 함께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지. 이쪽은 8,100억을 걸었고 그쪽은 8,000억 짜리 무기를 걸었다면 딱히 손해 보는 건 아닐 텐데. 어때요, 요한 씨?”
엘레노아가 설명해 주었다.
“전 딱히 상관없습니다. 정 뭣하면 그건 마스터가 가지고 8,000억 만 주세요.”
“그래도 되겠어요?”
으쓱.
“네, 뭐.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풍림화산은 요한도 잘 아는 아이템이었다.
다케다 신겐이 썼다고 알려진 요도.
물론 진짜로 그런 건 아니고 무슨 이유에선지 만들어진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가치가 낮은 건 아니었다.
무려 8,000억짜리 보물로 일본 S급 헌터인 사사키의 주 무기이기도 했다.
100% 이긴다고 자신한 사사키였지만, 본인의 애도를 걸라고 하니 살짝 망설여지는 건 당연했다.
“같은 8,000억도 안 걸 거면서 결투라니. 완전히 날로 먹겠다는 심보네. 일본이 자랑하는 사무라이 정신이 이렇게 비겁한 거였어?”
엘레노아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녀를 도도하다고 평가하고, 러셀 가문을 싫어하는 이들은 그녀를 오만하고 건방지다고 평가했다.
정식 헌터가 되기 전 12살부터 헌터 교육과 귀족 수업을 받은 그녀의 성격은 전형적인 지배자였다.
그러니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이들이 그녀를 무시했다가 큰코다칠 때가 많았다.
덕분에 그녀는 유명해졌고 팬이 많아진 만큼 안티도 많아졌다.
정작 그녀는 둘 다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익!! 감히 그딴 소리를!!”
“할래?”
“하겠다. 만약에 내가 진다면 풍림화산을 내놓겠다!”
“사, 사사키 님. 저, 정말로 하실 생각입니까?”
주변 부하들도 살짝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풍림화산을 구매할 당시 금액이 8,000억이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사사키가 8,000억 또는 8,100억을 제시한다고 팔 것이냐?
절대 아니었다.
굳이 판다면 1조 정도는 받아야 팔까 말까, 고민할 것이었다.
“어차피 내가 이긴다. 무엇을 걸 든 지 그건 의미가 없어.”
“그, 그렇긴 합니다만.”
풍림화산은 사사키의 주 무기이면서 길드의 보물이었다.
그러니 부하들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스터는 이미 엘레노아의 도발에 넘어간 상태였다.
“시간 끌 거 없지. 바로 결투를 시작하는 게 어때?”
“뭐, 좋아. 다만, 여기선 안 되는 거 알지?”
꿈틀.
“당연하지.”
요한의 마치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 같은 말투에 미간이 꿈틀거린 사사키였다.
“난 이곳 지리를 몰라서 말이야. 괜찮은 곳 있나?”
씨익.
사사키는 입꼬리를 올렸다.
“딱 좋은 곳이 있지.”
***
갑자기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일본 헌터 협회 관계자들과 일본 정부도 꽤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이거 의외로 일이 재밌게 흘러 가는데요?”
“어때, 사사키가 이길까?”
“아무래도 그러지 않을까요. 상대는 S급이 된 지 1년도 안 된 풋내기지만, 사사키는 3년이 넘었으니까요. 그리고 저 녀석, 꽤 영악한데요?”
“뭐가?”
“아니, 잘 생각해 봐요. 저 한국인은 네크로맨서. 즉, 시체가 있는 곳에서 100% 힘을 발휘하는 클래스잖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싸우면 시체의 시자도 못 찾을걸요?”
“아…… 그렇군.”
협회 임원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가는 돈이긴 하지만, 외국인인 한국인보다는 같은 일본인에게 나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지요.”
그들은 눈에 띄는 우익 인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우익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일본인들은 한국인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은 과거부터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로 얽혀 있었다.
그래도 그땐 일본이 국력으로 찍어 누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력이 역전되어 오히려 일본이 한국에 눌리는 형국이었다.
처음부터 약했다면, 그냥 강국을 부러워하는 것과 질시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엔 강국이었다가 나중에 역전당했다는 사실은 굳이 우익이 아니더라도 일본인으로선 커다란 콤플렉스였다.
이러다 보니 겉으론 우익이 아니더라도 한국에 한해선 우익이 되는 일본인들이 정말 많았다.
그러니 세금을 쓰는 일이었지만,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쇼를 크게 만들 생각이었다.
“아예, 이번 판을 크게 벌이는 게 어떻습니까?”
“크게요?”
“네, ‘김요한 헌터와 사사키 헌터의 1조 6,000억짜리 세기의 대결!’ 이라는 문구로 흥보도 하면 시청률도 제대로 오를 테고. 사사키 헌터 덕분에 일본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이기도 하지요.”
“흐음, 그거 좋군요. 김요한 헌터는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헌터인 만큼 당연히 그럴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김요한 헌터를 이긴다면 건방진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경고하는 효과도 있겠지요.”
“오, 그것도 좋겠군요. 으하하!!”
그들의 악취가 풀풀 나는 음모는 곧바로 실행되었다.
요한과 사사키의 1:1 대결 장소는 파티장 근처의 결투장이었다.
‘흐음, 여기 제대론데?’
결투장, 어떻게 보면 일본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였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헌터끼리 분쟁이 생기면 1:1 결투로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다.
오죽하면 헌터끼리 결투를 벌이는 스포츠까지 존재할 정도였다.
마치 권투나 킥복싱처럼 큰 상금을 걸고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 특유의 잔혹성을 여기서 보이는데, 가장 상금이 많은 경기는 하드코어 모드라고 일종의 데스매치였다.
상대방 헌터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제 헌터 협회에선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것을 금지했다.
때문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하드코어 모드라고 하고 공식적으론 살상을 금지했다.
하지만 사고나 실수는 어디에나 있는 법.
하드코어 경기에서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일본 협회는 실수 또는 사고라고 할 뿐이었다.
찰칵찰칵찰칵-!
결투장 주변엔 협회에서 부른 기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이거야. 이곳이야말로 이 사사키 님이 국제적인 스타가 될 수 있는 무대다!!’
사사키의 머릿속은 이미 승리 이후 어떻게 과실을 따 먹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이곳은 시체 1구 없는 깔끔한 결투장. 네크로맨서 따위가 이길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야.’
그의 자신감은 근거는 확실히 있었다.
“하암.”
요한은 하품했다.
“어이구, 오빠님. 하품이 나오세요?”
옆에 있던 미연은 곧 결투가 시작할 텐데도 긴장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요한을 타박했다.
“아니, 뭐. 지루한 걸 어떻게. 아이씨, 빨리 시작하지. 무슨 방송까지 하고 난리야.”
“저들의 분위기를 봐선 이미 승리를 자신하고 있네요.”
또각또각-!
엘레노아가 하이힐 특유의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뭐, 똑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저의 승리를 예상하고 저쪽은 저쪽의 승리를 자축하고 말이죠. 저는 그냥 빨리 끝내고 발 뻗고 자고 싶어요. 그냥.”
“아, 그렇네요. 아직 요한 씨는 제대로 쉬지도 못했군요. 죄송해요.”
무려 정신 에너지의 포탈을 파괴한 전투를 치렀음에도 휴식 없이 바로 파티장으로 끌려왔다.
마나야 아까 다 회복했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휴식이 필요했다.
뭐, 전투를 치르는 데는 딱히 무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하하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바로 시작하시죠?”
“하암, 오래 기다렸네.”
우드득-!
요한은 기지개를 켜며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스릉-!
사사키는 주 무기이자 이번 대결의 상품인 풍림화산을 뽑았다.
‘확실히 좋은 검이네.’
그가 구매했던 해골 가면의 2배의 몸값을 자랑하는 일본도였다.
최근엔 가격이 더 올랐다고 평가되는 물건이기도 했다.
“시작하지.”
사사키가 심판에게 눈짓하자 심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파이팅!!”
“요한 씨.”
두 미녀의 응원을 받은 요한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네놈을 일도양단시켜 주마.”
이 문장은 알아들은 요한.
“네이, 네이.”
그러거나 말거나 여유 만만의 태도를 유지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사사키 님 대 김요한 헌터, 김요한 헌터 대 사사키 님의 1:1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한쪽이 전투 불가능 상태가 되거나, 항복하는 쪽이 패배합니다. 목숨을 뺏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시작!!”
파악-!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사키가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그는 이번 대결을 길게 끌 마음이 없었다.
‘단숨에 끝내주마!!’
풍림화산을 양손에 쥐고 단숨에 요한과의 거리를 좁힌 사사키는 그대로 요한의 목을 향해서 일본도를 휘둘렀다.
“오오!!”
이 장면을 본 사사키의 부하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오야붕!!’
우익이자 야쿠자 출신인 그들에겐 마스터란 호칭보다 오야붕이란 표현이 더 익숙했다.
그들은 이번 공격에 소환 계열 헌터 따윈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씨익.
하지만 요한은 일본도가 목에 닿기 직전까지 웃고 있었다.
‘뭐지, 뭐가 웃기지?!’
사사키는 공격하고 있는 쪽이면서도 요한의 여유만만한 태도에 오히려 정신적으로 쫓기듯이 일본도를 휘둘렀다.
탱-!
결론적으로 일본도는 요한의 목을 치지 못했다.
“헉!!”
“저, 저건 뭐야?!”
그리고 그 일본도를 막은 것을 본 사사키는 물론 주변 헌터들도 깜짝 놀랐다.
구궁-!
풍림화산을 막은 것은 허공을 찢고 나온 거대한 뼈로 된 골렘이었다.
정확하게는 요한이 소환한 본 골렘이었다.
슈욱-!
“큭!”
쾅-!
본 골렘은 풍림화산을 막은 채로 곧바로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었다.
사사키는 아까웠지만, 뒤로 물러나야 했다.
“으으, 아깝다.”
“한 번에 끝낼 수 있었는데!!”
“이번엔 좀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꼼수는 오야붕, 아, 아니. 마스터한테는 2번 통하지 않지.”
“맞아, 오야, 아니. 마스터 힘내십시오!!”
“와아아아!!”
결투장은 그야말로 일방적인 사사키의 응원만이 가득했다.
오프라인은 그랬지만, 온라인은 상황이 180도 달랐다.
띠링-!
[채팅창]
ㄴ 오오, 시작하는 건가?
ㄴ 시작했다!
ㄴ 여기가 BTS의 나라인가요?
14장 사사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