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하지만 스켈레톤 워리어는 순식간에 몸을 말아서 방패를 앞세워 그대로 인형을 들이받았다.
콰당-!
갑작스러운 육탄 공격에 비교적 가벼운 인형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애초에 스켈레톤 워리어는 묵직함을 주 무기로 삼는 언데드였다.
굳이 잘하지도 못하는 화려한 검술 싸움을 해 줄 이유가 없었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집중적으로 하면 되는 일이었다.
“좋아, 힘으로 밀어붙여. 힘과 묵직함은 우리가 한 수 위다!!”
딱딱-! 쿵쿵-!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전부 방패를 몸으로 바짝 붙이고 똘똘 뭉쳐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쿵-! 쿵-! 탱탱-!
생체 인형들은 그런 워리어를 상대로 밀리지 않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생체 인형들과는 달리, 철저한 코딩 작업으로 집단 전술이 입력된 스켈레톤 워리어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인형 술사의 전투도 매우 뛰어난 편이긴 했다.
하지만 모든 전쟁사를 뒤지고 전문가에게 조언까지 받아 가며 코딩 작업한 요한의 적수는 아니었다.
“밀어!!”
딱딱- 쿵!
[낄낄낄. 제법이구나, 인간이여. 하지만 내 힘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다!!]
인형 술사는 직접 손가락을 움직이며 인형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하늘!!”
[응, 요한. 맡겨 줘!]
하지만 요한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않았다.
[꺄아아아아아!!]
하늘의 음파 공격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화르르륵-!
왜냐하면, 그 음파 공격에 화염 속성이 담겼기 때문이다.
[불 따위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인형 술사는 유령들의 화염 공격에 분노했다.
허공에서 불과 음파를 뿜어 대는 게 굉장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언데드 군단과 생체 인형 군단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쿵쿵-!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방전의 구도로 가고 있었다.
'흠.......'
그런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가 보스 몬스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보유한 언데드가 압도하지 못하는 모습이 영 별로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본 골렘!’
육중함으로 따지자면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보다도 몇 수는 위인 존재를 불러냈다.
구궁-!
복도 형태의 지형에선 불러낼 수가 없었다.
1기만 불러내도 복도가 꽉 차 버리니까.
하지만 이곳이라면 전혀 상관없었다.
2기의 본 골렘이 등장하자 갑자기 구도가 확 바뀌었다.
본 골렘이 공격당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며 생체 인형의 진형을 완전히 부숴 버렸기 때문이다.
이때를 놓칠 그가 아니었다.
‘본 월!!’
콰가가강-!
[흠?!]
본 월을 사용해 생체 인형을 또 둘로 갈라 버렸다.
인형 술사도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인간, 언데드는 나의 인형술이 통하지 않지만, 네놈은 과연 피할 수 있을까!!]
화악-!
분노한 인형 술사가 아예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요한은 깜짝 놀랐다.
그의 언데드 군단은 분명히 강력했다.
하지만 언데드를 제외하면 요한의 힘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위저드 저 녀석을 노려!!”
딱딱-!
위저드는 지팡이를 허공에서 휘두르더니 주변에서 검은 촉수를 만들어 냈다.
앙상한 팔을 앞으로 뻗자 그에 호응하듯이 검은 촉수들이 뻗어져 나갔다.
딱딱딱딱-!
[킬킬킬킬.]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인형 술사가 언데드 군단 위를 날아서 쇄도했다.
‘잠깐?!’
요한은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바로 인형 술사 본인의 몸에 투명한 실이 천장으로 연결된 것을.
찰나의 순간으로 보이긴 했지만, 확실했다.
‘뭐야, 저거. 인형 술사 본인도 인형이었어?!’
촤아악-!!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전투는 계속되었다.
검은 촉수 수십 개가 요한을 향해서 똑바로 날아오는 인형 술사를 노렸다.
[킬킬킬킬.]
휘리릭- 드르륵-!
얼핏 보기엔 검은 촉수 수십 개를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인형 술사는 몸을 빠른 속도로 빙그르르 돌리는 것으로 촉수를 피했다.
100% 피하지는 못했고 깊숙이 쓰고 있던 로브가 벗겨졌다.
딱딱딱-!
끔찍하게 생긴 인형 술사의 진짜 모습을 드러났다.
‘저, 저건 또 뭐야?!’
인형 술사의 몸도 인형일 것으로 생각한 것은 맞았다.
로브가 벗겨진 인형 술사의 진짜 모습은 생물이란 기준을 넘어섰다.
온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눈코입이 다 붙어 있어야 할 얼굴은 입만 정중앙에 달려 있었다.
그것도 날카로운 송곳니만 가득한 괴물 같은 입이.
‘젠장!’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빨리 녀석을 제압해야 했다.
이대로 둔다면 요한이 당할 수가 있었다.
샤악-!
‘음?!’
순간 요한은 인기척을 느꼈다. 아주 짧은 순간에 느껴지는 인기척.
마치 미스터 섀도의 첫 공격을 당했을 때의 그 감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요한의 목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스윽-!
하늘을 날고 있는 인형 술사의 뒤에서 그동안 몸을 숨기고 있던 미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참, 미연이 있었지?!’
전투에 집중한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다.
[킬킬킬!!]
인형 술사는 바로 뒤에서 가장 날카로운 암수가 튀어나왔음에도 여전히 요한을 보며 웃고 있었다.
미연이 팔을 들었다.
스걱-!
[킬킬킬……?!]
팔을 옆으로 긋는 순간 한참 웃던 인형 술사의 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미연의 공격에 인형 술사의 목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하늘, 완전히 태워 버려!!”
[응, 요한!]
푸화아악- 화르르륵!!
하늘은 곧바로 유령들을 이끌고 인형 술사의 머리와 육체를 태워 버렸다.
[키에에에에에에엑!!]
목이 떨어졌음에도 죽지 않았던 인형 술사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무리 본인의 육체를 인형으로 만들고 불사의 삶을 살아왔던 녀석이었지만, 강력한 화염 앞에선 무력한 인형일 뿐이었다.
샥-!
그리고 미연이 다시 나타나 불타고 있는 인형 술사의 육체 한 곳을 단검으로 푹 찔렀다.
후드득-!
그러자 인형 술사의 몸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전투를 벌이던 인형들이 동시에 힘을 잃고 쓰러졌다.
‘끝난 건가?’
생각보다 허무한 전투 결과였다.
스윽- 탁!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은신으로 몸을 감추었던 미연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오빠. 멋있지? 크으, 치열 할 때는 몸을 감추었다가 가장 극적일 때 나타나 적의 대장의 먹을 딴다. 그게 바로 암살자의 특권이지. 핫핫!”
팔짱을 낀 채로 오만하게 웃는 미연.
그런 그녀의 모습은 꽤 얄미웠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암살자인 그녀는 괜히 자잘하게 모습을 계속 드러내 주의를 끌 필요가 없었다.
적이 아예 그녀의 존재마저 잊은 상태에서 극적일 때 등장해 암살자 특유의 치명적인 공격 한 방이면 충분했다.
그 결과 요한도 허무할 정도로 쉽게 인형 술사를 제압하지 않았는 가.
“조금 얄밉지만, 활약했으니까. 수고했어, 미연아.”
“올, 오빠가 웬일로 순수하게 칭찬을 다 하네?”
“난 칭찬할 때는 순수하게 칭찬하거든?”
“에이, 거짓말.”
“다만, 네가 칭찬을 받을 만큼 잘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
“하여튼…… 웬일로 좋은 말 해 준다 싶었어.”
“큭즉. 어쨌든 수고가 많았어, 미연아.”
“오빠도.”
아마도 이런 갑자기 등장한 포탈일 경우엔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고 밖으로 나가면 자동 소멸할 것이다.
‘뭐, 소멸 안 되면 일본 측에선 주기적으로 나한테 부탁해야겠지만. 그럼 개이득이긴 한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쭉 등장했던 정신 계열의 포탈은 다 사라졌으니 말이다.
“자, 그러면 일단 정리나 좀 해 볼까?”
“음, 내가 딱히 할 게 있나?”
“음…… 아니.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오키.”
어차피 기본적인 노동은 언데드 군단이 하는 일이었다.
요한이 할 일은 간단했다.
‘녀석의 육체는 인형이라 이용하기 어렵겠지만, 영혼은 이용할 수 있겠지.’
요한은 인형 술사가 죽은 곳으로 가 보았다.
[으으으…….]
‘응, 되게 평범하게 생긴 영혼이네?’
생체 인형의 몸일 때는 19금 B급 크리처물에서나 나올 법한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혼 상태인 녀석은 평범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꽤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되게 의외네.’
녀석은 몸을 잔뜩 움츠리고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특히 눈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어미를 잃은 새끼 사슴과도 같은 눈이었기 때문이다.
‘뭐, 차라리 이게 낫지. 아무리 영혼이라도 육체처럼 기괴하게 생겼으면 여러모로 곤란했을 테니까.’
징그러운 시체인 언데드를 다루는 요한이라도 개인 취향이라는 게 있었다.
아무리 징그러운 언데드를 다룬다고 해도 그 괴기한 크리처는 딱 질색이었다.
“야, 너.”
[어, 어. 아, 아저씨는 누구예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로 가득한 눈빛의 소년.
“기억 안 나?”
[네, 무슨……?]
“하아.”
움찔-!
요한이 한숨을 크게 쉬자 소년이 몸을 떨었다.
뭔가 잔뜩 무서워하는 표정이었다.
“야, 너.”
[네, 네?]
“네가 누군지는 기억나냐?”
[저, 저요. 저는 프론티어 왕국의 인형 술사인 주피크라고 하는데요?]
“아, 그건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네. 너 그러면 혹시 지금 죽은 상태인 건 아냐.”
[네, 네?! 제, 제가 주, 죽었다고요?!]
“그래 인마. 너 나랑 격렬하게 싸우다가 죽었어.”
[사, 살인마!!]
소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요한을 삿대질했다.
“와, 이것 봐라. 너 몬스터였어.”
[네, 네?!]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나 보네. 너 포탈이 뭔지는 알아?”
[아, 아니요…….]
몇 번이나 더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소년 주피크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은 인형 극단 소속의 그가 인형극 공연 이후에 방에 들어가 잠을 잔 게 마지막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가 뭔지…….'
처음엔 유령이 된 것을 부정한 그였지만, 곧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한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에휴.]
“어린놈이 무슨 한숨이야?”
[엥, 어리다니요. 전 이래 봬도 43살이라고요!]
‘뭐, 뭐?”
[?]
“으아아아!!”
2번째 복잡한 상황의 발생으로 요한의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후우, 진정하자. 진정해, 흥분해 선 답이 없어.”
[?]
초등학교 5학년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년의 몸으로 43살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 하긴. 하늘도 저런 모습인데.’
[꺄하하. 신기하다, 신기해. 어떻게 내 몸에 불이 다 붙었지. 그것도 뜨겁지 않아!]
평소라면 그냥 돌아갔을 하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다미방 위를 빙빙 돌면서 몸에 붙은 불을 즐기고 있었다.
[저, 저기…….]
“뭐, 뭐. 왜, 왜?!”
[그,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