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는 세계최강-58화 (58/250)

8화

물론 그 사업의 실패로 길거리에 나앉거나 부모님이 사망하는 데 큰 원인을 제공한 건 아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 사업을 망친 일본에 화가 안 나는 건 아니었다.

일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개인적 반감까지 더하니 의뢰를 수행하더라도 푼돈(?)이라 할 수 있는 가격에 굳이 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 얼마를 요구해야 할까요?”

“음, 의뢰를 수행하면 수익 배분이 얼마라고 했죠?”

“네, 국제 표준상 7:3이에요.”

“세금도 따로 내고요?”

“네, 국제 의뢰는 국제법에 따르니 1%가 아니라 20%이니까요.”

“그럼, 2배 올려서 6,000억에 하죠."

“네?”

이번엔 엘레노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3,000억도 많다고 생각했던 의뢰금을 무려 2배나 올려 버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의뢰를 포기할 수도 있어요.”

“딱히 상관없습니다.”

엘레노아는 요한을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우, 알겠어요. 요한 씨가 그렇게 하겠다면 어쩔 수 없죠. 일본 측과 그렇게 말을 나눠 보겠어요.”

씨익-!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저야말로 오히려 곧 바로 거절하지 않아서 제가 더 감사하죠.”

엘레노아도 대충 한국과 일본 사이를 알고 있었다.

100%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와 비슷하거나 더 심하다는 것으로 비유해 보라고 조언한 한국인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런 관계에도 불구하고 단칼에 거절하지 않은 것은 확실히 러셀 길드의 일원으로 개인보다는 조직을 위해 준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1차 협의는 끝이 나고 요한은 엘레노아와 수다를 더 떨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서 길드를 나섰다.

엘레노아는 내심 요한과 점심을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정부 관계자와 선약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하아, 길드 마스터란 게 이럴 때는 귀찮구나.’

좋은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귀족 대우를 받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20살의 어린 꽃다운 나이의 소녀였다.

이런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할 때는 가끔, 아주 가끔 힘들기도 했다.

어쨌든 요한은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기 위해서 근처 대학가로 향했다.

‘얼마 전에 여기 근처에 『살려라, 골목 상권!』 이란 프로그램 제작진이 왔단 소리를 들었지.’

골목 상권을 살리는 취지의 프로그램은 벌써 시즌 8이 넘어가고 있었다.

수요일 인기 1위를 시즌 2에 달성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수요일 예능 1위를 넘겨준 적이 없는 확고부동한 1위 프로그램이었다.

벌써 시즌이 8개나 지났음에도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골목 상권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올 정도였다.

저번 주에 또 새로운 골목 상권이 첫 방송을 탔다.

요한은 이 근처에 온 김에 그곳에 들러 볼 생각이었다.

흔히 대학가라면 대학생들과 인근 주민들로 북적북적한 곳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상권이란 게 의외로 복잡한 게 많았다.

이번 『골목 상권』에 나온 지역은 대학교 근처이긴 했지만, 위치가 영 좋지가 않아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들었는데. 방송 첫 주 만에 이렇게 많아졌다고?’

특히 이번 주 방송엔 『골목 상권』 프로그램의 메인인 백종민 대표도 칭찬했던 돈까스 집이 나왔다.

그것을 먹으려고 사람들이 10m가 넘는 줄을 서 있었다.

‘히이, 난 저긴 안 가야겠다.’

어차피 팬심으로 온 것.

돈이 많은 그가 맛집을 몰라서 이곳에 왔겠는가.

‘방송에 나온 곳에 방문한다는 기분으로 하는 거니까. 사람 없는 곳에 가 봐야지.’

그렇다면 역시 그 논란이 됐던 닭볶음탕을 파는 가게가 아니겠는 가.

툭-.

'응?'

그런데 누가 갑자기 요한의 등을 건드렸다.

뒤로 돈 요한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미연아?!”

인맥 폭이 참 좁은 요한의 몇 없는 인맥 중의 1명이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왔기 때문이다.

“Hi~ 오빠, 오랜만.”

“이야, 이거 얼마 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요한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순수한 표정을 짓는 건 유나를 제외하면 정말 몇 명 없었다.

“에헤이, 그동안 연락 끊은 사람이 누군데, 그게 할 말이야?”

“아하하, 미안, 미안. 그동안 정말 바빴거든. 요즘에도 영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다.”

“뭐, 오빠가 깜빡깜빡 잘하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뭐야?!”

“뭐, 내가 거짓말했나?”

“끄응,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게 억울하네.”

요한이 워낙 큰 키라 아래로 내려다보는 소녀로 말하자면…….

그녀의 이름은 유미연 23세로 요한과는 정말 우연히 친해진 사이였다.

하지만 사소한 우연으로 친해졌음에도 꽤 깊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무려 다섯 살이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너의 패션스타일은 여전하네.”

“흥, 굳이 바꿀 필요 있어?”

“아니, 그냥. 한결같아서 보기 좋다고.”

“엣헴, 당연하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그녀는 스냅백을 참 좋아했다.

그것도 주문 제작으로 정면에 YMY 유미연을 이니셜로 박아 놓은 모자를 썼다.

패션도 전형적인 힙합 스타일로 과거보다 훨씬 발전하고 깔끔해졌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마치 과거와 마주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을 정도였다.

“여긴 무슨 일이야?”

“아, 근처 코노에 놀러 왔다가, 배가 고파서 밥이나 먹으려고. 여기가 이번 주 『골목 상권』 에 나왔잖아.”

“오, 나도 그래서 온 건데.”

“올, 역시 나랑 오빠는 통하는 게 많아.”

그녀의 매력이라면 털털하고 쿨하면서 화끈한 성격이었다.

“그러면 잘됐다. 같이 점심 먹으면 되겠네. 혹시 같이 먹기로 한 사람 있어?”

“아니, 없어. 같이 먹자.”

“오케이, 내가 쏜다.”

“올, 오빠 못 보던 사이에 돈 좀 벌었나 봐. 나랑 놀 때는 돈 없어서 빌빌했잖아.”

제삼자가 봤으면 웃으며 비꼬는 거로 보였을 정도로 직설적인 표현.

“흐흐, 그건 이제 옛날 일이란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났어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친한 두 사람에겐 상호 디스는 일상이었다.

애초에 요한과 미연은 서로 칭찬이나 좋은 말을 해 주면 혀에 닭살이 생길 정도였다.

좋은 말을 하면 혹시 술 먹었냐고 물어볼 정도로.

“닭볶음탕 Go?”

No, 칼국수 Go, Go.

칼국수 집은 딱히 임팩트가 없는 곳이었다.

“음, OK.”

“Go, Go!”

하지만 어차피 방송에 나온 곳에 간다는 게 중요했기에 쿨하게 수락했다.

역시 방송의 힘 덕분인지 큰 임팩트가 없었지만, 손님은 많았다.

줄은 좀 있었지만, 약 30분 정도 기다려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칼국수와 수육을 시킨 둘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요즘 어떻게 지내?”

먼저 말문을 연 건 요한이었다.

“나, 음…… 사실 재작년에 헌터가 됐어.”

“오, 진짜. 괜찮네.”

보통은 여기서 축하해란 말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베프인 둘은 굳이 축하한다고 할 필욘 없었다.

“그래서 사냥 다니면서 힙합 공연도 좀 해.”

“올, 너 어렸을 때부터 그게 꿈이었잖아. 본업으로 돈 좀 크게 벌고, 부업으로 힙합 공연하면서 다니는 거.”

“YeS, 쿨하지.”

“하하.”

“그런데 오빠는? 오빠는 요즘 뭐 하고 지내?”

“……넌 여전하구나.”

“응?”

“힙합과 관련된 거 말고는 TV나 인터넷 안 보는 습관 말이야.”

“당연하지. 귀찮아.”

세월이 꽤 많이 지났는데도 미연은 변한 게 없었다.

‘나는 꽤 많이 변했지만 말이야.’

“나 유명하잖아.”

“정말?”

미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얼마 전에도 내 뉴스가 떴어.”

“와우, 대단해. 진짜 대단해. 오빠가 난 놈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유명해질 줄이야.”

“하하하, 그게 뭐야.”

둘은 옛날얘기를 꽃피우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참 좋았다.

후르르릅-!

“음, 역시 평범하네. 임팩트가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으잉, 근데 지금쯤이면 솔루션 끝났을 때 아닌가?”

보통 솔루션이 끝나면 방송을 탔다.

시즌 전체는 아니더라도 골목별로는 사전 제작 형태였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말 안 들은 곳인가 보네. 방송 보니까, 저 사장님 실력은 없으면서 고집만 센 거 같던데.”

“으헛, 정말 싫어. 그런 사람들 힙합계에도 있거든. 실력도 뭣도 없으면서 자기 랩 스타일이 옳다고 생각하는 스타병 걸린 놈들.”

“너도 아마추어잖아.”

“흥, 아마추어도 급이 있거든?”

“킥킥, 그래, 그래.”

그렇게 칼국수와 수육을 대충 먹고 남긴 둘은 후식이라도 맛있게 먹기 위해서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계산은 일단 칼국수값은 요한이 내고 디저트는 미연이 내기로 했다.

후릅-.

“크으, 역시 여기 커피는 맛있다니까.”

“디저트도 달콤한 게 딱 내 취향이고.”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옛날 생각난다.”

“그러게, 그때는 오빠가 나 많이 챙겨 줬는데.”

“시시콜콜 태클도 열심히 걸었지, 아마?”

“그건 오빠가 칠칠치 못해서 그런 거고요.”

“그런 적 없거든?!”

“푸핫!”

호탕한 웃음도 여전했다.

“아 참, 그걸 안 물었다.”

“응, 뭘?”

“너도 헌터라며. 등급이랑 클래스 좀 물으려고. 참고로 난 S급에 소환 계열인 네크로맨서야.”

그러면서 요한은 어떠냐 하는 도발적인 눈빛이었다.

물론 서로 반가운 사이는 맞았지만, 워낙 오랜만에 보니 아주 살짝은 어색한 기류가 있었다.

아무리 친했지만, 연락이 없던 기간은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그런 어색한 기류는 미미했고 조금만 시간이 흐르자 곧바로 사라졌다.

“오빠 혹시 언제 각성했어?”

“어, 한 7개월쯤 됐나?”

척-.

‘응?’

열심히 커피와 케이크를 먹던 미연은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오만한 눈빛으로 요한을 보더니.

운동으로 다진 탄탄한 몸매에 어렸을 때부터 미모와 재능이 범상치 않던 그녀였다.

취미가 힙합과 이종 격투기일 정도로 굉장한 운동광이었다.

"S급. 계열은 암살자. 각성한 지는 3년째. 레벨은 513. 어때요, 후배님?”

“컥!”

커피를 마시던 요한은 사래가 들렸다.

‘뭐, 뭐야 이 괴물은?’

그가 깜짝 놀란 이유는 3가지였다.

일단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대한민국에도 별로 없는 S급 각성자라는 점.

두 번째는 그녀가 암살자라는 점.

마지막 세 번째는 각성 3년 차치곤 레벨이 무척 높다는 점이었다.

‘암살 계열은 막공에서도 잘 안 끼워 주는데?’

아무리 S급이라도 S급 수준에 맞는 사냥터에선 팀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떻게 3년 만에 레벨이 513이지?’

“깜짝 놀란 표정이네, 후배님?”

“끄응, 암살자면서 어떻게 그렇게 레벨을 많이 올린 거야?”

으쓱-.

“몰라, 그냥 혼자 열심히 사냥하니까 오르던데?”

‘끄응, 역시나. 이 빌어먹을 재능.’

미연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10살짜리 꼬맹이였을 때 만난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 주제에 굉장히 어른스러웠다.

그때도 힙합을 좋아했는데 힙합 외엔 뭐든지 귀찮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공부는 늘 전교 10등 안에 들었고, 체육 점수는 만점이었다.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여걸 그 자체였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잘하던 미연이 헌터까지 재능이 풍부한 것이었다.

‘이해가 가면서도 분하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