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확실히 누군가 있다!’
[쿨럭! 쿨럭! 으으윽, 죽겠다.]
‘으잉?’
연기 속에서 들려오는 힘 빠지고 나약한 목소리.
연기가 사라지고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긴 턱수염과 머리카락이 새하얀 노인이었다.
검은 로브를 입고 지팡이 같은 스태프로 굽은 허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유령 주제에 뭐 이렇게 리얼해?’
죽은 다음에 생성되는 영혼은 생전의 모습과 100% 일치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물리적 능력이 없는 영체에 불과한 존재.
굳이 외견에 얽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전의 모습과 비슷한 이유는 간단했다.
영체가 형성될 때 작용하는 것에 죽은 자의 넋이라고 불리는 사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생전의 모습이 강하게 떠오르면 저절로 그와 비슷한 형체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살짝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영체가 됐을 때 외견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감은 아무리 봐도 나아졌다고 하기 힘들단 말이지.’
정말 이야기책에서나 나올 법한 마귀 할아범 같은 외모였다.
[흘흘흘, 으헛. 나이를 먹었더니 안 쑤시는 곳이 없구먼. 자네가 나를 불렀는가?]
“흠, 일단 그렇긴 한데. 당신, 네크로맨서 맞지?”
100세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노인의 모습에 대놓고 반말을 하는 요한.
[흘흘흘, 그렇네. 비록 생전에 큰 업적이나 활약을 한 적은 없지만, 학술적인 부분에선 그 어떤 네크로맨서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지. 내가 탄생시킨 로드만 8명일세. 흘흘.]
“호오, 제법인데?”
굳이 존댓말을 할 이유도 없는데다가 존댓말은 일종의 관습 같은 것이었다.
굳이 거기에 얽매여 있을 이유는 없었다.
또 상대는 일반 노인이나 영감이 아닌 영체, 즉 영혼이었다.
이미 죽은 자에게 존댓말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딱 좋은데?”
[흘흘, 그런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실전이나 스킬 그 자체보단 이론이나 지식이거든.”
[호오, 확실히. 네놈에게서 느껴지는 이 심상치 않은 기운으로 봐서는 굳이 내가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뭔가 부족한 게 느껴지기도 하는군. 정말 이상한 존재야, 네놈은.]
“뭐, 조금 사도 개념이긴 하지.”
[흘흘, 우리 네크로맨서에게 사도란 없네. 죽음이란 근본에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거지.]
“뭐, 그것도 인정. 하지만, 지금 나에겐 그러기 위해선 당신의 지식이 필요하니까.”
[뭐, 다른 녀석을 불렀다면 아마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거절했을 테지. 아니면, 무리한 조건을 걸었거나.]
“그래서, 당신도 그럴 거야?”
요한의 도발적이며 건방진 질문.
그런 도발적인 질문에도 불구하고 늙은 네크로맨서 영혼은 웃을 뿐이었다.
[흘흘, 그럴 리가. 나는 내 한 몸을 보신하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지. 150년을 살면서 한순간도 나에게 힘이나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 그저 뛰어난 후인을 양성하는 게 내 숙명이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죽고 나서도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군.]
“좋은 생각이야, 영감.”
[다만…….]
“응?”
말 잘하다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늙은 네크로맨서.
[부탁이 한 가지 있네.]
“부탁?”
[만약에 나의 지식이 마음에 든다면, 내 몸을 하나 마련해 주면 좋겠네.]
"몸?"
[그래, 어차피 이렇게 불린 거 리치로 되살아나 보고 싶구먼.]
으쓱-.
“뭐,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네. 단,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했지?”
[그렇네, 그건 확실히 해 두지.]
“좋아.”
그렇게 주고받기 형식의 거래가 성립되었다.
‘아직 영혼을 넣을 수 있는 언데드를 만드는 방법은 모르지만, 코딩 특성도 있고 영감에게 배운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흘흘, 언제 시작하겠나?]
“바로 시작하지. 시간 끌 필요 없잖아?”
[마음에 드는 청년이구먼. 흘흘흘.]
그렇게 요한은 늙은 네크로맨서에게 1:1 특강을 듣기 시작했다.
***
요한은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1번씩만 던전 포탈을 돌면서 사냥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곳에 사용했다.
물론 시스콤인 그가 100% 네크로맨서 지식을 배우는 데 쓰는 건 아니었다.
잘 때는 코딩 작업에 몰두했고, 유나가 학교에 있을 때는 네르코맨서 강의를 들었다.
또 유나가 집에 있을 때는 최대한 그녀를 챙겨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수능을 치는 날이 되었다.
“유나야, 푹 잤지?”
“응.”
“복습할 건 간단히 챙겼어?”
“응.”
“도시락은?”
“챙겼어.”
“후우.”
잔뜩 긴장한 그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푸흡, 시험은 내가 치는데 긴장은 왜 오빠가 해?”
“그, 그렇지만. 수능이잖아. 이 한 번으로 유나의 미래가 결정되잖아. 너는 긴장 안 돼?”
대학 입시 과정에서 정시 VS 수시의 경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나마 저번 정부부터 이번 정부까지는 정시에 손을 들어 주었다.
덕분에 유나는 별걱정 없이 돈 들이지 않고 시험공부에만 열중할 수가 있었다.
“긴장을 왜 해. 어차피 3년 내내 쳤던 시험 또 치는 것뿐일 텐데.”
“그, 그래도. 우, 우황청심환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킥킥, 그건 나보다 오빠가 먹어야겠는데?”
“그, 그럴까?”
“와, 오빠 진짜 긴장했구나?”
“끄응, 미치겠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어야겠어.”
“네, 네. 그건 가면서 하시고요. 빨리 데려다주시죠, 오빠님?”
“으, 응.......”
지금 상황으로선 유나는 대중교통이 더 편할 것 같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운전을 맡기기 불안할 정도로 긴장했기 때문이다.
‘에효.’
그런 요한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중간에 들렸던 약국에서 청심환을 먹은 다음에야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삐익-! 삐익-!
“와아아아!!”
둥둥둥둥-!
“힘! 힘! 힘! 힘!”
“선배, 여기 찰떡!”
“여기, 여기. 엿 먹고 가요!”
“공짜 커피 드려요!”
어머니 또래 되시는 분은 푸드 트럭을 가져와 무료 커피를 나눠 주고 있었다.
수능은 고3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행사나 마찬가지였다.
“수능 치는 분들 모두 파이팅!!”
수능 시험장 앞은 그야말로 인산 인해였다.
다양한 교복을 입은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수능을 치는 3학년을 응원하고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정보화 시대를 넘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겪으면서 시대의 큰 틀은 바뀌어 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여전히 대입 위주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도 늘 우수한 인재가 쏟아져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혹자는 어떤 교육으로도 훌륭한 인재는 나오니 보수적인 교육계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히, 힘내라, 유나야!!”
“응, 오빠.”
“후우.”
요한은 수능 시험장으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유나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뭐든지 열심히,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유나야.’
헌터가 되어 여유가 생긴 요한은 그저 유나가 행복해졌으면 했다.
수능이 끝나는 시간은 17:30분, 지금은 08:00이니 9시간의 남는 시간이 생겼다.
‘길드나 다녀와야겠다.’
물론 거의 외부인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러셀 길드의 팀장 직위인 그였다.
가끔은 얼굴을 비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이거 너무 할 일이 없는 거 아니야?’
그는 S급 헌터로 연봉 4,000억을 받고 있었다.
보통 길드가 고액 연봉을 줄 때는 그만큼 굴릴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해외 파견이라든가 말이야.’
하지만 지금까지 해외 파견은커녕, 자잘한 호출 한 번 받질 않았다.
‘러셀 길드 자체는 한창 비상하고 있는데 말이야.’
말 그대로 러셀 길드는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길드 본부에 도착한 요한은 곧바로 엘레노아를 만나러 갔다.
비서가 요한을 보자 막기는커녕 인사를 했다.
보통은 막아서고 먼저 전화로 연락을 넣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특별 지시로 요한은 그런 게 생략되어 있었다.
똑똑-!
“들어와.”
노크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간 요한.
엘레노아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존재를 보곤 깜짝 놀랐다.
한창 전화 중이던 엘레노아는 얼른 나중에 전화한다고 해 놓고 끊었다.
“요한 씨?”
“여어. 안녕하세요, 마스터.”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그의 태도는 정말 많은 게 바뀌었다.
사실 원래 요한의 성격이 그런 편이다.
낯을 가릴 때는 정말 많이 가리지만, 한 번 친해졌다 싶으면 베스트 프렌드처럼 구는 것 말이다.
다만, 요한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 친해지는 과정이 좀 어려운 편이다.
“연락도 없이 웬일로?”
“아, 오늘 제 동생 수능이라서요. 시험장 데려다주고 잠깐 들렀습니다.”
“아, 그렇군요. 딱 좋은 타이밍에 오셨네요.”
“네, 좋은 타이밍요?”
“네, 마침 요한 씨에게 해외에서 의뢰가 들어왔거든요.”
“의뢰라, 드디어 제 연봉 값을 할 차례가 온 건가요?”
그의 말에 엘레노아는 눈에 띄게 웃지는 않았다.
하지만 잔잔하게 웃음기를 띄었다.
‘크으, 대놓고 웃는 게 아닌데도 뭐 저렇게 예쁘지?’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의뢰란 게 뭔가요?”
“일단 의뢰를 한 곳은 일본이에요.”
꿈틀-.
그의 미간이 잠깐 들썩였다.
그 모습을 놓칠 엘레노아가 아니었다.
“일……본이요?”
“네.”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 징집, 강제 노역 피해자들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은 여전히 앙숙지간이었다.
대한민국이 G3 로 올라서면서 1:1로는 확실히 일본을 앞섰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이 G3가 되면서 미국의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미국은 한국과 중국을 견제할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했고 미국의 든든한 지원으로 G3를 위협하는 G20 소속으로 활동하는 일본이었다.
북한이 붕괴한 이후 주한 미군은 철수했지만, 주일 미군은 여전히 오키나와에 주둔해 있었다.
“거절할까요?”
“아, 아니요. 하하, 왜 거절합니까. 돈이 되는 일일 텐데요.”
“아, 네. 일본에서 이번 이상 현상으로 발생한 포탈을 제거해 주는 조건으로 3,000억을 제시했어요.”
“그건 거절하죠.”
"네?"
엘레노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요한을 보았다.
“너무 적어요.”
“……3,000억이 적은 건가요?”
세계적 갑부 가문의 막내딸인 그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의 가치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포탈 제거 의뢰에 3,000억이면 절대 나쁜 금액이 아니었다.
“아니, 생각해 보세요. 일본은 G3까지는 아니라도 영국보단 큰 국가잖아요?”
“……네, 그렇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영국보다 일본이 강국이었다.
“그런 일본이 별로 사이도 좋지 않은 나라의 일개 S급 헌터에게 의뢰를 한다? 그건 꼭 저의 힘이 필요하단 뜻이잖아요. 안 그래요?”
“맞아요. 인정해요.”
엘레노아도 그런 점을 느끼지 못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3,000억은 큰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객관적인 게 아니라, 주관적이란 것이었다.
요한은 어지간한 금액으론 일본을 돕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했던 사업이 망한 이유가 일본놈들 때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