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으흐흐흐흐.]
샤아아아-!
주변에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으면서 쇠끼리 부딪치는 특유의 소리가 울렸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도깨비불을 연상시키는 불꽃이 터지면서 몬스터가 등장했다.
[내 사냥감이 이곳에 왔군.]
‘저 녀석은?’
요한은 얼른 스마트폰을 사용해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보았다.
# 마계의 수문장 아큘레스
종류: 보스 몬스터
위험도: B-
설명: 마계의 입구를 지킨다고 알려진 아큘레스. 왼손잡이로 왼손엔 마왕에게 하사받은 마검 ‘요룬’ 을, 오른손엔 마계를 허락도 없이 침입한 존재를 참수하고 그 영혼을 가둔 거울을 쥐고 있다. 정신 계열 보스 몬스터로 어지간한 존재는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린다.
즉, 겉모습은 전사지만 사실은 정신 계열 술사이다.
헌터 덕후인 요한도 잘 모르는 몬스터였다.
‘위험도 B-……. 젠장, 역시 장난 아니군.’
위험도 B는 처음 등장하는 등급이었다.
그만큼 아큘레스라는 보스 몬스터는 위험한 녀석이었다.
두근두근-!
하지만 오히려 요한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내 것이야!’
강한 보스 몬스터다 보니 더, 더, 더 탐이 났다.
‘저번에 잡았던 그 주교 녀석은 신성 계열이다 보니, 언데드로 만들지 못했지만. 저 녀석은 다르겠지!’
영혼까지 다룬다고 하니 네크로맨서와 상성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자, 얘들아!!”
딱딱-!
언데드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것들!!]
후웅-! 후웅-!
아클레스의 묵직한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나의 종복이 되어라!!]
지잉-!
아쿨레스의 능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난 살짝 떨어져야겠다.’
요한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응……?]
아큘레스는 당황했다.
분명히 정신을 지배하여 부하로 삼는 것이 그의 메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데드 군단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 아니. 자, 잠시만. 타, 타임!!]
당황한 아큘레스는 말까지 더듬으며 손발을 내저었다.
사실 그가 커다란 검을 들고 있지만, 호신용 정도에 불과했다.
녀석의 전투력은 자신에게 현혹된 부하들을 다루며 그 부하들을 서포팅하는 게 메인이었으니 말이다.
씨익-!
‘역시.’
[꺄하하하, 너무 웃겨!]
하늘은 그런 아큘레스의 모습을 보곤 폭소를 터트렸다.
“얘들아, 중요한 손님이다. 정중하게 대해라.”
딱딱-!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단, 반항하면 죽이지만 말고.”
딱딱-!
후웅- 후웅-!
[무, 물러서!!]
검을 휘두르며 반항해 본 아꼴레스였다.
하지만 전형적인 술사형 몬스터인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퍽퍽퍽-!
[크악, 아악, 으억, 거, 거긴 뼈, 뼈. 뼈 맞았어! 크아아악!!]
녀석의 비명만이 숲 전체를 울렸다.
***
아큘레스의 외형은 인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큘레스는 인간과는 다르지만, 매우 불쌍한 모습이었다.
눈 주위엔 멍이 들고, 얼굴은 팅팅 부은 상태로 양팔을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잡힌 채로 질질 끌려왔다.
[주, 죽여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큘레스의 눈엔 지울 수 없는 공포가 담겨 있었다.
“아큘레스.”
[히끅!]
아예 딸꾹질까지 해 버리는 녀석.
마계 수문장이라는 칭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었다.
“너 뭐야, 왜 이렇게 새가슴이야?”
[새, 새가슴이라니. 건방진 인간이로구나. 난 마계 수문장 아큘레……!]
퍽-!
나름대로 자존심을 세워 보겠다고 소리치려던 아큘클레스.
하지만 요한이 스켈레톤을 대하 듯이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크악!]
요한의 평범한 공격에도 비명을 지르는 아큘레스.
확실히 녀석의 신체 스펙은 나약했다.
[으으으.......]
아큘레스는 괴로움에 신음했다.
‘이 녀석, 정말 허당인데?’
나름대로 긴장하고 잡은 게 허무 할 정도로 말이다.
‘뭐, 쉽게 잡았으니 다행이지, 뭐.’
허무했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 하는 승리가 가장 위대한 법이었으니까.
“야, 아큘레스.”
[……뭐냐, 인간이여.]
“미안하다.”
[무, 무슨……!]
아큘레스가 깜짝 놀라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변이 스켈레톤의 검이 더 빨랐다.
스걱-!
녀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떨어져 나갔다.
‘녀석을 부하로 만들면 제일 좋겠지만. 안전장치가 없으니 어쩔수 없지.’
영혼이나 야생 언데드는 네크로맨서 자체적인 능력으로 복종을 끌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큘레스는 언데드가 아니라, 마족이었다.
아무리 요한이 이리저리 제약을 건다고 해도 배신하려고 한다면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 따윈 없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조금 약하더라도 언데드가 낫지.’
그래서 살짝 고민하던 요한은 그대로 녀석의 목을 베어 버렸다.
‘후우, 당장은 이게 손해 될 짓이겠지만. 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게 맞는 판단이지.’
탱크랑-!
서서히 무너지는 아큘레스의 오른쪽으로 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응? 아, 저거. 설명에 요룬이라는 마검이었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엉, 옆엔 거울까지. 아이템이 이렇게 동시에 다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나?’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가끔 아이템을 떨어트리긴 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가끔 벌어지는 로또와도 같은 일이었다.
포탈 안에서 마석이나 몬스터 사체 말고 아이템을 얻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요한의 눈앞엔 2개의 아이템이 떨어졌다.
‘대박!!’
대박 그 자체였다.
‘이야, 쉽게 잡은 보스에 아이템이 2개나 떨어지다니.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로또라도 구매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 하긴. 로또 당첨되어도 내 수익에 비하면 소액이었지.’
잠시 익숙한 서민 냄새를 낸 그였다.
그는 연봉 4,000억에 달하는 S급 헌터였다.
기껏해야 10~30억이 당첨되는 한국 로또는 용돈 수준에 불과했다.
‘뭐, 굳이 하려면 미국의 파워볼 정도는 돼야지.’
당첨금이 1조가 넘는 파워볼이라면 요한도 욕심날 만했다.
‘다만, 법이 바뀌어서. 파워볼은 미국인만 할 수 있게 돼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야.’
만약에 하고 싶으면 미국 시민권을 따야 했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S급 헌터가 시민권을 달라는 데 주지 않을 바보 같은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뭐, 당장은 딱히 관심 없지만.’
사실 요한은 로또 같은 복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헌터가 되기 전에도 로또 사야지, 사야지 했다가. 매주 까먹어서 결국 포기했지.’
킥킥, 그때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웃겼다.
어쨌든 파워볼만큼은 아니겠지만, 로또보다는 훨씬 더 가치 있는 대박이었다.
‘어디 보자, 분석 프로그램으로 아이템 정보도 확인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오, 안내인 씨.”
[지금 분석 프로그램 돌릴까요?]
“응, 돌려줘.”
[알겠습니다.]
[마검 요룬
마나 증폭: 33.112
내구력: 30.0
부가 효과: 정신 계열 저항력(11.0), 소환물 강화(3.0), 스킬 시전 속도 감소(1.2), 마나 회복 속도 증가(1.5), 스킬 공격력 향상(1.2)]
‘뭐야, 이거.......'
마검 요룬의 성능을 본 요한은 깜짝 놀랐다.
‘마검이라면서 성능은 완전히 스태프잖아!!’
그것도 요한이 비싸게 구매한 스태프보다 훨씬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팔거나 언데드 주려고 했는데. 내가 써야겠어.’
지금 쓰고 있는 스태프는 언데드를 주면 될 일이었다.
‘좋아, 좋아. 그다음은 이 거울인가.’
[평범한 거울 방패
마나 증폭: 9.159
내구력: 3.111
부가 효과: 마법 반사 하루에 2회, 마법 저항력(2.9)]
‘음, 이건 물리 방어와는 전혀 관계없는 마법 전용 방패네. 이건 팔아야겠다.’
딱히 요한이 쓰거나 언데드에게 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런 평범한 장비도 비싸게 팔리니 소모한 돈을 어느 정도 채울 용도론 괜찮을 것 같았다.
“아 참. 어이, 변이!”
딱딱-!
“일단 이 녀석 시체부터 챙겨라. 지금 당장 사용하기엔 그렇고 이번에 새롭게 준공되는 실험에서 써먹어야겠다.”
딱딱-!
충실하게 대답한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는 요한이 미리 준비해 둔 커다란 더플백에 아큘레스의 시체를 욱여넣었다.
‘아쉽게도 마족이라 그런가. 영혼도 안 나오고 말이야. 딱 시체만 사용해 봐야겠네. 쩝.’
강한 몬스터를 잡으면 사체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가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이번 보스 몬스터는 사체 밖에 못 건졌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가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있자, 뒤늦게 헌터 협회와 러셀 길드가 현장으로 도착했다.
“요한!”
타악-!
맨 선두엔 엘레노아가 달려오고 있었다.
“정신 계열 몬스터가 나왔다고 들었어요. 괜찮으세요?”
익숙한 눈빛이었다.
‘유나…….'
마치 친동생인 유나가 오빠를 걱정하는 눈빛 그대로 엘레노아는 요한을 걱정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쉽게 끝났어요.”
“네?”
“녀석은 정말 순수하게 정신 계열 능력만 있더라고요. 하지만, 아시잖아요. 제 언데드는 정신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는 시체라는 걸.”
“아아……."
엘레노아는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보스 몬스터보다 훨씬 쉬웠겠네요?”
“큭, 싸우지도 않고 목을 벴습니다.”
“와우, 이런 행운이 있나. 저는 영국에서 소식을 듣고 얼마나 걱정 했는데요. 괜히 빨리 날아왔네요.”
“큭큭큭, 전화부터 해 보시지 그러셨어요.”
“아, 음……."
엘레노아는 요한이 너무 걱정돼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만큼 정신 계열 몬스터는 인류에 있어서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아,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정신 계열이라고 해도 보스 몬스터인데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이기셨다니.”
으쓱-.
“별거 아닙니다. 오히려 시시했어요.”
“후후.”
엘레노아는 당당하고 재치 있는 요한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혼혈이지만, 영국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자란 그녀로선 보통 한국 사람은 쓸데없이 겸손하고 딱딱해 재미가 없었다.
겸손하지 않으면 당당한 게 아니라 경솔한 경우가 더 많아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요한은 적당히 겸손하고 당당하며 재치까지 있으니 좋았다.
“……또 늦었군요.”
협회 소속으로 이런 이상 현상에 전문적으로 투입되는 공격대 대장이 허무한 듯 읊조렸다.
물론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깔끔하게 이상 현상을 막은 것이니 말이다.
보통 다른 이상 현상들은 다 매우 급한 상황에서 꽤 피해를 보고 막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요한만 엮이면 뒷북을 치게 되니 약간 회의감 같은 게 들었다.
‘차라리 요한 헌터가 이 팀을 맡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요한이 잘해서 피해 없이 막은 게 아니라, 우연히 요한의 근처에서 사건이 벌어지기에 쉽게 막은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