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탱탱탱-!
화가 난 고블린 블레이더는 몇 번이고 더 본 골렘을 강하게 가격했다.
“본 골렘, 다 짓밟아 버려!!”
쾅- 콰직!
아직 코딩이 덜 된 평범한 언데드였다.
하지만 특유의 묵직함과 방어력은 굳이 코딩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역시 내가 할 일은 그 외의 것을 다듬는 일이지.’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전투가 매우 급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그럴 틈이 없었다.
부스럭-!
“캬오!”
“크에에엑!!”
고블린들은 특히 인간에게 공격적이었다.
진화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그러니 인간 마을의 냄새를 맡은 고블린 블레이더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뭐, 나한테는 우습지만 말이지.’
“본 골렘, 녀석들을 굳이 일일이 짓밟지 마. 그냥 날려 버려!”
구궁-!
대답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뭔가 소리를 낸 본 골렘.
녀석은 이제 고블린 블레이더를 공격할 때 아예 축구를 하듯이 발로 뻥뻥 차기 시작했다.
퍽-!
“크엑!”
퍽-!
“캬욱!”
“푸하하!!”
그 모습이 상당히 웃겼다.
물리 공격력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는 본 골렘이었지만, 워낙 묵직한 파워가 좋아서 발차기에 맞은 고블린 블레이더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건 훌륭한 CC기이기도 했다.
“조져 버려!!”
딱딱-!
그 틈을 이용해 스켈레톤 워리어가 3기당 1조로 이동하며 발차기에 맞고 나무에 부딪힌 고블린 블레이더만 노려서 공격했다.
스걱- 퍽!
“크엑!”
스켈레톤 워리어의 무자비한 칼질과 철퇴가 내려졌다.
충분한 시체가 마련되자 요한의 스태프도 움직였다.
‘라이즈 구울!’
“크아아아악!!”
구울과 좀비는 비슷한 종류의 언데드로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다른 특성을 보였다.
좀비는 지능이 매우 떨어지고 느릿느릿한 언데드.
하지만 구울은 화끈하고 빠르며 파괴적인 언데드였다.
되살아난 시체라는 특성 때문에 좀비와 같이 30%의 능력 감소가 있지만, 좀비와 달리 살아 있을 때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이건 꽤 강력한 특성이 아닐 수 없었다.
쉬익-스걱!
“크엑!”
되살아난 고블린 블레이더 구울은 은밀하게 움직이며 양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살아 있을 때는 동료였던 같은 고블린 블레이더 한 마리의 목이 떨어졌다.
이게 바로 고블린 블레이더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기술, 그림자 베기였다.
‘골렘류는 보통 베기 면역 특성이 있으니 베기 공격밖에 할 수 없는 고블린 블레이더에겐 상극이지.’
그래서 보통 고블린 블레이더가 서식하는 포탈을 공략할 때 1티어 클래스가 바로 골렘 술사였다.
높은 수준의 골렘 술사는 아이언 골렘이라는 베기 공격이 거의 아예 안 통하는 골렘까지 소환이 가능했다.
그야말로 고블린 블레이더 무리로선 지옥의 강림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파박파박-!
여전히 많은 숫자의 고블린 블레이더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왔다.
“캬오!”
퍽-!
“크륵."
하지만 나오는 족족 본 골렘에게 차여서 날아갔다.
‘오, 이거 의외로 뼈가 빨리 모이는데. 그러면 본 골렘을 1기 더! 본 골렘!’
본 골렘이 3기에서 4기로 늘어났다.
퍽퍽퍽-!
“크엑!”
발차기에 날아가는 고블린의 숫자가 3배수에서 4배수로 늘어났다.
누가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장면이었다.
비록 골렘류라는 확실한 카운터가 존재하는 몬스터였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었다.
암살에 특화된 녀석들이다 보니, 골렘을 무시하고 곧바로 약해 보이는 적을 공격하기도 하니까.
샤악-!
이번에도 그랬다.
고블린 블레이더가 요한을 직접 노리고 다가왔다.
쿵-!
“크엑!”
“구억구억.”
하지만 요한의 언데드는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었다.
암살 특화된 몬스터에 쥐약이나 마찬가지인 딜탱 역할이 가능한 예티 좀비였다.
요한에게 다가온 고블린 블레이더를 그대로 찍어 눌러 버렸다.
그런 식으로 언데드 군단은 순식간에 고블린 블레이더를 갈아 버렸다.
중간에 중간 보스급의 어둠의 고블린 블레이더도 나왔지만, 언데드 군단의 압도적인 숫자 앞에선 무력할 뿐이었다.
‘이대로 끝인가, 평범하네.’
대피하는 이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더 화끈한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고블린 블레이더가 전부라니 실망스러웠다.
‘이상 현상도 별거 없네.’
사실은 그가 이상한 것이었다. 이상 현상이 무엇인가?
포탈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발생하며 그 안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 아니겠는가.
즉,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기습이 두려운 것이었다.
어떤 공격대라도 던전 포탈을 돌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를 하니까.
하지만 요한은 조금 달랐다.
그는 애초에 사냥을 하는 데 있어서 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식량이나 맥주 같은, 뒤에서 즐길 거리를 챙기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이상 현상이라고 해서 겁날 게 전혀 없었다.
보스 몬스터라도 나와서 몰아치면 모를까 일반 몹들만으론 언데드 군단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삐리리릭-!
‘응?’
그때 요한의 스마트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뭐지?’
화면을 보니 제임스가 찍혀 있었다.
“어, 나야.”
[헌터님, 큰일 났습니다!]
“응, 무슨 큰일?”
[지금 막 헌터 협회에 포탈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연락했는데. 지, 지금 그, 그곳 인근에서 엄청난 정신 에너지가 탐지됐다고 합니다!!]
“뭐, 정신 에너지?!”
[예, 그래서 막 그곳에 출동하려던 러셀 길드 소속 공격대도 보류된 상태입니다.]
“흠……."
본래라면 이상 현상 한가운데 있는 요한을 빨리 지원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신 에너지가 진하게 발산되는 장소라면 요한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지금은 많이 잊혔지만, 과거 역사서에 기록된 끔찍한 사건이 있었지.’
이상 현상은 과거에도 한 번씩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이상 현상이 발생해 특수 공격대가 소집됐다.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포탈엔 정신 조작을 하는 보스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날 투입됐던 100여 명의 헌터는 전멸했다.
딱 3명이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그중 둘은 백치가 되어서 헛소리만 하는 광인이 된 상태였다.
끔찍한 사건에 정부와 협회는 힘을 합쳐서 여러모로 조사해 본 결과, 이상 현상이 발생했던 그곳에 나타난 보스급 몬스터가 정신 조작을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끔찍한 사태에 도시 하나가 증발해 버릴 뻔했지만, 천만다행히도 그 정신 조작을 하는 보스 몬스터는 곧 자취를 감추었다.
100여 명의 헌터를 잃었지만, 인구 300만의 도시를 살릴 수가 있었다.
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었다.
‘다만, 그 사건 이후로는 정신 에너지가 강하게 분출되는 일이 없었지. 최근까지 이상 현상이 뜸하기도 했고.’
이후 정부는 정신 조작을 하는 약한 몬스터를 조사해 정신 에너지란 것을 분류했다.
그리고 이상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이 정신 에너지 정도를 측정하는 게 의무가 되었다.
지금까지 정신 에너지가 강하게 분출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작은 도시인 부여군에 그때의 악몽을 떠올릴 법한 강력한 정신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알았어.”
[예? 알겠다니요. 당장 철수하셔야죠!!]
요한을 잘 아는 제임스였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누구보다 빨리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 그였다.
사람이 참 좋은 것 같으면서도 까탈스럽고 까칠한 성격이었으니까.
살짝 독선적인 부분도 있어서 그의 성격에 맞추려면 눈치가 빨라야 했다.
“철수는 무슨. 정신 계열이라며. 이대로 철수했다간 부여군 인근에 대피한 사람들 다 죽는다?”
[하, 하지만…….]
정신 계열 몬스터는 인간의 정신을 흡수한다고 흔히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시각이나 후각 같은 것보단 정신력을 추적하는 시스템이었다.
아무리 꼭꼭 숨는다고 해도 이 정신력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니 요한이 이대로 물러나면 대피해 있는 사람들은 몰살이었다.
‘거기에다가 그곳엔 할머니와 유나가 있어.’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있었다.
‘사실 자신이 없었다면 이대로 유나와 할머니를 모시고 도망쳤겠지만.’
“그래서, 그 정신 에너지가 가장 강하게 분출되는 곳이 어디야?”
[아, 알겠습니다. 문자로 좌표를 찍어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천천히 따라오라고. 녀석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오케이, 그럼 수고.”
전화를 끊고, 날아온 문자로 좌표를 지도로 확인한 요한은 언데드를 불러 모았다.
“마석 회수는 거기까지만 하고, 진짜 싸움을 하러 간다!”
[꺄악, 진짜 싸움이라니 기대되는 데?]
언데드 군단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가진 하늘이 제일 기뻐했다.
“만만치 않은 적이라고?”
[에에, 어차피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뭐!]
“아 참, 그랬지……."
어차피 하늘은 죽은 몸.
딱히 죽음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언데드에게 공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뭐, 그래서 자신 있는 거지만.’
“가자!”
딱딱-!
“그어어억!”
이번 고블린 블레이더와의 전투로 숫자가 맥시멈까지 차오른 언데드 군단이 움직였다.
그야말로 끔찍한 장관이었으며 죽음의 발걸음이었다.
‘느껴진다…….'
제임스가 알려 준 그곳에 가까워지니 요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바로 정신 에너지?’
온몸이 찌릿찌릿하며 두통이 욱신욱신 밀려오는 것 같은 힘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그도 이 힘이 오래전에 100여 명의 헌터를 전멸시킨 힘과 얼마나 다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주 강력한 적인 것만은 확신할 수가 있었다.
[요한, 심장 엄청나게 거칠게 뛰어!]
“그래, 맞아. 엄청 긴장돼.”
[빨리 가자. 싸워서 이기고 영혼을 빼앗는 거야!]
“큭큭, 그래. 아 참, 하늘.”
[응?]
“저번에 맡긴 인간들 영혼은?”
[히히, 잘 괴롭히고 있어. 걱정하지 마!]
“그래,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잘 개조해 줘.”
[히히, 알았어!]
처음 뭣도 모르고 요한을 노렸던 블랙 헌터와 전문적으로 암살하려던 그림자 암살단들.
단 1명도 편하게 보내 주지 않았다.
모조리 잡아다가 영혼인 채로 잡아 둔 상태였다.
그는 좋은 성격이 아니었고 자신의 목숨을 노린 적을 편하게 해 줄 마음도 없었다.
‘어차피 지옥으로 갈 놈들인데. 거기서 고통받나, 나한테 고통받나 거기서 거기지 뭐.’
덤으로 그는 실험 결과 데이터도 얻을 수 있으니 1석 2조 아니겠는가.
[요한.]
“그래, 다 왔네.”
휘이잉-!
강한 돌풍이 불었다.
그 안엔 정신 에너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흐흐흐흐, 감히 누가 내 땅을 침입한 것이냐!]
[나왔다!]
하늘이 소리쳤다.
꿀꺽-!
마른침을 삼켜야만 했다.
이제부터 진정한 전투를 벌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