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손님이 계시는데 무슨 소란인가?”
온화하던 할머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180도 변했다.
'......!'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요한은 내심 놀랐다.
‘할머니가 이런 분이셨나?’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인자하고 온화했던 분이었다.
물론 사람인 이상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하,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일단 대피하셔야 합니다.”
“대피?”
“예, 여기서 2km 정도 떨어진 동쪽에 있는 산에서 포탈이 갑자기 폭주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10분이면 몬스터들이 인간의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몰려올 겁니다.”
“뭐야?!”
큰일이었다.
‘또 이상 현상이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상 현상.
"하지만 유달리 내 주변에서 많이 발생한단 말이야.’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오, 오빠……."
몬스터의 등장이란 소식에 유나는 작게 떨었다.
보통 이런 게 일반인들이 몬스터를 대하는 태도였다.
헌터와 몬스터의 전투를 중심으로 서술하다 보면 일반인과 몬스터의 사이를 잊게 된다.
일반인에게 있어서 몬스터는 그 어떤 끔찍한 재앙보다도 더 끔찍한 재앙이었다.
헌터가 없는 마을에 아주 미미한 포탈이라도 열린다면 그 마을은 순식간에 전멸할 테니까.
“이럴 때가 아니구나. 얘들아 나를 따라오거라. 대피 장소가 이 근처에 있단다.”
“네, 할머니.”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요한은 웃었다.
“할머니.”
“왜 그러느냐?”
“유나를 부탁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아, 할머니. 사실 저희 오빠 이번에 헌터로 각성했어요.”
사실 ‘이번’이라고 부르기엔 상당히 오래됐지만 말이다.
“정말이니, 요한아?”
“네, 그리고 저 꽤 유명한 편이에요. TV에도 몇 번 나왔는데 못 보셨어요?”
“호호, 미안하구나. 너희들도 보다시피 내 집엔 TV가 없단다. 나이가 들어서 TV를 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서 말이야.”
“아…… 할머니……."
나름대로 밝게 말한 할머니였지만, 유나에겐 슬픔이었다.
그나마 요한은 나이가 좀 있을 때 부모님을 떠나보냈지만, 유나는 아주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이었다.
일종의 트라우마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할머니의 농담 아닌 농담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호호, 유나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요즘은 의료 기술도 발달 해 내 나이론 염라대왕님을 뵈러 가기엔 아직 이르단다.”
“……네 할머니.”
덥석-!
할머니의 말에도 유나는 슬픈 표정으로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하아.'
그런 유나의 모습을 본 요한은 답답한 한숨을 내뱉었다.
부모님을 잃은 이후로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동생을 돌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오빠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인 유나는 부모님과도 같은 어른의 사랑이 부족한 상태였다.
“회장님, 지금 가셔야 합니다.”
아직도 방에서 나가지 않고 있는 회장의 태도에 답답한 비서가 재촉했다.
하지만 확실히 정중한 태도는 유지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감히 회장님에게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다.
“할머니, 유나를 잘 부탁해요.”
“그래, 알겠다. 몬스터가 나왔다면 헌터인 네가 빠지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지. 유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곁에 꼭 둘 테니.”
“그럼, 부탁드릴게요. 유나야, 할머니 곁에 꼭 붙어 있어. 알았지?”
“응, 오빠. 오빠도 조심해?”
“푸흐흐, 내 걱정은 하지도 마. 다른 헌터들이 불쌍해지니까 말이야.”
천하의 S급 도살자라고도 불리던 미스터 섀도도 털끝도 건드릴 수 없었다.
“양 비서, 서둘러 움직이세나.”
“예, 회장님!!”
움직이자는 명령에 양 비서는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모두 서둘러,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애매한 건 다 태워!!”
“예!!”
저택에 고용된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여 저택을 정리했다.
굉장히 숙달된 움직임으로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들의 능숙한 준비 덕분에 대피 준비는 30분 안에 끝났다.
이 넓은 저택을 다 정리하는 데 30분이면 정말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유나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5대의 승용차, 3대의 승합차, 1대의 10t 트럭을 보낸 요한은 먼저 스켈레톤 위저드를 불렀다.
“위저드.”
구릉-!
시체 수납 속에 조용히 있던 위저드가 나타났다.
녀석의 손에 2개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내놔.”
딱딱-!
위저드는 요한의 스태프를 건네주었다.
스태프 길이는 요한의 신장과 비슷했다.
외견도 상당히 특이해 들고 다니면 눈에 너무 띄었다.
그렇다고 인벤토리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의 스킬 중에서 인벤토리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언데드를 보관할 수 있는 시체 수납 스킬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만일을 대비해 꼭 들고 다녀야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스태프를 위저드에게 맡겨 놓고 시체 수납을 해 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물건을 게임 속 인벤토리처럼 보관할 수 있지.’
아직은 스태프 정도만 보관하고 있었다.
물량은 점점 늘려 갈 생각이었다.
어쨌든 스태프로 무장한 요한은 일단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두르르르- 덜컥!
[예, 헌터님. 제임스입니다.]
“제임스, 나 지금 충남 부여군에 있는데. 여기 포탈 발생했거든?”
[헉, 또요?!]
“또라니?”
[아, 흠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부여는 옛날부터 포탈 청정 지대로 유명한 곳이라고. 그래서 지방 부호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잖아. 헌터도 있어 봤자 E~F급의 경호원 정도고. 애초에 그들은 경호원이라 포탈 정리를 기대할 수도 없고.”
[아…… 그, 그렇군요.]
이런 세부적인 사실은 외국인인 제임스가 알긴 힘들었다.
한국인이라도 딱히 관심이 없으면 알지 못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부여군에 살거나 부여군 근처에 살거나, 안전한 지역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진성 헌터 덕후나 알 수 있는 분야였다.
“그러니 내가 제일 먼저 포탈 외부를 정리하면 딱 견적 나오지 않아?”
딱-!
수화기 너머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아, 포탈 소유권을 러셀 길드에서 가져올 수 있겠군요!!]
“이제야 눈치채네. 너무 느린 거 아니야?”
[크흠, 죄송합니다. 최근 여러 일이 많아서요.]
“뭐, 어쨌든 그렇게 알고 마스터한테 보고나 하라고.”
[예, 그럼 요한 헌터님. 몸조심하십시오.]
“오냐.”
그렇게 스마트폰을 끊은 요한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꺄하하하! 전투야 요한?]
부르지도 않은 하늘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이따가 나오지. 아직 전투 전이거든.”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곧 싸울 거잖아?]
으쓱-.
“뭐, 그렇지.”
[그럼,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가자. 출발!!]
“예이, 예이. 거참, 쓸데없이 밝아서 좋네.”
[꺄하하하!]
포탈과의 거리는 2km 떨어져 있었지만, 요한이 몬스터와 만난 건 부여군 시내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산속이었다.
포탈로 향하는 요한과 인간 냄새를 맡은 흥분한 몬스터가 중간에서 마주친 것이다.
“크르르르."
“저 녀석들은?”
녹색 피부의 근육질 몬스터.
요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놈들이었다.
# 고블린 블레이더
종류: 던전 포탈 일반 몬스터
위험 등급: D+
설명: 고블린의 특이한 진화 형태. 고블린에서 진화했지만, 평균 신장이 170cm일 정도로 큰 편이고 몸이 근육질이라 단단하다. 양팔은 칼날로 이루어져 사냥감을 칼날로 갈가리 찢어서 사냥한다.
분석 프로그램에 나온 정보를 보곤 쓰게 웃었다.
‘이거 오히려 부여군에 어줍잖은 길드가 없는 게 다행이네.’
대한민국 대형 길드는 전부 서울에 몰려 있다.
수도 과밀화 현상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혀 나아진 게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대형 길드 본부도 수도에 있었다.
그래서 지방은 대부분 중소 길드가 차지한 상태였다.
지역이 작을수록 상주하는 길드도 작아지는 현상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지역이 작다는 건 근처에 괜찮은 포탈이나 회사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부여군처럼 작은 마을에 길드가 있다고 해도 중소 길드 중에서도 소형 길드가 있을 게 분명했다.
‘만약에 그랬다면, 필드 몬스터도 아니고 위험 등급 D+의 고블린 블레이더에게 갈가리 찢겨 죽었겠지.’
고블린 블레이더는 던전 포탈 몬스터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했다.
10마리 정도 무리를 지어 다니며 손 대신 존재하는 칼날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근육질 몸매답게 움직임도 빠른 편이라 방심했다간 그대로 목이 잘려나갈 수가 있었다.
[요한.]
“응?”
[지금 시체도 없는데 어떻게 싸울 거야?]
“왜, 시체 수납에 있는 언데드 있잖아.”
구궁-!
딱딱-!
“그으으으.”
현재 시체 마스터리 스킬의 레벨은 43.
총 43기의 언데드를 보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체 공급 스킬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지만 말이야.’
시체 공급 스킬은 언데드의 숫자가 0이 돼야만 발동하는 제한적 액티브 스킬이었다.
하지만 요한이 시체 수납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자 있으나 마나 한 스킬이 되어 버렸다.
그것을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 수정 방향이 떠오르지 않아 보류해 두었다.
어차피 스킬 레벨 자체는 핵심 스킬이 중요한 거지 세부 스킬은 부차적인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이 스킬을 한번 사용해 보고 싶었어. 본 골렘!’
구구구궁-!
수집한 뼈 80개를 소모하여 본 골렘 1기를 만들어 내는 스킬이었다.
원래는 100개였으나 코딩으로 20개를 아낄 수 있었다.
본 골렘을 코딩할 때 중점으로 둔 건 가성비였다.
‘1기, 1기 질을 늘릴 수도 있었지만, 본 골렘은 몸집은 크고 단단하지만, 속도는 느린 컨셉이야. 그런 탱킹 언데드는 질을 올리더라도 효율이 별로야. 차라리 숫자가 1기라도 많은 게 더 도움이 돼.’
그런 의미에서 소모하는 뼈 개수를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코딩했다.
‘이 프로그램 특성은 정말 짜증이 난다니까.’
사기적인 특성인 것은 확실했으나 코딩 과정이 컴퓨터와는 달랐다.
컴퓨터로 하면 명령어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조차 일일이 수 작업으로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는 만큼 강해지기에 귀찮다고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설원 던전을 공략하고 모은 뼈 중에서 240개를 소모하여 본 골렘 3기를 불러냈다.
‘이번 사냥에 최소 뼈 240개는 모은다.’
시체 수집도 해야겠지만, 일단 소모한 뼈를 모으는 게 더 중요했다.
쿵-!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본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야아아악!!”
고블린 블레이더가 요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보에 따르면 녀석들은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몬스터 주제에 굉장히 전략적으로 싸우기 때문이다.
탱탱탱-!
날카로운 칼날 팔이 본 골렘을 때렸다.
“캬룩?”
하지만 칼날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본 골렘은 방어력 특화 언데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