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일단 이 녀석들에 대한 복수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나중이라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예정이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나가서 다 씹어 먹어 버리고 싶지만…….'
하지만 아쉽게도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법과 규범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그대로였다.
원한이 있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푸는 건 불법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녀석들의 길드를 망치는 일이야.’
20대 길드 안에 드는 녀석들이다 보니, 길드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어마어마할 터.
그것을 산산이 부수면 그 어떤 복수보다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러셀 길드의 힘도 좀 빌리고 말이야.'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배경 아니겠는가.
“넌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야 할 거야.”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요한이 살벌하게 부단장에게 말했다.
“뭐, 뭐든지 시, 시키기만 하십시오!”
“포탈 밖에 나가면 이 서류를 들고 모든 정황과 사정을 사람들에게 얘기해라.”
“예, 예.”
“지금쯤이면 주변에 사람으로 꽉 차 있을 테니까.”
군인들을 다 죽이고 들어왔겠지만, 들키는 건 금방이었다.
굳이 밖을 보지 않아도 협회 관계자와 기자들이 쫙 깔렸을 터였다.
“아 참, 근데 묻고 싶은 게 더 있는데.”
“예, 예.”
“너희들, 만약에 다 죽였으면 어떻게 빠져나가려고 했냐. 밖엔 사람들로 가득할 텐데?”
“그, 그것이……."
“뭔데.”
부단장은 다시 한 번 더 품에다가 손을 넣어서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문양이 걸린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꺼냈다.
“이, 이걸 쓰려고 했습니다.”
턱-!
“헉!”
요한은 부단장의 손에서 장신구를 낚아챘다.
그리곤 분석 프로그램을 돌렸다.
[# 포탈 브릿지
종류: 이동 보조 아이템.
▶설명: 포탈을 연결해 주는 아이템. 던전 포탈이 끝나고 나오는 포탈 출구를 원하는 장소로 변경시킬 수가 있다. 사용 시 마나가 대량으로 소모된다.]
“와, 이거 완전 범죄자 전용 아이템이네?”
“헉, 그, 그걸 어, 어떻게?!”
부단장은 설명도 하지 않았음에도 딱 보고 알아차린 요한의 모습에 기겁했다.
그런 부단장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이건 압수.”
스윽-.
효과가 마음에 들어 바로 품에 넣어 버렸다.
“아 참, 그리고.”
“예?”
“뭐, 쓸 만한 거 더 없냐?”
“……그, 그게……."
부단장은 분명히 자신들이 잘못 한 건 맞았지만, 왠지 자신이 강도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림자 암살단은 바닥까지 싹싹 털리고 말았다.
아이템, 돈 가리지 않고 전부 뺏어 갔기 때문이다.
“어차피 감옥 가면 필요도 없잖아. 안 그래?”
“예, 예. 마, 맞습니다.”
씨익-! 툭-!
부단장의 머리를 가볍게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이곳에서 나가자.”
[에에, 아쉽다. 좀 더 놀고 싶었는데!]
하늘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 오늘 사냥은 끝났지만, 평생 죽을 때까지 질리도록 해야 하는 게 사냥이잖아.”
[아, 그런가. 히히!]
말 그대로 이제 첫 던전 포탈 레이드를 뛰었을 뿐이었다.
[으아아아악!!]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원한에 가득 찬 목소리.
일반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영혼이 내는 소리였다.
‘응, 아. 쟤가 있었지.’
잠깐 사이에 잊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미스터 섀도였다.
[죽이겠다. 반드시 네놈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죽이겠다!!]
유령이 된 미스터 섀도가 요한에게 달려들었다.
턱-!
[컥!!]
하지만 네크로맨서로 유령도 만질 수 있는 요한의 손에 목이 잡혔다.
다른 헌터와 비교해서 육체적 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네크로맨서였지만, 일반 유령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상위 유령으로 진화하지 않는 한, 물리적 능력은 전혀 없는 게 유령이었으니 말이다.
[이, 이거 놔!]
“벌써 보채지 말라고. 너의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말이야. 너의 시체는 유용하게 잘 쓰겠지만, 너의 영혼은 절대 성불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을 거야.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 무력감 속에 영원히 고통받다가 언젠가 소멸하겠지.”
[크윽, 크아아아!!]
퍽-!
[커헉!]
하늘이 미스터 섀도의 뒤로 다가 와 머리를 후려쳤다.
유령끼리는 때리는 게 가능했다.
[어디서 감히 나대. 조용히 안 해?!]
[크윽!]
미스터 섀도는 분했지만, 감히 반항할 수가 없었다.
상위 유령에 대한 본능이 그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야 어쨌건 죽은 다음엔 철저하게 유령의 서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유령으로서 능력이나 재능은 하늘이 정말 압도적이었다.
‘녀석은 곧 다음 유령인 스펙터로 진화할 거야.'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하늘의 주변에서 느껴 지는 죽음의 기운이 날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위저드처럼 별도로 코딩할 수 있으면 훨씬 편할 텐데 말이야.’
괜찮은 연구 자료로 삼을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미스터 섀도의 영혼까지 챙기고 혹시 남겨 둔 마석이 없나 꼼꼼하게 체크까지 했다.
묵직-!
“와, 이게 다 내가 사냥한 것들이란 말이야?”
엄청난 양의 마석이었다.
던전 포탈에 오는 공격대 소속 헌터의 숫자가 최소 15명인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15배 이상의 이득을 손에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몬스터 사체 값은 못 건지겠지만, 딱히 아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하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걸 떠나서 터지겠다.’
정말 보고 또 봐도 만족스러웠다.
‘아차차, 첫 보스 사냥인데 얼마나 올랐나 확인해 봐야지. 그걸 깜빡하고 있었네.’
스마트폰으로 각성몽 어플에 접속해 보았다.
[김요한]
[레벨: 196]
[직업: 네크로맨서]
[특성: (프로그램) / (A.I) / (희생 성장) ]
[스탯]
힘: 19.99. 민첩: 20.87. 체력: 24.03. 지능: 47.86. 지혜: 57.01.
[스킬]
네크로맨시 Lv.56 저주 Lv.40 시체 마스터리 Lv.43 본 아이덴티티 Lv.51 마스터 프로그래밍 Lv.8 소울 마스터리 Lv.40
'......꿈 아니지, 아니겠지?’
앞서 스탯을 한 번 확인해 보고 보스 몬스터를 잡고 또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한참 있다가 열어 보는 게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레벨이 무려 50이나 훌쩍 상승해 있었다.
‘허허…… 희생 성장의 효과가 이렇게 뛰어나다니.’
단순히 보스를 잡았다고 절대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헌터 커뮤니티에서 꽤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분명히 보스 몬스터는 경험치를 많이 주는 건 맞으나 이렇게 폭업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은 폭업을 해 버렸다.
‘거기에다가 레벨도 그사이에 미친 듯이 올랐어.’
네르코맨시 레벨만 무려 56이었다.
즉, 스켈레톤 워리어/메이지/사제만 총 56기.
좀비는 112기.
구울은 11기.
고스트 112기.
밴시 11기.
그렇게 불러낼 수 있는 언데드 군단만 302기에 이르렸다.
이것도 최근에 얻은 스킬인 본 골렘을 제외한 숫자였다.
이걸 느낀 요한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아, 코딩하기 개빡세겠다.’
긍정적인 것보단 부정적인 게 먼저 생각나는 게 사람이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비명이었다. 아니, 누가 봐도 행복한 비명이었다.
상태창까지 확인한 요한은 이제 출구가 있는 신전으로 향했다.
주교를 사냥하면 신전 안에 있는 베이몬 석상 밑에 출구가 생성된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포탈 브릿지로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싶지만…….'
“하아.”
바깥 상황이 예상되어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조금 귀찮더라도 참아야 했다.
‘개인적인 복수는 할 수 없겠지만, 여론으로 건방진 길드 녀석들을 박살 내야 하니까.’
복수를 위해서라면 귀찮음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저벅저벅- 척척!
일단 좀비는 다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스켈레톤만 3열 종대로 세워서 움직였다.
질서 정연한 스켈레톤 군대가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렇게 하려고 내가 코딩 식을 특별히 그 영화 속의 엘프처럼 설정했지.’
정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시에 움직이는 연출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영화인데도 멋있었다.
[요한, 요한. 저기 봐 출구야!]
뭘 해도 즐거운지 늘 텐션이 높은 하늘이었다.
“그래, 그래. 나도 눈이 있거든?”
[히히, 응?]
그때 하늘이 한쪽에 시선을 뺏겼다.
“뭐야, 왜 그래?”
갑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요한도 고개를 돌려서 그곳을 보았다.
‘응?’
분명히 커뮤니티에선 신전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호기심 많은 공격대가 정말 지하부터 외부 꼭대기까지 살살이 뒤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요한의 눈앞에 하얀색 배경에 보석이 박힌 왕관이 보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챙겨!’
얼른 챙겨서 배낭에 넣었다.
‘밖에 사람이 많은데, 이런 보물이 눈에 띄면 곤란하지!’
그렇게 마지막까지 물건을 챙겼다.
그리고 출구로 나갔다.
지잉-!
포탈 멀미를 느끼며 바깥 공기를 마셨다.
“나, 나왔다!!”
그러자 역시 예상대로 그곳엔 비상 출동한 헌터 협회 사람들과 군인으로 쫙 깔려 있었다.
또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기자들까지 와 있는 상황이었다.
찰칵찰칵찰칵찰칵-!
“김요한 헌터님, 살아 계셨군요. 혹시 누군가가 헌터님의 목숨을 노리지 않았습니까?”
“예, 노렸습니다.”
“와, 대박. 이거 완전 특종감인데?”
“살아 계셔서 다행입니다. 혹시 범인은 알아내셨습니까?”
요한이 눈짓하자 옆에 있던 그림자 암살단 부단장이 뻘쭘한 자세로 움직였다.
“이 녀석이 저를 암살하려고 했던 암살단의 부단장입니다.”
“예?!”
“대, 대박!!”
찰칵찰칵찰칵찰칵-!
기자들의 셔터 누르는 속도가 10배는 빨라졌다.
“저, 저는 그, 그림자 암살단 소속 부단장 유정청입니다.”
“그, 그림자 암살단!!”
기자는 물론이고 모든 이들이 그림자 암살단이란 말에 기겁했다.
그만큼 그림자 암살단의 악명이 높고 그 악행으로 인해서 피해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그림자 암살단의 악명이 높은 이유는 아무리 범죄자 집단인 블랙 헌터라고 해도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범죄는 자제하는 편이었다.
헌터가 일반인을 공격한다는 것은 그만큼 수사의 우선순위에 오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 암살단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헌터, 일반인 가리지 않고 암살했다.
가끔은 학살을 벌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최악의 범죄자란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런 그림자 암살단의 부단장이라고 하니 기자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찰칵찰칼찰칵-!!
말없이 셔터 누르는 소리만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