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하지만 다행히 소설이나 만화처럼 곧바로 녹아 버리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확실히 상극이긴 해도. 힘의 정도에 따라서 저항도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고통 따위는 모르는 언데드가 고통스러워했지만, 어쨌든 버티고 있었다.
“시간 없으니까 진격!!”
딱딱-!
“그어어억!!”
쿵쿵쿵-!
“언데드를 막아라, 어서!!”
베이몬교 주교가 다시 한 번 더 축복을 걸었다.
겨우 죽음의 압박에서 벗어난 베이몬교 신관과 광신도들이 남은 힘으로 몰아붙였다.
“좀 더 힘내 보라고 너무 쉽잖아?”
하지만 그런 축복과 신성력 필드도 압도적인 물량과 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쿵쿵-! 쾅-!
“커헉!”
총 전력의 1/3밖에 남지 않은 베이몬교 세력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다.
‘하긴, 이 정도도 솔플 못 하면 당장 때려치워야지.’
너무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보니, 본인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던전 포탈이긴 하지만, 가장 최약체의 던전 포탈은 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위저드!!”
딱딱-.
위저드의 손끝에서 티쓰와 본 스피어가 뿜어져 나와 베이몬교 주교를 마구 타격했다.
팅팅팅-!
“크윽, 젠장!!”
모든 면에서 베이몬교 주교가 밀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끝내 볼까?’
즐길 수 있는 건 다 즐겼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였다.
“자, 총공……!!”
찌릿-!
‘이, 이건!!,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느꼈다.
거의 인지하지도 못하는 반사 신경으로 예티에서 몸을 날렸다.
쾅-!
“그어어어-!"
대신 그 자리에 있던 예티 좀비의 머리가 한 번에 폭발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털썩-!
요한의 몸은 밑에 있던 스켈레톤이 안정적으로 받았다.
“하악, 하악, 하악.”
눈을 크게 뜬 요한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주, 죽을 뻔했다.’
장난도, 농담도 아니었다.
그는 정말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완전 방심하고 있었어. 본능적으로 느끼지 않았다면 100% 죽었을 거야.’
원래 그는 이런 감각이 없었기에 더 놀랐다.
턱-!
예티 좀비의 머리를 한 번에 박살을 낸 존재가 땅에 내려왔다.
“이걸 피해?”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요한을 보았다.
그는 바로 요한의 암살을 맡은 A급 암살자이자 그림자 암살단의 단장인 Mr. Shadow, 즉 그림자 그 자체였다.
‘암살자, 암살자. 나에게 암살자를 보낼 만한 녀석들은 역시 길드 뿐이겠지.’
최근 몇 번이고 그에게 물을 먹었으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녀석들이 복수하지 않고선 못 버틸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노골적으로 할 거라곤 전혀 예상 못 했어.’
그건 확실히 요한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만약에 그도 모르는 초감각이 이번처럼 지켜 주지 않았다면 그는 단 한 번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모른 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난 살아 있고. 내가 할 일은 이 대가를 단단히 치르게 하는 거야.’
암살자를 곱게 돌려보내는 것은 그의 취미가 아니었다.
“얘들아 뒤에도 손님 왔다!!”
털썩-!
언데드 군단이 거의 동시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극그극-!
술사의 분노를 그대로 느낀 언데드 군단이 흥분했다.
“그어어어어!!”
쿵쿵쿵-!
좀비들은 포효하고 스켈레톤들은 제자리에서 발을 굴렸다.
[꺄아아아아!!]
하늘에선 유령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엔 순식간에 죽음의 기운이 가득해졌다.
“크윽, 단장님. 명령을!!”
“갈겨!”
"예, 갈겨!!”
두르르르르르-!!
그림자 암살단은 A급 헌터인 단장을 제외한 이들은 다 E~F급 암살자였다.
그림자 능력으로 단 한 번에 멱을 따는 단장의 스타일 때문에 그들의 임무는 대부분 뒤처리였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서 화기로 무장했다.
오랜만에 그 화기가 불을 뿜은 것이다.
퍽퍽퍽-!
“구어어억!!”
확실히 화기는 몬스터에 아예 안 통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평범한 몬스터도 아니고 언데드였다.
고통을 모르는 언데드가 마나도 두르지 않은 공격에 큰 타격을 입을 리가 없었다.
털썩-!
하지만 작은 좀비 몇 마리는 머리에 집중 공격을 당해서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는 미미했고, 이곳은 현재 시체로 가득한 곳이었다.
‘간지럽네.’
말 그대로 간지러울 뿐이었다.
“변이!”
쿵쿵쿵-!
“유령들!!”
[꺄아아아!!]
지금까진 신성력 때문에 활약하지 못하던 유령들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턴 달랐다.
“전부 골로 보내 버려!!”
[꺄하하, 가자!!]
휘잉-!
공중에서 유영하던 유령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꺄아아아악!!]
강력한 음파 공격이 가해졌다.
“으아아아악!!”
“귀, 귀신이다!!”
음파 공격에 귀가 망가지고, 환각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주, 죽어!!”
두두두두-!
“크헉!”
“아, 아군이야!!”
푸확!
E~F급 헌터들이다 보니 순식간에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자, 이제 너 혼자 남았네?”
"......."
미스터 섀도는 요한을 빤히 쳐다 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반드시 네놈을 죽이겠다.”
그럼 역시 요한을 죽이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요한을 죽이고 나서 주교를 죽여야 한다는 난제가 생기겠지만, 그건 뒤에 생각할 일이었다.
“자, 덤벼.”
요한의 손가락이 위로 까딱거렸다.
“그림자의 춤!!”
파악-!
미스터 섀도의 그림자에서 촉수 여러 개가 뿜어져 나왔다.
‘그림자 능력이라. 아, 그 유명한 암살자, 미스터 섀도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애초에 미스터 섀도란 것도 별명, 본명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녀석의 2번째 별명이 바로 S급 킬러.
딱 한 번 아무도 하지 못했던 S급 헌터를 죽인 적이 있어서 붙은 별명이었다.
뭐, 그 S급이 막 각성한 초짜였고 기습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습에 실패했고 요한은 초짜 S급 헌터가 아니었다.
파악-!
촉수를 날린 미스터 섀도는 그 틈을 이용해 요한을 공격하려고 했다.
‘술사만 죽이면 돼, 술사만!!’
요한만 죽으면 모든 언데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확실히 노림수는 좋았다.
하지만 언데드 군단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다.
푸욱푸욱푸욱-!
“커헉!”
사방에서 찔러 오는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의 공격에 온몸이 뚫렸다.
“어, 어떻게. 스, 스켈레톤 따, 따위가…… 쿨럭!!”
생각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는 A급이지만, S급 못지않은 속도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착각하고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기습을 했을 때나 적용되는 말이었다.
암살자가 정면에서 공격한다? 그건 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우드득-!
“크아아아악!!”
변이 스켈레톤이 검을 비틀자 미스터 섀도는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거참 끈질기기도 하셔라.”
요한은 여유롭게 웃었다.
곱게 죽여 줄 마음이 없었다.
“넌 말이야. 날 건드렸으면 안 됐어. 넌 지금 죽으면 편할 거 같지?”
“크윽, 퉤. 어서 날 죽여라!!”
“그건 걱정하지 마. 조금 있다가 죽여 줄 테니까. 왜냐고, 그래야 진정한 고통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야. 큭큭."
"뭐?"
“내 클래스가 뭔지 잊었어?”
“네, 네……크, 크로맨서.......서.......설마......?”
“그래,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네가 죽고 영혼 상태가 되면 영원히 소멸하지도 못한 채 고통스럽게 해 주마.”
드디어 지금 상황을 인지한 미스터 섀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으, 으아아아……!!”
툭-!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비명을 질러 본 미스터 섀도였지만, 그대로 목을 아래로 떨구었다.
“쯧, 멍청한 놈.”
요한은 숨이 넘어간 미스터 섀도를 보곤 혀를 찼다.
[요한, 요한!!]
“응?”
[이 녀석, 내가 가져도 돼?]
하늘은 미스터 섀도의 영혼을 탐내고 있었다.
“그래, 가져. 단, 엄청나게 괴롭힐 자신 있냐?”
[당연하지!!]
하늘은 자신만만이었다.
“그러면 가져.”
[꺄하하, 신난다!!]
어차피 요한에게 중요한 건 시체지 영혼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고통만 가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으아아악!!”
그림자 암살단 소속 부하들이 아직 다 죽지 않고 몇 명 남아 있었다.
“일단 저 녀석들, 다 묶어 놔.”
딱딱-.
위저드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머진 날 따라와. 빨리 사냥을 끝낸다.”
“그억!”
딱딱-!
짧은 시간이었지만, 요한이 딴 곳에 시선을 뺏긴 바람에 베이몬교 주교는 남은 병력을 끌어모아 방어진을 형성했다.
“절대 이곳 성지를 내줄 수 없다!!”
베이몬교 주교는 정말 끝까지 항쟁했다.
하지만 이미 힘이 다 빠진 부하들을 데리고 뭘 하겠는가?
30분이 지나고 베이몬교 주교는 혼자서 저항하다가 결국,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에 목을 베여서 사망했다.
“끝났군.”
멀리서 이 장면을 본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이제 제대로 된 진짜 마무리를 해야지.”
뒤로 돌아서 포박된 암살자들에게 향했다.
30명의 암살자 중에서 살아남은 암살자는 단 5명뿐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 저희는 시킨 대로 한 죄밖에 없습니다!!”
"......."
애처롭게 살려 달라고 비는 암살자들.
하지만 요한은 그들을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죽어……! 죽어……! 죽어……!]
녀석들의 주변엔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요한은 저들을 언데드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저들은 진짜 영혼이 아니라, 원한의 파편이니까.’
일종의 한이 유형화된 감정이었다.
대상이 죽으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리라.
“1명만 살려 주겠다. 다만, 그 1명은 이 암살 의뢰의 배후를 말한 사람만 살려 주지. 아무도 말 못 하면 그냥 다 죽어라. 그리고 언데드로 되살아나 영원히 고통받을 거다.”
“제,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암살단 부단장입니다. 증거까지 전부 드리겠습니다!!”
"......."
나머지 인원들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요한이 눈짓을 주자, 뒤에 서 있던 스켈레톤들이 나머지 부하 전부를 베었다.
스걱- 스걱-!
“커헉!”
“이제 되돌릴 수 없다.”
꿀꺽-!
“저, 정말입니다.”
그는 포박이 풀리고 품에 있던 퍼즐 같은 캡슐을 맞춰서 그 안에 있는 서류를 꺼내어 요한에게 건넸다.
“이, 이겁니다……!”
덜덜-.
부단장의 손이 거칠게 떨렸다.
서류를 확인한 요한은 확실히 이번 일을 의뢰한 길드의 이름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토르, 텐타클, 판도라, 팬텀 길드 라...... 확실히 나한테 물 좀 먹은 길드군. 특히 경매장에서 크게 먹은 길드가 대부분이네.’
이제 좀 감이 왔다.
‘쯧, 멍청한 것들.’
혀를 찬 요한의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히이익!!”
그 눈을 본 부단장은 그 자리에서 바지에 지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