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이곳인가?”
요한의 일명 설원 학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설원 늑대와 아이스 트롤의 등장은 시작일 뿐이었다.
“쉬익!”
온통 새하얀 위장색으로 뒤덮여 있어 방심한 적을 사냥하는 아이스 스파이더.
“쿠어어억!!”
거의 4m에 다다르는 신장을 가지고 5m를 뛰어오를 정도로 날쌘 예티.
“캬오오오오!!”
고대에 살았을 법한 거대한 체격에 날카로운 송곳니와 툭 튀어나온 등뼈를 가진 샤벨타이거.
그야말로 설원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몬스터가 시시때때로 나타나 공격했다.
하지만 그 어떤 설원 몬스터도 요한을 지키는 벽을 뚫을 수가 없었다.
그 벽은 단순히 크고 단단한 벽이 아니었다.
딱딱-!
“그어어어!!”
바로 죽음으로 단단히 무장한 언데드 군단이었다.
“끄응, 싸우면 싸울수록 내가 할 일이 줄어들었지.”
우드득-!
기지개를 강하게 켜자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그가 이끄는 언데드 군단은 정말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졌다.
나중엔 그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한 무리의 설원 몬스터를 휩쓰는데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설원 필드를 혼자 가로지르는 데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설원 필드가 던전 포탈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공격대가 여기까지 닿으려면 사흘은 걸렸다.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사냥한 덕분에 이렇게 빨리 도착한 것이다.
[와, 겉에서 보기만 해도 차가워 얼어 버릴 것 같은 곳이야.]
하늘이 짧게 협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며 평가했다.
“확실히……."
요한도 하늘의 평가에 동의했다.
휘잉-!
협곡 안에서 엄청난 냉기를 풍기는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예티!”
“구억구억.”
쿵-!
거대한 덩치를 가진 예티 좀비가 부름에 다가왔다.
“네가 앞장서.”
“구억구억.”
위험 지역에 선두로 가는 것.
그야말로 고기 방패의 전형적인 역할이었다.
조금이라도 지능이 있는 부하라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는 명령.
하지만 생명체에 대한 분노와 일으켜 준 술사에 대한 충성심밖에 없는 게 언데드였다.
녀석들은 망설이지 않고 선두에 서서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협곡 안은 바깥에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냉기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으아, 이거 개춥네!”
다행히 이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얻어서 발열 기능이 있는 두꺼운 외투를 위에 걸친 상태였다.
덕분에 냉기 속성으로 전투력이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언데드도 딱히 걱정할 건 없었다.
마나를 공급받지 못하는 야생 언데드라면 냉기에 얼어 버릴 테지만, 흐르는 물처럼 마나를 꾸준히 공급 받는 언데드는 이 정도 냉기엔 꼼짝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곡 안에서도 몬스터는 나타났다.
“침략자다. 감히 고귀하신 분의 안식을 방해하는 침략자다. 격멸하라!!”
지저분한 회색 후드를 머리끝까지 눌러쓰고 있는 신관들이 외쳤다.
“으아아아!”
‘저 녀석들이 그 사교이자 어둠의 신을 믿는 자들?’
# 베이몬교 신관
▶ 종류: 보스 수호 몬스터
▶ 위험 등급: C-
▶ 간단 설명: 베이몬교를 믿는 신관들. 악독한 버프 스킬과 저주 스킬, 그리고 공격 스킬이 특기다.
설원 필드는 이곳 협곡에서 나타나는 몬스터가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어둠의 신이자 악신인 베이몬을 믿는 베이몬교의 신관과 광신도들이었다.
‘이곳을 통과하면 신전이 나오는 곳에 베이몬 주교가 있다고 했지.’
이름만 보면 살벌한 녀석들이었지만, 다행히 이곳 베이몬교의 몬스터는 그리 강하진 않았다.
그러니 던전 포탈 서열 꼴찌를 하고 있었다.
베이몬교 신관들은 곧 요한을 명확히 인지할 수가 있었다.
“더럽고 신의 버림을 받은 언데드들 따위가 감히. 베이몬 님의 땅에 들어오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쳐라, 이단도 아닌 저주받아 썩어 버린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으아아악!!”
베이몬교는 매우 호전적인 종교였다.
특히 베이몬을 제외한 모든 신을 부정하며 오로지 피와 산 제물만이 신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엔 회복 계열은 없었다.
세뇌, 폭주 같은 후유증이 큰 버프 스킬과 끔찍한 공격 스킬이 전부였다.
평범한 어둠의 신을 모시는 암흑 사제와 달리 이들은 악신을 모시는 악의 사제 그 자체였다.
눈이 빨개진 채 이지를 잃은 광신도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허름한 복장의 광신도들은 얼핏 보기엔 정말 약해 보였다.
‘하지만 저 겉모습에 속아서 고생한 공격대가 여럿이지.’
정말 평범한 복장에 낡아 빠진 농기구로 무장한 광신도들이었다.
하지만 광신도들의 뒤엔 베이몬 악의 사제들이 버티고 있었다.
온갖 버프 스킬로 무장한 광신도들은 그야말로 무식한 파괴자들이었다.
“으아아악!!”
쾅-! 콰직-!
“구억!”
좀비 예티의 몸을 곡괭이로 찍어 버린 광신도.
그 박력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말이야. 좀비는……”
툭툭-.
요한은 머리 옆을 손가락으로 2번 두드렸다.
“머리를 깨야 죽는다고. 예티.”
“구워어어억!”
슈욱- 쾅!
“커헉!"
좀비가 돼 신체적 능력은 70% 정도 감소한 예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고난 신체가 주는 압력 자체가 낮아진 건 아니었다.
양손을 들어서 주먹을 꽉 쥐고 내려치는 기술의 포스는 여전했다.
광신도 1명이 그대로 피떡이 되어 사망했다.
“감히, 소중한 형제를!!”
“모두 죽여라!”
“으아아악!!”
광신도 수십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구워어어어억!!”
쿵쿵쿵-!
하지만 그런 위세에도 불구하고 선두에서 좌우로 쭉 사열해 있는 좀비 예티의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쾅쾅- 콰직!
“크악!”
광신도는 예티 좀비의 상대가 아니었다.
‘역시 어떤 재료를 쓰는가에 따라서 가장 약간 라이즈 좀비 스킬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네.’
좀비조차 이렇게 당당하게 1인분 역할을 해 주는 건 정말 사기였다.
흔히 좀비라면 그냥 고기 방패나 해 주는 최약체 언데드일 뿐이었으니까.
“잘한다, 예티. 더 강하게 밀어붙여!”
“구억구억!”
쿵쿵-!
거대한 좀비의 위용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고통도 느끼지 않는 탱커란 뜻이었으니까.
“감히, 감히. 우리 신성한 신도를 모욕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턴 언데드!”
파바박-!
“크어어어억!”
‘음, 확실히 언데드와 상극인 신관이란 건가?’
턴 언데드 스킬까지 사용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악신답게 일반 신성력과는 달리 압도적인 상극은 아니었다.
베이몬도 죽음과 관련된 힘이다 보니, 죽음 그 자체인 언데드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적었다.
“흠, 그렇다면 변이!”
딱딱-! 척척척-!
“저 끔찍한 놈들은 뭐야!”
베이몬교 신관들은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를 보고 경악했다.
평범한 스켈레톤과는 차원이 다른 포스를 뿜어내는 존재들.
특히 겉에 두르고 있는 검은색 오러는 신관인 그들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콰가가강-!
“으아아악!”
“크아아악!”
예티만큼은 아니지만, 광신도보단 1.5배 이상 큰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가 철퇴를 한 번 휘두를 때 마다 5~6명의 광신도가 튕겨져 나갔다.
“파괴의 창!”
“절망의 포효!”
“피할 수 없는 악몽!”
베이몬교 신관들은 온갖 공격 스킬과 저주 스킬을 난사했다.
텅텅-!
하지만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들은 능숙하게 방패로 모든 공격을 막아 내었다.
그 강력한 아이스 트롤과 예티와도 맞짱을 뜨던 변이 스켈레톤 워리어였다.
콰직- 스걱-!
“크악!”
“아악!”
베이몬교 신관들은 하나, 둘 썰려서 죽음에 이르렸다.
“그 악명 높은 베이몬교 신관들도 별게 없네.”
[요한이 너무 센 거야. 어떻게 네크로맨서가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거야. 상대는 언데드와 상극인 신을 믿는 자들이라고!]
“나랑 뭔 상관이야.”
[얄미워. 육체만 있었다면 때려 주고 싶어!]
“때려 보시던지요.”
[꺄아악, 얄미워!]
하늘은 얄미움에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하늘이 아니라 시체에 있었다.
‘신관을 스켈레톤이나 구울로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문득 정말 궁금해졌다.
실험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음, 일단 내 상태 좀 먼저 보고.’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았다.
[김요한]
[레벨: 146]
[직업: 네크로맨서]
[특성: (프로그램) / (A.I) / (희생 성장) ]
[스탯]
힘: 15.09. 민첩: 14.99. 체력: 20.11. 지능: 40.17. 지혜: 52.13.
[스킬]
네크로맨시 Lv.47 저주 Lv.36 시체 마스터리 Lv.38
본 아이덴티티 Lv.43 마스터 프로그래밍 Lv.7 소울 마스터리 Lv.35
‘와, 그사이에 또 많이 올랐네?’
던전 사냥 한 번에 이렇게 오르는 건 역시 희생 성장의 효과 덕분이었다.
‘그럼, 일단 구울부터 해 볼까, 라이즈 구울!’
후드득-! 후드득-!
처참하게 당해 쓰러진 베이몬교 사제가 온몸을 퍼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르르륵-!”
짐승 특유의 목을 긁는 소리가 베이몬교 신관 구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았다.
# 평범한 구울
▶ 종류: 언데드
▶ 위험 등급: F+
▶ 간단 설명: 평범한 인간을 베이스로 한 구울
‘뭐야, 이거.’
신관과 전혀 관계없는 평범한 구울이었다.
‘역시 신을 믿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괜찮은 언데드를 추가로 얻을 수 있을 거로 기대했는데 실망감이 들었다.
‘쩝, 딱히 스켈레톤으로 한다고 해도 다를 게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일단 해 보자.’
실험은 실험이니까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이었다.
‘라이즈 스켈레톤!’
후드득- 후드득-!
구울 때와는 달리 살점을 벗으며 몸을 일으키는 스켈레톤 1구.
‘어?’
뭔가 확실히 다르다는 게 보였다.
‘무장이 워리어가 아니잖아?’
스켈레톤을 일으킨 이후로 처음 보는 무장이었다.
다 찢어진 허름한 복장이긴 했지만, 확실히 사제복을 입고 있는 스켈레톤이었다.
‘이거 설마?!’
# 스켈레톤 사제
종류: 언데드
▶ 위험 등급: D-
▶ 간단 설명: 베이몬교 신관을 스켈레톤으로 만든 스켈레톤 사제. 다양한 언데드 보조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지,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띠링-!
‘응?’
스마트폰이 다시 한 번 더 울렸다.
‘뭐지?’
[축하드립니다. 네크로맨시 스킬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변화?”
[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래, 보여 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