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혼란의 시기를 거치고 헌터들의 다수 등장에 서울 집값은 정말 미친 듯이 상승했다.
특히 비싼 동네의 집값은 10배가 넘게 올랐다.
사실 1,000억을 쓴다고 해도 강남구의 비싼 동네에 가면 그렇게 남지도 않는 돈이었다.
하지만 1,000억짜리 거래 자체가 흔히 있는 게 아니었다.
또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생각해도 어마어마하게 남는 장사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보러 갈 수 있나요?”
“그럼요. 저희 부동산은 언제나 최고의 물건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강 중개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럼 좀 부탁드릴게요.”
“하하, 맡겨 주십시오. 이 대리, 외출 준비를 하지.”
“네, 중개사님.”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집 값이 가장 비싼 강남구였다.
S파크라는 브랜드의 이 아파트는 방만 5개에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아파트였다.
“흠흠, 이곳으로 말씀드리자면 최고급 아파트란 별명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CCTV만 1,000대가 넘고 상시 상주하는 경비와 철저한 신분 확인 시스템 덕분에 치안이 확실하죠. 거기에다가 편의 시설도 전부 있어서 아파트 단지 안에서 100% 생활이 가능합니다.”
요한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다가 시공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모든 게 새 건물입니다. 새로 시작하기 딱 좋은 곳이죠."
그렇게 막 집을 보러 갈 때였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사모님.”
“내가 어려운 거 부탁했어, 분리 수거 좀 해 달라니까. 뭐, 할 일 있어서 안 된다고?!”
“그, 그게……."
“시끄러워, 어디서 경비 주제에 말대답이야!!”
찢어질 듯한 노성이었다.
한 뚱뚱한 중년 여자가 자기 아버지뻘은 될 것 같은 경비원에게 반말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갑질이었다.
"......."
유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 졌다.
의도치 않게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눈앞에서 보게 되자 화려하게만 보였던 주변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 내엔 현수막이 꽤 많았다.
[임대 아파트 반대한다!]
[삼성동에 장애인 학교가 웬 말이냐!!]
[집값 하락하면 책임질 거냐!!]
‘끔찍해.’
항상 냉정하고 살짝 이기적이며 계산적인 요한과 달리 유나는 마음이 참 착한 편이었다.
그녀의 꿈은 법관이었다.
이유는 어려운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를 법의 테두리로 보호하고 구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를 위해서 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건 아니었다.
덥썩-.
“왜, 유나야.”
“나 여기 싫어.”
“싫어?”
“응.”
차마 이유까지 시시콜콜하게 말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오빠인 요한의 돈으로 하는 이사였다.
차마 더 깊게는 파고들어서 반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유나의 생각과 달리 동생 사랑이 끔찍한 요한은 단호했다.
“중개사님.”
“아, 예. 요한 헌터님.”
“여긴 마음에 안 드네요. 다른 곳으로 보여 주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안도 보지 않았음에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요한의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지만, 요한의 팬인 중개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아.’
그런 중개사를 모시는 대리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말이다.
이후로 아파트 몇 군데를 더 돌았지만, 번번이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흠, 그럼 아파트 말고 주택은 어떻겠습니까?”
“주택이요?”
“예, 삼성동엔 대한민국에서 돈 좀 만진다는 사람들은 다 몰려 있는 주택 단지가 있습니다. 그곳이 다른 아파트보단 비싸지만, 비싼 값어치를 하는 곳이지요.”
“음, 그곳으로 보여 주시죠.”
“예!”
그들은 아파트를 접고 주택 단지로 향했다.
도착한 주택 단지는 시끌벅적한 아파트와는 매우 달랐다.
조용했으며 깔끔하고 분위기가 있었다.
“여기 어때?”
“괜찮은 것 같아.”
“좋아 중개사님. 저희가 볼 집은 어디입니까?”
“아, 이쪽으로 오시죠. 이곳엔 매물만 3곳이 있습니다.”
그렇게 매물로 나온 나머지 3곳을 다 둘러보았다.
3곳 다 요한 남매 입장에선 으리으리한 대저택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와…… 오빠, 여기 봐, 수영장도 있어!”
마당엔 꽤 크기가 있는 야외 수영장, 그리고 건물 내부엔 아담한 규모의 실내 수영장이 있었다.
몇 번 장고 끝에 요한은 2층 규모의 적당한 크기의 주택으로 계약했다.
3곳 중에서 가장 저렴한 곳이었지만, 요한은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로 하죠.”
“하하, 감사합니다. 이사는 어떻게 처리해 드릴까요?”
“뭐, 소개시켜 줄 곳 있나요?”
“그럼요. 믿을 만한 곳으로 소개 시켜 드리겠습니다.”
“음, 아닙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아무리 부동산의 말이라도 딱히 믿음이 가질 않았다.
요한은 러셀 매니지먼트에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강 중개사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거래 종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절차대로 하죠.”
“아, 네. 알겠습니다.”
내심 지금 이 자리에서 전액 현금으로 내주길 원했다.
하지만 요한은 돈이 있다고 해서 쓸데없는 돈지랄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절차가 있는데 굳이 왜?’
그렇게 일단 계약금을 내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와, 오빠. 그럼 우리 여기로 이사 오는 거야?”
유나가 검소하고 소탈한 성격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10대 소녀에 불과했다.
아직 생일도 지나지 않아 만으론 17세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집은 그녀에겐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연하지. 이제 곧 여기에서 살 테니까.”
“꺄아, 정말 기대돼.”
“그래, 그래.”
남매는 기분 전환 겸해서 나온 김에 외식도 하기로 결정했다.
둘이 향한 곳은 한 유명한 파스타 집.
그들은 이제 부자였지만, 다른 부자들처럼 무조건 비싼 곳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가성비 왕인 백종민 사업가가 운영하는 굴러 파스타 집이었다.
“와, 오빠. 여기 파스타가 4,500원이야!”
“어, 그러게. 굉장히 저렴하네?”
남매는 각자 좋아하는 파스타 1개씩 시키고, 스테이크와 미니 피자도 추가로 시켰다.
“우와, 이렇게 많이 시켰는데. 28,500원밖에 안 해. 꺄아, 신기하다. 친구들이랑 같이 와야지.”
“아 참, 유나야.”
“응?”
“학교 그곳에서 계속 다닐래?”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너 이제 강남구로 이사를 오는 거잖아. 마음만 먹으면 학군 좋은 강남구 쪽으로 이사 올 수 있기도 하고.”
“으응, 괜찮아. 어차피 수능도 얼마 안 남았고. 대학교도 한국대로 갈 건데, 뭐.”
“그래, 알았어. 대신, 이제 아침마다 오빠가 아니라, 다른 분이 너 데려다줄 거야.”
“응, 다른 분?”
“오빠가 계약한 매니지먼트에 부탁했어.”
“응, 알았어.”
말 참 잘 듣는 착한 동생이었다.
그렇게 남매는 오랜만에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겼다.
***
다음 날, 요한은 유나를 등교시키고 이번에도 러셀 길드 본부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팀장님.”
“아, 좋은 아침.”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뭐, 그런 일이 좀 있었어.”
요한의 행복은 동생의 행복에 기인한다.
유나의 표정이 어제를 기점으로 좋아져 그의 표정도 좋아졌다.
“안나.”
“네, 팀장님.”
“오늘은 던전 포탈로 잡아 줘.”
“예, 정말이십니까?”
안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드디어 요한이 마음을 잡았나 싶었다.
“슬슬 던전 포탈을 갈 때가 됐다 싶어서 말이야.”
“그래도 일단은 가장 약한 곳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래야겠지.”
아직 요한은 레벨이 낮은 편이다.
거기에다가 솔로 사냥이니 신중 할 필요가 있었다.
“바,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 그럴 게 아니라. 몇 군데 짚어 줄 테니까. 그곳 위주로 알아봐 줘.”
“아, 네.”
“화성에 있는 왕릉 던전, 파주에 있는 거머리 던전, 철원에 있는 설원 던전.”
“그 3개로 알아보겠습니다.”
“부탁해.”
“네.”
헌터 덕후인 요한이기에 지금의 그가 갈 수 있는 가장 만만한 곳 3개를 꼽을 수가 있었다.
던전 필드는 포탈 필드와 다르게 들어갈 공격대 간의 협의가 없으면 하루에 1팀밖에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들어간 공격대가 나오지 않는 이상 다른 공격대는 출입이 금지된다.
공격대가 던전 포탈을 클리어하면 포탈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그러다 다시 보스 몬스터가 부활하면 녹색으로 되돌아온다.
필드 포탈이 파란색이고 던전 포탈이 녹색이었다.
일정 시간 이상 던전을 토벌하지 않으면 진녹색이 되어 폭발해 몬스터를 분출한다.
필드 포탈이 아니라, 던전 포탈이 폭발하면 그야말로 주변은 인세의 지옥이 펼쳐진다.
필드 포탈과는 수준이 다른 몬스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결국엔 보스 몬스터까지 나와 깽판을 치기 때문이다.
“팀장님, 지금 막 철원의 설원 필드로 예약을 했습니다.”
“오케이, 그곳으로 바로 출발할 게.”
“예, 알겠습니다!”
요한은 러셀 길드 본부를 나서서 준비된 차를 타고 설원 필드로 향했다.
그때였다.
러셀 길드 본부 근처에서 환경 미화원 복장을 한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옷깃을 잡아 올렸다.
“지금 막 참새가 출발했습니다.”
치익-.
뭔가 울리더니 알아듣기 힘든 말이 흘러나왔다.
“예, 이미 부착해 두었습니다. 전 철수합니다.”
뭐라고 더 대화를 나누더니 조용히 사라진 환경 미화원이었다.
차를 타고 철원으로 향한 요한.
이곳은 10월 달에도 눈이 온다는 악명 높은 군부대가 있는 곳이었다.
다만, 이제 이곳의 군부대는 대부분 철수한 상태였다.
북한이 사라지고 군대는 국내 치안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되었다.
아직 징집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만 복무 기간이 1년으로 짧은 편인에다가 월급도 최저 임금 대로 맞춰서 지급했다.
휴가 제도도 후하고 복지도 좋고 군인들의 혜택도 많은 편이라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폐쇄적인 분위기도 아니고, 근무만 없으면 일과 시간이 끝나면 외출도 가능했다.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이곳을 예약한 김요한 헌터입니다.”
헌터 자격증을 제시했다.
삑-.
지급된 단말기로 확인하고 사진과 얼굴을 대조했다.
“확인되었습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그럼.”
“꼭 살아오십시오, 충성!”
“하하, 감사합니다.”
지역마다 경계를 서는 군인들이 달랐고 문화도 개성이 넘쳤다.
그렇게 요한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엔 암울한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림자였다.
“음, 김 병장님.”
“어, 왜?”
“저게 뭡니까?”
“뭔데?”
이 일병이 가리킨 곳을 본 김 병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웬 검은 게 오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아씨, 귀찮게.”
망원경을 들어서 이 일병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저게 뭔ㄷ……."
푸각-!
“커헉!”
검은 촉수가 땅에서부터 튀어나와 김 병장을 꿰뚫었다.
“으, 으아아아!!”
“헉, 뭐, 뭐야?!”
요한을 기다리던 기사와 이곳에 상주하는 협회 직원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