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음머어어어어……!”
푸각- 퍽!
황소 필드의 보스는 아니지만, 가장 강력한 몬스터인 블랙 카우가 구슬픈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거참, 무슨 맷집이 이렇게 단단하냐?”
황소 필드의 몬스터들은 확실히 일반 필드의 몬스터와는 달랐다.
가장 어려운 필드 포탈다운 사냥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한의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그는 이미 S급 헌터로 필드 포탈은 그에게 너무 좁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던전 포탈로 향하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많았다.
필드에서 벌이는 솔로 사냥이랑, 던전에서 벌이는 솔로 사냥은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랐기 때문.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보스 몬스터의 여부라고 할까.’
거기에다가 던전 필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스 몬스터를 강제적으로 사냥해야 했다.
그래야 필드를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던전 필드는 한번 발을 들이는 순간, 강제로 보스까지 사냥해야 해. 그러니 철저한 준비는 필수 중의 필수야!’
아직 희생 성장 특성이 발현하고 있었다.
그러니 조금 더 확실하게 하려고 필드 사냥 위주로 사냥을 도는 것이었다.
‘레벨을 올린다고 스탯 자체는 다이나믹하게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스킬 레벨 올리는 건 중요하니까.’
특히 요한의 스킬들은 다 성장형이었다.
‘뭐, 솔직히 아무리 나라도 특성이 제대로 없었으면 이런 좋은 스킬을 가지고도 밑에서 헤맸겠지만.’
네크로맨서의 스킬은 코딩으로 재설정을 하지 않으면 정말 쓰레기였다.
성장하면 좋아지겠지만, 그 성장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영국의 러셀 가문에서 직접 운영하는 러셀 길드도 그런 네크로맨서의 잠재력을 인정해 돈과 인력을 사용해 길드 차원에서 성장시킨 것만 봐도 명백했다.
‘거기에다가 스스로 성장한 게 아니다 보니, 낼 수 있는 전투력에도 한계가 있지.’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강자 중에선 네크로맨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올튜브 쪽에선 유명한 네크로맨서가 몇 명 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클래스의 희귀성과 전투 자체의 특이함 때문에 얻은 인기일 뿐이었다.
근본적인 강력함은 없었다.
길드의 힘으로 강해진 네크로맨서들은 전력 공개를 우려하여 공개적으로 힘을 발휘하진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계 최초로 등장한 S급 네크로맨서인 요한이 순식간에 인기가 많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네크로맨서 술사의 힘은 그리 강력하지는 않지만, 언데드를 이용한 수적 우위를 통한 압도적인 물량 공세는 보는 이들의 피를 끓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요한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서 확인해 보았다.
[김요한]
[레벨: 95]
[직업: 네크로맨서]
[특성: (프로그램) / (A.I) / (희생 성장)]
[스탯]
힘: 11.9. 민첩: 12.5. 체력: 16.1. 지능: 36.31. 지혜: 42.0.
[스킬]
네크로맨시 Lv.30 저주 Lv.25 시체 마스터리 Lv.22 본 아이덴티티 Lv.30 마스터 프로그래밍 Lv.5 소울 마스터리 Lv.22
‘여전히 희생 성장이 발동 중이라 그런지, 성장이 아주 빨라.’
춘천에 진입했을 때 상대했던 수백 마리의 몬스터, 그리고 황소 필드 사냥까지 다 합쳐서 총 10의 레벨이 올랐다.
레벨이 오를수록 성장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고속도로 하이패스와도 같은 성장이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지. 내가 직접 상대해야 할 괴물들은 이것보다 훨씬 더 강할 테니까.’
S급 헌터라고 해서 다 같은 S급 헌터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공식 랭킹 1위로 알려진 인물은 특이하게도 국회의원이었다.
정확히는 헌터와 국회의원을 겸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온몸이 마그마로 이루어진 속성 계열 헌터로 S급이며 레벨은 알려진 것만 1,093이었다.
그의 집안도 화려했는데 친가가 S그룹, 외가가 대한민국 최고의 땅 부자이자 현금 왕으로 통하는 윤덕기라는 사채업자였다.
대한민국 공식 랭킹 1위이면서 세계 삼대장이라 불리는 그는 특이하게도 소속된 길드가 없었다.
소속된 길드는 없었고, 그가 대장으로 있는 정규 공격대 하나로만 모든 걸 처리했다.
몇 명의 기자가 왜 길드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자체가 길드이자 조직인데, 왜 굳이 귀찮게 길드를 세우느냐.”
그 인터뷰는 정말 널리널리 퍼졌고 그를 상징하는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아주 강했다.
온몸을 마그마로 변화시켜서 벌이는 전투는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거대한 자연재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영상을 찍은 헌터는 전투가 아니라 재앙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코멘트를 남겼었다.
그리고 그 코멘트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이들은 이렇게 일반적인 수준의 헌터가 아니야.’
이제 레벨 95에 이른 그가 1,093 레벨의 헌터가 있는데 자만할 수 있겠는가?
‘뭐, 그렇다고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마그마가 재앙이듯이 요한의 능력 또한 재앙이었다.
가장 끔찍한 ‘죽음’이라는 재앙 말이다.
‘마그마는 피할 수 있겠지만,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지.’
신중할 뿐, 결코 겁을 먹거나 꼬리를 내리진 않았다.
[플레이어.]
안내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본 아이덴티티 스킬에 새로운 하부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오, 그래?”
[네, 띄워 드릴까요?]
“부탁해.”
[알겠습니다.]
[본 아이덴티티 Lv.30]
▶ 뼈 수집: 시체의 뼈만 골라서 수집할 수 있다. 최대 수집 제한은 레벨(X10)이다. 수집한 뼈는 다양한 스킬에 활용이 가능하다.
▶ 본 골렘: 수집한 뼈 100개를 사용해 본 골렘 1기를 불러낼 수가 있다. 수집한 뼈의 상태에 따라서 그 능력이 천차만별인 골렘이다.
‘워어.......'
1개도 아니고 2개의 스킬이 새로 생성되었다.
‘대박인데?’
이번 스킬로 시체의 활용도가 1개 더 늘었다.
‘거참…… 마치 스킬이 넌 절대 솔로 사냥만 해! 라고 종용하는 것 같네.'
딱히 나쁘다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회사 생활을 잘한 편이었지만, 인간관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많은 말이 나오는 자발적 아싸가 바로 그였다.
그 증거로 그가 유명한 헌터가 됐음에도 연락 오는 곳이 별로 없었다.
‘아, 물론 친척들에겐 좀 왔지만.’
나름 친근하게 다가온다고 했던 그들이었지만, 요한의 냉정한 태도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생떼도 상대를 봐 가며 부려야지, 헌터에게 찍혔다간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일반인들은 헌터를 경외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렇게 독불장군 기질이 강한 요한이다 보니, 오히려 이런 네크로맨서의 능력이 마음에 들었다.
‘외롭지 않냐고?’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의 존재가 그 생각을 깨부쉈다.
[히히!]
바로 이 철없는 아가씨 하늘의 존재 덕분이었다.
분명히 나이가 좀 있을 때 죽고 봉인 당했음에도 10대 초반 소녀의 모습을 한 강하늘 밴시.
그녀는 다른 언데드와 달리 인간일 적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기억은 없어졌지만, 인간과 똑같았다.
아직 10대의 모습과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깊이 있는 대화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린 소녀와의 순수한 대화는 그의 외로움을 없애 주었다.
‘거기에다가 뼈만 많이 모아 두면 시체가 없어도 전투가 가능한 녀석을 소환할 수 있다는 거지.’
시체가 없으면 힘이 1/10까지 떨어지는 네크로맨서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스킬이었다.
‘시체 공급 스킬이 있어서 아직 까지는 괜찮지만. 혹시 몰라, 시체를 남기지 않는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더더욱 본 아이덴티티 스킬이 중요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최고야.”
[다행이군요.]
그렇게 안내인과의 대화를 끝내고 요한은 마석으로 가득한 배낭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어, 어. 나왔다!!”
찰칵찰칵찰칵-!
포탈 밖엔 이번 몬스터 진압 사건을 알고 찾아온 기자로 가득했다.
“김요한 헌터님, 춘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몬스터를 홀로 상대 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세계 최초로 S급 네크로맨서이십니다. 그 능력으로 전부 토벌한 것인가요?!”
“김요한 헌터님, 춘천 시민들에게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그들은 기사 한 줄이라도 요한의 코멘트를 적을 수 있길 원하고 있었다.
연이어 핫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요한은 기자들에겐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모두 사실입니다.”
“오오, 김요한 헌터의 행보는 그야말로 모든 헌터의 본보기가 될 만한 일입니다. 다른 헌터 분들에게 한마디 안 하시겠습니까?”
“다른 헌터 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제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군요.”
“이번에 유명 걸그룹의 한그루양이 이상형으로 꼽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그루, 그게 누구야?’
헌터와 관련된 지식 말곤 딱히 관심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한 대로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딱히 상관은 없는데. 괜히 나서서 욕먹을 필욘 없으니까.’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론 아직 미혼에 여자 친구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관심 없으십니까?”
유명 헌터의 연애사는 늘 관심거리였다.
“네, 당분간은 연애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아.”
구경꾼들 사이에서 안타까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강했다.
“자자,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김요한 헌터님은 방금까지 사냥을 하셨습니다.”
“하, 한마디만!!”
제임스가 적당히 잘 끊었다.
요한은 기자들과 구경꾼들 사이를 뚫고 나와 제임스의 차에 올라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집으로 가자.”
“예.”
차는 곧바로 출발하지는 않았다.
잠시 기다렸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석이 가득한 배낭을 메고 있는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미리 준비된 트럭에 배낭을 실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으, 저 묵직한 배낭. 정말 많군요.”
“그럼, 당연하지. 내가 죽어라 사냥한 건데.”
특히 이번엔 춘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몬스터 수백 마리 덕분에 더욱 두둑했다.
“1시간 안에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오냐.”
마나를 회복했다곤 하지만, 마나를 소모하는 과정은 상당히 피로한 일이었다.
몸을 편하게 묻은 요한은 눈을 감았다.
“다 됐군요. 출발하겠습니다.”
"......."
요한은 대답 대신 스켈레톤 워리어를 소환 취소했다.
그러자 뼈 무더기로 돌아간 스켈레톤 워리어였다.
30초 후면 뼈 무더기는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요한은 샤워하고 소파에 앉아서 맥주 캔을 뜯었다.
치익- 벌컥벌컥벌컥-!
“캬하, 역시 사냥한 뒤에 샤워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최고란 말이야.”
자발적 아싸인 그에게 맥주는 영혼의 파트너 같은 존재였다.
[맛있겠다…….]
하늘은 그런 요한을 보며 부러워했다.
영혼체인 그녀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너 빙의는 못 해?”
[빙의?]
“그래, 빙의.”
[할 수는 있어!!]
“오, 그래?”
요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