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원하던 해골 가면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의 여러 가지 행보로 적이 많이 생겼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 자체가 없다고 하는 게 맞았다.
해골 가면까지 손에 넣는 데 성공한 요한은 그날 밤 당연히 각성몽에 접속했다.
능력의 진화로 스마트폰으로도 작업이 가능해지자 이젠 매일 각성몽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각성몽은 다 좋은데, 너무 많이 접속하면 피곤하단 말이야.’
사실 요한이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각성몽에 매일 접속한 것도 미친 짓이었다.
물론 이론적으로 하루에 10시간 까지는 각성몽에 접속은 가능했다.
다만, 학자들이 이 연구를 할 때 간과한 것이 있는데 요한처럼 몇 달을 매일같이 10시간씩 접속하는 헌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10시간씩 일주일간 매일 접속만 하더라도 피로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그 짓을 쉬지도 않고 몇 달 동안 매일같이 한다?
학자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한은 그 짓을 했고, 피로를 한꺼번에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며칠이나마 각성몽에 접속하지 않아서 그 피로를 풀었다.
다만, 많이 쉬고 싶어도 워낙 바쁜 일정이라서 마음 놓고 쉴 수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 어서 오십시오, 플레이어. 각성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와, 그거 사흘 만에 듣는 건데. 아주 오랜만에 듣는 거 같아.”
- 그동안 너무 자주 접속하셨습니다. 적당한 휴식을 권장합니다.
“에게, 이제야 그러네. 지금까지 아무 말 없다가?”
- .......
안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킥킥.”
그런 반응이 재밌는 요한은 킥킥 거리며 웃었다.
- 이번에 괜찮은 아이템 2개를 획득하셨던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 땡큐. 어, 그런데 좋은 아이템 2개? 나머지 1개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 무슨 말씀이신지, 좋은 아이템이라고 확신하셔서 3억이나 들여 사신 거 아닙니까?
“음,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도박성이 짙어. 제목이 『죽음의 서』 라고 해도 뭐, 외계어로 적힌 장례 절차일 수도 있는 거니까.”
-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응?”
생각보다 훨씬 단호한 안내인의 음성이었다.
지잉-!
요한의 눈앞에 이번에 얻은 가면과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각성몽은 자고 있을 때 입은 옷 말곤 아무것도 들일 수가 없었다.
다만, 아이템으로 분류되는 물건은 안내인, 즉 NPC의 판단하에 들이는 게 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각성몽에 있어서 일명 NPC와의 친분은 매우 중요했다.
가끔 이런 개념이 없는 헌터가 NPC를 함부로 대하는 바람에 각성몽에서 쫓겨나 다시 접속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헌터는 한창 활동하다가 각성몽에 접속할 수 없어진 사례도 있었다.
뭐, 평범한 헌터로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각성몽에 굳이 접속하지 않아도 성장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엔 없었다.
- 어떤 것부터 확인하시겠습니까?
“음, 일단 대충이나마 아는 해골 가면부터 확인해 볼게.”
- 알겠습니다.
[마로스의 해골 가면.
마나 증폭: 21.099
내구력: 13.668
부가 효과: 존재감 감소(3.69), 어둠 감화(8.17), 소환물 강화(2.0), 필드 장악력(2.16), 공격 무력화(5.197).]
‘정확하네.’
경매장에서 소개했던 수치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름이 명확해졌는데 마로스란 존재가 쓰던 것이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음은 『죽음의 서』 네.”
- 네, 하지만. 이건 플레이어가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 이 책은 특수한 형태로 봉인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플레이어가 이 책을 알아본 것도 그 봉인의 일환이라고 할 수가 있죠.
“아, 이 특수한 문자?”
- 예, 사실 저도 그 문자를 해독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플레이어처럼 특수한 특성을 가진 자만이 그 문자를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NPC까지 알 수 없는 문자, 이러니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고 저렴한 가격에 창고에서 썩어 가고 있었으리라.
‘그러니 이 책의 가치를 모른 상태로 팔았구나.’
만약에 알았다면 아무런 상품 설명 없이 판매하지는 않았으리라.
보통 경매소에 출품되는 물건들은 사소할 정도로 아주 작은 정보도 기록해 두는 편이니까 말이다.
‘음, 그러면 이 책 정보는 프로그램 특성으로 확인할 수가 있나?’
그는 손에 마나를 일으킨 채로 『죽음의 서』를 잡아 들었다.
‘어?’
느낌이 왔다.
이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촤악- 촤르르륵!
양손으로 책을 잡고 팔을 크게 휘둘러 양쪽으로 펼쳤다.
그러자 『죽음의 서』가 1장, 1장 분리되며 요한의 눈앞에 짝악 펼쳐졌다.
‘우와, 대단하다.’
『죽음의 서』는 꽤 두꺼운 양장본 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페이지 1장, 1장이 펼쳐진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보인다!!’
거기에다가 책 속의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 『죽음의 서』 by. 마로스.]
‘어, 마로스?!'
조금 전에 가면 앞에 붙었던 그 이름이었다.
‘뭐지, 마로스란 사람…….'
호기심이 강하게 들어,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아. 뭐야, 이거. 코딩 딸 때보다 훨씬 더 어렵잖아.’
이게 상형 문자이다 보니, 새로운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코딩할 때도 조금씩 문자의 뜻이 보였다.
그 현상이 또 발생하고 있었다.
‘어, 음…… 이 책은 네크로맨서의 스……킬북. 어?!’
띄엄띄엄 읽긴 했지만, 『죽음의 서』 는 네크로맨서의 스킬북이었다.
‘대, 대, 대박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스킬북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아이템이었다.
만약에 제대로 된 전투 스킬이 기록된 스킬북을 구한다면 로또가 100번 연속으로 당첨된 효과를 볼 수가 있었다.
자신과 맞는 스킬북을 구한다면 1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헌터에 있어서 스킬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대박!!’
이젠 이 『죽음의 서』 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게 목표였다.
‘자, 제대로 해 볼까?’
우드득-!
손뼈를 풀고 막 하려던 차였다.
- 플레이어.
“응?”
-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뇌파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약 일주일간은 접속하지 마실 것을 권장합니다.
“……알았어.”
잠깐 고민했던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한다면 못 할 건 없겠지만, 그는 오래 활동하고 싶은 몸이었다.
‘지금 급하다고 몸을 너무 무리해서 굴리면 단명하기 딱 좋아. 난 오래오래 가는 헌터가 되고 싶어.’
괜히 작은 욕심에 매몰되어 호미로 막을 둑을 가래로 막아도 소용 없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각성몽 종료.”
- 수고하셨습니다. 일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응, 수고.”
그렇게 그날은 각성몽을 빨리 종료한 덕분에 푹 잘 수가 있었다.
다음 날 요한은 꽤 개운한 상태로 기상해 러셀 길드 본부로 출근했다.
1층엔 나이 든 경비가 아니라, 영국의 경호 회사 직원들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요한이 다가오자 예의 바르게 안내했다.
위에서 요한의 심기를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네, 수고들 하십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저는 오늘 부로 이곳에 배정된 비서 ‘안나’라고 합니다.”
영국인 특유의 발음은 남아 있지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백인 여성이었다.
“반가워요. 바로 일 시작할까요?”
“아, 네.”
‘이상하다. 내가 본 『한국인 백과사전』 엔 처음 보는 사람과는 커피나 식사를 하면서 친분을 먼저 다진다고 했는데?’
요즘 한국이 G3 중에서도 헌터 분야에선 가장 큰 발전을 보였다.
덕분에 한국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또 그 전엔 K-POP, 한류 덕분에 한국인에 관한 책도 적지 않았다.
워낙 많은 정보가 나오다 보면 꼭 이상한 정보도 섞여 있기 마련이었다.
“아, 네. 팀장님은 솔로 사냥을 주력으로 하는 헌터시라고 하셨으니 공격대 모집은 넘어가고, 일단은 짐꾼 회사를 섭외부터……."
“아뇨.”
“네?”
요한은 적당한 부분에서 안나의 말을 끊었다.
“짐꾼도 필요 없습니다.”
“예?”
‘아무리 솔로 사냥이지만, 짐꾼이 필요 없다니?’
헌터 세계에서 짐꾼은 그냥 짐만 들어 주는 이들이 아니었다.
비용은 조금 비싸지만, 짐을 들어 주는 것은 기본이고 다양한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결정적으로 몬스터 사체를 도축해서 헌터의 벌이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솔로 사냥을 하는 헌터라도 작은 짐꾼 팀이라도 반드시 동행하는 편이다
“그, 그러면?”
“괜찮은 사냥터 목록 좀 뽑아 주세요. 언젠가는 던전 포탈에 갈 예정이긴 하지만, 지금은 일단 필드 포탈로요. 가장 수준이 높고 어려운 곳으로 10곳만 좀 추려 주세요.”
“아, 네, 네. 아, 알겠습니다.”
안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일단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지금까지 2명의 공격대 대장을 모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헌터는 처음이었다.
‘정신 차리자, 내 임무는 보조일 뿐이야!!’
안나는 정신을 다잡고 시킨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보 팀으로 향했다.
그곳엔 요한이 요구했던 정보가 체계적으로 보관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30분 뒤, 안나가 요한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똑똑-.
“들어와요.”
“팀장님, 요청했던 정보입니다.”
샤륵-.
깔끔하게 프린트된 서류가 요한의 앞에 서류철에 담겨서 놓였다.
“안나.”
“네,
“제가 요청한 자료는 보셨나요?”
“아, 네.”
“그럼, 제가 사냥할 만한 곳으로 가장 추천하는 게 있나요?”
“아, 네. 조금 멀긴 하지만, 여주의 섬 필드가 가장 좋지 않을까요. 팀장님의 네크로맨서 특유의 능력과 상성도 좋고, 그렇게 어려운 곳도 아니고요.”
“흠, 그러면 제가 가장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생각해 보셨나요?”
“아, 그건 춘천에 있는 황소 필드입니다. 그곳엔 중대형 몬스터인 황소가 등장합니다. 중대형이다 보니 1마리 사냥이 쉽지가 않고 수준이 상당하더군요.”
“음, 그러면 황소 필드로 잡아 주세요.”
“네?”
빠직-!
유능한 비서인 안나의 이마에 제대로 힘줄이 돋아났다.
하지만 유능한 비서인 안나는 사력을 다해서 참았다.
‘킥킥.’
하지만 조금 얼굴이 구겨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요한은 그 모습을 보곤 속으로 작게 웃었다.
“황소 필드가 더 돈이 될 것 같네요. 거기로 예약해 주세요.”
“시간은?”
“전 바로 출발할 테니까. 도착하면 바로 쓸 수 있게 해 주세요.”
“아, 네!”
안나는 뭔가 정말 짜증이 많이 났지만, 시킨 대로 움직였다.
그러라고 월급을 받는 신세이니 말이다.
‘하아, 이상한 상사 만난 건 아니겠지.’
그녀는 이곳을 퇴사하고 싶진 않았다.
러셀 길드에서 일하는 건 그녀의 경력에서도 굉장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