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엘레노아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깔끔하고 넓은 현대식으로 꾸며진 사무실이었다.
“어때요. 사무실은 마음에 들어요?”
“아, 네. 괜찮네요.”
정말 괜찮았다.
그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실보다도 훨씬 더 멋진 사무실이었다.
“아 참, 그리고 내일부터 직원을 붙여 드릴 거에요.”
“직원요?”
“네, 솔로 사냥을 하시니 헌터 동료는 필요 없겠지만, 일반인 직원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엄연히 러셀 길드의 팀장인데?”
으쓱-.
“뭐, 그런 거라면 상관없네요. 딱히 제 돈 나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몇 가지의 대화가 더 오갔지만,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엘레노아는 나가고 사무실엔 요한 혼자만 남았다.
정확히는 밴시인 하늘이 있긴 했지만, 그녀는 특별한 대화거리가 없으면 그냥 조용히 허공에 떠 있는 영혼일 뿐이었다.
‘일단 돈은 마련됐어.’
다음 주, 아니 정확히는 이틀 뒤에 있을 경매에 든든한 총알을 가지고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오버페이를 하더라도 손에 꼭 넣어야지.’
그 아이템은 특히 가면이라는 휴대성이 좋은 아이템이라 더 탐이 났다.
이틀 뒤, 요한은 경매 시간 10분 전에 헌터 경매소에 등장했다.
“어, 김요한 헌터다!”
“어, 정말이네?”
“와, 대박. 이번에 러셀 길드와 계약으로 9,000억을 벌었다면서?”
“맞아, 나도 들었어. 9,000억의 현금이 생겼으니 이곳에 올 만하지.”
“뭐, 우리야 기껏해야 10억 이하 물건 구매하려고 왔으니 딱히 상관은 없겠지만. 우리 높으신 분들 똥 줄 좀 타겠는데?”
“킥킥.”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 9,000억은 재벌도 힘들었다.
물론 대한민국이 발전하면서 세계급 갑부가 많이 생겨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갑부는 현금이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비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젠장, 오늘 괜찮은 물건이 특히 많이 나오던데. 다 뺏기는 거 아니야?”
“크흠, 그러면 좀 곤란한데......."
이곳 헌터 경매소는 꼭 개인이 참석하는 곳은 아니었다.
길드 자체가 참석해 대여해 줄 수 있는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길드원을 모집할 미끼가 필요했다.
때문에, 어떤 아이템을 대여해 줄 수 있는가도 길드를 선택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경매 때마다 다양한 길드가 참석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였다.
비록 요한이 9,000억이란 현금이 있긴 했지만, 일부 상대는 길드라는 조직이었다.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은 없었다.
딩동-!
[10분 후에 경매가 시작합니다. 참석하는 귀빈 여러분께선 경매장으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요한은 굳은 얼굴로 경매장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조명이 꺼지고 다양한 물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1번, 극빙의 브로드 소드 113억 3천만 원. 더 없으십니까?”
"......."
“그럼 극빙의 브로스 소드는 113억 3천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탕-!
11번의 경매가 끝나고 12번, 13번이 지날 때도 요한은 단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다.
“뭔가 노리고 왔군.”
“그런 것 같아.”
아직 한 번도 펫말을 들지 않은 요한이었지만, 매번 관심의 중심은 그였다.
“자, 이제 20번 물품입니다. 물품 코드 SSS 819038의 해골 가면이 주인공입니다. 이 물품은 이번 경매에 출품된 가장 비싼 아이템으로 경매 시작가는 3,000억부터입니다. 증가 단위는 100억입니다.”
“와, 미친. 팸플릿에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3,000억이라니!”
“아, 잠깐만!”
경매에 참여한 몇 명의 헌터가 재빨리 어플을 확인해 보았다.
“이거다. 김요한 헌터는 이 해골 가면을 노리고 있던 거야!”
“뭐, 뭔데?”
“이 해골 가면의 부가 효과 중에 소환물 강화(2.0)가 있어. 네크로맨서인 그에게 꼭 필요한 효과잖아.”
“아……!”
모든 헌터가 경매에 출품되는 물건을 자세히 꼼꼼하게 확인하지는 않는다.
뒤늦게 요한이 노리는 물품을 알 게 되었지만, 딱히 변하는 건 없었다.
척-.
요한은 경매에 참여하고 처음으로 팻말을 들었다.
“네. 3, 100억 나왔습니다! 3,200억! 3,300억! 역시, 가장 비싼 물품 답게 경쟁이 치열하군요. 3,400억!!”
경매사의 화려한 말솜씨가 경매를 더 치열하게 보이게 해 주었다.
“3,800억! 드디어 적정 가격 라인에 들어왔군요. 과연, 누가. 해골 가면을 획득할 것인가!!”
경쟁에 불이 붙어 4,200억까지 치솟았다.
지금부터 손을 들면 100억씩 적정 가격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흠…….'
요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 자신을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 길드에 안 들었다고 이런 식으로 엿 먹이는 건가?’
이곳 경매장엔 그런 길드 소속 헌터가 꽤 있었다.
‘어이없네. 내가 100% 탐내는 거 같으니까. 방해할 생각으로 일단 지르고 보는 것 같은데…….'
몇 번 손을 더 들었다.
“오우 5,200억까지 가격이 올랐군요. 적정 가격의 최고가인 4,200억을 1,000억이나 돌파했습니다!!”
다만, 여러 곳에 동시에 방해를 하는 통에 얼굴도 알 수가 없어 특정할 수가 없었다.
‘역시나.’
그렇다면 요한은 다 생각이 있었다.
“오오!! 6,300억!!”
요한은 일단 계속 손을 들었다.
마치 욱하는 마음에 지지 않겠다는 기세인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에…….
“자, 미친 가격 8,900억!!”
한 길드가 요한이 외쳤던 8,800억을 받아서 8,900억을 들었다.
‘큭, 내가 현금 9,000억을 다 쓸 생각인 줄 알았겠지.’
하지만 요한은 손을 들지 않았다.
“8,900억. 8,900억. 더 없으십니까?”
“어, 어, 어?!”
8,900억에서 손을 들었던 알 수 없는 길드 소속의 인물은 당황했다.
계산대로라면 마지막으로 요한이 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손을 들기는커녕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경매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당했다!!’
애초에 요한은 4,500억 이상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방해받는다면 제대로 역공을 가할 생각으로 어울려 준 것이다.
“이, 이런 제, 젠장.”
“8,900억, 더 없으십니까?”
“아, 저, 그, 그게…… 아흐......."
8,900억을 부른 길드는 애초에 8,900억이란 현금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노리던 물품은 100%는 아니지만, 확보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즉, 경매 참가를 더 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겨, 경매 입찰을 취소합니다.”
“예, 그렇게 되면 10%의 취소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예……."
수수료가 문제가 아니라, 8,900억이 없었다.
물론 길드 이름으로 대출을 받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사망률이 높은 직업인 헌터 개인에겐 대출을 안 주는 은행도 헌터 조직인 길드에는 대출을 쉽게 내주니 말이다.
하지만 비싼 이자를 물어 가며 살 가치가 있는 물건은 또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음, 다음은 김요한 헌터님인데. 부재중이시고 개인 자격이니 패스. 다음은 아라시 길드 분.”
“그, 그. 우, 우리도 입찰 취소합니다.”
“그래요?”
헌터 경매소는 이런 식의 입찰 장난을 정말 싫어했다.
그래서 입찰 취소자가 나오면 그 밑의 금액을 부른 사람에게 살 거냐고 묻는 형태였다.
당연히 취소 수수료를 내야 했다.
다만, 그건 길드 자격으로 경매에 참석한 사람에게만 물었다.
개인 자격으로 경매에 참석하면 그 수수료를 물지 않았다.
다만, 그것도 처음 1회에 한했지만 말이다.
영세 헌터 보호 정책이었다.
“흠……."
결국, 입찰에 참여했던 길드 전부가 입찰 취소를 했다.
‘뭐, 수수료도 제대로 짭짤하게 얻었으니까.'
“그러면 경매를......."
척-.
“4,000억.”
“어?”
분명히 나갔다고 생각했던 요한이 다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팻말을 들고 적정 가격 중간을 불렀다.
그리고 여유롭게 주변을 빙 둘러 보았다.
마치 도발하는 것 같은 모습에 으드득- 이가 갈렸지만, 누구도 함부로 팻말을 들 수는 없었다.
또 자칫 잘못했다간 입찰 취소 수수료를 물어야 할 판이었으니 말이다.
“4,000억 나왔습니다. 4,000억 더 없으십니까. 셋 세고 입찰을 종료합니다. 둘, 셋.”
땅-!
그렇게 요한은 다른 길드의 방해를 이겨 내고 오히려 예상했던 금액보다 500억 저렴하게 해골 가면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쯧, 멍청한 놈들.’
수백억을 날리고도 방해조차 제대로 못 한 이들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하긴, 이 정도 금액 경매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은 요한이 러셀 길드 소속으로 나올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예상과 달리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고, 돈을 전혀 낭비하지 않았다.
***
“4,000억 입금 확인되었습니다. 여기 해골 가면입니다.”
요한은 경매소 직원에게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은색의 특수 케이스를 전달받았다.
“여기서 확인해 봐도 될까요?”
“예, 그럼요. 오히려 그러시면 저희도 깔끔하고 좋지요.”
헌터 협회 소속의 기관인 경매소가 사기를 칠 리는 없었다.
헌터 상대로 사기를 쳤다가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하지만 가끔 본인이 분실하거나 강탈당하고 경매소가 가짜를 줬다며 행패를 부리는 헌터가 있었다.
물론 경매소에서 다양한 증거를 미리 준비해 두어서 단 한 번도 그 일에서 져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헌터가 행패를 부리면 피곤한 건 사실.
다들 보고 있는 곳에서 확인하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생기기에 행패를 사전에 방비할 수가 있었다.
딱딱- 달칵!
특수 합금 케이스가 열리고 그 안엔 사진으로 보았던 해골 가면이 있었다.
스윽-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응축되고 정제된 마나가 제대로 느껴졌다.
‘진짜네.’
자세한 정보는 각성몽에서나 확인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정교한 마나가 가짜일 리는 없었다.
“확인했습니다.”
“하하,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유명하신 분과 꾸준한 거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군요.”
“네.”
턱-.
둘은 악수를 하였다.
어차피 헌터 장비를 얻을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는 이곳 헌터 경매소가 유일했다.
블랙 헌터가 되어서 블랙마켓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자주 만날 둘이었다.
의례와도 같은 인사였지만, 의미는 꽤 있었다.
그렇게 요한은 완벽하게 해골 가면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특수 케이스를 들고 요한은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으로 가는 요한을 보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벌써 3번째 저놈에게 물을 먹는군.”
“끄응, 제기랄. 결국, 영국 길드에 영혼을 판 매국노 같으니라고!”
러셀 길드는 엄연히 한국 소속 길드였다.
길드 마스터인 엘레노아는 영국과 한국 복수 국적자였고, 러셀 길드는 정확히 한국 헌터 협회에 등록되어 있었다.
세금도 한국에 낸다.
하지만, 엘레노아의 외모는 살짝 동양적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금발 백인이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엔 영국인일 뿐이었다.
그거 가지고 매국노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보기엔 상당히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많은 국가였다.
“그자에게 연락하죠.”
“헉, 그자에게 말입니까?”
“그래요. 한 번쯤은 복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국노 따위, S급이라지만 결국 매국노 아닙니까.”
“흐음, 알겠습니다. 그자에게 연락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