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하응 검은 날개 길드 마스터와의 짧은 만남은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 잠깐 남자들의 기 싸움, 눈싸움 등, 유치한 기세 싸움.
그리고 마지막에 웃으며 덕담을 주고 받으며 끝냈다.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했다. 그렇게 요한이 어느 길드에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물밑으로 계속 영입 제의가 끊임이 없었다.
‘아씨, 내 번호는 어떻게 안 거긴, 협회에 인맥만 조금 있으면 아는 거야 곧바로지.’
모든 헌터는 의무적으로 협회에 공식 번호를 등록하게 되어 있었다.
대리인이나 매니저 번호도 금지, 오로지 본인이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번호를 등록해야 했다.
그래야 정말 큰 비상사태 때 빠르게 연락이 갈 수가 있을 테니까.
물론 그건 절대 밖으로 공개되지 않는 극비 정보였다.
'하지만 돈과 권력 앞에 극비가 어딨어.’
미국에서 극비리에 개발 중이던 헌터 전용 장비 하나가 완성도 되기 전에 설계도가 중국으로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완성된 이후도 아니고, 완성되기 직전에 설계도가 유출되자 분노한 미국과 잡아떼는 중국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어떤 게 오갔는지 몰라도 막 전쟁할 것처럼 떠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미국도 초극비 정보가 빠져나가는 세상에 겨우 일개 헌터 개인 번호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요한은 수시로 울려 대는 스마트폰 때문에 아예 무음으로 해 놓고 엎어 두었다.
헌터는 의무적으로 스마트폰을 켜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딸깍딸깍-!
그는 집에서 헌터 경매소 홈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뭐, 괜찮은 물건 안 들어왔나.’
헌터 경매소에 등록되는 물품은 굉장히 다양했다.
특히 가끔 발생하는 일회용 포탈엔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아이템이 발견될 때도 있었다.
쓸 수 있으면 쓰는 거고, 쓸 수 없으면 헌터 경매소에 등록해 판매한다.
수수료 6%만 지급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경매소에 아이템을 등록할 수가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건 포탈 안에서 발견된 예비 등록 명단이었다.
제작 아이템은 직접 경매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발견 아이템은 이렇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헌터 협회에 어떤 변태가 있겠거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보자, 뭐 쓸 만한 물건이…….'
드르륵- 드르륵-!
마우스 휠을 밑으로 굴리면서 확인해 보았다.
‘하긴, 일회용 포탈에서 얻는 물건이 다 좋은 건 아니니까.’
사실 대부분이 고물상에 팔아야 할 쓰레기들이었고, 정말 소수의 물품만이 그 가치가 있었다.
‘스킬북이면 더 좋겠지만, 그건 정말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물건이니까.’
포탈에선 가끔 스킬북이란 아이템이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전투용 스킬북은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거래되었다.
극소수의 상위 헌터만 참가할 수 있는 전문 마켓에서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벌써 1시간 넘게 마우스 휠만 건드리고 있었다.
꽤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헛된 일은 아니었다.
‘행운은 노가다를 통해서 다가오는 편이니까.’
아주 옛날에 유행했던 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은 자칭 모든 불행을 떠안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행도 무한 노가다 앞엔 무의미했다.
행운의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결국, 계속 반복하다 보면 걸리기 마련이니까.
“어?”
살짝 지루한 나머지 대충 휠을 만지고 있을 때였다.
요한의 눈에 뭔가 띄었다.
경매 유찰 목록이었는데, 검정색의 책이었다.
얼핏 보면 스킬북 같았지만, 아이템 설명란은 전혀 달랐다.
[# 물품 코드 : DDG 2228003
종류: 책
마나 증폭: ??
내구력: ???
부가 효과: ???
가격: 315,800,000원
물품 등급: ???]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살 가치는 있어 보이는데…… 잠깐만, 표지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이 누구인가, 약속의 3년 차를 이겨 내고 족보도 없이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해 실력으로만 대리로 승진한 실력파 프로그래머였다.
컴퓨터에 있는 전문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돌렸다.
사진을 복사해 프로그램에 넣고, 화질 개선 작업을 하고 확대를 했다.
화소가 깨지지 않게 말이다.
‘어?’
책을 확대해 보자 무슨 이상하게 생긴 문자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헌터 경매소 홈페이지의 물품 설명을 보았다.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힌 책. 안의 내용조차 전혀 알 수가 없는 수수께끼의 책.]
‘아니야, 이건 뜻을 알 수 없는 글자가 아니야…….'
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 글자는……!’
두 눈에 똑똑히 새겨진 표지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죽음의 서』
정말 지겹도록 보고 또 보는 문자로 말이다.
바로 그가 프로그래밍 작업하면서 보는 특수 문자였다.
‘이거야, 이거!!’
가격도 저렴했다.
몇 번이고 유찰되어 팔리지 않아, 창고에 처박혀 있는 책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포탈 안에서 발견된 물품이다 보니, 기본적인 가치는 인정되어 3억 1천만 원이란 가격표가 붙었다.
‘혹시 모르니까, 예약은 안 하고 바로 가서 사야지.’
지금 그는 누구보다 유명한 헌터였다.
괜히 물건을 탐내는 티를 냈다간, 그가 얻기도 전에 가로챌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다.
‘날 영입하기 위해서 1,000억을 넘게 배팅하던 녀석들이야. 3억쯤이야 껌이겠지.’
뭔가 좀 자뻑 같은 생각이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요한은 곧바로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 그러고 보니 일단 이사부터 해야겠는데.’
그가 사는 아파트는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30년이 넘은 아파트다 보니 상당히 낡았다.
거기에다가 재개발 예정지로 선정되면서 많은 집이 이사를 나가고 비어 있었다.
경비원도 대폭 감축되면서 관리도 허술해졌다.
빈집이 많고 관리가 허술해지면 반드시 날파리가 꼬였다.
“킥킥.”
“하하!”
역시 놀이터 한구석에서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 8명이 침을 찍찍 뱉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 유나를 둘 수는 없지.’
혹시라도 자신이 없을 때, 저런 불량배에 엮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야 내가 돈이 없어서 그랬다곤 하지만, 이젠 다르지.’
그는 헌터가 되었고 많이 쓰긴 했지만, 100억의 계약금까지 챙겼다.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겠어.’
제임스에 말해 놓으면 될 일이었다.
그는 주차장에 있는 차로 향했다.
“어머, 요한아.”
“아, 아줌마. 오랜만이에요.”
“호호, 그래.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저야, 뭐. 늘 똑같죠.”
요한에게 말을 거는 여인은 이 근처 성일 부동산의 사장으로 그의 전 친구인 성일의 어머니였다.
정확히는 그의 어머니와 성일 부동산 사장이 친구 사이였고, 그 인연으로 요한과 성일이 친했었다.
“호호, 그 소식 들었단다. 저번 달에 치른 전국 모의고사에서 유나가 또 전국 1등 했다면서.”
“아, 네. 운이 좋았죠.”
“호호, 운은 무슨. 전국 모의고사에서 두 번 연속으로 1등 하는 게 무슨 운이니. 실력이지. 그래서, 유나는 한국 대학교에 입학할 생각이니?"
“글쎄요. 그건 유나의 뜻에 따라 다르겠죠.”
요한이 생각하는 건 유나의 행복이지, 보통의 부모님처럼 특정 직업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없어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헌터가 되기 전엔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지길 원했다.
하지만 그가 헌터가 되면서 돈이 부족하면 그가 동생을 챙기면 될 일.
이젠 그녀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하길 바랐다.
“그런데, 여전히 성일이랑은 연락 안 하고 지내니?”
“아, 네.”
“그만 화해해라. 너희들 꽤 친했잖아.”
“아, 네.”
어디까지나 과거형일 뿐, 성일이 유나에게 껄떡된 그 순간, 둘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전 바빠서 이만.”
대충 목을 끄떡여 인사를 한 요한은 자신의 차로 향했다.
뭐라고 뒤에서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경매소에 도착한 요한은 일단 어플로 물건을 확인하는 척을 했다.
‘오자마자 곧바로 향한다는 건 좀 이상한 행동이니까.’
정확히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꼴이었다.
휙휙-.
대충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면서 오늘 출품되는 물건을 확인해 보았다.
‘응, 이건 뭐지?’
그냥 시간 보내는 용으로 하던 중이었는데, 물품 하나가 눈에 확 띄었다.
오늘 출품되는 물품은 아니었다.
[물품 코드 : SSS 819038
종류: 가면
마나 증폭: 21.099
내구력: 13.668
부가 효과: 존재감 감소(3.69), 어둠 감화(8.17), 소환물 강화(2.0), 필드 장악력(2.16), 공격 무력화(5.197).
가격: 3,800~4,200억 원.
물품 등급: ★★★☆]
‘와, 무슨 가격이. 미친!!’
뿔 달린 해골 가면이었다.
경매 시작은 다음 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
그야말로 미친 스펙이었다.
다른 효과도 좋았지만, 특히 소환물 강화 2.0은 정말 소환 계열 헌터에 있어선 축복과도 같은 효과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경쟁이 적지만.’
소환 계열 헌터는 숫자는 그리 적지 않았지만, 상위 헌터는 매우 적었다.
무려 평균가 4,000억 원의 값어치를 감당할 수 있는 헌터는 더더욱.
하지만 문제는 요한도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란 점이었다.
‘시간이 더 있으면 모를까, 당장 다음 주인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거기에다가 경쟁이 적다고 해도 상위 소환 계열 헌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스펙 때문에 얻으려는 헌터도 있을 수 있었다.
유찰되기엔 아까운 아이템이었으니까.
‘끄응, 어떻게 하지…….'
샤르릉-.
여전히 흑암 여제인 하늘은 웃으며 주변을 빙그르르 돌았다.
둘의 약속으로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대화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일단, 그 『죽음의 서』 부터 사자.’
요한은 안내데스크로 곧바로 향했다.
“뭘 도와 드릴까요?”
“이거 좀 사려고 하는데요.”
요한은 기록에 남는 어플 예약 대신에 어플 화면을 보여 주었다.
“아, 이거. 벌써 11년째 안 팔리던 물품인데. 이제 팔리겠네요.”
“11년째요?”
“네, 모르셨어요. 여기 적혀 있잖아요.”
“아……."
그제야 설명 란에 적혀 있는 등록 날짜가 보였다.
무려 11년 전이라니…….
‘심하긴 하네.’
어쨌든 요한은 아주 간단하게 『죽음의 서』 를 살 수가 있었다.
‘너무 쉽잖아. 괜히 졸았네.’
아주 오래된 양장본 같은 퀴퀴하고 묵직한 책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어보였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아예 쓸모없는 책은 아닐 거야.
『죽음의 서』 라니, 제목만 봐도 어마어마하잖아.’
당연한 말이지만, 아직 아이템의 세부적인 내용은 각성몽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원리는 당연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다만, 마나로 이루어진 아이템은 각성몽에서도 확인하거나 사용이 가능할 뿐이었다.
원하던 아이템도 손에 넣었겠다, 이제는 더 원하는 아이템을 손에 넣을 생각을 해야 할 차례였다.
‘역시 그 방법밖엔 없으려나?’
짧은 시간에 목돈을 마련할 방법은 정말 딱 하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연락을 돌리는 수 밖에.’
그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요한 헌터님.]
제임스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는 달리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8장. 살벌한 입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