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대신 조건이 있어.]
딱 3분 정도 고민하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뭔데?”
[꼬맹이라고 부르지 마.]
“……알았어.”
[그럼, 콜!]
‘난 또 무슨 대단한 조건이 있는 줄 알았네. 괜히 긴장했어. 어째 손해 본 느낌이야.’
어쨌든 별 어려움 없이 밴시와 계약을 할 수가 있었다.
“아 참, 안내인 씨.”
[네, 플레이어.]
“이거 영혼 계약. 어떻게 쓰는 거야?”
[계약하고 싶은 영혼을 빤히.......]
“아, 비슷하구나. 땡큐.”
중간에 말을 끊어 버린 요한.
뭔가 이를 가는 것 같은 안내인이었지만, 딱히 티가 나지는 않았다.
안내인의 지시(?)대로 소녀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의 위로 아이콘 같은 게 하나 떠올랐다.
[어, 어. 우와!! 신기해!]
그러자, 마나가 요한과 소녀를 동시에 휘감았다.
그리고 끝이었다.
[잉, 이게 끝이야?]
“흠,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이제 너는 나와 계약한 영혼 밴시야.”
[꺄아, 그러면 이제 너랑 바깥에 나갈 수 있는 거야?]
“뭐, 그러면 지금까지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 거야?”
[응, 무슨 이유에선지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막혀서 나아갈 수 없더라고.]
“흠……."
‘이거, 내가 실수한 거 아닌지 몰라.’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3대 황제가 힘을 합쳐서 봉인시켰던 영혼인 흑암 여제를 직접 봉인 해제 시킨 것이니 말이다.
‘뭐, 어때. 수백 년 전 일이고 지금은 기억도 못 하니까. 거기에다가 그 사건 북한이 흑암 여제의 하나뿐인 여동생을 인질로 삼아서 금지된 약물 실험 자행하다가 여동생을 실수로 죽이는 바람에 빡쳐서 그런 거 아니야. 지금은 북한도 없는데, 설마 또 타락하겠어. 그리고 지금은 겨우 밴시일 뿐인데.’
물론 헌터 출신에 황제라 불릴 만큼 강력한 영혼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요한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모든 게 결정될 터였다.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얼떨결에 역사책에나 등장하는 흑암 여제의 영혼과 계약까지 맺었다.
***
다음 날 요한은 당당하게 헌터 등록소로 향했다.
지난번에 구매한 J 자동차를 타고 멋지게 운전하면서 말이다.
[우리 어디 가?]
“헌터 등록소.”
[아하, 아 참. 음…….]
“뭔데?”
뭔가 뜸 들이는 모양새라 강하게 물어보았다.
[우리 호칭 정하자.]
“호칭, 꼬맹이로 하면……."
찌릿-!
소녀가 요한을 죽일 듯이 째려보았다.
“아하하, 그, 그래. 어디 보자…… 밴시라 부르는 게 가장 편하긴 할 테지만. 밴시가 너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때면 보통 생전의 이름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정해 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늘.”
[응?]
“지금부터 하늘이라고 부를 게. 너는 나를 요한이라고 불러.”
생전의 이름을 붙여 주면서 기억을 찾는지, 안 찾는지 말이다.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응, 요한!]
호칭을 깔끔한 정리하고 등록소로 들어갔다.
지잉-!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안내데스크엔 저번과 다른 여성 직원이 앉아 있었다.
“등급 재측정 좀 하려고요.”
“재……측정이요?”
“네, 재측정이요.”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하아, 또 이런 헌터 왔네.'
사실 헌터 등급이란 게 고무줄처럼 쉽게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등급이 낮은 헌터가 하루에도 수십 명씩 재측정하겠다고 찾아왔다.
이게 아무래도 무료다 보니, 일단 지르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불만이 상당했다.
하지만 돈이 썩어 넘치는 협회에선 그냥 무료로 할 수 있게 해 줘서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직원은 요한이 그런 수많은 헌터 중의 1명이라고 생각했다.
툭-.
“여기 서류 좀 작성해 주세요.”
"......."
서류를 챙긴 요한은 대충 휘갈겨서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익숙한 장소로 향했다.
등급 측정 기계로 들어가 다시 특정을 시작했다.
위이이잉-!
“움직이지 마세요.”
‘하아, 어차피 D등급 나오겠지.’
헌터 자격증을 확인했을 때 D등급임을 보았다.
보통 헌터처럼 등급 변화가 있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운이 정말 좋으면 C등급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가 근무하는 지난 5년 간 등급 재측정으로 등급이 조정되는 헌터는 단 1명도 보지 못했다.
띵-!
“자, 다 됐습니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
헌터가 된 이후로 상당히 시크해진 요한은 대답도 없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헤헤, 요한. 어때, 무슨 등급이 나올 것 같아?]
“S.”
[오오, 자신만만한데. 이유가 있는 거야?]
“내가 그렇게 설정 값을 잡았으니까.”
정확히는 잡으려고 노력했고 그 과실을 따게 된 것이었다.
그때 측정 기록을 담당하는 직원은 결과표가 뜬 것을 보곤 기겁했다.
“이, 이게 뭐야!!”
“뭔데, 무슨 일이야?”
동료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우르르 몰려왔다.
“에, 에, 에, 에……."
“에?”
“뭐길래 도대체.”
그들은 동료가 가리키는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다른 자잘한 수치와 설명은 넘어가고 결과만 확인했다.
[측정 결과 : S]
"......?"
“이거 김요한 헌터 재측정 기록지 맞지?”
“마, 맞아.”
“……미친!!”
“으아악! 어, 어떻게…… D, D, D등급 헌터가 재측정 한 번 만에 S, S, S등급이 되는 거야?!”
“측정기 고장난 거 아니야?”
“그럴 리가. 바로 어제 점검했잖아. 문제없었다고!!”
“그럼, 이, 이게 정말 진짜로 발생한 일이란 말이야?!”
측정실은 당연히 완전히 뒤집혔다.
“뭔데, 무슨 일이야?”
소란을 느낀 부서장까지 사무실에서 나와 이 사실을 확인했다.
“헉!! 지, 지금 당장 협회 보, 본부에 보고하도록. 당장!!”
“어, 어떻게……."
순수 S등급도 아니라, D등급에서 한 번에 S등급으로 오른 헌터의 등장이었다.
보통 S등급 헌터보다 훨씬 더 반향이 클 게 분명했다.
협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건이었다.
[안쪽이 소란스럽네.]
“S등급 확인했겠지. 난리가 나는 게 당연해.”
[헤헤.]
헌터 협회 내부엔 각 길드의 끄나풀도 상당히 많았다.
S등급의 출현 소식은 빠르게 밖으로 퍼져 나갔다.
“뭐야, 그게 사실이야?!”
“네, 스카우팅을 포기했던 그 김요한이란 놈이 D등급에서 재측정 결과 한 번에 S등급을 받았답니다.”
“미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거짓말 아니야?!”
“저희 길드 측의 측정소 직원에게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기계는 어제 점검한 거라 틀림이 없답니다.”
“짐 싸.”
"예?"
“당장 짐 싸서 김요한인가 뭔가 하는 헌터를 반드시 우리 길드로 영입하란 말이야!!”
“아, 예!!”
“소환 계열 헌터야, 그것도 가장 키우기 까다로운 네크로맨서……. 반드시 우리 길드로 영입해야 해.”
이런 식으로 전국 모든 길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국가의 전략적 무기라 불리는 S등급의 헌터.
거기에다가 가장 등급을 받는 게 까다로운 소환 계열 각성자.
소환 계열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네크로맨서가 S등급을 받았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 중의 상등신이었다.
이번엔 1~5위 길드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익-!
측정소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길드뿐만이 아니라, 기자와 협회 직원, 정부 측 고위 공무원까지.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하는 인물이 거의 다 몰려들었다.
“저…… 김요한 헌터님?”
“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그런데. 자리를 옮길 수 있을까요?”
“더 넓은 곳으로 말이죠?”
“네, 거기에다가 헌터님과 인터뷰를 원하는 기자들도 모였습니다. 일단 기자 회견부터 하시고 관계자를 만나시는 게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후우, 살았다.’
직원은 속으로 정말 많은 걱정을 했다.
‘까칠한 헌터였으면 다 때려치우고 그냥 갔을 테니까.’
다행히 김요한 헌터는 순순히 준비된 자리에 나와 주기로 한 것이다.
‘만약에 그냥 갔으면 나만 개욕 먹었을 거야.’
평소에 그랬으니 틀림없었다.
“가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말에 벌떡 일어난 요한은 기자 회견장으로 향했다.
차차차차차차착-!!
기자 회견장에 요한이 모습을 드러내자 카메라 셔터가 미친 듯이 울렸다.
“지금부터 김요한 헌터의 기자 회견을 시행하겠습니다.”
척-!
“네, 기자분.”
“안녕하십니까. 빠른 뉴스의 최필기 기자입니다. 듣기론 D등급에서 곧바로 S등급으로 재측정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오오오-!!”
웅성웅성-.
혹시라도 착오가 있었다고 할까봐 걱정했던 기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아직 헌터 분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요한이라고 합니다. 클래스는 네크로맨서고 처음 D등급에서 재측정 결과 S등급을 받았습니다. 이상입니다.”
“혹시, 특별한 비법 같은 게 있으십니까. 수많은 헌터들이 지금껏 등급 상승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기껏해야 1단계 상승이 유일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요한 헌터께선 던전용 등급의 최하위인 D등급에서으로 직행하셨습니다.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이번 기자 회견의 하이라이트였다.
“예, 있습니다.”
“오오-!!”
“말씀해 주십시오!”
“인류의 희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높은 등급의 헌터가 다수 등장하면 몬스터 사냥이 더 쉬워진다.
그러면 포탈 통제가 더 쉬워지고 인류는 구원받을 수가 있으리라.
특히 최근 이상 현상이 다수 발생해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더더욱.
“비법은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제 특성 때문입니다. 노력이나 연습으로 된 건 아닙니다.”
“아아……."
“그럴 수가……."
기자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쉽게 이해했다.
“하긴, 노력이나 연습으로 가능하면 지금껏 등급을 올린 헌터가 이렇게 안 나올 리가 없지.”
“그러니까……."
“혹시 그러면, 그 특성을 알려 주실 순 있으십니까?”
“제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비밀입니다.”
“아, 예.”
어차피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건 아니었다.
그 후 자잘하게 인터뷰가 오갔지만,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자, 기자 회견은 여기까지입니다.”
“아아, 조금만 더!!”
“죄송합니다만. 이후 일정이 많은 관계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요한 헌터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지금부턴 길드 관계자인가요?”
“아, 네. 길드 관계자와 협회, 정부 측 관계자 모두 동시에 만나시면 됩니다.”
“그건 편하군요.”
“흠흠.”
요한은 측정소에 별도로 마련된 회의실로 향했다.
보통 측정소 소장과 간부들이 사용하는 넓은 공간이었다.
그곳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관계자들로 가득했다.
의자가 부족해 몇 명은 아예 서 있기도 했다.
"큼큼."
“흠흠.”
늘 갑이었던 본인들이 기다렸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마른기침으로 표현했다.
정작 요한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