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보통의 남자와 비슷하게 차를 참 좋아하는 그였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자동차를 구매하는 데 성공했지만, 당장 몰 수는 없었다.
“2주 후에 등록해 주신 주소지로 차량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살짝 아쉬웠지만, 즐거운 기다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미루고 미루던 자동차까지 구매하는 데 성공한 요한은 가벼운 마음으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엄청난 행동을 저질렀다.
“택시!”
바로 지나가는 택시를 부르는 행위였다.
‘참, 예전엔 끔찍하게 싫어했던 택시였는데.’
아무리 생활비가 빠듯했던 그였지만, 그렇다고 아예 택시를 못 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급하거나 꼭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급한 게 전혀 없음에도 당당하게 택시를 탄 것이다.
“예, 어디로 모실까요?”
“헌터 경매소로 가 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젊은 택시 기사가 힘차게 대답하고 헌터 경매소로 향했다.
헌터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은 종류별로 다양했다.
그리고 중요 분야별로 건물도 다 떨어져 있었다.
경매소도 그런 개념으로 강남역 근처 황금 상권에 있었다.
“다 왔습니다. 25,000원입니다.”
“네.”
택시비를 내고 요한은 곧바로 헌터 경매소로 향했다.
“헌터 경매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쪽 데스크로 가시면 오늘 시간별로 출품할 물건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헌터용 장비를 얻는 정식 루트는 이곳 경매소 1곳뿐이었다.
듣기론 암시장이 있긴 하지만, 그곳엔 어떤 물건이 나올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암시장은 주로 블랙 헌터나 떳떳하지 못한 일반인이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곳엔 정가란 개념이 없기에 모르고 가면 호구 잡히기 딱 좋았다.
‘그런 점에서 경매가 낫지.’
물론 경매도 경쟁이 붙으면 비싸게 구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협회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슥슥-.
터치스크린을 만지며 오늘 출품될 물건을 확인해 보았다.
카테고리별로 잘 분류해 두었기에 요한은 곧바로 스태프를 검색해 보았다.
[물품 코드 : SF88684
종류: 스태프
마나 증폭: 6.018
내구력: 2.961
부가 효과: 시야 확대(1.16)
적정 가격: 38억~42억
물품 등급: ★★☆]
이렇게 적정 가격을 기록해 두면서 과잉 경쟁을 막았다.
하지만, 가끔 길드끼리 경쟁이 붙으면 과잉 출혈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윽…… 역시 헌터 장비는 정말 미쳤어.’
헌터 장비는 흔히 별로 등급이 매겨진다.
당연히 별 5개가 만점이며 점수로 따지면 10점이었다.
요한이 확인한 별 2.5개짜리는 딱 5점, 절반 수준의 등급을 가진 장비였다.
그런데도 적정 경매가가 38~42 억 정도였다.
이러니 정식 헌터가 되어도 높은 등급을 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급 헌터라면 각성할 때 각성몽에서 받은 첫 장비를 평생 사용하는 헌터도 있었다.
첫 각성 때 받은 장비는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파괴되지 않는 특성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서 새로운 장비를 구매한 상급 헌터라도 비상용으로 그 장비를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음, 그래도 사야겠지?’
요한이 보고 있는 상품이 그나마 지금 출품되는 장비 중에서 가장 쓸 만한 스태프였다.
‘내구력이 조금 별로지만, 어차피 내가 직접 휘두를 일은 없으니까.’
언데드를 지휘해야 하는 그로선 시야 확대 효과도 마음에 들었다.
‘그럼, 경매 신청.’
툭-.
[경매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경매는 당연히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음, 경매 시작까지 10분 정도 남았네.’
여느 헌터 기관이 그렇듯이 근처에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경매소는 다른 기관보다도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라 특히 잘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겨우 10분 가지고 뭘 한다고. 그냥 뉴스나 보면서 기다리자.’
최근 헌터 뉴스는 정말 시끄러웠다.
요한이 처음 겪었던 필드 포탈의 보스 몬스터 이후로 전부는 아니었지만, 조금씩 보스 몬스터가 출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상남도 창원 C필드에서 보스 몬스터 출현, 사망 2명, 부자 10명. 시 헌터계 비상]
[전라남도 순천 S필드 필드에서 보스 몬스터 출현. 사망 3명, 부상 8명]
‘흠, 이걸로 꼭 나 때문에 발생하는 건 아니란 건 알겠는데. 묘하단 말이야…….'
필드 포탈의 보스 몬스터라니, 대혼란의 시기에도 없던 일이었다.
이게 또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 헌터 세계는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일본 오사카 중심에서 포탈 2개 발생. 300명 사망, 10만 명 긴급 대피]
[프랑스 리옹에서 포탈 1개 발생. 210명 사망, 5만 명 긴급 대피]
‘와, 진짜 뭔 일 터지는 거 아니야?’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재앙이었다.
아직까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몬스터는 인류의 숙적.
대혼란의 시기가 끝났다고 해서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요한은 자신과 싸웠던 블랙 헌터가 생각했다.
‘쯧, 몬스터를 상대로 전 인류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같은 헌터 뒤통수나 치고 다니고 말이야.’
물론 요한도 같은 헌터 목숨보다 유나의 안전이 더 중요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헌터 뒤통수나 치는 비열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게 최신 뉴스를 보며, 블랙 헌터 욕을 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띵-!
[신청하신 경매가 시작됩니다.]
‘오케이, 꼭 얻고 만다.’
경매 시작가는 30억에 1천만 원 단위로 올리는 형태였다.
‘일단 기다려 보자. 어차피 40억 까지는 그냥 올라가겠지.’
굳이 손가락에 힘 빼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그의 예상대로 40억까지는 빨리빨리 올라갔다.
40억부터 조금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시간대는 경쟁이 덜해.’
물론 정말 좋은 물건은 황금 시간대에 출품된다.
이런 시간대엔 물건 수준이 낮지만, 경쟁이 덜해서 가격대가 착했다.
‘와, 근데 모든 헌터 장비는 경매로 판매가 되니까. 제작 헌터는 정말 돈 많이 벌겠네. 부럽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부러웠다.
결국, 요한은 스태프를 41억 2천 만원에 낙찰받는 데 성공했다.
“흐흐……."
그의 입에서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장비를 바꿨단 말이지.’
각성몽에서 처음 지급 받는 장비는 파괴되지 않는 [불괴(不壞)] 특성이 있었지만, 성능은 그리 좋지 못했다.
부과 효과도 없었고.
정말 그냥 평범한 장비였다.
하지만 제작 헌터가 만든 헌터 장비는 내구력이 있어서 일정 수치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파괴된다.
수리하는 데도 비용이 꽤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 돈은 투자할 만큼 성능이 뛰어났다.
‘자, 그러면 쇼핑도 대충 끝났겠다. 사냥이나 해 볼까?’
벌써 점심시간이라 시간적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장비도 얻었겠다, 몸이 근질근질하니 당장 사냥을 해 보고 싶었다.
띠리리리-!
‘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라면 받지 않았겠지만, 헌터가 되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중이라 당당하게 받았다.
“여보세요.”
[아, 혹시 김요한 헌터님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아,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러셀 매니지먼트에서 김요한 헌터님을 담당하게 된 제임스입니다.]
‘음, 남자네.’
딱히 연애 생각이 없는 요한이었지만, 왠지 매니저가 남자라고 하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요한의 생각이 어떻든 제임스의 말은 계속되었다.
[막 배치돼서 인사드릴 겸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첫 일을 드릴 수 있겠네요.”
[아, 예. 시켜만 주십시오.]
“오후에 필드 사냥을 좀 뛰려고 하는데요. 괜찮은 사냥터 좀 잡아 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20분 안에 준비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15분.”
[예?]
“15분 안에 부탁드린다고요.”
분명히 말은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를 끊었다.
‘아, 습관이 나와 버렸다. 처음 연락하는 데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회사 생활할 때, 부하 직원에게 하던 습관이 본능적으로 나와 버렸다.
이렇게 쪼지 않으면 밑에 애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쩝, 첫 매니저인데 좀 잘해 줘야 할 텐데.’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또 일과
관련된 대화를 하다 보면 그의 본래 성격이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군대에서도 친한 후임이라도 공적인 일엔 누구보다 엄한 선임이었으니까.
15분 후, 칼같이 그의 벨 소리가 울렸다.
“네, 매니저님.”
[후우, 안 늦었군요. 잡았습니다.]
“어딘가요?”
[인근 구리시에 솔로 사냥하기 괜찮은 필드가 비어 있었습니다. 관련 정보는 통화가 끝나고 문자로 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하하, 수고는 무슨요.]
그렇게 첫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제임스 덕분에 요한은 굳이 헌터 중개소를 가지 않고도 필드 포탈을 예약할 수가 있었다.
‘와, 이거 진짜 편하네?’
막 시작했을 뿐인데도 계약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셀 가문의 문양을 새긴 세단을 타고 구리시 필드로 향했다.
그 세단에 제임스가 타고 있었는데, 그는 유창한 한국어와 달리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좀 했다는 그가 향하는 구리시 필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요한에게 주었다.
‘굳이 이런 거 필요 없는데…….'
어지간한 필드는 다 꿰고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의 정성이 가록해 고맙다고 하고 보는 척 좀 해 주었다.
구리 필드에 도착한 요한은 제임스가 준비해 둔 것을 챙겨서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지잉-.
‘후우, 매번 겪지만 참 적응 안 돼.’
포탈을 지나갈 때의 이질적인 느낌은 이상했다.
구리 필드는 요한도 잘 알고 있는 필드로 굉장히 특이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생성된 필드 주제에 일본 사무라이 갑옷을 입고 있는 일본 요괴가 등장했다.
이런 몬스터의 등장에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한때 큰 논란이 됐었다.
일부 일본 우익들은 한국 정부가 이 구리 필드를 일본에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어려울 때는 뭉치는 한국인 정서대로 한국인은 똘똘 뭉쳤고 정부도 훌륭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세웠다.
또 한국이 개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회 의사당 한가운데 필드가 생성되면서 한창 본회의 중인 국회 의원이 결석한 2명을 제외하고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
대통령을 중심으로 혼란을 이겨 내고 국회의원을 다시 뽑을 때 정말 좋은 사람들로 뽑았다.
그런 새로운 정부와 국회는 일본이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이제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을 뛰어넘은 헌터 강국이었다.
“캬칵!”
사무라이 요괴들이 요한을 보며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었다.
‘좋아, 제대로 한번 놀아 보자.’
구궁-!
요한을 주변으로 8마리의 스켈레톤이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