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너희들은 좀 맞자?”
“예?”
요한이 스켈레톤에 눈짓하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퍽퍽-!
“끄아아악!!”
“윽! 윽! 옥!”
“어억!”
장작 1시간 동안 이루어진 무차별적인 구타.
“어어어….”
“우웩!”
스켈레톤의 무자비한 주먹에 완전히 떡이 되어버린 양아치 3명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1명은 완전히 뻗어버려 기절했고, 1명은 마치 좀비처럼 눈이 뒤집힌 채 신음만 내었다.
마지막 1명은 이미 비어버린 위에 뭘 더 쏟아낼 게 있는지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딱딱.
사람 3명을 떡실신 시켜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스켈레톤은 다음 명령만을 충실하게 기다렸다.
‘내가 이래서 네크로맨서가 좋아.’
헌터 덕후다 보니 다른 소환 계열 클래스에 대한 지식도 많았다.
‘일반적인 소환 계열 헌터인 테이머나 정령사 또는 환수 조련사 같은 경우엔 소환물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했어. 소환물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제대로 된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그건 요한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하는 스켈레톤이 더 좋았다.
‘네크로맨서가 된 게 어찌 보면 다행인 거겠지.’
물론 D급인 게 아쉽긴 했지만.
덥썩.
“우웁!”
요한은 그나마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남자의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어때, 조금 정신이 들어?”
“죄, 죄, 죄송 하, 합니다. 사, 살려 주세요.”
아무리 헌터라도 일반인을 죽이는 건 중범죄였다.
하지만 정신이 날아갈 정도로 두들겨 맞고 스켈레톤이라는 언데드에 죽음의 공포를 느낀 남자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흠, 나는 너희들이 이곳에서 나갔으면 좋겠는데?”
“나, 나가겠스비다. 나가게 해, 해 주십시오.”
“콜, 좋아. 이틀 뒤에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예, 예…!”
툭툭.
가볍게 뺨을 2대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켈레톤은 마지막까지 남자를 노려보다가 땅으로 꺼지듯이 사라졌다.
"으으으으."
남자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으으으."
우드득-!
사람 3명을 끔찍한 공포에 밀어 넣었음에도 요한의 표정엔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다.
오히려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동안 놈들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얼마인데!!’
어떨 때는 다 죽이고 차라리 감옥에 갈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정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었다.
‘헌터가 되길 정말 잘했어!’
겨우 층간 소음 때문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층간 소음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인지.
삐삐삐-!
“응?”
띠릭-!
그때 도어락이 열리며 유나가 돌아왔다.
“어, 오빠 집에 있었네. 요즘 진짜 퇴근 빠르구나?”
회사원이었음에도 평소엔 자율학습을 하는 자신과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던 오빠였기에 유나는 꽤 놀랐다.
승진했다고, 좋은 부서로 이동했다곤 하지만 그녀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100%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칼퇴를 하는 모습을 보니 살짝 믿음이 갔다.
“말했잖아, 이 오빠가 능력을 인정받아서 승진해서 편한 부서로 이동했다니까?”
“뭐, 축하해.”
“축하가 늦어!”
“히히.”
“그런데, 너는 지금 자율학습하고 있을 때잖아?”
“아, 교재를 두고 온 게 있어서 가지고 오려고 잠시 외출했어.”
“그래?”
“그~래.”
힐끔.
요한이 창밖을 보니 해가 져서 꽤 어두웠다.
“기분이다. 학교 갈 때는 내가 데려다줄게.”
“엥, 왜?”
딱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학교는 가까웠고 요즘엔 어딜 가나 가로등이 환했으니까.
“오랜만에 동생이란 산책 좀 하려고 그런다 왜!?”
“올, 오빠.”
툭툭.
유나는 40대 아재 같은 눈빛을 보내며 요한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그만해라.”
“킥킥, 알았어. 그런데 오빠.”
“응?”
유나는 잊은 교재를 챙기며 자연스레 요한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빠는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또 그 얘기냐, 지겹지도 않아?”
“에이, 남 연애하는 것만큼 재밌는 게 어딨다고. 해봐, 해봐. H 그룹이면 엘리트 여자들 많잖아. 오빠 정도면 부족한 스펙에도 괜찮은 여자 좀 만날 수 있을 텐데?”
요한은 연애 얘기만 나오면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끄러워 공부나 열심히 해. 너 얼마 전에 친 모의고사에 성적 1점 떨어졌더라?”
“에엑, 그건 난이도 차이 때문이지. 그리고 겨우 1점 가지고 전교 1등한테 시비 거는 거야!?”
“열심히 하란 말이잖아. 열심히.”
“네이, 네이.”
***
요한은 다음 날, 평소처럼 유나의 등교를 돕고 나서 곧바로 자동차 판매장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H 자동차 목동 지부입니다!”
과거 마석 이전 시대엔 대한민국은 H 자동차가 독보적 1위 기업이었다.
지금은 경쟁 업체인 K 자동차와 S 자동차와 점유율을 비슷하게 나눠 먹은 상태였다.
하필이면 H 자동차가 K, S 자동차보다 앞서서 전기차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차세대 자동차는 역시 전기차였기 때문이다.
K 자동차와 S 자동차는 미적지근한 상태였고.
하지만 재수가 없게도 그런 투자 발표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탈이 발생하는 대혼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혼란의 시기가 끝나고 마석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다.
전기차 대신에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H 자동차는 과잉 투자가 무위로 돌아가자 휘청거렸고, 그 틈을 타서 K와 S 자동차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뛰어난 마석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오랜 업계 1위답게 H 자동차도 자금난을 이겨 내고 지금 K와 S 자동차와 비등비등하게 유지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 대한민국의 70%가 H 자동차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요한이 H 자동차를 선택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의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H 자동차를 무척이나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 외엔 딱히 이유가 없었다.
“흠흠, 손님. 혹시 찾는 차가 있으십니까?”
우렁차게 요한을 맞이한 것과 달리 영업 사원은 요한의 복장을 보곤 아주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 오늘 왜 이러냐.’
그는 요한의 복장을 보곤 차를 사러 온 게 아니라, 구경하러 온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자동차 영업 사원들의 태도는 뉴스에서도 몇 번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회가 시끌시끌했지만, 딱히 변한 건 없었다.
“P등급 차량을 좀 보고 싶은데요."
“아, 음. 그게 손님, P등급보다는 N등급 차가 어떠십니까. 사실 P등급은 가격만 비싸지 가성비는 N등급이 최곱니다.”
"......."
요한은 영업 사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미쳤네.’
처음엔 영업 사원을 신경 쓰지 않아서 눈빛의 변화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N등급을 소개하려고 하자, 눈치를 챌 수가 있었다.
‘나 무시하는 거 맞지?’
그도 알고 있는 사회적 문제였다.
자동차 영업 사원이 가난해 보이는 손님을 차별하는 행위 말이다.
‘내가 그렇게 허름하게 입고 있나?’
그가 헌터로 각성하기 전엔 가난한 편이긴 했지만, 딱히 빈민은 아니었다.
‘구제를 입고 다녀서 그런가?’
어찌 됐든 손님에 대한 차별은 잘못된 행동이었고 특히 요한은 헌터였다.
헌터는 자동으로 VIP등급으로 대우받을 수가 있었다.
‘외모로 판단하는 것도 기분 나쁘고 말이야.’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사러 온 요한의 기분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지만.’
척-.
요한은 헌터 등록증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곳 책임자를 좀 불러 주실까요?”
“......!!”
영업 사원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내, 내가 지, 지금 무슨 짓을?!!’
일반인 VIP에게 소홀하게 대하는 것도 큰 잘못이었다.
그런데 헌터 VIP에게 실례되는 짓을 했다?
당장 해고되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 그……."
영업 사원은 뭐라고 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멀찍이 떨어져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매니저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허, 헌터 부, 분이셨군요. 죄, 죄 송합니다. 저는 이곳 목동점을 책임지고 있는 이수한 매니저라고 합니다.”
키가 작고 소갈머리가 없는 전형적인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애써 웃으며 요한을 맞이해 주었다.
‘이런, 젠장!’
최근 이런저런 경쟁자들의 다수 출현으로 모든 업체는 사력을 다해 헌터 고객을 유치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헌터 고객의 씀씀이는 매우 큰 편인 데다가 차를 모으는 취미를 가진 이들도 꽤 됐기 때문이다.
“흠, 사실 전 H 자동차를 사려고 왔는데 실망입니다, 매니저님.”
“예, 예?”
“이 영업 사원께서 저를 제대로 무시하더군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매니저는 애써 모른 척해 보았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전 분명히 P등급의 차를 소개 부탁드렸는데, N등급의 차를 소개 시켜 준다고 하더군요. 이건 아무리 봐도 노골적인 무시 아닙니까?”
P등급 차는 말 그대로 프리미엄 할때 그 P, N등급 차는 노멀 등급의 차였다.
N등급은 그야말로 가격이 저렴한 차종이었다.
사회 초년생이나 자동차 비용이 부담되는 계층 사람들이 주로 구매했다.
헌터에게 N등급 차를 소개해 준다는 건 엄청난 무례였다.
아무리 몰랐다고 하지만, 제대로 확인도 안 해 보고 손님을 대접한 영업 사원의 무능과 방만이었다.
“이번 문제는 협회를 통해서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로 H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을 예정이고요.”
“죄, 죄송합니다. 허, 헌터 분이신 줄 꿈에도 모르고!!”
털썩-.
영업 사원은 무릎을 꿇었다.
요한의 입에서 협회라는 말이 나오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는 일개 말단 영업 사원일 뿐이었다.
이대로 일이 커지면 100% 이 바닥에서 퇴출이었다.
어떤 회사도 헌터와 맺힌 게 있는 사람을 쓸 리가 없을 테니까.
“하하, 아니에요. 뭐, 별로 신경 안 쓰거든요. 딱히 용서할 일도 아닌데요.”
“그, 그럼?!”
“뭐, 그렇다고 제 생각이 바뀌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요.”
“제, 제발!!”
“그냥, 다음부터는 남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하네요. 그럼, 이만. 수고하세요.”
요한은 매니저와 영업 사원을 한 차례 노려보곤 그대로 매장을 나왔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하지만, H 자동차를 제가 탈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요한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을 본의 아니게 지우게 되었다.
요한이 향한 곳은 J 자동차 판매장이었다.
‘음, 이렇게 또 영국으로 엮이는 건가?’
딱히 선호해서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걷던 도중에 가장 먼저 보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딸랑-.
'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시대 유물인 종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여기…… 좀 괜찮은데?’
첫인상은 일단 괜찮았다.
다행히 그가 들린 J 자동차 판매장은 서비스가 좋았다.
덕분에 5억짜리 스포츠카와 8천만 원짜리 SUV 구매 계약을 맺었다.
한 번에 2대를 동시에 계약하자 옵션도 서비스로 주었다.
“저희와 계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는 뭘요. 저야, 뭐. 좋은 차를 탈 수 있게 되어 좋을 뿐인데요.”
그렇게 요한은 생애 첫차를 J 자동차로 구매했다.
6장. 새로운 특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