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헌터 덕후인 요한조차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그는 상황이 안 좋을수록 더 냉정해지는 타입이었다.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도망치는 건 무리인 거 같고.......'
저쪽에 있는 E~F급 헌터들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이길 자신도 자신이지만, 만약에 언데드 12기를 던지고 도망치는 데 무시하고 나를 노리면 그대로 끝이지.’
여전히 몸 쓰는 것엔 영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그의 전투 방식 자체가 언데드를 지휘하는 것이니 말이다.
꼬물꼬물-.
거대한 낙지는 명확하게 요한을 향해서 적대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잠깐만, 설마. 이거 나 때문에 벌어지는 사태는 아니겠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곧 집어 넣었다.
‘설마, 설마 그러겠어.’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보다 눈앞에 보이는 보스 몬스터가 더 중요했다.
‘근데 진짜 보스가 맞는 건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확인할 방법이…… 아, 있네!’
잠시 잊고 있었던 스킬이 떠올랐다.
[마스터 프로그래밍 Lv.1]
# 스킬 설명: 프로그램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특수한 스킬입니다. 프로그램 스킬은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며 레벨이 오를수록 그 능력의 순도도 함께 상승합니다. 이 스킬은 시공간을 초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스킬 현황〉
▶ 분석 프로그램: 타인을 분석 할 수 있는 스킬. 원하는 상대의 레벨과 클래스 능력을 확인할 수가 있으며, 스킬 레벨이 오르면 상대방의 능력을 해킹해서 조작할 수도 있다.
대충 확인만 해 놓고 신경 쓰지 않았던 스킬이었다.
‘이걸 사용하는 방법이 이렇게, 였지…….'
대체로 스킬 사용 방법은 비숫비슷했다.
원하는 상대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아이콘이 뜨면 그것을 눈으로 클릭하는 것.
아니면 스킬을 외치는 것.
‘분석 프로그램’
# 갯벌 낙지킹
▶ 종류: 보스 몬스터
▶ 위험 등급: D
▶ 간단 설명: 갯벌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몬스터
‘에게, 이게 다야?’
상당히 실망스러운 분석 내용이었다.
‘쩝, 어쩔 수 없지. 아예 모르는 것보단 나은 데다가 녀석이 정말 낙지에다가 보스란 건 알았으니까. 근데 위험 등급 D는 무슨 뜻이지?’
촤악-.
요한이 무슨 생각에 빠져 있든 간에 갯벌 낙지는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요한을 향해서 직접 촉수를 뻗었다.
“어이, 저거 막아!”
딱딱- 퍽퍽!
스켈레톤은 방패를 들어 올려서 낙지의 촉수를 막았다.
‘어,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녀석, 크라켄 같네?’
그런 허튼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 야, 저것 봐!!”
갯벌 낙지와 요한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들어갔을 때.
열심히 도망치던 헌터 몇 명이 혹시 쫓아오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전투에 들어간 요한을 볼 수가 있었다.
“뭐야, 싸워?”
“역시, 고등급의 헌터였어. 어, 그러면 오히려 다행이네?”
“그런데 저 거대한 몬스터는 또 뭐야. 처음 본다고!”
“……설마, 보스?”
“에이, 설마…… 여긴 필드 포탈이라고. 던전 포탈에나 나오는 보스가 나올 리가 없잖아.”
“하하, 그, 그런가.”
“그래, 만약에 저게 보스라면 아무리 저 헌터가 실력이 좋아도 1:1은 무리지!”
“그, 그래 무리지.”
이곳에서만 20년째 사냥하고 있는 베테랑 헌터 2명은 그렇게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요한과 갯벌 낙지가 벌이는 전투도 흥미로웠다.
“야야,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갔다. 이제 이건 우리 독점이라고!”
“아하, 그렇구먼.”
그들은 얼른 품에서 캠코더를 꺼냈다.
스마트폰의 동영상 기능도 좋았지만, 역시 영상 녹화는 전용 장비가 더 효과적이었다.
“흐흐흐, 이거 SNS에 올리면 대박이겠지?”
“그럼, 오랜만에 ‘좋아요’ 제대로 한번 받아 보자!”
요즘 SNS를 안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특히 동영상 전문 SNS인 올튜브는 필수 SNS라고 할 정도였다.
특히 헌터가 자신의 전투 영상을 올리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헌터만 사용할 수 있는 올튜브 코너도 있는데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조회 수를 올려서 부수입도 올리고 혹시 모를 길드나 공격대에 실력을 어필하기도 했다.
그런 홍보 덕분에 가끔 묻혀 있던 실력자가 발굴되기도 해 길드나 정규 공격대는 SNS를 전담하는 팀도 있을 정도였다.
촤아악-!
녀석이 갯벌 낙지킹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촉수같이 생긴 다리가 8개는 아니었다.
수십 개의 다리가 거의 동시에 언데드와 요한을 향해 쇄도했다.
“어이, 거기 이쪽으로 와서 날 보호해!”
딱딱- 퍽!
방패가 촉수를 그대로 막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낙지 특유의 빨판이 스켈레톤의 방패를 뺏으려고 했다.
스켈레톤은 뺏기지 않으려고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요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상당히 까다로운 녀석이네. 확실히 견제해야겠어.’
스켈레톤과 좀비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어 저주 스킬과 본 아이덴티티 스킬을 아끼고 있었다.
워낙 마나 소모가 극심한 스킬이다 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써야 할 때였다.
‘약화, 티쓰!’
촤자자작-!
1레벨 상승해 총 9개의 송곳니가 낙지킹의 얼굴을 향했다.
퍼퍼퍽-!
‘응, 안 막아?’
그가 원하는 곳에 정확히 꽂힌 송곳니 9개.
요한은 공격을 막지 않은 낙지킹의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확실히 아팠는지 약 3초 후에 반응이 왔다.
쿵쿵-!
촉수를 이용해 주변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쯧, 방패론 안 되겠네.’
방패를 들고 있으니 스켈레톤의 움직임에 제약이 많았다.
“어이, 너희 둘!”
딱딱-.
요한이 부른 스켈레톤 2기가 정확하게 반응했다.
해골을 두드리며 철저하게 교육한 덕분이었다.
“방패 버리고 벌목도만 들고 이 빌어먹을 낙지의 다리를 끊어 버려. 아예 씹어 먹어 버리게!”
딱딱- 퉁.
방패를 버리고 비교적 짧은 벌목도만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샤샥-!
‘음, 저 움직임은…… 아!!’
그냥 재미로 코딩했던 닌자 애니메이션의 움직임과 흡사했다.
‘이야, 진짜 대단한데. 방패 하나 버렸다고 곧바로 다른 코딩대로 움직이네?’
어디까지나 메인은 로마 군단병의 움직임이었다.
그거 입력하느라고 로마 군사 관련 서적을 정말 살샅이 뒤졌었다.
처음엔 그냥 단순 반복의 지루함을 덜기 위함이었다.
너무 한 가지만 몰두하다 보니 지루해져서 평소에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움직임도 넣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것이 아닌 움직임.
하지만 입력한 상대도 인간이 아니다 보니 그것을 비슷하게나마 구현한 것이다.
촤악-!
“꾸륵꾸륵!”
스켈레톤 2기는 빠르게 움직이며 낙지킹의 다리를 잘라내었다.
물론 낙지킹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촉수를 이용해 어떻게든 스켈레톤들을 잡으려고 했다.
“좀비, 너희들이 도와줘. 촉수를 물고 늘어져!!”
콰직- 콰직-!
“꾸륵꾸륵!”
어려운 지시는 이행할 수가 없지만, 물고 늘어지는 건 좀비가 가장 잘하는 행동이었다.
최대한 촉수를 물어 늘어지면서 스켈레톤들을 향한 공격을 방해했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쾅-!
‘윽!’
그 과정에서 좀비와 스켈레톤이 완전히 으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네크로맨서의 두려운 점이 이제부터라는 것이었다.
‘라이즈 스켈레톤, 라이즈 좀비!’
이곳은 이미 한 차례 몬스터 웨이브가 닥쳤던 곳이다.
‘휘유, 어떻게 보면 몬스터 웨이브가 날 살렸네.’
주변엔 스켈레톤과 좀비를 일으킬 자원이 풍부했다.
네크로맨서에게 있어서 이런 환경은 그야말로 무적으로 가는 치트키였다.
‘아직 마나는 충분해. 티쓰!’
파바박-!
이번에도 정확히 머리를 맞추었다.
그러자 그 구멍에서 먹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예상엔 이 정도면 슬슬 지쳐가는 거겠지?’
꿈틀꿈틀-.
그런데 아직 반전이 남아 있었다.
2기의 스켈레톤이 열심히 자른 촉수 다리가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응, 이런 젠장.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좀비는 녀석을 물어뜯고, 스켈레톤 전부 방패를 버리고 머리를 도륙해!!”
툭툭툭-.
방패를 던진 스켈레톤들은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끝장내 버려!!”
촤아악-!
촉수 몇 개가 스켈레톤 몇 기를 막긴 했다.
하지만 나머지 스켈레톤이 정확히 녀석의 머리에 붙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벌목도를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푹푹푹-.
그러자 그 구멍에서 또 먹물이 쏟아져 나왔다.
요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티쓰!’
촤자작-.
반복해서 티쓰를 사용하며 녀석을 공격했다.
쿵쿵!
낙지킹은 어떻게든 스켈레톤을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티쓰를 사용해 촉수를 방해했다.
녀석의 촉수는 공격을 당하면 잠시 쪼그라드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6기의 스켈레톤 모두가 녀석의 머리에 달라붙어서 도륙했다.
“꾸륵꾸륵!”
더는 싸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낙지킹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쿵-!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후우, 조금 벅차긴 해도 이기긴 이겼네.’
뒤에서 지휘만 하는 요한이야 뭐, 특별히 힘들 건 없었다.
어쨌든 예상 밖의 보스 몬스터 등장에 당황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녀석을 잡을 수가 있었다.
‘아마도 레벨 올랐겠지?’
보스 몬스터는 사냥하기 어렵지만, 보상이 두둑했다.
전투가 끝났음에도 스켈레톤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당장 주인에게 바쳐야 할 마석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빨리 찾아서 바치지 않으면 또 뒤통수를 맞아야 했다.
낙지킹 내부를 이 잡듯이 뒤져서 굵직한 마석 1개를 찾아내었다.
후다닥 달려와 요한에게 바쳤다.
“오, 이게 바로 보스 몬스터의 마석이네?”
알이 정말 컸다.
색깔은 다른 마석과 비슷했지만, 굵기는 주먹만 했다.
‘이번 사냥 진짜 대박이네.’
몬스터 웨이브를 다 쓸어버리고 획득한 마석에 보스까지 잡았으니 이번 사냥 수입은 짭짤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제일 중요한 건 독식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사체를 획득하는 건 포기한 요한이라서 그 이익은 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짐꾼 회사를 고용할 수는 없었다.
‘내 힘은 시체에서 나오는데 언제, 어디서 사용할지도 모르는 시체를 해체할 수는 없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네크로맨서인 그에겐 시체는 그냥 두는 게 이득이었다.
‘자,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아직 계획했던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원했던 수익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았다.
“룰루.”
콧노래를 부르며 출구 쪽으로 향했다.
“와, 방금 전투 다 찍었지. 그리고 봤지?”
“그, 그래. 정말 대박이다.”
요한의 전투 장면을 지켜본 두 헌터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거대한 몬스터를 압도하는 전투는 보통의 헌터가 보여 줄 수 없는 위용이었기 때문이다.
“자, 우리도 빨리 가서 이 영상 편집해서 올리자!”
“그래, 좋아!”
그들은 일행과 멀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