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 아니. 그렇잖아. 갑자기 왜 엘레노아 씨가 나하고 겸상을 하느냐고.’
요한이 그녀와 접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전 테스트를 함께 받은 사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친해질 계기가 있었나?
그건 또 절대 아니었다.
그저 따로 사냥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처음 나눴던 대화 말곤 단 한마디도 없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요한의 잘못이었다.
엘레노아는 말 좀 붙이려고 해 보았지만, 사냥에 미친 그가 대화를 나눌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S급에 명문가의 규수인 그녀가 서민 중의 서민이자 D급의 평범한 각성자에게 친근하게 굴 이유는 없었다.
“밥이나 마저 먹죠.”
“아, 네.”
엘레노아가 그렇게 말한 탓에 일단 먹긴 하지만, 불편해 죽을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주변 눈치도 심상치 않았다.
웅성웅성-.
“뭐지?”
“이거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
“엘레노아 씨처럼 엘리트가 왜 저런 평범한 놈과 엮이는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찌릿찌릿-.
특히 엘레노아와 친분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주변을 맴돌던 부잣집 도련님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이거 설마, 소설이나 만화처럼 시비 걸진 않겠지?’
아무리 그가 특성 덕분에 일반적인 D급 소환 계열 헌터보다 강한 위력을 내더라도 이건 상황이 달랐다.
“저, 저기……."
요한은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엘레노아를 불렀다.
하지만 그보다 엘레노아가 더 빨랐다.
탁-.
그녀는 밥을 먹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요한의 눈을 똑바로 바라 보았다.
당당하고 멋진 눈빛에 평범한 서민인 요한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말을 빙 돌리는 건 제 성격이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아, 네, 네.”
“헌터 시험에 합격해서 헌터 자격증이 나오면 저는 곧바로 러셀 길드를 세울 생각이에요. 그리고 제 첫 영입 대상은 당신이고요.”
“예?”
“제가 당신을 스카웃하는 거라고요.”
무덤덤하면서도 당당한 목소리였다.
당연히 식당 전체로 울려 퍼졌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3배 이상 커졌다.
“지, 지금. 드, 들었어?”
“에, 엘레노아 씨가 저 D급을 스카웃하겠다는 거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 그래. 나, 나도 똑똑히 들었어!!”
“헐, 이거 실화냐?”
단순히 엘레노아가 요한과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이슈였다.
이젠 아예 밥을 함께 먹는 것을 넘어서 곧 만들 길드에 영입이라니?
아는 사람들에겐 다 알려졌지만, 엘레노아가 세울 길드는 영국 러셀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예정이었다.
러셀 가문은 최근 지지부진한 가문의 확장과 성장을 헌터 최강국 중의 하나인 한국에서 타결할 생각이었다.
그 전략의 핵심은 S급으로 각성한 러셀 가문의 금지옥엽 엘레노아가 세울 길드였다.
그녀가 이끌 길드가 성장하여 대한민국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강력한 영향력만 얻는 데 성공한다면 러셀 가문은 몇 단계나 성장할 수가 있을 터였다.
그래서 러셀 가문의 엄청난 지원이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최초 설립 과정에서 영입된 헌터라면 엄청난 대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 지금 절 영입하겠다고요?”
“네, 실전 테스트 때 당신을 지켜봤어요. 제가 설립할 길드에 들어오신다면 당신의 성장은 우리 길드 차원에서 책임지겠어요.”
진지한 그녀의 표정에 차마 거짓말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연달아 요한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뭐가 말이죠?”
“저는 D급의 평범한 헌터일 뿐입니다. S급에, 러셀 가문이란 명문 가에서 세울 길드에 들어갈 깜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어요.”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저는 김요한 씨. 당신의 가능성을 봤어요. 오히려 그런 가능성을 봐 놓고도 영입 제의하지 않는 게 멍청한 거죠."
"......."
요한에게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단호한 눈빛을 보면 진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NO였다.
“거절이시네요.”
거절을 생각지 않았던 엘레노아였다.
속으론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감정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 건 늘 해 오던 일이었다.
“네, 저는 아직 길드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어디에 속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저 혼자면 충분해요. 제안은 정중하게 거절할게요.”
“지금 그 말은 다른 길드에도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건가요?”
“네, 현역 1위 길드라도……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직은 수락하고 싶지 않아요.”
“알겠어요. 그렇다면 일단 저도 보류할게요.”
‘아니, 웬 보류?’
“전 김요한 씨의 미래를 높게 쳐요. D급이지만, 보통의 D급 헌터로 끝내지 않을 게 분명해요. 만약에 나중에라도 길드에 들어가고 싶으면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부스럭-.
엘레노아는 품에서 작은 카드 1장을 꺼내서 요한에게 건넸다.
“이건?”
“제 명함이에요. 거기엔 제 비서 번호가 아니라, 개인 번호가 적혀 있어요. 제 개인 번호는 제 가족과 개인 비서 말곤 몰라요. 무슨 뜻인 줄 아시죠?”
“아, 네……."
‘미친 듯이 부담스러운데…….'
어쨌든 이 이상의 거절은 예의가 아니기에 명함은 조심스레 챙겼다.
‘미친……!! 누가 러셀 가문 아니랄까 봐 명함을 금으로 만들었잖아?!’
러셀 가문은 헌터 시대 이전엔 로스차일드나 다른 명문 가문과 비교하면 많이 위세가 부족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금보단 힘이 최고인 시대가 되면서 상황은 180도 반전했다.
폐쇄적인 다른 가문들이 어찌할 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개방적인 그들은 헌터를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가장 큰 성장 요인은 역시 러셀 가문의 직계 가족들이 다수 상위 등급의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가 된 것이다.
다른 가문 사람들은 각성하더라도 돈 많은 부자답게 목숨을 걸고 장난을 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러셀 가문은 적극적으로 헌터로 활동하며 돈과 인맥을 쌓아 갔다.
그 결과 러셀 가문은 영국의 그저 그런 부자 가문에서 이젠 최고를 다투는 가문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다.
그런 위치에 올랐지만, 러셀 가문은 결코 정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도약으로 한국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요한 씨.”
“네?”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조금 전에 어디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죠?”
“아, 네.”
“그렇다면 막공 위주로 될 생각이신가요?”
“뭐, 일단은 그렇다고 봐야죠.”
애초에 D급 헌터 자체가 길드 가입이 쉽지가 않았다.
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길드가 없는 D급 헌터 모임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면 혹시 우리 러셀 매니지먼트와 계약하지 않으시겠어요?”
“러……셀 매니지먼트요?”
뜬금없이 러셀 매니지먼트라니?
“이번에 발족한 회사에요. 기존 다른 회사와 비슷하게 헌터 분들의 쾌적한 헌터 생활을 돕기 위한 거죠."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같이요?”
“네, 맞아요.”
“아, 음. 조금만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얼마든지요.”
그렇게 둘은 요한만 어색해하는 상황에서 식사를 끝내고 어디론가 향했다.
"......."
“지금 우리가 본 거 정체가 뭘까?”
“혹시 영화 촬영해?”
“아니면 개꿀잼 몰카야?”
“뭐야, 이게!!”
와글와글-.
식당은 순식간에 도떼기시장이 되었다.
그만큼 요한과 엘레노아가 보여 준 장면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덜컥-.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이, 수다 떨려면 휴게실 가서 떠들어. 시끄럽게 식당에서 무슨 짓이야!!”
뒤늦게 식당에 밥 먹으러 온 이무기 이재성이 소리를 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다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사람들의 뇌리엔 조금 전 벌어졌던 일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
3개월의 교육 기간은 바쁜 일정 속에 금방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은 대망의 순위 발표 일이었다.
이번 헌터 교육에선 이변이 발생했다.
바로 이번 헌터 시험의 수석 합격자가 헌터 등록소 설립 이후 최초로 D급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허, 헉!!”
“뭐야, 수석이 그 D급 루저라고?!”
“마,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뭐, 수석이라고 해서 대단한 행사나 상장 수여식은 없었다.
헌터 협회는 그런 허례허식의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보상은 확실했다.
“이거, 참. 정말 의외네요.”
“다시 뵙네요. 준혁 씨.”
그는 3개월 전 헌터 등급을 받고 상담을 진행했던 이준혁이었다.
“하하, 설마. D급 각성자인 요한 씨가 헌터 시험에 당당히 수석 졸업을 하다니……."
그가 이곳 헌터 등록소에서 일한 지 10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후후, 운이 좋았죠.”
“운, 운이라……."
준혁 상담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뭐,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이거 상패와 보상 카드입니다.”
“엥, 보상 카드요?”
“네, 일종의 디지털 카드인데. 그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보상이 들어 가 있습니다.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돈이 될 수도 있고, 장비 교환권이 될 수도 있고요.”
“아하, 잘 쓸게요.”
“네…… 그리고 여기 헌터증입니다.”
“흐흐, 감사합니다.”
고급스러운 신용 카드 느낌의 헌터 자격증을 드디어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크으, 거기에다가 수석, 수석이라니!!’
D급으로서 수석은 처음이라니 더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그는 경솔하거나 오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았어. 그러니 방심하지 말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다고 D급에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특성의 강점도 파악한 그였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D급을 넘어 S급도 이기겠다는 각오로 싸울 생각이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 네. 다시 한번 더 정말 축하드립니다.”
“흐흐, 감사합니다.”
그렇게 헌터 자격증을 지갑에 넣고는 상담실을 나가려고 문 쪽으로 향했다.
지잉-.
자동문이 열렸다.
“요한 씨.”
“으헛!”
‘아, 깜짝이야!’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와 말을 건 엘레노아 때문에 깜짝 놀랐다.
“왜 놀라세요?”
“아, 아하하. 그냥요. 너무 기쁜 나머지 조금 방심했네요.”
그래도 이젠 헌터인데 겨우 이름을 부른 것 가지고 놀랐다는 게 창피한 요한이었다.
“그런데 엘레노아 씨는 왜?”
“아직 대답을 못 들은 것 같아서요.”
“대답이요. 아……!”
요한은 아직 자신이 그 러셀 매니지먼트와 관련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게 기억났다.
엘레노아는 요한의 살짝 빈틈 있는 모습에도 어떤 감정의 변화 없이 양손을 모으고 꼿꼿하게 선 채로 요한의 말을 기다렸다.
그 어떤 재촉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도도함과 고귀함이 흘러넘치는 아가씨였다.
‘일단 고민해 보겠다고 하자.’
“조금만 더 고민해 볼게요.”
“아쉽군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연락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