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와…… 엄청난 미인이다.’
헌터 등록소를 도도하게 걷는 미녀에 시선을 강탈당했다.
여성은 정말 아름다웠는데, 혼혈인지 동양적 미와 서양적 미를 모두 겸비했다.
찰랑거리는 백금발 머리는 매혹적이었고, 옅은 녹색 눈동자는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품고 있었다.
힐끗, 그녀는 잠시 요한을 훑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후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네.”
그녀가 완전히 지나가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누굴까. 헌터 등록소 고위직인가?’
많이 쳐줘도 20대 초반, 성숙한 이미지를 굳이 넣자면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외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얕보지 않았다.
‘헌터는 나이가 아니라, 실력 위주의 세상이니까.’
만약에 요한이 등급이 높게 나왔으면 이번처럼 대충 위로나 받는 게 아니라, 상담실에서 다양한 조언을 해 주었을 것이다.
요청만 하면 길드와도 이어 주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업무를 보는 곳이었지만, 낮은 등급을 받은 각성자에겐 그저 위로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이나 할 때냐고. 쯧.'
얼른 정신 차리고 교육관으로 향했다.
지잉-.
배정된 교육관의 유리로 된 자동문이 열리고 들어가자, 마치 대학교 강단처럼 되어 있는 곳이 나왔다.
‘크으, 옛날 생각나는군.’
집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캠퍼스 생활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대학 생활 자체를 나쁘게 기억하지 않는 요한이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웅성웅성-.
‘으응, 왜 이렇게 시끄럽지?’
좀 인위적인 웅성거림이라서 요한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뭔가 시끄럽게 굴고 한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뭔데, 뭔데.’
이런 일에 빠질 수가 없었기에 고개를 들어서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곳을 보았다.
‘헙, 여왕님이다!’
첫인상부터 여왕님 같았던 여자고 이름을 모르기에 그렇게 꽂혔던 여성이었다.
협회 간부쯤 되는 줄 알았던 여성은 교육실 맨 뒷자리 오른쪽 끝에 앉아 있었다.
팔짱을 끼고 오만한 표정이 꼿꼿한 자세로 인해 더욱 강해 보였다.
정말로 여왕 그 자체였다.
‘와, 눈빛 진짜 살벌하다. 누구랑 사귈지는 몰라도 여왕님을 감당할 수나 있으려나.’
만약에 자신이라면 별로 자신이 없었다.
힐끔, 또다시 여왕과 눈이 마주 친 그는 자연스럽게 가장 먼 거리의 왼쪽 맨 앞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나 원래 이렇게 찌질한 성격 아닌데…….'
요한이 자리에 앉은 채로 집중하니 그의 귀에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로 공주님이 이곳에 납시셨네.”
“앵, 공주님이라니. 저 여자 진짜 공주님이야?”
“아니, 뭐. 왕족은 아닌데 저 여자, 영국의 유명한 귀족 집안 딸이잖아. 정식 작위도 있고, 그 집안사람들은 죄다 헌터라더라.”
“오, 정말?”
“그래, 아버지 도움으로 겨우 알 게 된 정보야.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헌터 선진국이잖냐.”
“그렇지, 이상하게 대한민국에서만 우수한 헌터와 희귀 포탈이 많이 발생하니까.”
세계는 정보화 시대를 넘어서 마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BIG 3에 놀랍게도 한국이 포함되었다.
그래서 국제 질서는 미국 VS 중국 VS 한국의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의 유명한 귀족 집안의 자제가 한국에 온다고 해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은 엄연히 헌터 강국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외국인에게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이기에 외국인 신분으로 헌터 활동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다만 요한이 ‘여왕님’이라고 지칭한 여성은 한국과 영국의 혼혈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이중 국적자라 가능했다.
“영국이 헌터 쪽으론 약해도 여전히 최고의 가문을 보유한 국가잖아. 어휴, 아버지가 얼마나 친해지라고 닦달하던지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야.”
“큭큭, 야. 그러면 지금 말 걸어 봐.”
“……싫어. 왠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야. 그리고 소식에 따르면 저 여자 이미 1명의 능숙한 헌터래."
“정말?”
“그래, 집안사람들 대부분이 헌터인데. 조기 교육 안 받았겠냐?”
“아, 하긴.”
숙덕대는 남자들도 나름 대한민국 힘 있는 집안 자식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도 여왕님의 카리스마 앞에선 겁먹은 쥐 신세였다.
‘음, 영국의 명문 귀족 집안이라…….'
헌터에 관한 정보라면 국내외 가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정보가 오갔다.
‘로스차일드? 러셀?’
당장 생각나는 영국 명문가는 이 2개 정도였다.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로 넓히면 더 많겠지만, 아마도 그쪽 집안은 아닐 것이었다.
‘신기하네, 아무리 한국이 헌터 대국이라지만. 그래도 영국 귀족이 한국까지 오다니 말이야.’
영국은 마나 시대가 열린 이후로 나름대로 유지하던 귀족제가 더 강화되었다.
엘리트 문화도 강해져 적어도 귀족에 한해선 한국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헌터 생활이 가능한 곳이 영국이었다.
또 영연방의 긴밀한 협조는 1명의 헌터에게 다양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니 귀족에 한해선 영국이 더 낫다는 일부 주장도 틀린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명문가 출신이라는 여자가 한국에 온 건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저렇게 숙덕대는 남자들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 저 남자들도 금수저인가 보네.’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요한이 들어왔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교육실 강단으로 향했다.
‘저 사람이 담당자인가?’
말끔한 남색 슈트에 결벽증이 의심되는 완벽한 올백 머리, 무테안경을 쓰고 있어 양쪽으로 쭉 찢어진 눈이 더욱 날카롭게 보였다.
꿀꺽-.
요한은 한 마리의 뱀을 보는 것 같은 남자의 카리스마에 마른침을 삼켰다.
“반갑다, 제군들. 나는 오늘부터 3개월 동안 그대들을 맡아서 교육 할 헌터 이재성이라고 한다. 박수는 됐고, 내 기준에 낙제되는 녀석은 다시는 헌터를 못 하게 해 줄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교육에 임하도록. 알겠나?”
“네!”
시작부터 그의 카리스마에 눌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동으로 우렁찬 대답을 했다.
다만, 여왕님이나 좋은 집안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무덤덤했지만 말이다.
“질문은 사양이다. 모르는 건 알아서 찾아보도록. 어차피 실전 훈련은 1인당 1명씩 담당 교관이 붙을 테니까, 그쪽한테 물어보고. 난 그저 너희들의 교육을 총괄하러 왔으니 귀찮게 하지 말도록.”
"하, 저 사람. 뱀 같은 눈이 아니라, 그냥 뱀이었잖아!’
실물과 사진의 괴리감으로 잠시 알아보질 못했다.
이름을 듣고 나서야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이무기 이재성!’
상당히 유명한 A급 헌터였다.
뱀과 관련된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서 별명이 이무기였다.
‘와, 최근 기록이 없더라니. 등록소 교관을 하고 있었구나.’
상당히 자유분방한 헌터로 유명했다.
웅성웅성-.
“이무기 이재성이야. A급 헌터가 왜 이런 데서 교관이나 하는 거야?"
“그러게.”
“완전 재능 낭비야.”
유명한 헌터라 요한 말고도 알아 보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 조용.”
쉬익-.
‘헙!’
이무기 이재성 특유의 마나를 표현할 때 누군가 이런 멘트를 남겼다.
뱀처럼 교활하고 차가우며 은밀하다.
딱 그 느낌 그대로의 마나가 교육실을 가득 채웠다.
“헙!”
“으으.......”
이제 막 시작하는 1레벨 각성자들은 A급 베테랑 헌터의 마나에 부들부들 떨었다.
‘으윽!’
그건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이를 악물며 버텨 보았다.
이런 마나조차 버티지 못하면 영원히 D급의 인생밖에 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까득.
이가 비틀리는 소리가 났지만, 죽을힘을 다해서 참아 내었다.
‘호오?’
그런 요한의 모습에 이재성은 의외라는 눈빛을 했다.
‘목록에 따르면 D급의 부실한 녀석인데. 정신력은 괜찮은 놈이군.’
뭐, 그래 봤자 D급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날부터 교육이라고 쓰고, 지옥 훈련이라고 읽는 3개월의 커리큘럼이 시작되었다.
메인 교육은 주말에만 시행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일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주말에만 교육이 잡혀 있다고 방심하지 마라. 평일에 이곳에서 공부할 사람은 나오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공부해라. 방식은 묻지 마라. 나는 살아남느냐, 못 남느냐를 보는 사람이지 네 놈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다.”
평일에 일이 있는 사람에게도 폭탄과도 같은 과제를 줬다.
‘으아아, 공부할 거 진짜 많다.’
헌터 덕후라 굳이 필요 없는 지식까지 달달 외우고 있는 그에게도 힘든 과제였다.
외부인은 모르는 실전 지식과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기에서만큼은 수석을 하고 말겠어!’
D급인 요한에게 실기에서 수석은 절대 무리였다.
그가 아는 실기 교육은 협회에서 관리하는 포탈에 직접 들어가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었다.
난도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실전은 실전.
D급인 요한에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D급, D급. 하아, 노력으로 극복 하기로 했지만, 생각할수록 빡치네.’
타다다다다다다닥-!!
키보드를 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우와우, 김 대리님. 요즘 일 진짜 열심이시네.”
“그러게, 우리 몰래 결혼이라도 한 거 아니야. 먹여 살려야 할 아이가 생겼다거나?”
“뭐어? 하하, 그거 말 된다.”
요한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서버 관리였다.
관리하는 여러 개의 서버가 버그나 다운되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리고 최근엔 A.I, 즉 인공지능에 관해서도 공부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부터는 헌터 공부를 해야 해서 인공지능 공부는 잠시 접어야 했다.
몰래 공부하기 스킬은 이제 S급 이라서 주변 사람들은 그저 요한이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았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2개월이 지나, 실전 훈련을 나갈 때가 되었다.
‘아, 하필이면…….'
삐질삐질-.
요한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 실전 훈련은 2인 1조로 팀을 이루는 교육 훈련이었는데 그의 팀으로 무려 여왕님이 걸린 것이다.
“우와, 요한 씨. 엘레노아 씨와 팀이시네요. 정말 부럽다!”
붙임성이 나쁘지 않은 편인 요한은 2개월 동안 교육받으며 같은 D급 헌터 1명과 친해졌다.
이름은 유재한, 정말 평범한 근접형 각성자였다.
그는 요한의 마음도 모르고 그저 예쁜 여자와 한 팀이 된 것을 부러워했다.
'하아, 때릴 수도 없고…….'
같은 D급에 근접 전문이다.
애초에 몸 쓰는 게 서투른 요한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도 웃기네.’
어쨌든 실기 교육이 장난도 아니고 파트너가 어렵다고 바꿔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여왕님도 클래스가 있는데. 날 굳이 신경 쓰지 않겠지.'
이미 헌터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굳이 팀워크를 보이지 않고도 알아서 잘하리라.
‘그냥 조용히 넘어만 가자.’
팀이 정해지고 교육생들은 헌터 협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이동 게이트를 타고 교육 장소로 향했다.
공간 이동 능력자가 운영하는 이동 게이트는 워낙 비싸서 대중적이진 않지만, 급할 때는 정말 유용했다.
그렇게 이동 게이트로 협회가 직접 관리하는 필드 포탈에 도착한 교육생들은 잔뜩 긴장했다.
꿀꺽-.
‘이, 이제 시, 실전이다.’
‘몬스터를 직접 본다.’
덜덜-.
일부 담이 약한 교육생은 떨기도 했다.
2장. 헌터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