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참고로 헌터 등록소는 아무 때나 가면 딱딱 처리해 주는 곳이 아니었다.
헌터 등급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수 장비를 사용해야 했다.
그 장비를 운용하는 데 꽤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최대한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또 헌터 등록은 단순히 등급 측정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헌터 관련 안전 교육은 물론이고 실전 교육까지 하는 3개월 교육 코스가 있었다.
때문에, 요한은 헌터 등록 절차를 예약하기 위해서 번호표를 끊고 기다렸다.
지금 시간은 오전이었지만, 토요일이다 보니 요한 말고도 대기하는 인원이 꽤 많았다.
“어, 엄마. 어, 엄청나게 떨려.”
“우리 아들 파이팅! 분명히 좋은 등급 받을 거야. 이 엄마는 그렇게 믿어!”
“으으......."
아무리 잘 쳐줘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어머니와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잠깐, 미성년자는 헌터 등록이 불가능하지 않나?’
분명 헌터는 귀하고 소중한 인력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막장도 아니고 보호해야 하는 미성년자까지 죽음을 넘나드는 헌터를 시킬 이유가 없었다.
역시나 그들은 그 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네,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현행법상 미성년자는 헌터 등록이 불가능합니다.”
“아……."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는 얼굴이 잔뜩 붉어져 도망치듯이 등록소를 빠져나갔다.
띵동-!
“48번 고객님.”
“아, 네.”
그렇게 요한은 자신의 번호가 불리자 얼른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네, 이번에 제가 각성해서요. 헌터 등록 코스 신청하려고요.”
“아, 그렇군요. 각성 축하드립니다.”
“하핫, 감사합니다.”
협회 직원은 축하한다고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영혼이 없었다.
하지만 각성한 것이 기뻐 죽을 것 같은 요한은 그저 바보같이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타다닥.
안내원이 뭔가 열심히 치자 요한의 앞에 있는 LED 모니터가 켜졌다.
“여기에다가 손바닥을 올려 주세요. 신원 확인 차입니다.”
“넵."
지잉.
모니터 전체에서 불빛이 나더니 요한의 손바닥을 스캔했다.
“네, 김요한 씨. 확인했고요. 안 쪽 18번 방에서 등급 검사하겠습니다.”
“넵."
사실 이건 그저 단순한 신원 확인이 아니었다.
만약에 진짜로 신원만 확인하려고 했다면, 손가락 지문 인식이나 신분증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0단계 각성자 여부 확인이었다.
만약에 각성하지 않은 사람이 이 단말기에 손을 얹으면 스캔을 해도 아무런 정보가 뜨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단말기는 소량의 마나를 확인하는 기계였으니까.
뭐, 아직은 비각성자가 각성자라고 속인 예는 없었다.
요한은 즐거운 마음으로 18번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가 있는 곳이었다.
‘와, 내가 마침내 이곳에 들어왔구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각성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그곳엔 요한도 아는 대로 담당 연구원이 따로 배정되어 있었다.
워낙 고가의 장비다 보니, 단순 공무원이 아닌 기술직 공무원이 기계 1대당 2명씩 붙어 있었다.
그들은 교육받은 대로 각성 축하 멘트를 날렸다.
여전히 영혼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요한은 탈의하고 가운만 걸친 채로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삐빅-.
[지금부터 신체 스캔을 시작합니다. 스캔 부작용으로 메스꺼움이 있을 수 있으나, 큰 문제는 아니므로 스캔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위잉.
기계가 돌아가며 요한의 몸을 싹훑으며 스캔했다.
딱히 멀미가 난다거나 현기증은 없었다.
‘후우, 다행이네. 난 육체와 관련된 뭘 해도 재수가 없었는데. 각성 하고 나니 뭔가 잘 풀리는 느낌이야.’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우쭐해지는 느낌이었다.
웅웅웅.
잠시 스캔은 계속되었다.
‘난 몇 등급을 받을까. A? B? C……. 이하는 좀 그런데. 설마, S 뜨는 거 아니야. 으흐흐.’
요한은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모든 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상상하는 건 자유니까 말이다.
얼마나 더 스캔했을까, 기계가 서서히 느려지더니 멈추었다.
“네, 다 끝났습니다. 나와 주시고, 옷 갈아입으신 후 상담실에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두근두근, 이제 정말 곧 있으면 등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다시 옷을 갈아입은 요한은 상담실로 들어갔다.
“아, 어서 오세요. 김요한 각성자 님.”
“아, 안녕하세요.”
‘와, 어떻게 매번 다른 사람이지. 인건비가 넘쳐나나 보네.’
상담실 직원 또한 다른 사람이었다.
말끔하게 생긴 남성으로 앉아 있어서 키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잘생긴 양복 차림의남자였다.
“앉으시죠. 커피, 아니면 녹차?”
“아, 커피로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상담은 시작되었다.
스윽- 탁탁.
남자는 태블릿 PC를 이리저리 넘겨 보았다.
“흠,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네?”
“보통 이곳에 오시는 각성자 분들은 최소 B급 이상을 원하십니다.”
“아, 네. 그렇죠. 보통 최강 등급 인 S급은 정말 한 나라에서 선택받은 소수만 얻을 수 있어서 기대 안 하는 편이잖아요. 그에 반해서 마찬가지로 숫자는 적지만, 현실적인 수치인 B급 이상은 노리죠.”
“오, 김요한 각성자님. 공부 많이 하셨는데요?”
척! 요한은 엄지를 번쩍 들었다.
“이 정돈 헌터 덕후의 기본이죠."
“어쩐지, 같은 과 냄새가 나더니 김요한 각성자님도 헌터 덕후셨군요.”
“어, 설마. 상담원 씨도요?”
“하하, 상담원 씨라니. 여기 명패가 있잖습니까. 제 이름은 이준혁입니다.”
“아, 아하하. 그렇군요. 준혁 씨 였네요. 어쨌든 이렇게 헌터 덕후를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도요.”
헌터 덕후는 그리 귀한 존재는 아니었다.
실상이 어쩌고 간에 일단 보이는 모습이 굉장히 화려하고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몬스터와 싸우는 스토리도 좋았다.
덕후가 양성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흠흠,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같은 덕후 분을 만나면 흥분해서 실수를.”
“아, 아니에요. 오히려 긴장도 풀리고 좋은데요?”
“후우, 정말…… 이런 분이 높은 등급을 받으셔야 하는데. 저희가 죄송하네요.”
“호, 혹시. 등급이 별로인가요?”
“후우, 네. D급 각성자이십니다.”
요한은 속으로 엄청나게 실망했다.
아무리 낮아도 C급까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D라니…….
E, F급이 레이드 부적합 등급으로 나뉘었다.
그러니 레이드가 가능한 등급에서 D급은 가장 말단의 등급이었다.
물론 E, F급이 사냥을 할 수 없단 소리는 아니었다.
보통 헌터의 일은 2가지로 나뉜다.
일반 사냥과 레이드.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알자면 헌터들이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포탈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포탈의 종류엔 2가지가 있었다.
바로 던전 포탈과 필드 포탈, 던전 포탈은 말 그대로 던전 형식으로 굉장히 공간이 넓고 다양한 지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던전 포탈을 지키는 보스를 레이드해야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일반 필드 포탈은 출입이 자유로운 편이다.
문제는 여기서 필드 포탈과 던전 포탈의 난이도가 크게 갈린다는 점이었다.
던전 포탈은 난이도가 높은 대신에 보상이 크고 확실했다.
하지만 필드 포탈은 안전한 사냥이 가능한 대신에 보상이 굉장히 짰다.
그래서 등급이 낮은 E, F급 헌터가 이 필드 포탈을 사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레벨을 올려도 스탯 상승이 낮은 대신에 스킬로 사냥을 해야 하는데 E, F급 헌터들의 스킬론 레이드는 무리였다.
어쨌든 요한은 그런 헌터 등급 피라미드에서 D급, 간당간당하게 레이드가 가능한 헌터이긴 했다.
"하아, 문제는 말단이란 거지. 필드 사냥하기엔 뭐 하고, 그렇다고 레이드에서 잘 끼워 주지도 않고. 기껏해야 손발도 맞지 않는 막공이나 나가야 하는데……."
거기서 가장 큰 문제가 생겼다.
요한의 눈엔 유나의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김요한 각성자님 얼굴만 봐도 알겠네요. 네, 맞아요. 헌터 중에서도 D급 헌터 분들의 사망률이 15%로 가장 높죠. 손발이 맞지 않는 막공으론 어려운 점이 많으니까요.”
“하아, 젠장.”
요한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냥, 회사나 계속 다닐까?’
이준혁 상담사는 괴로워하는 요한을 그저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하필이면 D급이라니…….'
물론 D급이라도 막공 열심히 다니다 보면, 레벨이 오르고 낮은 수준의 레이드를 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런 말 드리기 뭣하지만. 소환 계열이시네요?”
“어, 스캔에 그런 것도 나와요?”
“네, 그렇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지만. 각성한 힘의 종류에 따라서 미세하게 마나의 파동이 다르거든요. 계열 정도는 알 수가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하아, D급 소환 계열은 정말 암담하죠. C급만 되어도 할 만할 텐데. D급은......."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소환 계열 능력은 결국 소환수의 능력이나, 소환사의 마력에 비례한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스킬로 증폭하는 개념인데, D급이라면 소환수도 약하고 각성자의 마력도 약하고, 뒷받침해 주는 스킬도 약하다는 의미였다.
‘스킬은 좋아 보였는데. 아니면 이것보다 더 대단한 스킬이 많다는 건가…….'
“뭐, 어쩔 수 없죠.”
‘내 꿈의 네크로맨서 생활이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가슴이 답답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늘을 승천했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뭐, 사실 힘내시란 말밖에 해 드릴 말이 없네요.”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헌터 등록은 하실 거죠?”
“네, 해야죠.”
아무리 D급이라도 헌터 생활하는 게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다.
요한은 힘없이 비적비적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등록소 복도를 걷던 요한은 죽었던 텐션을 끌어 올렸다.
‘필드만 돌아도 지금보단 훨씬 많이 버니까.’
또 D급 헌터이니 필드에서 솔플도 가능하리라.
‘최고의 헌터가 되겠다는 꿈만 접으면 돼, 힘내자!’
그렇게 외치고 교육관으로 향했다.
헌터 등록소 내부에 있는 교육관은 각성이 확인된 헌터들에게 전문 헌터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3개월 동안 다양한 포탈 내 생존 기술과 헌터 관련 특별법, 그리고 안전 요령, 헌터 국제 정세 같은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물론 실기와 필기 2가지가 있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마지막 날에 간단한 시험을 보는데, 이 시험에서 과락이 없어야 정식으로 헌터가 될 수가 있었다.
시험에서 수석으로 통과하면 특전이 1가지 있었다.
‘일단 그 특전을 노리자. D급 헌터인 나에게 이 암울함을 조금이라도 떨치려면 그 특전밖에 없어.’
우드득-!
요한은 손가락뼈를 뭉개며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나, 김요한. 이 정도 시련으로 절대 안 무너진다. 무너질 사람이 아니야!’
시련은 오히려 요한의 의지에 불을 지피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등급이 낮더라도 노력하면 강해질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 포기하지 말자.’
요한의 말 그대로였다.
실제로 D급이나 C급의 일명 낙제 헌터라도 노력에 따라서 강해진 사례가 아예 없는 게 아니었다.
물론 A, B급이 똑같은 노력을 한다면 C, D급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C, D급이라고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또각또각-.
‘응, 구두 소리?’
요한의 귀에 유난히 크게 들리는 구두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서 구두 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어, 어?’
그곳엔 냉혹한 여왕이 자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