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각성몽
1화
“여, 여긴 뭐야?”
요한은 눈을 뜨자 보인 하얀 공간에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곤함에 몸부림치지 않았던가.
“잠깐만, 혹시 이거 그거 아냐?!”
뭔가 깨달은 요한.
그의 얼굴엔 기대감이 깃들었다.
‘그래, 이건 바로 각성몽이야!!’
각성몽, 선택받은 소수의 인간만 꿀 수 있는 꿈.
인간은 이 각성몽을 통해서 평범한 인간이 절대 가질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다.
드디어 그도 선택받은 것이다.
‘와, 평생을 재수 없게 살았는데. 나한테도 이런 햇볕이 드는 날이 오는구나!’
그는 작지만, 대기업 계열 회사의 프로그래머 대리였다.
연봉은 대충 3,000만 원 정도로 업계 평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돈은 늘 부족했다.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3학년인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동생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다 보니 드는 돈이 많았다.
하지만 요한은 그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대학도 못 나왔지만, 유나는 누릴 거 다 누리게 하겠어!’
그는 한때 시스터 콤플렉스라고 의심받을 정도로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오빠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동생만큼은 어딜 가서도 부모 없이 자랐다고 손가락질받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평범한 프로그래머에게 있어 사회의 벽은 높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에겐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각성몽을 꾸게 된 것이다.
온통 하얀 공간인 이곳.
‘내가 본 헌터 블로거의 말에 따르면 하얀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어. 그 선택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눈앞에 3가지의 색상이 떠올랐다.
왼쪽에서부터 [흰색] [회색] [검은색] 이었다.
‘색깔 루트구나!’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요한도 헌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바쁘고 힘든 생활 와중에 힘이 되는 것이 헌터들의 화려한 활약상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헌터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덕후력도 충만한 편이다.
그런 지식 중의 하나가 바로 색깔 루트였다.
각성몽에서 정해지는 선택의 루트는 굉장히 다양했다.
‘내가 보던 그 블로거 헌터도 색깔 루트라고 했지.’
그리고 그 블로거가 받았던 선택지는 빨강과 파랑 2가지였다고 했다.
‘색깔 선택 후엔 특정한 문양 같은 거라고 했었지. 그럼 일단 나는 검은색.’
요한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바로 블랙이었다.
그는 어렵게 고민하지 않았다.
‘블로거가 그랬지. 어차피 끝에 무슨 결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거라고. 그냥 마음 편하게 좋아하는 걸 선택하는 게 좋다고. 고민해 봤자 답은 안 나온다고.’
그래서 요한은 정말 마음 편하게 선택했다.
검은색을 선택하자 다음 선택지가 나왔다.
다섯 장의 카드였다.
왼쪽에서부터 [버섯구름] [손톱이 날카로운 손] [포도] [해골] [박쥐] 였다.
‘난 해골.’
그는 해골 디자인 마니아였다.
그래서 몇 없는 장신구들은 대부분 해골 모양이었다.
출근할 때는 못 입지만, 집에서 편하게 입는 검은색 해골 티셔츠도 있었다.
그의 꿈이 해골 장식으로 커스터 마이징된 오토바이를 사보는 것이었다.
카드가 사라지고 그다음으로 나온 것은 3가지의 홀로그램이었다.
왼쪽에서부터 왕좌에 앉아 있는 근엄한 왕, 말을 타고 맹렬하게 돌격하는 기사단, 방패를 들고 꼼꼼하게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병사.
‘음, 이건 좀 선택이 어렵네.’
세 가지 다 매력 있는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곧 선택했다.
‘그래도 남자가 큰 꿈을 꿨으면 왕까지는 찍어 봐야지.’
가장 멋있어 보이는 왕을 선택했다.
거기까지가 선택이 끝이었는지, 하얀 공간이 사라지고 어느 제단으로 배경이 바뀌었다.
‘겨우 3단계가 끝인 거야?’
요한이 봤던 정보에 의하면 보통이 5단계, 엄청나게 긴 헌터는 20단계까지 선택을 했다고 했다.
‘짧은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러나 블로거의 말대로 고민한다고 딱히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요한의 앞에 넓은 석제 단상이 있었고, 옆으로 파란 횃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아, 이게 그 마지막 단계인 무기 선택의 시간이구나.’
원하는 무기를 선택해야 하는 단계였다.
이 단계 또한 직업을 선택하는 데 무척이나 중요한 순간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했던 묘한 선택은 유추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무기는 어느 정도 직업에 대한 유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석제 단상 위엔 정말 다양한 무기가 놓여 있었다.
검, 창, 도끼, 메이스, 활 등
전부 가짜가 아니라, 날이 반짝반짝 살아 있는 진짜 무기들이었다.
‘음, 난 몸을 쓰는 건 완전 챔병인데.’
그의 어렸을 때 별명이 ‘최악의 몸치’였다.
축구는 개발이고, 농구는 링 근처에도 못 가고, 이구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몇 번 해보질 못했다.
처음 사귄 친구들도 한두 번 같이 해보고 영 아니다 싶어서 끼워 주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요한은 초등학생 때부터 늘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 로봇을 조립하며 노는 걸 즐겼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감각이 작용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쓰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궁수도 무리, 내가 쏘면 아마 화살이 알아서 빗나갈 수도 있어.’
그런 의미에서 활도 아웃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남은 것은 마법 계열이겠지.’
흔히 그가 아는 마법사는 뒤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강력한 마법을 쓸 수는 있지만, 대신 맷집이 약한 마법사.
‘뭐, 어차피 나는 최악의 몸치니까. 딱 어울리네.’
그런 약간 자조적인 느낌과 함께 지팡이를 선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엉, 잠시만. 무기 선택은 1단계 뿐이지 않았어?’
분명히 그가 아는 무기 선택은 1단계가 끝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다른 무기는 싹 사라지고 다양한 지팡이가 생겨났다.
왼쪽에서부터 영국 마법사들이 쓸 거 같은 지휘봉 같은 지팡이.
그다음은 반지를 잘 지키고 발록과도 싸울 수 있을 거 같은 큰 지팡이.
끝에 묘한 빛을 내는 게 달린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지팡이.
마지막으론 낫처럼 생긴 긴 지팡이.
그렇게 네 개의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음, 낫은 전투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패스. 영국 마법사가 쓸 것 같은 지팡이는 왠지 없어 보여서 패스. 남은 건 긴 지팡이냐, 짧은 지팡이냐인데. 역시 마법사는 긴 지팡이가 멋있지.’
요한은 긴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 직업 선택이 끝났습니다.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요한의 귀를 울렸다.
-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해 주세요.
‘아, 그래. 그게 있었지. 어떻게 확인하더라. 상태!’
[김요한]
[레벨: 1]
[직업: 네크로맨서]
[특성: (프로그램) / (A.I)]
[스탯]
힘: 1. 민첩: 1. 체력: 1. 정신력: 1. 지혜: 1.
[스킬]
네크로맨시 Lv.1 저주 Lv.1
본 아이덴티티 Lv.1 시체 마스터리 Lv.1
그의 눈앞에 나타난 창은 공부했던 대로 매우 심플했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부분에서 그를 놀라게 했다.
‘어, 특성이 처음부터 2개나 생성될 수가 있나?’
그가 보았던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 헌터 개인의 능력치를 기록해 둔 곳도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 어중간한 위치의 헌터들은 인기가 곧 돈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는 개인 상태창을 실시간으로 기록해 두기도 했다.
많은 정보를 깐 헌터일수록 대중들이 좋아해 주니 말이다.
요한이 지금까지 봐 왔던 수많은 헌터들의 최초의 상태창의 특성은 없거나 1개였다.
그러니 2개의 특성이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거기에다가 스킬도 무려 4개야. 대박인데?’
요한은 자신이 꽤 재능 있는 헌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에게 스킬은 강함의 척도나 마찬가지였다.
스탯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자동으로 오르는데 그 단위가 0.01일 수도 있었다.
즉, 스탯으로 강해지는 것은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헌터들은 스킬 획득에 목숨을 걸었다.
스킬을 획득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몬스터를 죽이고 극악의 확률로 드랍 되거나.
이벤트 포탈이 등장하면 그곳에 숨겨져 있는 스킬을 획득하거나.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데, 같은 행동을 똑같이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생성되는 경우였다.
하지만 마지막 방법은 정말 우연히 발생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의도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정말 거의 없다고 들었다.
그런 중요한 스킬이 헌터가 되는 과정인 전직하자마자 4개나 있으니 놀랄 수밖에.
‘아차차, 스킬 확인부터 해야지.’
어차피 스탯은 모든 직업 공통으로 1씩만 부여되었다.
단, 신기한 점은 이 스탯은 절대 수치가 아니었다.
전직 당시의 능력을 기준 삼아서 1로 한 것이다.
즉, 스탯이 늘어남에 따라서 1이었던 당시의 능력에 곱하거나 더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헌터를 노리는 일부 사람들은 각성몽을 언제 꾸게 될지 모르기에 몸 관리를 철저히 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각성 대비 학원도 있을 정도였다.
요한도 당연히 각성에 대해서 기대는 있었다.
하지만 최고의 동생을 둔 것 말곤 불행 가득한 그의 삶 특성상 각성할 거란 믿음은 없었다.
거기에다가 역대급 몸치에 프로그래머 생활도 바쁘니 운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에휴, 이럴 줄 알았으면 헬스라도 다닐걸.’
이라는 후회가 됐지만, 아마 알았어도 그의 스케줄상 헬스나 운동은 무리였다.
[네크로맨시 Lv.1]
#스킬 설명: 네크로맨서의 종합 스킬. 삶과 죽음을 가장 심도 있게 고민하는 네크로맨서는 그들의 비기를 이 하나의 스킬에 담았습니다.
네크로맨서는 후임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죽음의 진리를 깨우치길 바라며 이 스킬을 남겼습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하위 스킬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스킬 현황〉
▶ 라이즈 스켈레톤: 스켈레톤을 일으킬 수 있는 스킬. 일으킬 수 있는 스켈레톤의 숫자는 레벨에 비례한다.
▶ 라이즈 좀비: 시체를 일으켜 좀비로 만드는 스킬. 되살릴 수 있는 숫자는 스킬 레벨에 비례한다. 되살아난 좀비는 원래 육체의 70%의 힘을 발휘한다.
[저주 Lv.1]
#스킬 설명: 네크로맨서는 죽음에 관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인간을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대량 학살하는 것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전염병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쳤습니다. 네크로맨서는 끔찍한 저주와 전염병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스킬을 깨우치 게 될 것입니다.
〈스킬 현황〉
▶ 약화 : 약화가 걸린 상대는 마치 몸살이라도 걸린 것처럼 육체적 능력이 10% 감소한다. 약화는 3분간 지속하며 3분이 지나면 약화의 효과는 사라진다.
[본 아이덴티티 Lv.1]
#스킬 설명: 네크로맨서는 평생을 시체와 함께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적인 공격 마법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다양한 뼈를 연구하던 중에 한 네크로맨서가 연구하던 뼈에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뼈로 그들만의 새로운 공격&방어 마법을 만들어 내고 기뻐합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스킬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스킬 현황〉
▶ 티쓰: 단단한 짐승의 송곳니를 날리는 스킬. 송곳니의 개수는 스킬 레벨에 비례한다.
[시체 마스터리 Lv.1]
#스킬 설명: 네크로맨서의 연구는 시체로 시작하여 시체로 끝이 납니다. 그들은 수많은 시체를 연구하며 언데드를 어떻게 하면 더 강화하고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를 심도 있게 공부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가진 시체에 대한 식견은 그 어떤 존재도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시체와 그 시체로 일으킨 언데드를 강화하는 스킬입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스킬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스킬 현황〉
▶ 시체 제공: 네크로맨서는 시체가 없다면 첫 사냥이 무척이나 어려운 것을 보완하기 위한 스킬. 스킬 레벨만큼 공짜 시체를 제공한다. 보유한 언데드가 0이 되면 이 스킬은 다시 발동한다.
▶ 시체 강화: 시체를 되살린 존재는 아무래도 일반 생명체와 비교 해서 약할 수밖에 없다. 스킬 레벨 1당 1%씩 소환한 모든 언데드의 능력치를 강화한다.
▶ 시체 수납: 언데드는 일반인들의 눈에 너무 띄는 존재다. 원활한 연구를 위해선 그들의 눈에 띄는 건 곤란하다. 스킬 레벨만큼의 언데드나 시체를 아공간에 보관할 수가 있으며, 오로지 시체나 언데드만 보관할 수 있다.
‘어휴, 스킬 체크하는 것도 힘드네.’
무려 4개의 스킬이다 보니, 꼼꼼히 체크하는 데도 꽤 긴 시간이 소모되었다.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흐흐흐, 네크로맨서라니. 완전 로망이었어!’
언데드를 소환 및 제작하여 부릴 수 있는 그야말로 깡패 직업.
그는 소설이나 만화 그리고 게임을 통해서 직업으로 접하면서 네크로맨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언데드를 이끌고 다니며 모든 적을 휩쓴다.
정말 멋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특유의 음울함은 다크 히어로의 표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그렇다고 내가 히어로를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요한은 세상의 쓴맛을 고루고루 맛본 청년이었다.
딱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피곤해, 나랑 유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땡이야.’
그렇게 스킬 창을 내렸다.
- 다음은 마지막, 간단한 전투 튜토리얼이 있겠습니다.
‘전투 튜토리얼?’
요한의 표정이 의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