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차원(1)
아크로폴리스의 상공에 하늘 요새가 떠있었다. 외관은 드워프들의 특수금속으로 바뀌어 있었다. 차원항해를 위해 팔크람이 고안한 차원력 엔진도 장착했다. 이 엔진은 송기현의 힘으로 작동하는 것이었다. 내부의 시설도 대폭 바뀌었다. 긴 항해로 인한 승무원들의 피로를 덜 최첨단 편의시설. 그리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식량수급 시설까지. 그야말로 몇 달간 드워프들이 밤낮없이 작업에 매달린 결과물이었다.
“모두 준비 된 건가?”
“네, 건우님.”
하늘요새의 메인조종실. 강건우와 조던왕자가 함교의 창을 통해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던왕자는 전에 없이 정중한 행동과 말투로 강건우를 대하고 있었다. 그때 메인조종실의 문이 열리며 가헨이 나타났다.
“건우님, 저와 훈련을 할 시간입니다.”
“하.. 가헨. 이제는 내 힘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니까?”
“안됩니다. 조율신의 힘은 무한한 힘입니다. 아직 더 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가헨의 말에 강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 전 라헬과 가헨의 합류이후. 숨을 죽이고 있던 조율신 진영에 신들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 일로 인해 아크로폴리스가 한동안 들썩였다. 자신들의 신격을 드러내며 합류하는 신.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나타나는 신. 강한 자존감 때문에 인간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신.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시민들은 이일로 자신들이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런 신들을 다루는 것은 라헬의 몫이었다. 라헬은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신들을 다루며 마지막 전쟁을 준비했다. 가헨은 강건우의 대련상대가 되어주었다. 강건우에게 잠재되어있는 조율신의 힘이 남았다는 이유였다. 강건우는 강력한 전투신인 가헨과의 대련으로 급성장했다.
“라헬과 다른 신들은?”
“모두 요새에 탑승했습니다.”
“좋아. 이제 출발해도 되겠지?”
“네, 건우님.”
가헨의 말에 강건우가 조던왕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던왕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승무원들에게 소리쳤다.
“하늘요새! 출진한다! 목표는 만신전이 있는 신계다.”
“네!”
“마나엔진 이상무!”
“차원 엔진실에 계신 기현님으로부터 준비완료 연락입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조던왕자가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강건우가 메인조종실에 있는 동그란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강건우의 힘이 수정구로 빨려 들어가며 밝은 빛을 뿜어냈다. 그 힘은 차원 엔진실에 있는 송기현에게 전달되었다.
“으윽! 엄청난 힘이야. 정신 차리자 송기현!”
차원 엔진실에 있는 수정구에 손을 올리고 있던 송기현이 엄청난 힘에 깜짝 놀랐다. 송기현은 그 힘과 자신의 포인트를 이용해 차원력을 극대화시켰다. 극대화된 차원력은 송기현의 팔을 타고 수정구로 흘러들어갔다.
웅웅! 웅웅!
차원 엔진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송기현의 몸에서 나오는 붉은 빛도 더욱 거세어졌다. 차원력이 엔진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엔진실을 가득 채우던 차원력이 엔진으로 일시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카라! 지금이야.”
“네!”
송기현과 함께 있던 카라가 수정구로 올라가 앉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만신전이 있는 차원을 떠올렸다. 수정구를 통해 만신전이 있는 차원계의 정보를 넘겨받은 송기현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차원엔진을 작동시켰다.
드드드드드!
하늘 요새가 격하게 흔들리며 차원이동을 시작했다. 차원을 이동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 요새의 외부 장갑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한계를 시험받았다. 내부의 사람들은 강력한 압력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우주의 어느 한부분에서 번쩍하는 빛과 함께 하늘 요새가 나타났다. 차원이동을 마친 것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외부장갑이 우주의 차가운 온도에 천천히 원래색깔을 찾아갔다. 메인조종실은 분주했다. 조던 왕자는 요새 내부의 상황을 보고 받으며 명령을 내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강건우는 묵묵히 눈을 감고 있었다.
-총원에게 알린다. 지금부터 전원 특급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마법사들은 보호막과 마나엔진의 유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모든 사수들은 각자 배정받은 함포에서 대기한다.-
요새 내에 명령을 내린 조던 왕자가 강건우에게 다가왔다. 강건우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였다.
“건우님, 전투준비를 끝냈습니다.”
“조던, 카라의 말이 맞았어. 수호신과 파괴신의 기운이 가까이서 느껴져.”
“역시······. 목표를 위해 갈라섰지만 애초에 같은 곳에 존재하는 게 맞았군요.”
“그렇지. 애초에 저 곳은 조율신이 머물던 곳이니까.”
강건우가 눈을 뜨고 창밖의 우주를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 멀지 않다는 걸 느낄수 있었다. 그때 메인조종실의 문이 열리며 라헬과 가헨이 들어왔다.
아름다운 모습의 라헬이 아련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우님, 느껴지세요?”
“응.”
“저기는 태초에 모든 것이 시작된 곳. 조율신님이 잠들어 계시던 곳이에요.”
강건우가 깜짝 놀라 라헬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런 곳에 수호신과 파괴신의 만신전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강건우의 심정을 읽은 가헨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힘으로 신들을 만들어낸 조율신님은 한동안 깊은 잠에 빠져 계셨습니다. 그리고 깨어나신 후 신들의 전쟁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머무는 곳에 신들의 안식처를 만들어 중재하고자 하셨습니다.”
가헨의 설명을 듣는 강건우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조율신은 자신의 자식과 같은 신들을 끝까지 품으려 했었다. 하지만 신들 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힘을 회복하지 못한 조율신은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만 보아야했다. 그렇게 신들 간의 전쟁에 온 우주가 고통 받자 마지막 힘을 이용해 아마겟돈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가헨의 설명이 끝나자 강건우가 물었다.
“내 의지는 저들을 모두 말살하라 하고 있어. 그것이 조율신의 뜻일까?”
“이제, 조율신의 힘은 건우님에게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던 그게 곳 조율신의 뜻입니다.”
가헨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강건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가헨을 바라보았다.
“그럼 끝까지 잘 부탁할게.”
“네, 저희의 모든 것은 건우님의 것입니다.”
강건우와 가헨이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레이더를 담당하는 승문원이 크게 소리쳤다.
“전방에 미확인 물체들이 잡히고 있습니다. 매우 거대한 크기입니다!”
“마법사들중 일부를 탐지마법에 동원하도록.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조던 왕자의 명령에 승무원이 마법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잠시 후, 마법사들로부터 결과가 보고되었다.
“행성! 행성입니다. 작은 크기이지만 분명 행성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알겠다. 건우님 어떻게 할까요?”
“조던, 행성으로 전속 전진해. 목표는 저 곳이야.”
“네, 알겠습니다. 하늘 요새 전속력으로 나아간다!”
조던 왕자의 외침이 끝나자 하늘 요새의 마나엔진이 전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행성에 가까워지자 자세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행성은 반은 하얀빛으로 나머지 반은 검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행성 주변을 옅은 회색빛이 감싸고 있었다.
“저건?”
강건우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행성에 가까워질수록 회색의 빛과 자신의 힘이 공명하고 있었다. 그런 강건우에게 카라가 말했다.
“아마겟돈이 시작되면서 신들의 힘을 제약하던 힘이에요. 많이 약해졌었는데. 건우님이 조율신의 힘을 각성하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네요.”
“그럼 신들이 직접 개입하지 못했던 게 저 힘 때문 인거야?”
“네, 맞아요.”
그때 하늘 요새가 회색의 빛을 뚫고 대기권에 진입했다.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하자 대륙의 모습이 나타났다. 커다란 하나의 대륙을 수호신진영과 파괴신진영이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각 대륙 쪽의 중심부에는 커다란 신전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부터 정말 위험할거야. 전투인원이 강하하고 나면 하늘 요새는 대기권에서 대기하면서 방어에 치중해.”
강건우의 말에 조던 왕자가 공손히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강건우가 가헨을 바라보았다.
“가헨, 가자. 이제 진짜 싸움을 시작할 시간이야.”
“이 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강건우가 메인조종실을 나와 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라헬을 비롯한 다른 신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라헬이 아름다운 미소로 강건우를 반겨주었다.
“건우님, 저희 모두 준비됐어요.”
“수고했어. 라헬.”
강건우의 칭찬에 라헬이 활짝 웃었다. 강건우가 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의 뜻에 함께해주는 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 우리는 끝없던 우주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진정한 평화를 찾는 첫 걸음을 땔 것입니다.”
강건우의 말에 신들이 각자의 신성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강건우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많은 희생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우주가 여러분의 희생을 기억할겁니다.”
“건우님, 강하준비가 끝났습니다.”
가헨의 말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법진위로 올라섰다. 그 뒤를 따라 신들이 하나둘씩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강건우가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모두가 사라졌다.
“파괴신의 진영부터 시작합니다.”
강건우가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신들도 신성을 폭발시키며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칠흑의 장막이 강건우를 가로막았다. 강건우가 태초의 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힘을 잔뜩 모아 장막을 내리쳤다.
쾅!
장막이 쩌적하고 갈라졌다. 강건우가 장막 안으로 몸을 날렸다. 장막 안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사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중을 안 나오면 섭섭하지.”
비릿하게 웃은 강건우가 사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도들이 괴성을 지르며 마주쳐왔다.
“크아아!”
“막아라!”
“나의 주를 위하여!”
사도들이 용감하게 달려들었지만 상대는 신들이었다. 허무하게 쓰러져 갈 뿐이었다. 순식간에 사도들을 처리한 강건우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검은빛을 뿜어내는 신전이 저 멀리 보였다.
“사도들을 죽이고 자신들의 힘을 보충하겠다는 거군.”
강건우가 사도들의 사체를 돌아보았다. 죽은 사도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힘은 파괴신들이 머무는 만신전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사도들이 모아온 힘을 회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건우가 만신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우주에 해로운 기생충 같은 놈들.”
강건우가 회색의 기운을 뿜어냈다.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사도들이었다. 그런 존재들마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뿐이었다. 분노한 강건우의 곁으로 라헬과 가헨이 다가왔다.
“건우님, 저들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로의 등에 칼을 꼽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을겁니다.”
강건우가 라헬과 가헨을 바라보았다. 두 신의 얼굴에도 은은한 분노가 서려있었다.
“가자. 단 한명의 신조차 살려두지 않겠어.”
강건우가 자리를 박차고 만신전으로 향했다. 라헬과 가헨이 서로를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건우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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