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5)
아크로폴리스에 준비된 방공호.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했지만 들려오는 전장의 소리까지는 막아주지 못했다.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쾅! 쾅!
“꺄악!”
“지.. 진정해요 모두.”
하늘이 터질 듯 들려오는 폭음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 방공호의 구석에 있는 6살인 정인이는 두렵지 않았다. 주변의 어른들이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고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소리를 치는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신을 품에 안고있는 엄마의 심장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엄마, 우리 아빠는 어딨어요?”
“정인아, 아빠는 지금 정인이를 지켜주려고 가셨어.”
엄마의 말에 정인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직 어린 정인이에게는 전쟁이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어렵기만 했다.
“그럼,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아빠가 정인이 데리러 오는거에요?”
“응, 그럼. 울지않고 씩씩하게 있으면 아빠가 우리 정인이 데리러 올거야.”
“신난다. 그럼 저 울지않을래요.”
“착하다 우리 딸.”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갔다. 정인이는 엄마의 품속에서 지쳐 잠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바깥쪽에서 방공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공호 안에 적막과 긴장감이 흘렀다. 일부 남성들이 앞으로 나서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잠금장치가 열리며 시원한 바깥의 공기가 들어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청량감이 돌았다. 그리고 지쳐 보이지만 환한 얼굴을 한 남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여러분! 이제 끝났습니다. 적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와아아!”
“아! 살았어.”
“흑흑. 난 정말 죽는줄 알았다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방공호를 뒤덮었다.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곧이어 사람들이 방공호 밖으로 나갔다. 아크로폴리스의 보호막은 어느새 원상복구 되 있었다.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던 강제 각성자들의 안내를 받아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정인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강제 각성자들사이를 헤메고 있었다.
“저기 혹시 각성 13팀 소속의 주기철씨의 소식을 모르시나요?”
“아직 전장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상자나 사망.. 아.. 죄송합니다. 남편분의 소식은 곧 아실 수 있을겁니다.”
“.......”
“엄마, 아빠는요?”
“정인아, 아빠가 아직 바쁘신가봐. 우리 조금만 기다려보자.”
“네!”
주기철의 아내 민지영이 자신의 딸 정인이의 손을 따듯히 잡아주었다.
*****
고성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지휘통제실. 그 한가운데에 강건우가 서있었다. 파괴신들과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향한 것이다. 지휘통제실의 문이 열리며 박태정이 들어왔다.
“건우님, 부상자들과 사망자들의 수습이 끝났습니다.”
“....그래? 많이들 다쳤어?”
“그게.... 드워프 강습병들과 해병대원들의 피해가 큽니다.”
“일단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내가 엘릭서를 무한 공급할테니까.”
“건우님, 너무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기위해 싸운겁니다.”
박태정의 위로에 강건우가 담담히 앞을 바라보았다. 이번 전쟁을 통해 피해도 입었지만 모두가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팔크람이랑 권율 중령님은?”
“다행히 엘릭서를 마시고 모두 회복중이십니다.”
“다행이군. 정리가 끝나는데로 모두 원탁회의실로 모여줘.”
“네, 알겠습니다.”
강건우가 지휘통제실을 떠나 조율자의 방으로 향했다. 조율자의 방에 도착한 강건우의 눈에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가이아의 상자가 보였다. 강건우가 가이아의 상자로 다가가 손을 올렸다. 번쩍하고 빛이 터져나오며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커다란 나무가 있는 동산이었다. 강건우가 동산위를 바라보았다. 강렬한 기운을 풍기는 신들이 빽빽이 서있었다. 그중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이 곳에서 만났던 이름모를 신이었다. 강건우가 천천히 동산으로 다가갔다. 이름모를 신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강건우, 아니.. 이제는 조율신이라 불러야하는건가?-
“호칭은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그 보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강건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처음보지만 익숙한 모습의 신들이 밝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흠흠. 지금 모습이 이상한가? 보통 인간들이 우리를 떠올릴때의 모습이네만.-
“모습은 그렇다 치고 갑자기 다들 나타나신 이유가 뭡니까?”
강건우의 질문에 이름모를 신이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천둥 번개와 대장장이의 신 그대들이 토르라 부르는 신이다.-
-안녕하신가! 난 올림푸스 12신의 주신 제우스라하네.-
-나의 후손이여. 난 환이라 한다.-
이어지는 신들의 소개에 강건우가 난감함 표정을 지었다. 수호신이나 파괴신들과 전투도 지른 강건우였다. 하지만 신화속에서나 듣던 지구의 신들을 직접만나는 것은 신기한일이었다. 한방탕 자기소개의 시간이 지나갔다. 강건우가 지친얼굴로 입을 열었다.
“단체로 나타나셔서 이제 뭐를 하실겁니까?”
-그대가 조율신님의 힘을 완벽히 흡수해 아마겟돈의 제약이 풀렸지. 그래서 우리의 힘도 완벽히 돌아왔네.-
“다행이라고 해야하는겁니까?”
-당연하지. 우주에 모든 신들이 수호진영과 파괴진영에 속한 것은 아니네. 조율신님의 유지를 받들어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신들도 많아.-
“그런겁니까?”
-이제 조율신의 힘이 부활했으니 그들도 다시 깨어날 걸세.-
강건우의 눈이 커졌다. 조율신을 따르는 신들이라니 전쟁의 판도를 바꿀 중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강건우의 품안에 있던 카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 건우님에게 하나둘씩 합류하기 시작할거에요. 그러면 이 전쟁의 끝을 낼 볼수 있을거에요.”
“음....”
강건우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마겟돈은 조율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조율신의 마지막남은 힘까지 흡수하면서 아마겟돈은 무의미해졌다. 하지만 강건우는 진정한 의미의 아마겟돈이 이제 시작임을 깨달았다. 많은 신들이 자신에게 도전해 올것이고 지구를 위협할 것이다. 강건우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강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울 동료들과 조율실을 따르는 신들도 합류할 것이다. 이제 진정한 우주의 평화를 찾을 때였다. 생각에 빠져있는 강건우에게 천둥의 신 토르가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가 자네를 돕겠네.-
“음.. 신의 육체가 준비되있지 않을텐데요?”
강건우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오랜시간 동안 봉인되어있던 지구의 신들에게 전투를 치룰만한 육체가 존재할리 없었다.
-하지만 강림을 할 인재들은 준비해두었지.-
“강제 각성팀장들을 말하는 거군요.”
강건우가 강제 각성팀장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지구의 신들의 힘을빌려 각성을한 존재들이었다. 모든 것이 지금 이순간을 위해 준비되었던 것이다.
-맞네. 그러니 지구는 우리에게 맞기고 적의 심장부를 공격하는걸세,-
“적의 심장부라면... 만신전을 말하는 겁니까?”
-맞네. 그곳을 무너트린다면 각 진영에 힘을 보태던 하위신들은 지리멸렬하고 말걸세.-
“하지만 어디있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릅니다.”
강건우의 말에 토르가 카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거라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맞아요. 제가 알아요.”
“그렇다해도 어떻게 간단말입니까. 이곳에서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기술력으로는 우주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만신전의 위치를 안다해도 갈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물론 강건우 혼자라면 가능했다. 신의 육체를 가진만큼 우주에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건우 혼자 쳐들어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하. 그건 걱정말게 내가 천둥의 신이기도 하지만 대장장이의 신이기도하지. 팔크람과 함께라면 하늘 요새를 멋지게 개조할수 있을걸세.-
“정말입니까?”
-나만 믿게.-
“알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 주변의 풍경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토르의 모습도 흐릿해졌다.
-그럼, 조만간 아크로폴리스에서 직접 만나지.-
“기대하죠.”
강건우의 시야에 녹색의 빛이 가득 들어왔다. 시야가 돌아오자 조율자의 방이었다.
“카라.”
“네, 건우님.”
“당분간 좀 쉬어야 겠어. 앞으로 힘든 싸움이 남아있잖아?”
“네, 그러세요.”
말을 마친 강건우가 조율자의 방을 나섰다.
****
아크로폴리스는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구 신들의 강림을 준비하는 각성자들은 육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가다듬는데 여념이 없었다. 토르는 자신의 강림체를 통해 팔크람을 만났다. 한명의 신과 드워프는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하늘요새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물론 조던왕자는 쌍수를 들어 개조를 환영했다. 자신의 왕국을 무너트리고 자신을 타락시킨 파괴신에게 복수하는데 만족 했다.
폭풍전야같은 시간이 흘렀다. 아크로폴리스는 지난 전쟁의 상처를 회복해 가고 있었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최고의 시설을 갖춘 회복실에서 빠르게 회복해 나갔다.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루었다. 강건우는 유족들에 대한 최고의 대우를 명령했다. 모든 뒷 정리가 끝나자 다시 전쟁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각성자들은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시민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했다.
그 사이 강건우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아린을 만나는 것 도 잊지 않았다. 오래 떠나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유아린은 기다린다고 했다. 강건우는 그런 유아린에게 고백을했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강건우의 부모님과 강지우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렇게 평온한 시간이 흘러가던 중이었다.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강건우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지금 뭐라고했어? 누가 왔다고?”
“라헬이라는 신과 가헨이라는 신입니다.”
“그 신들이 여길 왜?”
강건우가 이해할수 없다는 듯 말했다. 두 신은 각각 수호진영과 파괴진영의 비석관리자라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조율자의 방에 있는 비석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뭐?!”
강건우가 깜짝놀라 말했다. 비석을 통해 두 신이 나타났다면 다른 신들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이 별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있습니다. 다만 건우님을 만나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알았어. 빨리 가보자.”
강건우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강건우가 조율자의 방 앞에 도착했다. 방 앞을 김주환을 비롯한 초기 각성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강건우가 조율자의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방안의 풍경을 확인한 강건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카라를 비롯해 토르 그리고 라헬과 가헨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적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때였다. 강건우의 등장을 발견한 라헬과 가헨이 강건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조율신의 계승자시여. 이날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조율신님의 유지를 받들어 저 라헬.”
“그리고 저 가헨과 모든 조율신 진영의 신들은.”
잠시 숨을 고른 라헬과 가헨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강건우님을 정당한 저희의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강건우님을 정당한 저희의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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