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4)
하늘이 놀라고 땅이 떨리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델프론의 해머가 휘둘러 질 때마다 천둥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강건우의 검과 델프론의 해머가 부딪힐 때마다 주변의 사물들이 박살 났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크리쳐들 역시 힘의 여파에 휩쓸려 죽어 나갔다.
쾅! 쾅!
델프론이 해머를 휘둘렀다. 해머에 담긴 육중한 힘에 강건우가 몸을 뒤로 날려 피했다. 강건우가 대검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큭!
자신의 얼굴로 향하는 대검을 쳐낸 델프론이 손에서 느껴지는 반동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밀렸다는 생각에 열이 받은 델프론이 괴성을 지르며 손을 내밀었다.
-이노오옴!-
델프론의 해머에 검은색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강건우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강건우가 대검으로 날아오는 기운을 내리쳤다. 콰아앙! 폭음이 들리며 흙먼지가 흩날렸다.
“칫···.”
어느새 다가온 델프론의 니킥이 강건우의 면상을 노리고 들어왔다. 짧게 혀를 찬 강건우가 오른손을 들어 얼굴 쪽을 방어했다. 텅! 강건우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팔이 욱신거리는 것이 보통 힘이 아니었다. 팔을 내려 시야를 확보한 강건우의 눈앞에 델프론의 해머가 날아들었다. 강건우는 피하기는커녕 델프론의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퍽! 강력한 일격이 델프론의 복부에 꽂혔다.
-컥···. 컥!-
처음 느껴보는 격통에 델프론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잔뜩 화가 난 델프론이 몸에서 검은색 기운을 폭발시켰다. 강건우가 그 반동을 이용해 뒤쪽으로 물러났다. 잠깐의 대치가 이어졌다.
“뭐···.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인간 놈이!-
강건우의 도발에 델프론이 발끈했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눈앞의 인간은 너무 강력했다. 수많은 행성을 침략하면서 많은 전투를 치렀던 델프론이였다. 자신은 언제나 승자였고 대적하는 신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도 못했었다. 압도적인 승리에 익숙한 자신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흐압!”
당황한 델프론에게 강건우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쾅! 황급히 해머를 들어 막았다. 델프론의 검은 기운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강건우가 비릿하게 웃었다. 데미트리스와의 전투에서 느꼈고 지금 확신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율신의 힘은 수호신과 파괴신의 힘을 잡아먹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델프론이 자신의 힘을 폭발시킬수록 강건우의 힘이 강해졌다. 검은 기운을 잡아먹은 태초의 검이 검신을 떨며 울었다. 강건우가 온몸에 퍼지는 힘에 고양감을 느꼈다.
-이익! 필멸자 주제에! 신에게 대적하다니!-
냉정함을 잃은 델프론의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강건우는 태초의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쾅! 쾅! 해머와 태초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커다란 폭발이 주변을 휩쓸었다. 공방이 계속되던 순간이었다. 델프론이 신음성을 흘리며 뒤편으로 물러났다.
-으음···. 이게 도대체.-
델프론이 뿜어내고 있는 검은 기운이 현저히 약해졌다. 반면 태초의 검에 서린 회색 기운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강건우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에 도취해 있을 때였다. 품속에 있던 카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건우님.”
“.....”
강건우가 대답이 없자 카라가 크게 소리쳤다.
“건우님! 정신 차리세요. 파괴신의 힘을 너무 많이 흡수하셨어요!”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강건우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온몸에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당황하는 강건우의 귓가로 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우님, 집중하세요. 신들의 힘에 휘둘리시면 안 돼요.”
“으으···. 카라···.”
“정말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건우님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카라가 강건우를 애타게 바라보면 중얼거렸다. 수호신과 파괴신은 태초의 창세를 일으킨 조율신의 창조물들이었다. 억겁의 시간이 지나며 각각의 신성을 키워왔지만, 근본은 조율신의 힘에 있었다. 강건우는 데미트리스와의 전투에서 수호신의 힘을 흡수했다. 그리고 델프론과의 전투를 통해 파괴신의 힘을 흡수했다. 두 개의 기운이 만나자 몸 안에 잠들어있던 조율신의 힘이 반응을 시작했다. 두 기운을 게걸스럽게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린 기운이 강건우의 몸을 변화시키고 시작한 것이었다.
-저···. 저건! 막아야 한다!-
강건우의 변화를 지켜보던 델프론이 다급히 공격을 해왔다. 매우 당황한 모습이 마치 겁에 질려 보이기까지 했다.
-큭!-
해머를 내리친 델프론이 고통에 찬 소리를 내뱉었다. 강건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의 기운. 그 기운에 자신의 신성이 침범당하고 있었다. 두 손에 들고 있던 해머는 이미 회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급격히 빠져나가는 기운에 델프론이 해머를 내던졌다. 쿵! 해머가 땅에 박히며 육중한 소리를 냈다. 창백진 얼굴의 델프론에게 만신전에 있는 신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델프론! 위험하다! 자리를 피해라.-
-저 힘은 우리와 상극이다.-
-결국, 그분의 힘이 부활하는 것인가···.-
쏟아지는 메시지에 델프론이 격하게 소리쳤다.
-시끄럽다! 나에게 힘을 더 보내기나 해!-
-음···. 힘을 보내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우리도 한계까지 힘을 짜내고 있다.-
-하지만. 조율자가 그분의 힘을 완전히 각성한다면···. 우리는 끝이야.-
-맞다.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화가 될 거다.-
잠시 후, 하늘에서 델프론을 향해 막대한 힘이 흘러들었다. 파괴신들의 응축된 힘을 받은 델프론의 몸이 더욱 짙은 칠흑의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힘을 모두 흡수한 델프론이 자신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크하하! 온몸에 힘이 넘치는구나! 조율자 이놈!-
델프론이 강건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 검은색의 신력이 모이더니 강건우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델프론의 공격이 강건우에게 적중하려 할 때였다. 강건우의 몸에서 눈 부신 빛이 터져나왔다. 텅! 델프론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혔다. 당황한 델프론이 공격을 퍼부었다.
-제길!-
델프론이 황급히 공격을 멈추었다. 회색의 기운이 자신의 힘을 뺏어가고 있었다. 델프론이 뒤로 물러나 강건우를 주시했다.
“으아아악!”
강건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라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건우님! 마지막 고비에요. 이것만 넘기면 돼요.”
“으으으···.”
강건우는 혼미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몸의 구석구석, 세포의 하나하나까지 변하고 있었다. 온몸을 휘젓는 신의 힘들을 강건우가 통제하려 애썼다.
‘버티자! 정신 차리자 강건우.’
강건우는 미칠 지경이었다. 머릿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각가지 기억들이 마구 떠다녔다. 그 기억 속에는 밤마다 꾸던 꿈들의 내용도 담겨있었다. 잠시 후, 고통이 잦아들며 평온함이 찾아왔다. 강건우가 몸을 일으켰다.
‘엄청나군.’
강건우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온몸 구석구석 신의 힘이 막힘없이 흐르고 있었다. 강건우가 태초의 검에 힘을 흘려보냈다. 태초의 검이 회색의 기운이 불꽃처럼 솟아올랐다.
“건우님!”
“카라, 걱정했지?”
“아니에요. 해내실 줄 알았어요.”
강건우가 카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카라가 촉촉해진 눈가를 닦으며 엘릭서를 내밀었다.
“이거 빨리 드세요.”
“굳이 안 마셔도 되는데. 지금 최고의 몸 상태거든.”
“그래도요.”
“녀석···. 알겠어.”
강건우가 엘릭서를 단숨에 마셨다. 한편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강건우를 지켜보던 델프론은 엄습해오는 공포심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친 포식자를 만난 초식동물 같은 상태였다. 강건우가 델프론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편을 바라보았다. 아크로폴리스를 공격하던 크리쳐들과 사도들이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눈앞의 적만 죽이면 당분간은 평화가 찾아올 것이었다.
“이제 마무리 짓자.”
강건우가 태초의 검을 움켜잡았다. 온몸에서 기운을 폭발적으로 뿜어낸 강건우가 땅을 박찼다. 쿠콰쾅! 땅이 움푹 파이며 굉음이 울렸다.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간 강건우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크흑!-
델프론이 해머를 엑스자로 겹치며 막았다. 서걱! 강건우의 검이 해머를 잘라내는 것만으로 모자라 델프론의 양 손목을 잘라냈다.
-크아아아악!-
델프론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잘린 손목에서는 연신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델프론의 얼굴로 강건우의 니킥이 작렬했다. 델프론의 얼굴이 움푹 파이며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흐압!”
강건우가 태초의 검을 횡으로 휘둘러 델프론의 허리를 휩쓸어갔다. 이미 피해를 본 델프론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검을 맞았다. 강건우가 태초의 검에 힘을 잔뜩 불어 넣었다. 그그그극! 델프론의 허리가 갈라지며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제···. 제길!-
죽음이 코앞에 닥치자 델프론이 도망치려 했다. 육체를 버리고 정신체로 화해 만신전으로의 도망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신의 격을 완성한 강건우가 손을 뻗어 델프론의 정신체를 붙잡았다.
-어···. 어떻게?-
“글쎄. 해보니까 되네?”
비릿하게 웃은 강건우가 태초의 검을 정신체의 얼굴에 꽂아 넣었다. 델프론이 허망한 얼굴을 지으며 흩어졌다. 그리고 툭 하고 신의 파편이 떨어졌다. 강건우가 신의 파편을 주워들고 묵묵히 바라보았다. 바로 전에 델프론과의 전투에서 강건우는 신의 힘을 흡수했다. 데미트리스와의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신의 파편을 흡수하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런 강건우에게 카라가 입을 열었다.
“신의 파편은 조율신님이 만들어낸 아마겟돈의 힘으로 정화된 신의 힘이에요. 하지만 건우님이 신들과 싸우면서 흡수한 힘은 정화되지 않은 신의 힘이죠.”
“그럼 내가 겪은 건 마치 부작용 같은 건가?”
“네, 하지만 전화위복이 되었네요. 제가 예상했던 거보다 훨씬 빨리 신의 육체를 얻으셨어요.”
“신의 육체?”
“네, 신들은 정신체 즉 격으로도 존재하지만.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육체가 필요해요. 그 육체가 아닌 것에 강림할 경우 그 힘이 매우 제한적이 돼요.”
“그런 거였군.”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트리스도 델프론도 신들의 힘을 받아 현신하자 힘이 급격히 늘어났었다.
“그럼 신들은 전부 자기가 사용할 육체를 가지고 있는 건가?”
“네, 하지만 자기 행성의 생명체를 이용해 만들어내죠.”
“그래서, 다른 행성을 침공할 때는 사도를 이용하는 거군?”
“네, 신의 육체를 만들어내는 일은 매우 힘들고 그 육체를 다른 행성에서 사용하는 일은 더욱 힘들거든요. 한마디로 리스크가 너무 큰 거죠.”
“음···. 그럼 나도 지구에서만 조율신의 힘을 사용 가능한 건가?”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조율신은 다른 신들과 격이 달라요. 건우님은 이제 우주 어디로나 마음껏 다닐 수 있어요.”
“허···. 이건 마치 슈퍼맨이 된 느낌인데?”
강건우와 카라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아크로폴리스 쪽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강건우가 아크로폴리스로 시선을 돌렸다. 드워프, 강제 각성자들 그리고 자신의 동료이자 부하들인 초기 각성자들이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강건우가 카라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아크로폴리스로.”
“네, 건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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