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93화 (94/99)

아마겟돈(2)

아크로폴리스를 칠흙같은 어둠이 뒤덮었다. 파괴신들이 강림하자 강력한 기운이 대기를 감쌌다. 강림이 끝난 파괴자들의 등 뒤로 검은색 날개가 돋아났다. 날개에서 사방으로 뿌려지는 기운에 크리쳐들이 울부짖었다. 강림이 끝난 파괴자 몇 명이 힘을 모아 땅에 거대한 소환진을 새겼다. 소환진이 새겨진 땅이 갈라지며 크리쳐들이 끝없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크리쳐들의 모습은 절망적이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제2의 고향이야.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지켜내자!”

“우오오오!”

“공주님을 위하여!”

팔크람이 비장하게 소리치자 드워프들이 무기로 방패를 두들기며 함성을 질렀다. 성벽 위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던 권율 중령이 부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관, 모든 대원에게 전달해. 드워프들에 합류한다. 반드시 보호막과 성벽을 지켜야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력을 동원해 마나 타워를 운용하도록.”

“네!”

지시를 마친 권율 중령이 성벽 아래를 바라보았다. 팔크람과 드워프들의 투지가 여기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권율 중령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품에서 꺼낸 지갑을 열자 가족사진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진을 바라보던 권율 중령이 지갑을 품속에 다시 넣었다.

“여보, 애들아. 이제 만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구나.”

씁쓸하게 중얼거린 권율 중령이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성문에는 해병대원들이 집결해있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인류의 희망이다. 반드시 지켜내야만 한다. 모두 해병의 정신을 보여주러 가자!”

“아악!”

“네! 중령님!”

“적들은 제 시체를 넘어야만 할 겁니다!”

권율 중령이 성문을 지키는 병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이 활짝 열리자 잔뜩 사기가 오른 해병대원들이 몰려나갔다. 성문 밖은 어느새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쾅! 쾅! 에너지 대포가 크리쳐들을 향해 불을 뿜고 있었다. 작동을 시작한 마나 타워에서 마나 광선이 쏘아져 나와 일대를 휩쓸었다. 드워프들은 방패를 곧게 세운 채 크리쳐들의 돌격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막아! 뚫리면 끝이야!”

“방패를 놓치지 마! 정신 차려!”

“드워프들의 뚝심을 보여줘!”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성문을 나와 합류한 해병대원들이 마나 런쳐를 이용해 사격을 시작했다.

“드워프들의 앞쪽으로 화력을 집중해라!”

“마나 수류탄을 아끼지 마!”

“드워프들에게 회복 물약을 건내!”

해병대의 합류하자 드워프들이 크게 함성을 지르며 힘을 냈다···. 드워프들의 앞쪽으로 몰려오던 크리쳐들이 해병대원들과 방어시설의 집중포화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도끼를 휘두르며 활약하던 팔크람이 드워프 방어진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팔크람에게 권율 중령이 다가왔다.

“팔크람님, 크리쳐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응, 봤어. 하지만 이제 진짜 적들이 나타날 거야. 긴장 풀지 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권율 중령이 건내는 회복 물약을 단숨에 마신 팔크람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크리쳐들을 쏟아내던 소환진이 멈춰 있었다. 잠시 후, 멈춰 있던 소환진이 맹렬한 빛을 내뿜었다.

“설마?”

“팔크람님 무슨 일입니까?”

“제길···. 파괴신의 사도를 소환하고 있어.”

“사도 말입니까?”

권율 중령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팔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옛날에도 소환진에서 크리쳐들이 몰려나오고 나서 사도들이 나왔어. 바로 지금처럼 말이야.”

“음···. 사도들은 얼마나 강한 겁니까?”

“S 랭크 각성자 정도지.”

팔크람의 말에 권율 중령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지금 전력으로는 크리쳐를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팔크람과 권율 중령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적들은 재차 공격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소환진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사도들의 소환되었다.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사도들은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음······.”

사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에 권율 중령이 침음성을 흘렸다. 팔크람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사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행성과 지구의 상황이 겹친 것이었다.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무기를 으스러질 듯 붙잡고 있었다.

“드워프의 원수들!”

“비참하게 죽어간 동족들의 원한을 갚아주겠어.”

비롯해 열세인 상황이었지만 드워프들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해병대원들도 전의를 다졌다.

“오···. 온다!”

“다들 사격준비!”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쏘지 마!”

전열을 가다듬은 크리쳐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뒤를 사도들과 초기 각성자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파괴자들은 전선의 뒤편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의 힘까지는 필요 없다는 느낌이었다.

크오오오! 캬아아!

사도들의 기운을 받은 크리쳐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텅! 텅!

“물러서지 마라! 버텨!”

“으아아아아!”

드워프들이 방패로 크리쳐들을 막아내며 도끼를 휘둘렀다. 해병대원들의 마나 런쳐도 다시 불을 뿜었다. 인간과 드워프 그리고 몰아치는 크리쳐들의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때였다. 크리쳐들의 뒤쪽에서 다가오던 사도들이 칠흑의 빛을 뿜어내며 공격을 시작했다.

-대적하지 마라! 죽음만이 기다릴 뿐!-

-크아아!-

-크륵! 크륵-

사도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사도들의 힘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드워프들과 해병대원들이 쓰러져 나갔다. 팔크람과 권율 중령이 막아섰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을 거대한 괴물이 막아섰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던 에일리언 같은 모습의 사도였다.

-가소롭군. 저항하지 말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해라.-

두 사람의 머릿속으로 사도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팔크람이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소리쳤다.

“흥! 네놈 따위에게 다시 질 것 같아?”

파괴신의 사도가 팔크람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한차례 팔크람을 쳐다본 사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호오. 낯익다고 했는데. 파이런의 사도였군?-

“......”

-그런데···. 사도의 힘을 상실했나 보군? 그런데도 나에게 맞서겠다는 건가?-

“시끄러워! 너 정도는 지금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팔크람이 양손으로 잡은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파괴신의 사도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어리석군. 신의 사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말을 마친 파괴신의 사도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팔크람이 다급히 도끼를 들어 막았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팔크람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권율 중령이 마나 런쳐로 공격을 했다. 하지만 파괴신의 사도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단 한방에 팔크람을 전투 불능으로 만든 파괴신의 사도가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으윽!”

권율 중령이 황급히 물러났지만, 꼬리의 끝부분이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권율 중령의 복부에 커다란 자상이 생기며 피가 쏟아졌다. 두 사람의 고전을 하고 있을 때 아크로폴리스의 방어선 역시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크리쳐까지는 어찌 막아냈지만 강력한 사도의 힘을 버텨낼 수 없었다.

“안돼···. 안돼!”

“쿨럭!”

팔크람과 권율 중령이 힘을 내려 했지만, 파괴신의 사도는 너무 강력했다. 눈앞에서 허무하게 쓰러져가는 부하들의 모습에 팔크람이 눈물을 쏟았다. 얼마 남지 않은 동족들이었다. 잠시 후, 드워프와 해병대의 방어선 일부분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크오오!

캬아악!

방어선이 뚫리자 크리쳐들이 보호막에 벌 때처럼 달려들었다. 해병대원들이 뚫린 방어선을 메꾸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애처롭게 버티던 보호막이 크게 출렁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성벽에 설치된 에너지 대포와 마나 타워는 사도들의 공격에 무력화되어갔다. 절망적인 상황에 드워프들과 해병대원들의 얼굴에 패색이 짙어졌다. 팔크람과 권율 중령은 파괴신의 사도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권 중령! 도망쳐. 여긴 내가 막을게.”

팔크람이 소리쳤다. 입고 있던 갑옷은 넝마가 된 지 오래였고 도끼는 반쯤 부서져 있었다. 권율 중령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회복 물약을 마셔 복부의 상처는 간신히 지혈했지만, 온몸이 엉망이었다. 입가로 연신 피를 게워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쿨럭···. 싫습니다. 전우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습니다.”

“바보야! 너라도 돌아가서 성벽 안을 정비해야지!”

“......알겠습니다.”

-크크큭. 내가 도망가게 놓아둘 거 같나?-

파괴신의 사도가 권율 중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캉! 팔크람이 도끼를 들어 막아섰다.

-귀찮게 굴지 마라!-

파괴신의 사도가 다리를 들어 팔크람의 복부를 걷어찼다. 팔크람의 몸이 날아가 성벽에 처박혔다.

“팔크람님! 제길!”

권율 중령이 남은 힘을 짜내 마나 런쳐를 쏴댔다. 팅! 팅! 두 팔을 모아 마나 런쳐를 막은 사도가 순식간에 다가와 권율 중령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권율 중령의 몸이 땅속에 처박혔다.

-이제 끝이다.-

파괴신의 사도가 두 손에 검은 기운을 모았다. 힘이 절정에 다다르자 권율 중령을 향해 쭉 뻗었다. 검은 기운이 권율 중령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파괴신의 사도와 권율 중령의 사이로 흐릿한 인영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무 빠른 속도라 파괴신의 사도는 알아챌 수 없었다. 쾅!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크하하하!-

파괴신의 사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폭발로 생겨난 흙먼지 사이로 번쩍하는 빛이 터졌다.

-이······. 이게? 크아악!-

쿵!

파괴신의 짤막한 비명과 함께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주인을 잃은 몸통이 허무하게 넘어갔다.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감고 있던 권율 중령이 눈을 떴다. 그리고 왈칵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거···. 건우군!”

“권 중령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나타난 인영은 강건우였다.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던 강건우가 몸을 날리려 했다.

“건우군! 혼자는 위험하네. 그리고 드워프들과 해병대원들이 위험하네!”

권율 중령의 외침에 강건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혼자 온 게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권율 중령이 물었다. 강남에서부터 여기까지는 제법 거리가 되었다. 적들은 그 시간까지 완벽히 계산해 습격을 해왔다. 많은 수의 병력이 돌아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위쪽을 보십시오.”

강건우가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쪽의 하늘을 가리켰다.

“저···. 저건!”

권율 중령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리고 이내 환하게 웃었다. 안도감이 밀려오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역사적인 승리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저는 파괴신들을 처리하러 가겠습니다.”

“알겠네. 그래도 몸조심하게.”

“알겠습니다.”

강건우가 적들의 한복판으로 몸을 날렸다. 주변의 크리쳐들과 사도들이 덤벼들었지만 무시했다. 강건우의 목표는 오직 강림한 파괴신들이었다. 강건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권율 중령이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크기의 요새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하늘 요새.”

강건우가 가진 최강의 전략 병기. 하늘 요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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