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복(4)
아크로폴리스의 병력은 거침없이 진격했다. 간혹 신의 사도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강건우에게는 좋은 사냥감일 뿐이었다. 강건우는 신의 파편을 포인트로 바꿨다. 쌓여가는 포인트에 강건우의 얼굴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카라는 신의 파편의 정보를 분석하며 직접 전쟁에 가담한 수호신들의 명단을 추렸다.
“건우님, 명단을 추려봤어요. 여태껏 처치한 신의 사도들은 모두 온건적인 성향을 지닌 신들의 사도에요.”
“그런 것도 알아?”
“그럼요, 제게는 양 진영 신들의 명단이 다 있어요.”
“데미트리스는 무슨 짓을 꾸미는 걸까?”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침묵했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수호신들이 호전적인 성격과 온건한 성격의 신들로 나뉘어있다지만 추구하는 목표는 같았다. 데미트리스는 대표적인 호전파의 신이었다. 이번 강림의 총책을 맡은 신이었다. 반대성향의 신들의 힘을 줄이기 위해 사도들을 의도적으로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라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다. 파괴신 진영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 사도라는 전력을 낭비할 거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알 수 없어요. 일단 빠르게 강남으로 진격해요. 데미트리스를 잡아서 의도를 알아내야겠어요.”
“알겠어.”
이후로도 강건우와 아크로폴리스의 병력은 막힘 없이 진격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강건우의 앞을 가로막는 사도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각성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남에 병력을 집중시켜 일전을 치르겠다는 거군.’
강서구를 제외한 서울의 전 지역이 생츄어리의 영역이 되었다. 하지만 진격을 하는 내내 각성자는 물론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강건우는 당연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강림을 통해 영역화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방어시설조차 변변치 않아 보였다. 생츄어리가 각성자의 양에서는 앞서지만, 개개인의 질은 아크로폴리스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았다. 방어시설이 잘 갖춰진 강남에 병력을 집중해 일전을 치루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쾌속으로 진격한 아크로폴리스의 병력이 생츄어리의 초입에 도착했다. 생츄어리는 눈부실 정도의 빛을 뿜어내는 방어막으로 감싸져 있었다. 강건우가 태초의 검을 들어 보호막을 강력하게 내리쳤다. 쾅! 폭음이 들리며 보호막이 출렁거렸다. 보호막을 한차례 내리친 강건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런 강건우의 곁으로 오민석을 비롯한 초기 각성자 모두가 다가왔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보호막도 생각보다 너무 약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강건우의 말에 오민석이 보호막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이내 얼굴을 굳혔다.
“건우야, 보호막에 주입되는 포인트를 최대치로 낮추어 논거 같아.”
강건우가 박태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태정이 형, 전차의 포격 기능으로 보호막을 부숴줘. 그리고 모든 강제 각성자들 전부 전투태세에 돌입해.”
“알겠습니다.”
“주환이 형이랑 진호는 강제 각성자들 근처에 머물면서 적이 몰리는 곳으로 화력을 집중해줘. 진호 너는 특히 적의 초기 각성자들을 저격하는 데 집중해줘.”
강건우의 지시에 김주환과 이진호가 각오를 다지며 대답했다.
“알겠다. 건우야.”
“알겠습니다. 건우님도 건승하기 바랍니다.”
강건우가 이번에는 오민석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오민석이 얼굴에 결연함이 서렸다.
“민석이 형은 나랑 김한나에게 가자. 형과 뜻을 함께했던 각성자들을 설득해줘.”
“알겠어. 고맙다 건우야.”
한때 동료였던 자들을 구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오민석은 강건우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꼈다.
“태정이 형은 강제 각성자들을 지휘해줘.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건우님,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박태정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건우가 태초의 함성을 사용해 크게 소리쳤다.
“이제 시작이다! 모두 죽지 마라!”
“와아아아!”
“할 수 있어!”
“가자가자!
태초의 함성 효과를 받은 각성자들이 온몸에 힘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뜨거운 함성을 내뱉으며 전의를 다졌다. 그 순간, 드워프 전차에서 포격이 시작됐다. 콰앙! 쾅! 포신이 불을 뿜으며 보호막을 두들겼다. 잠시 후 집중적으로 공격받은 보호막이 찢어지며 강건우 등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생겼다.
”민석이 형, 가자.“
”알겠어.“
강건우와 오민석이 보호막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강건우 직속으로 배치받은 해병대원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박태정이 무전기를 들어 명령을 내렸다.
”각 팀의 팀장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우리도 생츄어라 안으로 진입한다.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말고 민간인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라.“
-토르 팀. 수신-
-제우스 팀. 수신 완료했습니다.-
.....
-환인 팀 수신했습니다.-
각 팀의 팀장들이 차례대로 무전에 답해왔다. 그러자 각 전차에서 강제 각성자들이 우르르 내려 진형을 갖추었다. 진형을 모두 갖추자 전차가 느리게 이동했다. 그 주위를 김주환과 이진호가 호위했다. 박태정은 전차에 올라타 주변을 살폈다.
”피해 강건우다!“
”그냥 지나쳐 보네!“
강건우가 생츄어리 안으로 진입했다. 여기저기 건물에 숨어있던 수호진영의 각성자들이 고함을 질러댔다. 그 소리를 들은 강건우가 픽하고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적들은 지금 자신을 김한나가 상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데미트리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보네?“
강건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괴신 헬 리가 강림한 아바타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당했다. 하지만 신들은 강건우의 힘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던전 안으로의 강림이었고 신의 파편을 이용했기 때문에 헬리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신들은 이 결정으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할 것이었다.
”지금 이 결정 후회하게 해주지.“
강건우와 오민석 그리고 해병대원들이 생츄어리의 중심부로 빠르게 이동했다. 생츄어리의 내부의 모습에 해병대원들이 탄식을 흘렸다. 아크로폴리스와 비교하면 정돈되어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과 여기저기 파손되어있는 도로. 단체 숙소처럼 보이는 컨테이너와 급식소. 수호자의 생츄어리라고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중심부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화려한 양식의 건물들과 상점들. 잘 정돈된 도로. 너무나 상반된 모습이었다. 해병대원들의 입에서 다른 의미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여전하네. 여기는. 선택받은 자들만 누리는 안락한 생활.“
”....“
강건우의 말에 오민석의 얼굴이 붉어졌다. 강건우가 오민석에게 말했다.
”형은 이런 모습을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했었지.“
”...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어. 김한나는 초기 각성자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 없었어.“
대화를 나누며 달리던 두 사람의 눈앞으로 신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강건우가 멈춰 서며 손을 들었다. 뒤따르던 해병대원들이 일제히 멈춰섰다.
웅웅! 웅웅!
신전 주변에 설치된 탑으로 하늘에서 하얀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탑에 모인 기운은 신전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일견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건우님, 수호신들이 신전으로 힘을 집중하고 있어요.“
”이렇게까지 하는데 파괴신들이 가만히 있다고?“
”그러게요. 제가 파괴신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올게요.“
카라가 강건우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눈을 감고 잠들었다. 파괴진영의 만신전으로 향한 것이었다. 강건우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강건우를 스쳐 지나갔다. 신들은 아마겟돈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수호자와 파괴자들에게 퀘스트를 부여하고 상점을 통한 지원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자신들이 가진 힘을 한 곳에 집중한다면 다른 지역이 위험할 것이었다. 파괴신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수호신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그때였다. 잠들었던 카라가 눈을 번쩍 뜨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건우님! 큰일 났어요! 파괴신의 만신전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강건우가 깜짝 놀라 물었다. 카라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저를 못 들어오게 막아놓았어요.“
말을 마친 카라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이런 미친놈들이!“
말을 마친 카라가 정신을 집중했다. 아크로폴리스의 상황실과 연결을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신전에 내리꽂히던 기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웅웅!
신전이 한차례 울리더니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김한나가 나타났다. 온몸에 광채를 내뿜으며 등에는 빛의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호호! 강건우, 모든 게 네 뜻대로만 될 거라 생각한 거야?“
”김한나! 아니 데미트리스! 무슨 헛소리야?“
김한나가 뒤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신전에서 생츄어리 소속의 초기 각성자들이 나타났다. 흰색의 광채를 내뿜는 모습이 김한나와 같았다. 등에는 역시 빛의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김한나의 것에 비하면 볼품없었지만 느껴지는 힘은 강력했다. 오민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우, 민희, 재철! 나다 민석.“
오민석이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름이 불린 초기 각성자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오민석이 당황하며 재차 말을 건넸다.
”김한나는 너희들을 이용할 뿐이야! 무기를 버리고 이쪽으로 투항해.“
”......“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민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동료들의 행동이 이상했다. 빛의 기둥에서 나온 힘을 김한나가 흡수하고 있었다. 그 주변을 초기 각성자들이 호위하듯 서 있었다. 그때 초기 각성자들의 모습을 살펴본 카라가 침음성을 흘렸다.
”....사도에요. 초기 각성자들을 모두 사도로 만들었어요.“
”사도를 만드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어?“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고개를 저었다.
”사도는 신이 가진 힘에 따라 1~3명 내외로 만들 수 있어요. 보통은 자기 행성에서 사도를 만드는데···.“
카라가 말을 하던 중 뭔가를 깨닫고 소리쳤다.
”맞아요! 여기까지 오면서 해치웠던 사도들이 죽으면서 생긴 공백으로 만든 거예요.“
”그게 말이 돼? 왜 멀쩡한 사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래야 하는데?“
”자신들의 행성에서 만든 사도들은 지구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해요. 그래서 지구인 중에서도 강력한 초기 각성자를 사도로 만든 거예요.“
강건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호신들이 규정을 어기고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했다. 문득 파괴신들이 떠올랐다. 수호신이 이렇게 나온다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제길···.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
”.....아마겟돈의 제약이 약해지고 있는걸 알고 있는 거죠.“
”내 손으로 다 죽여주겠어.“
강건우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가슴속에서는 수호신과 파괴신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그때였다. 눈앞의 빛의 기둥이 뚝 하고 끊겼다. 힘을 흡수한 김한나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오호호. 강건우! 오늘 여기를 네놈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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