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86화 (87/99)

성녀 혹은 악녀(5)

서울의 젖줄인 한강. 서울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이던 이곳이 지금 난리통이었다. 사람들은 한강에서 멀어지려 안간힘이었다. 하지만 물러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투의 여파가 미쳤다. 격렬한 전투에 한강 물이 해일처럼 사람들을 덮친 것이었다. 그 난리중 에서 강건우와 송기현은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기현아, 아무래도 내가 개입해야 할 것 같다.”

“네? 정체가 드러나실 텐데요?”

“상관없어. 꼭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거든.”

말을 마친 강건우가 크리쳐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송기현이 이내 뒤따랐다.

“막아! 촉수를 얼려!”

“제길! 강이 다시 깨지기 시작한다.”

“잘라낸 촉수를 조심해. 살아 움직인다.”

전투는 치열했다. 오민석이 합류했지만, 기습의 효과 그뿐이었다. 크리쳐가 지형의 이점을 살려 공격을 퍼부었다. 수세에 몰리자 오민석이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뭉쳐서 싸워. 흩어지면 촉수에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모두 민석님 곁으로 모여!”

“흥! 우리가 배신자의 명령을 들을 이유가 없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각성자들의 의견이 나뉘었다. 그때였다. 크라켄의 몸에서 검은색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촉수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검은 기운이 맺힌 촉수가 오민석 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악!”

“컥!”

“씨발! 이건 뭐야.”

곳곳에서 각성자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여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오민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힘을 숨겨두고 있었던 거냐?’

생각에 빠진 오민석에게 촉수가 날아들었다. 황급히 공격을 피한 오민석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눈앞의 크리쳐는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종류였다. 예측되는 랭크는 최소 A였다. B 랭크인 자신이 제일 높은 랭크인 지금의 전력이었다. 더군다나 하나의 팀으로 뭉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따르는 각성자 몇 명. 그렇지 않고 따로 떨어져 뭉쳐있는 각성자 몇 명. 그나마 약한 전력이 두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브레스다!”

“피···. 피햇!”

그 순간. 크리쳐의 입에 강력한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민석도 자리를 피하려 했다. 순간, 오민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길! 브레스가 사람들을 노린다. 막아야 해!”

브레스의 방향이 문제였다. 연약하게도 사람들이 있는 올림픽대로 방향을 노리고 있었다. 오민석이 소리쳤지만, 각성자들은 모두 몸을 피한 후였다. 도로 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크리쳐의 공격을 목격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 흩어지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너무 많은 인파가 문제였다. 곳곳에서 보호막이 펼쳐졌다. 하지만 크리쳐의 브레스를 막아낼 수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민석님! 피하십시오. 개죽음입니다.”

오민석을 따르던 각성자들이 소리쳤다. 크리쳐의 입에 뭉친 기운이 극에 달했다. 오민석이 방패를 정면으로 들었다. 그리고 신의 가호 스킬을 발동했다. 방패에서 하얀색 기운이 퍼져나가 장막을 만들어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걸로는 브레스를 다 막아 낼 순 없어···. 다른 방법이 필요해.’

크오오오!

크리쳐의 입에서 브레스가 폭사 됐다. 검은색 브레스가 오민석을 덮치려던 순간이었다. 강건우가 나타나 커다란 방패로 브레스를 튕겨냈다. 모든 것을 지워버릴 것 같던 브레스가 공중으로 튀겨져 나갔다. 잔뜩 성이 난 크리쳐가 힘을 더 쏟아부었다.

크오오! 크오!

하지만 강건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거대한 브레스를 한 명의 인간이 막아내고 있었다. 신화적인 장면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아···. 이제 살았어.”

“흑흑···.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수호신들이시여. 감사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강건우를 수호신의 소속으로 오해했다. 잠시 후, 브레스의 공격이 끝났다. 크리쳐는 상당한 힘을 쏟아부었는지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다. 강건우가 벙찐 얼굴을 하고있는 오민석을 돌아보았다.

“민석 형님, 오랜만입니다.”

“거···. 건우님? 어떻게 여길?”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크리쳐부터 처치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건우가 몸을 날렸다. 온몸에서 회색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당황한 크리쳐가 촉수 공격을 미친 듯이 퍼부었다. 하지만 강건우의 몸에 닿지 못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강건우가 검에 힘을 집중했다. 화르륵! 검에 홍염이 피어올랐다. 강건우가 날아오는 촉수를 밟고 몸을 날렸다.

“흐압!”

강건우가 검을 머리 위에서 크게 내리그었다. 위기를 느낀 크리쳐가 촉수를 모두 모아 정면을 방어했다. 서걱! 촉수들이 일시에 잘려나갔다. 촉수를 뚫은 공격이 크리쳐의 얼굴에 자상을 남겼다.

“끄아아아악!

크리쳐의 입에서 끔찍한 괴성이 터져나왔다. 격렬한 고통에 크리쳐가 강속으로 숨어 들으려 했다.

”어딜!“

잘려나간 촉수 위에 서 있던 강건우가 다시 몸을 날렸다. 물속으로 사라지려는 크리쳐의 몸통에 강건우의 검이 작렬했다. 회색의 기운이 크리쳐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애처로운 신음성과 함께 크리쳐가 강 위로 둥둥 떠 올랐다.

”와아아! 이겼다.“

”만세! 저 각성자분 정말 강하다!“

”이제 어떤 크리쳐가 와도 걱정 없겠어.“

사람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강건우가 피식 웃었다. 자신을 수호자 소속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물론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송기현이 강건우의 옆에 모습을 나타냈다.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크로폴리스로 운반하겠습니다.“

크리쳐에 다가간 송기현이 손을 뻗었다. 붉은색 기운이 크리쳐를 감싸더니 번쩍하고 사라졌다. 차원 분리로 크리쳐를 수납한 송기현이 강건우에게 돌아왔다.

”기현, 팔크람에게 가져다주고 와. 마정석 부족하다고 난리였어.“

”네, 금세 다녀오겠습니다.“

송기현은 몸이 픽하고 사라졌다. 강건우가 방패를 들어 점검했다. 강력한 공격을 막아냈지만 작은 기스하나 없었다. 강건우가 장비의 성능에 감탄했다.

”건우님···.“

”아! 민석 형님.“

오민석이 강건우에게 다가왔다. 방금전의 전투로 지친 얼굴이었다. 강건우가 오민석에게 싱긋 웃었다.

”어떻게 여기에 계신 겁니까?“

”수호신의 강림 때문에 조사할 게 있어서요.“

오민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강건우가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각성자들을 힐끗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각성자들이 움찔거렸다. 강건우의 존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강건우가 오민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민석 형님,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강건우가 김한나의 각성자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배신자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강건우의 말에 김한나의 부하들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배···. 배신자라니요! 말조심하십시오.“

”흥! 저희 내부의 일입니다. 굳이 알려고 하는 의도가 뭡니까?“

”민석님, 그냥 무시하십시오.“

각성자들의 반응에 강건우의 궁금증이 커졌다. 미세하지만 각성자들의 반응이 달랐다. 일부는 오민석을 걱정하는 듯했다. 또 일부는 적개심 어린 눈으로 오민석을 바라보았다. 묵묵히 있던 오민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건우님, 여기서 나눌 대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잠시 자리를 옮겨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강건우와 오민석이 한적한 곳을 찾아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인파 위를 날아가자 커다란 환호성이 터졌다. 도로 위를 벗어난 두 사람이 한강 변의 산책로에 도착했다.

”여기가 이야기 나누기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제 말씀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오민석이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곧 결심을 내리고 말을 시작했다.

”건우님, 사람들을 구해 주십시오. 김한나를 막아야 합니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민석의 말에 강건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민석의 얼굴에 은은한 분노가 떠올랐다.

”김한나가 가면을 벗은 것은 서울의 파괴자들이 모두 죽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강제 각성자들을 무리한 던전 공략에 밀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오민석의 말에 강건우의 얼굴에도 노기가 떠올랐다.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김한나는 강제 각성자들을 희생시키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던전의 상태나 공략 정보를 얻는데 강제 각성자들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거나 버려진 강제 각성자들의 수는 셀 수 없었다.

‘단지, 그때는 서울의 파괴자들 때문인지···. 대놓고 희생시키지는 않았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거였지. 그런데 이제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있다. 내가 파괴자들을 죽인 것이 나비효과가 된 것인가···.’

김한나가 거리낌 없이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수호신의 강림. 서울의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 이러한 요소들이 김한나의 욕망을 부채질 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끌어모아 생츄어리에 정착시킨 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일이 있다면 지금 생츄어리로 향하는 사람들은 왜 모르는 겁니까?”

“생츄어리에 도착한 사람들은 한동안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받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세뇌되기 시작합니다.”

김한나의 스킬인 성녀의 광휘[Unique]는 생츄어리에 속한 사람들에게 강한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에 맹목적인 신앙심과 존경심을 심어주는 스킬이었다. 김한나는 그 스킬을 이용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용하고 있었다.

“김한나의 스킬을 이용하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김한나는···. 그녀는 성녀가 아닙니다. 악녀 그 이상입니다.”

오민석의 말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김한나의 모습 때문에 생츄어리를 떠나 오신 겁니까?”

“네···. 여러 번 부당함을 말하자 눈 밖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틀어진 건 이번 강림 때문입니다. 김한나는 강림을 통해 서울 일대를 정화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모두 이용할 생각입니다. 저는 그걸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뜻이 맞는 각성자들과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 했지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강건우가 깜짝 놀랐다. 귀중한 전력인 초기 각성자를 내치다니. 이번 강림을 통해 얻어지는 힘이 그 이상이란 말이었다.

“초기 각성자들을 내쳤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쫓겨났습니다. 다른 각성자들은 아직 생츄어리에 남아있습니다.”

“아···. 그럼 조금 전에 민석 형님을 옹호했던 사람들이?”

“네···. 맞습니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이제 김한나의 의도는 명백히 알게 되었다. 강제 각성자들을 던전에 갈아 넣을 생각이었다. 거기서 얻어지는 포인트로 자신과 측근들의 힘을 기를 생각일 것이었다. 아마겟돈의 제약이 약해지며 신들의 개입이 가능해진 것도 자신감을 가진 이유였을 터였다.

심각한 표정의 강건우에게 오민석의 간절한 부탁이 들려왔다.

“건우님이라면 김한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제발 이용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제 동료들을 구해 주십시오.”

오민석의 말에 깊은숨을 내쉰 강건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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