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85화 (86/99)

성녀 혹은 악녀(4)

한강을 따라 이어진 올림픽대로. 염창JC를 따라 도로 위로 올라온 강건우가 눈을 크게 떴다. 도로를 가득 채운 인파가 강남 쪽으로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엽기적인 광경에 강건우도 송기현도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현아, 이게 무슨 일이냐?

”그···. 그러게요···.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요?“

순간, 하늘 위에서 찢어질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아아악!

구름을 뚫고 나타난 것은 크리쳐 하피였다. 잠시 창공을 배회하던 하피들이 인간을 발견하고는 입맛을 다시며 쏟아져 내렸다.

”어어? 형님!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

하피의 무리가 인간의 행렬을 덮치려 할 때였다. 번쩍 일행의 중간에서 하얀빛이 터져나왔다.

캉! 캉!

날카로운 하피의 발톱이 하얀색 보호막과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났다. 보호막 아래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하피들은 공격이 막히자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하피가 공격을 하는 곳마다 하얀색 보호막이 펼쳐졌다. 캉! 캉! 여기저기서 하피의 공격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지친 하피들이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와! 이번에도 수호신의 가호가 우리를 지켰어!“

”만세! 생츄어리까지 간다면 우린 살아남을 수 있어!“

”아아! 수호신님들이시여······.“

하피가 물러가자 곳곳에서 수호신들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건우와 송기현은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현, 우리도 합류하자.“

”네? 저 속으로요?“

”응,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봐야겠어.“

말을 마친 강건우와 송기현이 인파 속으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조율자의 상점에서 구매한 허름한 망토를 나눠 입어 별다른 위화감이 없었다. 인파에 합류한 강건우의 귓가로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봐. 진짜 김하나라는 수호자의 생텀? 하여간 거기로 가면 다 받아준다는 거야?“

”멍청아. 김하나가 아니라 김한나. 생텀이 아니라 생츄어리.“

”아···. 어쨌든 받아주는 게 맞냐고?“

”그래, 그 각성자들이 돌아다니면 하는 말 못 들었어? 이번에 강남을 중심으로 강동, 강북 등을 안전한 곳으로 수호신의 힘으로 정화한다고 했어. 크리쳐들이 없는 안전한 곳이 될 거라나?“

”하~ 대박이네. 진짜 내 평생 신의 존재를 믿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뿐만이 아니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도 머물 곳도 제공해준다자너.“

”진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어.“

”당연하지.“

사람들의 대화를 들은 강건우가 적지 않게 놀랬다. 이번 강림의 목적이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님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강서구를 제외한 서울 대부분을 정화해 안전지대화 한다 했다. 수호신의 목적과 일치하는 행위였다. 다만 그 대상이 김한나라는 것이 미덥지 않았다.

”건우님,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저희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데요?“

송기현이 밝은 얼굴로 말을 건네왔다. 김한나가 어떤 심성을 가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음···. 수상해. 기현아 좀 더 조사를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가시죠.“

강건우와 송기현이 인파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그동안 많은 고생을 겪은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어린아이들은 형편없이 말라 있었다. 노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도 없었다. 생존의 경쟁에서 도태된 것이었다. 허름한 행색에 생기 없는 얼굴 지금 지구가 처한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커다란 수정을 들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생기가 가득했다.

”저 사람들이군. 아까 보호막을 만들어낸 게.“

”저 수정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는데요?“

”응, 가까이 가서 물어봐야겠어.“

강건우가 수정을 들고 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연신 떠들어 대고 있었다. 남자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치곤 했다.

”하하. 이게 말이야. 김한나님께서 각성자들을 통해 나누어 주신 수호결계 수정이란 말이지.“

”어머! 오빠 대단해요. 그건 어떻게 받게 된거에요?“

”나처럼 수호신들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 중 선별해서 나눠준 거지.“

”대단하십니다. 꼭 저희 곁에 있어 주십시오.“

”하하! 걱정마세요. 생츄어리에 도착할 때까지 제가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흐뭇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남성이 강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한껏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이봐! 거기. 왜 웃는 거지?“

남자가 말하자 주변의 시선이 강건우에게 꽂혔다. 강건우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괜한 소란을 피우기는 싫었다. 아직 알아볼 것이 많이 남았다.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쓸데없는 농담을 해서.“

”네네, 맞습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강건우와 송기현의 말에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심하세요. 크리쳐들의 습격을 감시하느라 제가 얼마나 예민한지 상태인지 아십니까?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자신의 모습은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강건우와 송기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두 사람의 귓가로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흥! 겁쟁이들 한마디 들었다고 바로 도망치는 꼴이라니.”

“그러게 말이에요. 보호받고 있는 주제에 행동거지를 조심해야지.”

“종필님, 크리쳐들이 공격해오면 저 사람들은 보호해 주지 마세요.”

사람들의 말에 수정을 든 남자 종필이 크게 웃었다.

“하하! 그럴 수는 없죠. 이 수정은 모두에게 공평히 적용하라고 주신 거니까요.”

“역시! 멋져요.”

“정말 대인배이십니다.”

강건우와 송기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두 사람이 수정을 든 남자 종필의 무리에게서 멀어졌다.

“형님, 저 수정 보호막이 생겨날 때마다 막대한 포인트가 들어갈 텐데요.”

“그러게. 더군다나 수정이 한두 개가 아니야.”

강건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 하피의 습격 때 본 것만 수십 개가 넘었다. 더군다나 하피의 습격은 행렬 일부분에만 가해졌다. 끝이 안 보이는 행렬을 생각해 볼 때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일 수도 있었다.

“수호자 김한나라는 여자. 제법 능력이 좋은가 보네요. 이렇게 사용할 포인트도 있고 말이죠.”

“능력이 좋다기보단 수단이 좋은 거지.”

강건우의 말에 송기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의 강건우답지 않게 날카로운 어투였다.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곳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했다. 강건우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 서울의 상황을 물어보고는 했다. 그렇게 걷고 있을 때였다. 행렬의 왼쪽에 있는 한강에서 커다란 물보라가 일어났다.

쿠오오오오!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였다. 강건우가 한강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촉수들이 강물을 뚫고 사람들에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촉수들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수정을 보유한 사람들이 황급히 보호막을 쳤다. 촉수들은 영리하게도 보호막의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을 노렸다. 끔찍한 비명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송기현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형님! 크라켄입니다.”

“아니야, 촉수의 크기를 자세히 봐. 크라켄이라기엔 너무 작아.”

강건우의 말에 송기현이 촉수를 자세히 봤다. 역시 강화도에서 만났던 촉수에 비하면 매우 작았다.

“그럼···. 저건 무슨 크리쳐일까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형님,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잠깐 기다려, 행렬의 앞쪽에서 초기 각성자들이 다가오고 있다.”

송기현은 금세라도 튀어나갈 듯했다. 하지만 강건우의 제지로 참고 있었다. 그 순간, 행렬의 앞부분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한강으로 몸을 날렸다.

“왔군.”

몸을 날린 사람들은 김한나 소속의 초기 각성자들이였다. 구원자의 등장에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오셨다! 이제 살았어.”

“역시. 한나님은 신이 보내준 구원자셔!”

“수호신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곧 경악성으로 바뀌었다. 한강으로 몸을 날린 초기 각성자들이 물에 빠질 듯 보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각성자 중 한 명의 손에서 푸른 냉기가 서렸다. 각성자가 손을 한강의 수면으로 내밀었다. 쩌저정! 푸른 냉기에 적중당한 한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크오오!

한강의 깊은 곳에서 크리쳐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얼어붙은 한강에 착지한 나머지 각성자들이 촉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각자의 무기에서 하얀색 빛이 터져나왔다. 서걱! 서걱! 각성자들의 공격에 촉수가 허무하게 잘려나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쩌적!

각성자들에게 승기가 기우는 듯싶은 순간 얼음이 갈라졌다. 그리고 크리쳐의 본체가 나타났다. 신화 속에서 묘사되던 크라켄의 모습 그대로였다.

“형님! 크라켄이 맞아요.”

“아니, 느껴지는 힘이 크라켄에 비교해 형편없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전투는 계속됐다. 몸통을 드러낸 크리쳐가 입에서 검은색 기운을 뿜어냈다. 사방으로 퍼지는 검은 기운에 초기 각성자 몇 명이 적중당했다.

“끄아악!”

“제길! 병민아!”

“어서 물약을 먹어.”

“진철님은 어디 계신 거야?”

초기 각성자들이 물에 뜬 얼음 조각 위에서 고함을 질러댔다. 그 순간 강 속에서 촉수들이 다시 솟아올랐다. 촉수들이 허둥대는 각성자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촉수 하나당 한 명의 각성자였다. 마치 유도 미사일 같은 모습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인파 속을 뚫고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다들 물속으로 피해!”

남자의 외침에 각성자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크리쳐가 있는 곳에 도착한 남자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크오오!

남자의 검에서 나온 하얀색 기운이 크리쳐의 눈에 적중했다. 크리쳐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크리쳐가 고통에 공격을 멈추자 남자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나며 남자가 솟구쳐올랐다. 남자의 뒤로는 물속으로 들어갔던 각성자들이 나와 있었다.

“빨리 강물을 다시 얼려.”

“네! 민석님.”

대답한 각성자가 손을 뻗자 강물이 다시 얼었다. 크리쳐의 주변이 얼어붙어 움직임을 제한했다.

“민석님, 어떻게 여길···.”

“떠나신 거 아니었습니까?”

“........”

오민석의 등장에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반가워했고 어떤 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오민석이 검과 방패를 고쳐잡았다.

“집중해. 지금은 크리쳐를 상대하는 게 먼저야.”

“아···. 네!”

“배신자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각성자 중 한 명이 오민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민석이 담담한 눈빛으로 그자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이라도 빠져줄까?”

“....그. 그건···.”

“그럼 입 닥치고 내 말이나 들어. 크리쳐를 먼저 해치운다. 알았어?”

“.....칫. 알겠습니다.”

오민석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각자의 무기를 다잡으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크리쳐는 어느새 물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한편, 멀리서 전투를 바라보던 강건우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있었다. 오민석의 등장과 각성자들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배신? 그게 무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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