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착(1)
헨릭은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멀쩡한 하늘이 갈라지며 한 명의 남성과 요정을 닮은 생명체가 나타났다. 고위급 마법사라 해도 마법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헨릭의 표정을 읽은 이진호가 다가왔다.
“헨릭,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진호 형님, 지금 나타난 저 마법사분과 요정님은 누구입니까?
“기현 형님이랑 카라님이야. 우리 동료지.”
이진호의 말에 헨릭이 감탄했다. 강건우 일행의 저력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한 개 영지를 초토화할만한 몬스터들을 벌레 죽이듯 짓밟았다. 거기다가 지금 나타난 고위 마법사와 요정족까지. 강건우는 분명 강력한 귀족 가문의 후예일 거로 생각했다. 헨릭이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한편 기사단과 강건우의 전투는 소강상태였다. 기사단이 리차드 백작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기사단이 모일수록 검은색 기운이 크게 뿜어져 나왔다.
“건우님. 저 기사단은 뭡니까? 크리쳐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파괴자들이 만든 크리쳐야.”
“네!? 파괴자 중에서 그런 능력을 갖춘 자가 있습니까?”
강건우의 말에 송기현이 크게 놀랐다. 크리쳐를 만들기 위해선 차원의 힘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더군다나 신의 힘이 있어야만 했다. 신이 아닌 송기현은 크리쳐를 만들기 위해선 신의 파편이 필요했다.
“반드시 처치해야 하는 놈이야. 살려두면 큰 위협이 되겠어.”
“어? 건우님, 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간격을 좁히고 모여든 기사단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의 힘을 공유한 것인지 검은색 기운이 기사단 전체에서 흘러넘쳤다. 그 선두에 리차드 백작이 있었다.
“기현아, 기사단 전체에 차원 분리를 써줘.”
“네에? 들어가는 포인트가 어마어마할 텐데요?”
송기현이 되물었다. 강건우라면 기사단을 처리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굳이 포인트를 써가면서 차원에 격리시킬 이유가 알 수 없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저 기사단 상하게 하면 속상해할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음···. 알겠습니다.”
송기현이 전방의 기사단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송기현의 머리에서 붉은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붉은빛 기운이 미간에 모여들자 송기현이 입을 열었다.
“차원 분리!”
미간에 모여있던 붉은빛이 전방으로 퍼져나갔다. 곧이어 붉은 기운이 기사단을 뒤덮었다. 기사단을 감싸던 검은 기운이 저항했다. 하지만 붉은 기운은 포식자처럼 검은 기운을 먹어치웠다. 결국, 붉은 기운이 승리했다. 검은 기운이 사라진 기사단이 멍하니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하나둘씩 모습이 사라졌다.
“크아아아!”
“크오오!
잠시 후 기사단이 사라진 자리에 붉은색 수정이 떨어졌다. 송기현이 잽싸게 다가가 수정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미간에 가져다 댔다. 붉은빛이 터져 나오며 수정이 미간 안으로 사라졌다.
“후······. 이번에도 성공했군.”
송기현이 크게 숨을 내뱉었다. 붉은색 수정의 정체는 차원수정이었다.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수정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차원이 존재했다. 송기현이 풀어주기 전까지 빠져나올 수 없었다. 송기현이 강건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건우님, 기사단의 힘이 제법이었나 봅니다. 차원 분리할 수 있는 횟수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송기현의 표정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차원 분리는 강력한 스킬이었지만 제약이 심했다. 일단 포인트가 많이 들었고 대상의 힘이 강할 경우 실패할 확률도 있었다. 또한, 차원수정을 송기현이 봉인하지 않는다면 금세 부수고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응, 이 수정은 아크로폴리스로 돌아가면 팔크람에게 넘겨줘.”
“이 안에 사람들도 치료하실 생각이시군요?”
“가능하다면.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라 장담은 못 해.”
강건우가 던전을 바라보았다. 이제 던전 안의 파괴자들을 처치하고 신의 파편을 회수할 차례였다. 그때 뒤로 물러났던 헨릭과 일행이 나타났다. 아버지와 기사단이 순식간에 사라진 걸 목격한 헨릭은 넋이 나가 있었다.
“건우 형님! 아버지는 기사단은 어떻게 된 겁니까?”
“헨릭, 진정해라. 마족들의 조종에서 구하기 위해 다른 공간에 봉인해 놓았을 뿐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겁니까?”
“내가 꼭 정상으로 돌려줄게.”
"크흑···. 감사합니다.“
강건우의 말에 헨릭이 눈물을 쏟았다. 이진호가 다가와 헨릭을 위로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강건우가 던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김주환을 비롯한 일행도 던전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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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비밀 출구로 향하던 제임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입에서 한 움큼 피를 쏟아냈다. 제임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쿨럭! 이게 무슨···.”
“제임스! 왜 그래?”
잭이 다가와 제임스를 부축했다.
“잭, 리차드 백작과 기사단이 사라졌어.”
“그게 무슨 말이야? 전부 죽었단 말이야?”
잭의 질문에 제임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 느낌은···. 제길···. 어떻게 이럴 수가?”
제임스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자신의 스킬인 마리오네트의 적용 범위는 아스가르 제국을 가리개 막기하고도 넘쳤다. 그런데 지금 기사단과의 연결이 끊겼다. 그리고 기사단을 조종하던 힘이 한 번에 역류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이상하군. 리차드 백작의 영혼은 아직 내 수중에 있는데?”
“그래?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지···. 다른 차원에라도 가버린 건가?”
“말도 안 되는 말하지 마. 수호신이라도 개입했다는 거야?”
잭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차원이동이라니 수호자들이 그 정도 포인트를 모았을 리가 없었다. 순간, 잭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길한 느낌이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제임스, 일단 여길 벗어나자.”
“알겠어.”
제임스가 부하가 건네는 회복 포션을 들이켰다. 아스가르 제국에서 구매한 포션이라 성능은 떨어졌다. 제임스가 기운을 차리자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제임스가 부하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모두의 얼굴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제임스가 속으로 강건우를 욕했다.
‘씨발!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는데. 조율자 용서하지 않는다.’
제임스는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승승장구하던 자신이었다. 지금처럼 꽁지를 내리고 도망가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품 안에서 작은 보석함을 꺼내 들었다. 새어 나오는 영롱한 빛을 보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신의 파편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제임스가 보석함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강건우의 생각과는 달리 제임스는 크리쳐를 만들 능력이 없었다. 단지 파괴신에 포인트를 바치고 크리쳐화를 진행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는 신의 파편에서 나오는 힘도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크리쳐를 스킬로 강화시켜 조종할 뿐이었다. 제임스가 앞서가는 잭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새끼들이 또 도망을 쳐?”
그 시각 던전 안에 진입한 강건우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던전 안에 진입한 후 빠르게 중심부로 달려왔다. 하지만 강건우 일행을 반겨주는 것은 덩그러니 남은 마법 수정구뿐이었다. 강건우가 이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 파괴자들의 위치는?”
“아직 던전 안에 있습니다.”
이진호기 파동감지기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던전의 입구는 송기현과 카라가 지키고 있었다. 적들이 나타났다면 연락을 취해 왔을 것이었다.
“건우야, 비밀통로가 있는 건 아닐까?”
“맞습니다. 이곳은 흑마법사의 던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장치를 숨겨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환과 박태정이 자신들의 의견을 밝혀왔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던전을 빠져나가면 귀찮아 질 수도 있겠어. 흩어져서 도망친 흔적을 찾아보자고.”
“알겠어.”
“네, 건우님.”
“흔적을 찾으면 각자 가지고 있는 무전기로 연락을 해줘.”
강건우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흩어졌다. 정신을 집중해 흔적을 찾던 강건우가 한곳에서 멈춰섰다. 바닥에 한 움큼의 피가 묻어 있었다. 허리를 숙여 확인한 강건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인벤토리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어 소식을 알렸다.
“흔적을 찾았어. 다들 내 쪽으로 집결해줘.”
-오케이.-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라져.-
강건우가 핏자국이 이어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강건우가 앞쪽을 바라보고 눈을 빛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달려가는 발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속도를 높이자 금세 적의 모습이 드러났다.
“제길! 조율자다.”
“빨리 도망쳐!”
강건우가 나타나자 초기 각성자들이 당황했다. 자신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으악!”
“씨발! 살려줘.”
꼬리를 따라잡은 강건우가 각성자들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던전이었다. 강건우의 검에 당한 초기 각성자들의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오십 명이 넘는 인원이었지만 공포심에 휩싸여 무기력했다. 그때였다. 강건우가 전투를 멈추고 제자리에 멈춰섰다.
“숨어만 있지 말고 나와.”
순간, 강건우의 뒤쪽으로 흐릿한 형체가 나타났다. 강건우가 급히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캉! 무기가 충돌하며 불꽃이 튀었다. 어두컴컴한 동굴이 잠깐 밝아진 사이로 잭의 얼굴이 드러났다.
“칫···. 역시 안 통하는군.”
“네놈이 잭인가?”
강건우의 질문에 잭이 비릿하게 웃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웃는 모습이 섬뜩할 정도였다.
“네놈의 영혼···. 갖고 싶군. 하지만 무리겠지.”
말을 마친 잭의 몸이 다시 흐릿해졌다. 강건우가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영체화 한 잭의 몸에 피해를 줄 수 없었다.
“크크크···. 내가 네놈을 죽일 수 없지만. 너도 나를 죽이긴 쉽지 않을 거다.”
“.....”
강건우가 무심한 눈빛으로 잭을 바라보았다. 잭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강건우가 검을 움켜잡고 홍염을 크게 키웠다. 주변이 밝아지자 흐릿하게 잭이 보였다. 화르륵! 홍염의 검이 휘둘러졌다.
“크흑! 이게 무슨.”
영체화한 잭의 몸에 홍염이 달라붙었다. 당황한 잭이 황급히 끄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당황한 잭의 곁으로 강건우가 달려들었다. 잭이 다급히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강건우의 손이 더 빨랐다. 화르륵! 홍염의 검이 잭의 몸을 후려쳤다. 흐릿했던 잭의 몸이 선명해졌다.
“도망갈 생각하지 마.”
강건우의 차가운 경고에 잭의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의 스킬인 영혼걸음[Unique]은 착취한 영혼으로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착취한 영혼수가 남아있는 동안 공격에 면역상태가 된다. 그런데 지금 강건우의 공격 한방에 모아둔 영혼이 깡그리 사라졌다.
“씨발! 제임스.”
당황한 잭이 제임스를 불렀다. 어둠 속에서 붉은빛의 눈동자 수십 개가 번뜩였다.
“크아아!”
“크라라!”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졌다. 강건우가 잭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제임스가 어느새 잭의 곁에 서 있었다.
“제길···. 여기까지 우릴 밀어붙이다니.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을 꼭 죽이고 말겠다.”
제임스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궁지에 물리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하들을 희생시켰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부하들에게 스킬을 사용한 거야? 미쳤군.”
강건우가 실소를 흘렸다. 초기 각성자는 중요한 전력이었다. 궁지에 몰렸다지만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제임스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잭이 제임스를 향해 말했다.
“진정해. 냉정하게 상대해도 될까 한 상대다.”
“씨발···. 알았다고.”
“제임스, 아무래도 그걸 사용해야겠어.”
잭의 발언에 제임스가 화들짝 놀랐다. 잭은 신의 파편을 사용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잭, 그걸 사용하면 넌 죽어!”
“이대로 죽으나 그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야.”
제임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콜로세움부터 함께한 동료이자 친구였다.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무리가 가면 꼭 스킬을 멈춰야 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군.”
대화를 마친 잭이 허공에 손짓했다. 흐릿한 형체의 영혼이 나타나 반짝이는 파편을 건내 주었다. 잭이 파편을 건네받았다. 파편을 발견한 강건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신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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