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77화 (78/99)

카밀라 산맥(1)

무너진 슈타텐 남작의 저택 앞. 강건우가 임시로 설치한 천막에 슈타텐 남작이 누워 있었다. 안색은 평안했지만, 의식은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칼스가 초조한 모습으로 남작을 지켜보고 있었다.

“칼스님,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건우의 말에 칼스가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해왔다. 자신과 남작을 살려준 게 강건우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건우님, 아까의 무례는 용서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강건우가 별일 아니라는 듯 사과를 받아주었다. 칼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지금 슈타텐 남작의 목숨은 강건우 일행에게 달려있었다. 칼스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제임스와 잭이 영지에 나타난 것은 반년 전쯤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영지의 사정은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칼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저희 영지는 카밀라 산맥과 맞닿아있습니다. 카밀라 산맥은 몬스터의 고향이라 불릴 만큼 많은 몬스터들이 살고 있습니다.”

“몬스터들 때문에 골머리였겠군요.”

강건우의 말에 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 영지의 병력만으로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상황이 안 좋아졌습니다. 산맥 안에서 나름의 생태계를 구성하며 살던 몬스터들이 영지 외곽의 마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특이한 현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가 늘어났습니다. 최선을 다해 막아냈지만, 영지의 병력은 점점 줄어갔습니다. 결국, 저희는 제국의 황도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칼스의 말에 천막 안에 있던 헨릭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칼스의 말에 집중했다.

“황도에서 도착한 지원군은 프라이어 가문의 가주이신 리차드 백작님과 대지 방패 기사단이었습니다.”

“맙소사! 지금 아버님은 어디 계십니까?”

헨릭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버지인 리차드 백작의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스가 헨릭에게 공손히 물었다.

“혹시···. 헨릭 공자입니까?”

“저를 아십니까?”

“리차드 백작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아드님이라고 자랑을 어찌나 하시던지.”

“아버님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기사단은요?”

헨릭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칼스가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을 했다.

“리차드 백작님과 기사단은 정말 강했습니다. 영지 내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처치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영지가 안정되고 황도로 돌아가시려 했을 때였습니다. 모험가 둘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카밀라 산맥에 몬스터들이 날뛰는 이유를 찾았다며 영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칼스의 말에 강건우가 물었다.

“그 사람들이 제임스와 잭이 군요.”

“네, 두 사람의 말에 영주님은 산맥을 조사할 기사들을 파견했습니다. 조사결과 두 사람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산맥에 몬스터들을 자극하는 던전이 발견된 겁니다. 몬스터 소탕을 끝마치고 황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리차드 백작님은 영주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산맥으로 향하셨습니다.”

칼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리차드 백작과 기사단은 던전을 토벌하기 위해 떠났다.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 그 이후 영지 곳곳에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슈타텐 남작을 제임스와 잭이 돕겠다고 나섰다. 슈타텐 남작은 반색하며 허락했다. 그 뒤로 제임스와 잭의 활약으로 영지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슈타텐 남작님은 제임스와 잭을 매우 신뢰하셨습니다. 모험가였던 두 사람을 영지의 경비대장과 기사단장으로 영입하셨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남작님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말을 마친 칼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남작에 대한 미안함과 영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헨릭이 강건우를 향해 다급한 말투로 말했다.

“건우 형님, 분명히 그놈들의 짓이 분명 합니다.”

“음···. 정황상 그런 것 같아. 일단 여기를 빠르게 정리하고 놈들을 쫓아야겠어.”

강건우가 조금 전 마주쳤던 기사들을 떠올렸다. 모두 이지를 잃고 조종당하고 있었다. 리차드 백작의 상황이 짐작 갔다. 하지만 헨릭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카밀라 산맥을 조사하고 제임스와 잭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칼스님, 슈타텐 남작님을 대신해서 영지를 수습할 사람이 있을까요?”

“네, 소영주님이 계십니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강건우의 질문에 칼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영주는 슈타텐 남작의 장남이었다. 지금은 영지의 교도소에 유치되어있었다.

“소영주님은 제임스와 잭의 전횡을 참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작님의 눈 밖에 났고 결국 감옥에 갇혀 계십니다.”

“허···. 자기 아들을 감옥에 가두었단 말입니까?”

듣고 있던 박태정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칼스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어졌다. 알려지지 않은 영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도 감옥에서 편안히 지내실 수 있도록 조치는 해두었습니다.”

“허······.”

박태정이 어이없는 실소를 흘렸다. 강건우가 칼스에게 말했다.

“그럼 소영주님을 지금 풀어드리고 영지의 수습을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그건···. 영주님의 재가가 없으면···.”

강건우가 답답함을 느꼈다. 영주가 의식불명인 상황이었다. 깨어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럼 영주 부재 시 명령권자가 또 있습니까?”

“그게······. 영주 부인께서 계십니다만···. 저택이 무너지면서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강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고리타분한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헨릭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칼스님, 제국의 법에 따르면 지금 같은 상황 시 후계자인 소영주님은 바로 풀어주시는 게 맞습니다.”

“아. 그렇군요. 헨릭 공자님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네, 저도 같은 상황이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저는 소영주님을 모시러 가겠습니다.”

칼스가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떠나갔다. 강건우가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소영주가 돌아오는 즉시 카밀라 산맥으로 떠날 거야. 다들 준비해.”

“알겠습니다.”

“네, 건우님.”

****

다음날. 소영주가 복귀했다. 소영주는 강건우를 찾아와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했다. 제임스와 잭을 꼭 죽여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준비를 끝낸 강건우 일행은 카밀라 산맥으로 출발했다. 카밀라 산맥은 영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산맥에 초입에 도착한 강건우 일행을 곧바로 진입했다. 제임스와 잭이 도망간 장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파동감지기 덕분이었다.

강건우가 헨릭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조급함이 가득했다.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헨릭.”

“네, 건우형님.”

“해줄말이 있어. 많이 고민했는데···. 말해주는게 맞는거 같다.”

“어떤 말씀이십니까?”

헨릭이 불안한 눈동자로 강건우를 쳐다보았다. 강건우가 헨릭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난번 저택에서 내가 제임스와 잭을 상대했던건 알고있지?”

“네, 형님한테 죽을뻔한 걸 간신히 도망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남작령의 기사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생각에 리차드 백작님의 실종에 제임스와 잭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헨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시기상으로나 정황상으로나 확실했다. 헨릭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두놈을 찾아낸다면 갈기갈기 찢어버릴겁니다.”

“지나친 분노는 판단력을 흐린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기사들의 상태가 어땠다는 겁니까?”

강건우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더는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치 꼭두각시처럼 조종을 당하고 있었어. 영혼이 없는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헨릭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강건우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임스와 잭이 도망가기전에는 기사들을 자폭시키더군. 저택이 무너진 것은 그것 때문이었어.”

“.....어떻게 그런일이. 흑마법입니까?”

헨릭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람을 조종하고 자폭시키다니. 흑마법사들의 수법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아버지와 기사단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무사히 구해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

“건우형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버지와 기사들을 살려주십시오.”

“....최선을 다해볼게.”

강건우가 헨릭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창백한 헨릭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문득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실의에 빠져있는 헨릭의 주변으로 일행이 다가와 위로했다.

“헨릭, 힘내라 아버지는 무사하실거야.”

“걱정마, 건우님이 방법을 찾아주실거야.”

“힘내라, 헨릭.”

강건우 일행이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간간히 소형 몬스터들이 덤벼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이상할 정도로 나타나지 않는 몬스터였다.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강건우 일행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파동감지가 덕분에 길을 헤맬 일도 없었다. 단지 산맥 안의 생태계가 귀찮은 정도였다. 그렇게 강건우 일행이 제임스와 잭의 파동이 느껴지는 장소에 도착했다.

몬스터들을 바라보고 있는 강건우에게 김주환이 다가왔다. 강건우는 몬스터들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산맥의 몬스터들이 여기 다 모여있었나 보네.”

“건우야, 그 제임스하고 잭이라는 놈들 스킬이 뭐야?”

“나도 정확히는 몰라. 정신계 쪽 계열인 거 같긴 한데···.”

그때 이진호가 몬스터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어? 건우님, 몬스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진호의 외침에 강건우가 시선을 돌렸다. 고장 난 기계처럼 서 있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강건우 일행이 실소를 흘렸다.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모습이 마치 해일이 덮치는 것 같았다. 장관이었다. 강건우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파괴자들은 던전 안에 있는 게 확실하지?”

이진호가 파동감지기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확실합니다. 정확히 던전 안쪽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렇군···. 이로써 프라이어 백작가의 일이 파괴자들의 짓이라는 게 확실해졌군.”

강건우가 일행을 훑어보았다. 헨릭은 분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들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눈앞을 뒤덮고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헨릭.”

“네, 건우형님.”

“분노에 휩싸여서 무리한 행동은 하지 마.”

“알겠습니다.”

강건우의 말에 헨릭이 마음을 가다듬었다. 강건우가 양손검에 홍염을 불러냈다. 그리고 조율자의 함성을 내질렀다.

“흐아압!”

강건우와 일행의 몸에 고양감이 차오르며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신체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김주환이 포문을 열었다.

“블러디 익스플로전!”

쾅! 쾅! 김주환의 스킬이 연속적으로 터지며 몬스터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엄청난 장관에 헨릭의 입이 벌어졌다. 강건우가 씨익 웃으며 땅을 박차고 나갔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몬스터와 인간 5명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