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76화 (77/99)

슈타텐 남작령(3)

슈타텐 남작의 저택은 요새나 다름없었다. 파괴자 진영이 각종 방어 장치들을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심혈을 기울인 방어체계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쾅! 쾅!

강건우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저택의 정문에 도착한 강건우가 눈을 빛냈다. 강건우가 주먹을 살짝 휘둘렀다. 쾅! 반발력이 느껴졌다. 방어 마법진이었다.

“반발력을 보니 보통 마법진이 아닌 것 같은데. 남작의 집에는 과분하군.”

“제가 뚫을까요?”

박태정이 방패를 고쳐잡으며 앞으로 나섰다.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정이 방패를 크게 휘둘렀다. 쾅!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오며 정문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순간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화살이 쏟아졌다. 화르륵! 강건우가 홍염에 휩싸인 검을 횡으로 그었다. 홍염이 반월형으로 쏘아져 나가며 날아오는 화살들을 일거에 태웠다.

“아주 요새를 만들어 놨나 보네.”

“그래 봤자 시간만 끌 뿐입니다.”

“귀찮게 말이야.”

강건우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는 검은색 로브로 몸을 가린 적들이 있었다. 파괴자 제임스와 저택을 지키는 기사들이었다. 제임스가 거대한 창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신의 파편을 회수하러 왔다.”

“어···. 어떻게 신의 파편에 대해 아는 거냐? 설마! 수호자 인 거냐?”

제임스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아스가르 제국 인들은 신의 파편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저 신들의 유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건우님, 파괴자 맞습니다.”

박태정이 강건우에게 말했다. 손에는 파동 감지기가 들려있었다. 강건우가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난 조율자 강건우라고 한다.”

“조율자? 네놈이 그 한국에 있다는 놈이구나!”

제임스의 말에 강건우가 피식 웃었다. 한국을 제외한 곳에도 자신의 이름이 퍼져있었다. 각 진영의 만신전에서 파괴자와 수호자에게 경고한 것이었다.

“네놈이 알아주길 바라는 게 아니야. 쓸데없는 피를 보지 말고 파편이나 내놔.”

“이익! 네놈이 우릴 무시해?”

잔뜩 열 받은 제임스가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율자의 존재에 대해 경고를 받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단 두 명이었다. 제임스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네놈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너무 만만히 보지 마라.”

제임스가 자신의 스킬인 마리오네트[Unique]를 발동시켰다. 기사들의 눈이 붉어지며 일시적으로 힘이 강력해졌다. 강건우가 눈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부웅! 검에서 강력한 풍압이 발생해 달려드는 기사들을 일거에 튕겨냈다. 튕겨 나간 기사들이 저택의 벽에 부딪히며 나뒹굴었다.

“말도 안 돼!”

제임스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자신의 스킬인 마리오네트는 상대방을 조종하는 스킬이었다. 일시적으로 강력한 힘을 부여할 수 있었다.

‘내 스킬로 강화된 기사들은 잭도 쉽게 감당하지 못하는데. 저놈은 도대체···.’

제임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조율자라는 저자는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손에든 검을 크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기사들을 튕겨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문득 파괴신들에게 받았던 경고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제임스가 이를 악물었다.

‘제길···. 잭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제임스가 나타나지 않는 잭을 원망했다. 자신과 잭은 S 랭크의 강자였다. 파괴자 두 명의 합공이라면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때 제임스의 머릿속으로 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 내가 신호하면 도망쳐.-

-잭! 어딨는 거야?-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저놈 느낌이 안 좋아.-

-제길!-

“지금 한눈 파는 거야?”

눈앞에서 들려오는 말에 제임스가 황급히 물러섰다. 부웅! 강건우의 검이 제임스의 면전을 스쳐 지나갔다.

“씨발! 잭!”

제임스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다급한 마음에 쓰러진 기사들에게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했다.

“으어···.”

“컥!”

기사들이 신음성을 뱉으며 일어났다. 신체에 과부하가 온 것이었다. 제임스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쳇···. 좀 더 써먹을 수 있었는데···. 아쉽군.’

기사들이 일어나자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신기한 스킬을 가졌군···.”

“흥! 시끄럽다.”

기사들의 눈이 붉어지며 강건우에게 달려들었다. 일부 기사는 신체가 한계에 다다랐는지 달려오다가 몸이 터져 나갔다. 박태정이 무기를 고쳐잡고 뛰쳐나가며 말했다.

“건우님, 이놈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파괴자를 상대하십시오.”

“부탁해.”

강건우가 제임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제임스가 움찔했다. 강건우가 땅을 박차고 나갔다.

“쉽게 당할 것 같아?!”

악에 받친 제임스가 강건우에게 창을 빠르게 찔러넣었다. 강건우가 한심한 표정으로 창을 쳐냈다. 무기를 다루는 솜씨가 형편없었다. 순식간에 다가간 강건우가 제임스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 정도 실력으로 어떻게 파괴자가 된거지?”

“켁켁···. 흥! 내 크리쳐만 있었어도!”

“그깟 크리쳐가 승패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

강건우가 비웃음을 흘렸다. 순간, 강건우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깜짝 놀랐다. 제임스를 내팽개치고 황급히 몸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정면으로 검을 바로 세웠다. 캉! 검에서 불꽃이 튀며 강력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강건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검은 로브를 두른 기사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큭···. 역시 안 통하는 건가.”

기사의 입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거북한 목소리에 강건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누구야?”

“크크···. 조율자 우리가 쉽게 잡힐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뭐? 이런 제길!”

기사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강건우가 황급히 물러나며 소리쳤다.

“태정이 형! 자폭이야 피해!”

강건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사들의 몸이 일제히 부풀어 올랐다. 콰앙! 폭음과 함께 육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충격에 슈타텐 남작의 저택이 무너져 내렸다.

“푸하하! 꼴좋다 조율자!”

“제임스. 고작 이 정도로 죽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

잭의 지적에 제임스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잭이 제임스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이번엔 정말 큰일 날뻔했다고. 빨리 산맥으로 돌아가자.”

“그래 그게 좋겠어. 잭.”

대화를 마친 잭과 제임스가 몸을 날려 사라졌다.

****

이제는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저택 앞에 김주환과 나머지 두 명이 도착했다. 헨릭이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주환 형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글쎄······.”

“주환이 형! 저쪽입니다.”

그때 이진호가 무너진 저택의 한쪽을 가리켰다. 건물의 잔해가 들썩거리더니 강건우와 박태정이 불쑥 나타났다.

“건우야! 무슨 일이야?”

김주환이 강건우에게 다가갔다. 강건우가 몸에 묻은 잔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하···. 이놈들 도망쳤어.”

“뭐? 누가 도망을 가?”

김주환이 강건우의 몸에 묻은 잔재를 털어주며 물었다. 강건우가 무너진 저택을 둘러보았다. 분명 많은 사람이 머물고 있었을 것이었다.

“파괴자 놈들. 거의 다 잡았었는데···.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도망갔네.”

“도망친 놈들이야 잡으면 그만입니다. 빨리 생존자들을 찾아야 합니다.”

박태정이 주변을 심각한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남작의 저택은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다. 그런 저택이 형체도 없이 무너졌다. 박태정의 성격상 묻혀있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강건우가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남작을 찾아볼 테니까. 나머지는 흩어져서 생존자들이 있는지 확인해봐.”

“건우야, 도망간 파괴자들을 찾는 게 먼저 아닐까?”

김주환의 질문에 강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기반을 잡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이었다. 분명 근처 어딘가에 다른 장소가 있을 터였다. 파동감지기가 있는 이상 천천히 쫓아가도 그만이었다. 지금은 남작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슈타텐 남작을 찾아서 자세한 사정을 물어봐야겠어. 남작을 찾는 김에 생존자들도 구하는 거지.”

“그런 거라면 알겠어.”

김주환이 수긍을 하며 물러났다. 김주환과 박태정의 성향 차이는 아스가르 제국에 와서 더욱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김주환은 실리적이고 목적에만 집중했다. 박태정은 대의적인 것을 중시하고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강해졌다. 지난번 에일린을 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렇다고 둘의 사이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적절한 견제를 통해 강건우 일행은 더욱 효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뭐···. 나한테는 좋은 일이지.’

강건우와 일행이 저택의 잔해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초인적인 힘으로 잔해를 처리하는 모습이 흡사 중장비 같았다. 헨릭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런 헨릭에게 박태정이 말했다.

“헨릭, 보고만 있지 말고 여기 부상자를 옮겨줘.”

“네 알겠습니다.”

잔해를 치우는 일은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적은 인원수이기에 시간이 걸렸다. 그때였다. 이진호가 다급히 강건우를 불렀다.

“건우님, 여기로 와 보십시오.”

잔해를 치우던 강건우가 이진호에게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화려한 복장을 한 남성과 그 위를 덮치듯 올라가 있는 노인이 있었다. 슈타텐 남작과 시종장 칼스였다. 강건우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했다.

“멀쩡해. 충격 때문에 잠시 기절한 것 같은데?”

“건우님, 이것 때문에 안전했나 봅니다.”

이진호가 남작의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강건우가 반지를 살펴보았다.

“맞네, 배리어 마법이 새겨진 반지야.”

“역시 귀족이라 제 한 몸은 끔찍이 챙겼나 봅니다.”

아스가르 제국에서 마법 물품은 고가에 거래되고는 했다. 마법사의 숫자도 적을 뿐 아니라. 마법 물품을 제작할만한 고위마법사는 더욱 적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고위마법사는 높은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된다. 번거롭게 마법 물품을 팔아 돈을 벌 이유가 없었다.

“일단 밖으로 옮기자.”

강건우가 슈타텐 남작과 시종장을 둘러멨다. 그리고 잔해 밖으로 나왔다.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회복 포션을 꺼냈다. 이진호가 깜짝 놀라 물었다.

“남작에게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응, 아까 만난 파괴자들 인간의 육체를 지배하는 스킬을 쓰는 것 같았어. 아마 남작도 이용당했을 확률이 높아.”

“아···. 그렇습니까.”

강건우가 슈타텐 남작과 시종장의 입에 포션을 나누어 먹였다. 슈타텐 남작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

“슈타텐 남작. 정신 차려보세요.”

하지만 남작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때 시종장 칼스가 깨어났다.

“쿨럭···. 여기는?”

기침을 내뱉은 칼스가 남작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남작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칼스였다.

“남작님! 정신 차려보십시오. 크흑.”

강건우와 이진호가 담담한 표정으로 칼스를 지켜보았다. 슈타텐 남작을 한참 붙잡고 울던 칼스가 고개를 돌렸다. 두 눈에는 원망의 빛이 가득했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디서 온 겁니까? 왜 저희 영지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겁니까?”

칼스가 한 손에 영주를 받쳐 앉은 채 흐느꼈다. 칼스의 눈에는 파괴자 일행과 강건우 일행 모두가 다를 게 없었다. 오랜 시간 몸 바쳐온 영주와 영지에 피해를 주었다. 칼스의 말에 강건우가 숙연해졌다.

“제발···. 영주님을 살려주십시오···. 제발···.”

칼스가 강건우의 발목을 붙잡고 매달렸다. 조금 전까지의 원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늙은 시종의 머릿속에는 영주를 살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은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능력들이 있었다. 강건우가 칼스를 일으켜 세웠다.

“걱정하지 마세요. 포션을 먹여 육체적인 손상은 치료한 상태입니다.”

“정말입니까?”

“네, 하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까지는 알 수가 없군요.”

강건우의 말에 칼스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그놈들! 제임스와 잭이라는 놈들의 짓입니다! 그놈들이 나타나고서부터 영주님이 이상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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