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텐 남작령(2)
슈타텐 남작령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황금 사슴의 뿔’ 여관. 여관의 1층에는 난데없는 장정들의 신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끄응···.”
“아악······.”
“으으···. 괴물들···.”
병력을 이끌고 온 기사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단 한 명에게 자산의 부하들이 모두 바닥에 나뒹굴었다. 기사가 속으로 자신을 보낸 영주를 원망했다.
‘분명 어중이떠중이 모험가라고 했는데···. 저 몸놀림은 뭐냐고!’
기사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저런 강자를 어찌 체포해 간단 말인가. 기사의 상념을 깨고 강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국 황제의 인장이 찍혀있는 증명서를 못 믿겠다 하다니 이곳 영주는 미쳤나 보군?”
강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사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잔뜩 겁먹은 기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돌아가서 남작에게 전해. 감찰사의 권위는 곧 황제의 권위. 이를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강건우가 기사의 어깨를 짚으며 경고했다. 엄청난 위압감에 기사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서 꺼지라고.”
“네? 네!”
강건우의 말에 기사가 황급히 여관을 나섰다. 바닥에 나뒹굴던 병사들도 몸을 추슬러 뒤를 쫓아나갔다. 기사와 병력이 모두 빠져나가자 강건우가 자리에 돌아갔다.
“진호, 가서 헨릭 깨워서 준비시켜.”
“바로 쳐들어가는 겁니까?”
박태정의 질문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조사해야 할 장소였다.
“당연하지, 남작이 이렇게 명분까지 만들어 줬는데. 놓치면 미안해지지.”
“알겠습니다.”
이진호가 2층으로 향했다. 박태정은 여관주인에게 다가가 금화 몇 닢을 쥐여주었다. 바로 전에 소란에 집기들이 망가진 것을 보상해준 것이다. 잠시 후. 헨릭이 민망한 얼굴로 1층에 나타났다. 모두 모이자 강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마족 놈들 잡으러.”
“네!”
“오케이!”
****
슈타텐 남작 저택에 중심부에 있는 영주의 방. 흐리멍덩한 눈빛의 귀족 주변으로 두 명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제임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수호자 놈들에게 꼬리가 잡힐 거야.”
“잭, 알고 있어. 하지만 나머지 파편의 행방이 묘연해.”
제임스라 불린 남성이 금발을 쓸어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날카로운 인상의 잭이 탁자를 내리쳤다.
“시발! 수호자놈들 도대체 어디에 숨겨 놓은 거야?”
“일단 이 영지는 우리가 접수했으니까. 크리쳐 들을 풀어서 제국 곳곳을 뒤지는 수밖에.”
제임스의 말에 잭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정말 성공한 거야?”
“아직, 하지만 완성단계야.”
“하···. 진짜 가능할 줄 몰랐네. 멀쩡한 사람을 크리쳐 화 시키다니.”
“쉬운 일은 아니었어. 그동안 모은 포인트를 다 쏟아부었다고.”
제임스가 지난 일을 떠올렸다. 제국의 기사단을 던전으로 유인했다. 1명의 소들 마스터와 50명의 기사로 이루어진 강력한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치밀하게 준비된 함정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결국, 던전에 갇혔고 제임스의 계획대로 크리쳐가 되었다.
“그나저나 영지 안에 제국 감찰사가 나타났다는데?”
“잭, 너는 그 말을 믿어? 제국 감찰사는 황제가 직접 임명해. 그것도 대면해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잭의 말에 제임스가 웃음을 지었다.
“잭, 생각을 좀 해봐. 여기서 황도까지 말을 타고 쉼 없이 달려도 열흘이 넘는 거리야.”
“그렇지.”
“황도에 있을 때 감찰사가 임명됐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그런데 이렇게 빠른 시간에 감찰사가 여기에 나타났다? 말이 안 돼.”
잭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수호자놈들이 우리의 흔적을 찾아온 거면?”
“하···. 잭. 지금 수호자놈들이 어디 있는지 너도 잘 알잖아?”
“.....”
수호자들은 지금 제국 남단에 있는 바다의 신 나힌의 신전에 있었다. 신의 파편을 찾으러 간 것이었다. 물로 신전에 있는 신의 파편은 강건우의 수중에 넘어간 지 오래였다.
“사칭이야. 모험가 놈 중에는 이런 식으로 변방의 영지에서 해 처먹는 경우가 있지.”
“음···. 그렇다면 다행이고.”
제임스는 자신만만했다. 파괴자 2명이 모여있는 영지였다. 수호자들이 떼거리로 오지 않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영지 병력에 잡아 오라 시켰으니까 곧 소식이 있을 거야.”
“.....”
제임스의 말에 잭이 침묵했다. 예민한 자신의 직감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혼자였다면 물러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연합 중이었다.
‘뭐···. 이 정도 전력이 모여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그때였다. 영주 실의 문이 열리며 시종장이 들어왔다. 제임스와 잭에게 살짝 묵례한 시종장이 영주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영주님, 명령을 받고 나갔던 병력이 돌아왔습니다.”
시종장의 말에 멍했던 영주의 눈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감찰사를 사칭한 무리는 모두 잡은 거겠지?”
영주의 물음에 시종장이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공손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잡아 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뭣?! 출동한 병력이 얼마인데 모험가 몇 명을 못 잡아 오는 거야!?”
영주가 불같이 화를 냈다. 시종장이 고개를 숙였다. 얼마 전부터 영주의 성정이 너무 달라졌다. 어린 시절부터 모시던 주인이었다. 유능한 영주는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난폭한 성정은 아니였다. 시종장이 고개를 숙인 채로 제임스와 잭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영지에 나타난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나고부터였다. 영주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건. 의심스러웠지만 자신은 시종장에 불과했다. 영주의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무능한 놈들! 책임자는 녹봉을 감하겠다.”
“하···. 하지만···.”
“시끄럽다!”
영주가 제임스와 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임스 경, 잭 경, 또 수고를 해주어야겠소.”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영주님.”
“....”
영주가 시종장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나가라는 신호였다. 시종장이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갔다. 시종장이 나가자 영주의 눈이 다시 흐려졌다.
“후···. 잭, 영주의 성격을 너무 마음대로 조종하지 마.”
“뭐 어때? 어차피 알아채지도 못할 텐데.”
잭의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 잭에게 이지를 제압당한 상태였다. 잭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제임스와 잭이 신의 파편을 찾아낼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택의 밖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제임스! 방어 마법 진이 부서졌다.”
“뭐? 어떻게 방어마법 진이?”
“.....”
“제길! 애들보고 확인하라고 해야겠어.”
제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잭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정문에서 화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잭이 몸을 한차례 떨었다.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
헨릭이 불타는 정문을 바라보며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눈앞의 장면은 비현실적이었다. 귀족의 저택을 다짜고짜 날려버렸다. 헨릭의 상식에는 너무 과격한 방법이었다.
“그러길래 열라고 할 때 열지. 꼭 화를 자초해.”
김주환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저택에 도착한 강건우 일행을 정문을 지키던 병력이 막아섰다. 감찰사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그러자 강건우의 신호를 받은 김주환이 불러디 익스플로전으로 정문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한손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전투준비해. 아마 파괴자 진영의 각성자들이 몰려오겠지?”
“간만에 제대로 된 전투를 하겠네.”
“건우님, 저 마나 런쳐 꺼내도 되겠습니까?”
김주환과 이진호가 강건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꺼내, 마지막 파편만 회수하면 돌아갈 거니까.”
“흐흐. 감사합니다.”
잠시 후 저택에서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영지에 소속된 기사들과 병사들이었다.
“음···. 뒤에 숨어서 간을 보시겠다?”
강건우가 박태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형, 아무래도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영지 병력으로 저희의 전력을 파악할 심산이겠죠.”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영지의 기사나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였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기 싫은데 말이지.”
“그럼 어떡할까요?”
강건우가 다가오는 병력을 한차례 바라보고는 말했다.
“일단 주환이 형이랑 진호가 병력을 정리하고 합류하도록 해.”
강건우의 말에 헨릭이 검을 빼 들며 다가왔다.
“건우 형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강건우가 헨릭을 바라보았다.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절대 약하지 않은 헨릭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각성자였다. 이곳에 남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여기 남아서 두 사람을 도와.”
“네,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다.”
“무리하다 다치지나 마.”
퉁명스럽지만 걱정이 담긴 말이었다. 강건우가 저택을 바라보았다. 신의 파편에서 나오는 힘의 파장이 느껴졌다. 방향을 찾은 강건우가 몸을 날렸다. 박태정이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저놈들이다 잡아!”
“으악!”
“지···. 지나간다. 막아! 안쪽으로 보내지 마.”
몰려나오던 병력이 강건우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가는 강건우를 막을 수 없었다. 당황하고 있는 병력 앞에 김주환이 나타났다.
“미안하다. 악감정은 없어.”
김주환의 몸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쾅! 김주환의 주변을 피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시발 내 다리!”
“엄마! 죽기 싫어···.”
“일어나! 여기서 포기하면 죽는 거야.”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다. 김주환을 중심으로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거대 크리에이터가 생겨났다. 폭발에 휘말린 병사들 대부분이 참혹한 모습이었다. 기사들의 사정은 조금 나았다. 하지만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 충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꺼림칙 서럽네.”
김주환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강건우를 제외한 일행들은 아스가르 제국에 도착한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바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지금까지의 던전에서는 모두 비인간형 몬스터를 상대해 왔다. 하지만 아스가르 제국에서 활동하며 사람과의 전투는 잦아졌고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김주환을 비롯한 아크로폴리스의 각성자들은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결국, 지구가 처한 상황에서 적들을 죽여만 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고 이제는 적들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강건우 일행은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을 거치지 못한 부작용을 이겨낸 것이었다.
“으으···. 마족! 마족이 분명해!”
“도···. 도망쳐!”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과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멀리 갈 수 없었다. 멀리서 날아드는 이진호의 사격에 머리가 꽤 뚫린 채 절명했다.
“주환 형님, 여긴 정리가 끝난 거 같습니다. 빨리 건우님의 뒤를 쫓아가죠.”
장내의 적들이 정리되자 이진호가 나타났다. 김주환이 헨릭을 바라보았다. 헨릭은 감탄한 얼굴로 김주환과 이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자에 대한 동경이였다. 김주환이 피식 웃었다.
“사람 잘 죽이는 게 무슨 벼슬이라고.”
“빨리 가시죠.”
김주환의 넋두리에 이진호가 길을 재촉했다.
“헨릭, 정신 차리고. 지금부터 건우님한테 향한다.”
“네···. 네!”
김주환과 이진호가 땅을 박차고 나갔다. 헨릭이 그 뒤를 다급히 쫓아갔다. 모두가 떠난 자리를 짙은 혈향이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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