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텐 남작령(1)
달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컴컴한 밤. 잘 정비된 길 위를 강건우 일행을 태운 말들이 달리고 있었다. 제국의 관도 답게 잘 정비된 도로였다. 벌써 오랜 시간을 달려온 듯 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말들의 심정을 알아챘는지 선두에서 달리던 헨릭이 말을 멈춰 세웠다.
“워워. 건우 형님, 오늘 밤은 여기서 야영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야겠어. 말들이 너무 지쳤어.”
강건우가 말에서 내려 물을 먹여주었다. 일행들도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헨릭이 적당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가 적당하겠습니다.”
헨릭이 관도 옆쪽의 공터를 가리켰다. 이미 다른 여행자들이 거쳐 갔는지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장소가 정해지자 일행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진호와 박태정은 신속하게 텐트를 쳤다. 강건우와 김주환은 먹을 것을 준비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헨릭이 감탄하며 말했다.
“야영할 때 쓰는 장비들을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헨릭이 강건우 일행의 장비들을 둘러보았다. 강건우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거? 드워프한테 구한 거야.”
“역시! 드워프들이 아니면 이런 귀한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없죠.”
헨릭이 손전등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라이트 마법이 지속되는 막대라니 가격도 엄청날 것이었다, 그뿐인가 공터에 세워진 텐트는 어떠한가. 자신이 여태껏 봐왔던 그 어떤 야전 막사보다 훌륭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통신마법이 영구적으로 걸려있는 통신장비도 기가 막히지. 건우 형님은 분명 어딘가의 대단한 귀족가 출신일 거야.’
헨릭이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저녁 식사가 완성되었다. 코끝을 파고드는 향기로운 음식 냄새에 헨릭이 화들짝 놀랐다. 맛있는 음식 생각에 입에 침이 잔뜩 고였다.
“오늘 저녁은 뭡니까 형님들?”
넉살 좋게 다가오는 헨릭의 모습에 김주환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헨릭, 넌 어째 나날이 식탐이 늘어난다?”
“하루종일 달리다 이제야 밥 다운 밥을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 많이 먹어라.”
텐트 치는 것을 마무리한 박태정과 이진호도 식사를 하러 왔다.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강건우 일행의 저녁 식사가 시작됐다.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가는 길이었지만 일행의 분위기는 밝았다. 특히 황도를 나설 때 비장한 표정으로 침묵하던 헨릭도 변해있었다.
‘형님들과 함께라면 반드시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반드시 도와준다고 하셨으니까.’
헨릭은 강건우 일행에게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적은 인원으로 마족을 쫓는다 했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마족은 그 강력함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도를 나선 지 며칠 후 헨릭의 걱정은 기우로 밝혀졌다.
‘으···. 그때 건우 형님의 검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떨리네.’
관도를 따라 달리던 일행을 일단의 무리가 습격했었다. 그것도 상당한 숫자의 병력이었다. 기사로 보이는 병력도 상당수였다. 갑옷의 문양을 지우고 허름한 외투를 걸쳐 정체를 숨겼다. 하지만 헨릭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애초에 도적 떼로 위장한 병력이 양질의 무기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더군다나 황도에서 멀지 않은 관도였다. 비록 제국이 어수선하다지만 도적이 돌아다닐 만큼은 아니였다. 살의를 품고 나타난 도적들을 맞아 강건우 일행은 무기를 빼 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수백 명이 넘는 병력을 순식간에 해치우셨지···.’
일행이 전투준비를 끝마쳤을 때였다. 뒤편에서 지켜보던 강건우가 툴툴거리며 나섰다.
“레오 공작의 부하들인가? 뻔히 보이는 수작질이네. 가뜩이나 시간도 빡빡한데 말이지.”
말을 마친 강건우가 땅을 박차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적들 사이에 난입한 강건우가 홍염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레오 공작가의 기사들이 막아섰지만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강건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신음을 흘리며 나뒹구는 적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엄청난 무위였다. 그렇게 레오 공작이 보낸 방해꾼들은 일패도지했다.
‘아마 대륙을 통틀어도 건우 형님이랑 대등한 실력자는 몇 없을 거야···. 아니 아예 없을지도···.’
그 이후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건우 일행은 마족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도중 마족이 도망간 곳이 헨릭의 아버지가 사라진 방향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충격을 받은 헨릭을 강건우와 일행이 위로했다. 헨릭의 아버지가 실종된 것에 마족이 관여한 것이라면 강건우가 해결해 준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족의 본거지로 추정 되는 곳에 다다른 지금. 아버지의 실종에 마족이 관련된 것은 확신으로 바뀌었지.’
생각을 마친 헨릭이 모닥불을 휘저었다. 불씨가 살아나며 주춤했던 불이 다시 타올랐다. 불이 약해지자 모두 모닥불 가까이 붙었다.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은 각성자들이 추위를 느낄 리는 없었다. 단지 오늘 밤 폭풍전야 같은 기분을 느껴서였다. 그렇게 헨릭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속감을 강건우 일행은 향수에 젖어가는 밤이 흘러갔다.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난 일행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말에 올라 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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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마족의 흔적을 쫓아온 일행이 슈타텐 남작령의 주도 슈타텐 성에 도착했다. 남작령은 황도에서 북쪽으로 열흘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잘 뻗은 관도를 이용해 말을 쉼 없이 달려야 열흘이었다. 성문 앞에 이르자 강건우가 말을 멈춰 세웠다. 그 모습에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슈타텐 남작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해 주십시오.”
경비병의 말에 뒤쪽에 있던 박태정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하만 후작에게서 받은 서류를 제출했다. 건네받은 서류를 읽어내려가던 경비병이 다급히 경계를 붙였다.
“충성! 감찰사님,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경비병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제국 감찰사는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직위였다. 황제가 지정한 영지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막강한 존재였다. 강건우는 평민의 신분으로 막강한 직책을 받은 것이었다. 물론 이번 사건이 끝나면 사라질 지위였다.
“추천해줄 만한 숙소가 있는가?”
강건우의 질문에 경비병이 허리를 굽신거렸다.
“예. 감찰사님, 성안 쪽의 동쪽에 있는 ‘황금 사슴의 뿔’이라는 여관이 있습니다.”
“감찰사님의 품격에 딱 어울리는 여관입니다.”
경비병들의 말이 끝나자 강건우가 은화 몇 닢을 쥐여 주었다. 경비병들의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숙어졌다.
“문을 활짝 열어라! 감찰사님 들어가신다.”
경비병의 외침에 영지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강건우가 말에 올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은 전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을 보였다. 제국의 변방에 있는 남작령이라 그런지 도시의 크기는 크지 않았다. 얼마간 나아가자 경비병이 말한 여관에 도착했다. 강건우 일행은 이번에도 한 층을 통째로 빌렸다. 각자의 방에 짐을 푼 일행이 남작령을 살펴보기 위해 흩어졌다. 그날 밤 강건우의 방에 일행이 모두 모였다.
“마족의 흔적이 영주의 저택으로 이어진 게 확실해?”
강건우의 질문에 영주성 조사를 담담했던 이진호가 대답했다.
“네, 확실합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요.”
이진호가 손에 들린 나침반 모양의 기계를 흔들었다. 팔크람이 만들어준 각성자의 파동을 감지하는 장치였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영주의 성에 마족이 숨어있다면 일이 귀찮아 질 것이었다. 비록 감찰사의 신분을 가졌지만, 영지에서 영주의 힘은 왕과 다름없었다. 슈타텐 남작이 마족과 결탁한 것이라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헨릭이 입을 열었다.
“일단 영주를 찾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굳이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기다리면 알아서 움직임이 있을걸?”
강건우의 말에 헨릭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옆에 있던 박태정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비병을 통해 감찰사의 입성을 알았으니 어떻게든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그래,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잖아?”
김주환의 말에 헨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당한 이야기였다. 목 끝까지 쳐들어온 비수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비밀리에 처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려면 영주의 저택만 한 장소가 없었다. 강건우가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면 되겠네. 오늘 밤은 긴장들 풀고 푹 쉬자고 남작한테 우리가 경계하고 있다는 걸 알려줄 필요는 없잖아?”
강건우의 말이 끝나자 김주환이 기지개를 키며 일어났다. 그리고 헨릭을 바라보았다.
“으아! 난 한잔하고 자야겠어. 헨릭 같이 가자.”
“으으···. 주환 형님이랑 마시다간 제 코가 삐뚤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자식. 엄살은 그래서 안 갈 거?”
“그럴 리가요, 갑니다!”
김주환과 헨릭이 방을 나섰다. 이진호가 황급히 뒤를 따랐다.
“형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강건우의 방에 남은 박태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현이와 카라님은 언제 돌아올까요?”
“글쎄···. 시간 배율이 제법 차이나니까···.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송기현과 카라는 신의 파편을 팔크람에게 전달 하기 위해 던전 밖으로 나갔다. 아직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았지만, 송기현의 스킬을 이용해 나간 것이었다.
“정말 대단한 힘이긴 합니다. 던전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니요.”
“대신 포인트가 엄청나게 필요하지.”
“그건 그렇군요.”
물론 조율자의 상점에도 귀환석이 존재했다. 하지만 던전 공략을 마친 곳에서만 사용 가능했다. 대상도 강건우 혼자만 귀환할 수 있었다. 송기현의 스킬은 포인트만 있다면 인원수도 상황에도 제약이 없었다.
“정말이지 A 랭크급 던전 공략에는 필수인 스킬이지.”
“기현이가 합류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송기현이 없었다면 신의 파편을 계속 가지고 다녀야 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국에서 활동에 제약이 생길 것이었다.
‘인벤토리에 숨겨봐야 신관들이 귀신같이 알아채니까···.’
생각을 마친 강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태정에게 말했다.
“나도 오랜만에 한잔해야겠어. 형도 같이 갈래?”
“네, 어쩌면 이런 여관도 마지막일지 모르니까요.”
“그렇네. 나름 정들었는데 말이지. 이 세계···.”
“건우님은 잔정이 많은 게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하하.”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이 1층으로 향했다. 김주환과 헨릭, 이진호는 벌써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강건우와 박태정이 그 테이블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헨릭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여관의 뒷마당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던 강건우가 김주환에게 물었다.
“헨릭은 아직이야?”
“엉. 아직 기절 중인 거 같아.”
두 사람의 대화에 이진호가 끼어들었다.
“그러게 마냐로 취기 좀 몰아내면서 마시라니까.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라고 하더라니까요.”
“그 나이 때는 그렇게 객기를 부릴 때도 있는 법이지.”
박태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 여관의 점원이 아침 식사가 준비된 것을 알려왔다. 일행이 1층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식사가 한창이던 도중이었다. 여관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기사였다. 폴 플레이트 메일에 검은 살쾡이가 그려져 있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살벌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기사가 강건우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리고 강건우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국 감찰사를 사칭한 놈들이다. 체포해!”
“네!”
“순순히 포박을 받아!”
기사를 제외한 병력이 강건우 일행에게 고함치며 다가왔다. 뜻밖의 상황에 강건우와 일행의 얼굴이 멍해졌다. 예상 밖의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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