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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73화 (74/99)

아스가르 제국(4)

하만 후작의 저택은 황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제국의 명문가답게 크고 화려한 저택이었다. 황도에 머무는 동안만 이용하는 저택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그 앞으로 저택과 어울리게 화려한 마차 몇 대가 다가왔다. 강건우와 일행을 태운 마차였다.

창문 밖으로 저택의 모습을 바라보던 헨릭이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입구부터 기사가 지키는 저택이라니 기가 죽는군요.”

“후작가의 위세가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옆에 앉아있던 박태정이 창밖을 힐끗 보며 말했다. 반대편에 앉아있던 강건우가 눈을 뜨며 창밖을 보았다. 기사들이 경비를 서며 살벌한 기운을 풍겨대고 있었다.

“뭐 슬쩍 보니 빛 좋은 개살구 들이네.”

“기사들을 그렇게 우습게 보는 건 건우님 일행 밖에 없을 겁니다.”

헨릭이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모험가들은 귀족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하만 후작에게 불려가는 지금도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제국의 무력의 중추인 기사들을 옆집 개 보듯이 무시했다.

‘태정님이 기사들을 일반병사들 상대하듯 해치우는 모습을 보긴 봤지만···.’

헨릭이 힐끗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당당한 체구의 박태정과는 달리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풍기는 기세도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아마 태정님이 호위인 거 같은데. 한 명으로는 부족할 거야.’

강건우와 일행은 자신과 에일린을 구해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력을 다해 돕겠다고 결심했다. 생각을 마친 헨릭이 슬쩍 마나를 운용해 보았다. 강맹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헨릭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부상을 당하기 전보다 마나 홀이 크고 단단해졌다.

“멈추시오!”

잠시 후 마차 밖에서 기사의 정지 명령이 들려왔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문에 도착한 것이었다. 선두에서 말을 타고 있던 기사 폴먼이 경비를 서던 기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폴먼의 말을 들은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러났다.

“정문을 열어라!”

우렁찬 소리와 함께 정문이 열렸다. 그리고 마차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간 더 달린 마차가 저택의 입구에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턴 도보로 이동하겠습니다.”

마차 밖에서 폴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건우와 일행이 몸을 일으켜 마차에서 내렸다. 저택 주변의 경비는 더욱 삼엄했다. 많은 수의 기사와 병사들이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그때 입구에 있던 기사 몇 명이 일행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안전을 위해 잠시 몸수색이 있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기사들의 말에 강건우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폴먼이 빠르게 사과를 해왔다.

“죄송합니다. 지난밤 마족의 습격 이후로 경계가 강화되어서···.”

“뭐···.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매우 불쾌하군요.”

강건우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자신들을 초대한 것은 후작이었다. 손님을 불러놓고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택의 입구가 열리며 화려한 갑주를 입은 기사가 나타났다.

“뭣들 하는 거냐?! 귀한 손님이시다.”

“다···. 단장님. 그게 절차에 따라···.”

“됐다! 비켜라. 내가 직접 모시겠다.”

화려한 갑주를 입은 기사의 호통에 기사들이 모두 물러섰다. 기사들을 물리친 기사단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하만 후작가의 기사단장 마테오라고 합니다.”

“강건우입니다.”

퉁명스러운 대답에 마테오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요즘 제국의 황도가 워낙 뒤숭숭해서 말입니다.”

“제가 초대 받은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군요.”

헨릭이 강건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자신과 에일린에는 한없이 친절하던 강건우였다. 후작가의 기사단장에게 까칠하게 구는 모습이 낯설었다. 마테오가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정중하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일은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단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믿겠습니다.”

“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마테오가 기사들에게 눈 짓을 했다. 시선을 받은 기사들이 황급히 저택의 문을 열었다. 마테오가 강건우를 정중히 안내했다.

“안으로 가시죠. 후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저택 안은 밖보다 화려했다. 곳곳에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걸려있었다. 집기들도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것들뿐이었다. 강건우 일행이 들어서자 일을 하고 있던 시녀들과 시종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 강건우 일행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마테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후작님께서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기서부터는 시종장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마테오님, 안내 감사했습니다.”

강건우가 살짝 목례를 했다. 마주 목례를 한 마테오가 입을 열었다.

“상당한 실력자들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러던가요?”

“네, 기회가 된다면 저희 기사들에게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알겠습니다.”

대화를 듣던 헨릭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테오는 강건우를 엄청난 강자로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기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테오 단장은 소드마스터에 이르는 강자야···. 저런 사람이 저렇게 어려워하다니···. 건우님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난 건가?’

헨릭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저택의 2층에서 시종장이 나타났다. 깔끔한 포마드 스타일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노년의 남자였다.

“건우님, 전 시종장 칼스입니다. 후작 각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종장의 말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장서는 시종장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응접실 앞에 도착했다. 시종장이 강건우를 향해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

“건우님, 후작 각하께서 독대를 원하십니다.”

“그래요? 전 상관없습니다.”

강건우가 동의하자 시종장이 응접실의 문을 열었다. 강건우가 응접실의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시종장이 뒤를 따라 들어갔다. 응접실의 문이 닫히자 헨릭이 박태정을 향해 말했다.

“혼자 가시게 놔둬도 되는 걸까요?”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박태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헨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귀족의 저택은 다른 사람에게는 참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밖으로 새나가지 않으니까요.”

“건우님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인 겁니까?”

헨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대를 원한다지만 응접실 안에 어떤 위협이 있을지 몰랐다. 독대라 하지만 자신은 기사를 대기시켜 놓았을 수도 있었다. 암살자를 고용해 놓았을 수도 있었다. 일이 틀어지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도 그만이었다. 아니면 마법 도구로 어떤 위해를 가해 올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귀족이 아닌 강건우였다. 호위 하나 없이 홀로 들어간 것이 위험해 보였다.

헨릭의 말뜻을 이해한 박태정이 크게 웃었다.

“하하. 건우님 걱정이라면 접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네?”

“오히려 후작이라는 사람이 걱정입니다. 건우님 앞에서 귀족이라고 헛튼소리하다 박살 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그렇습니까?”

헨릭이 벙찐 얼굴을 했다. 조금 전 귀족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하다던 마테오의 말이 떠올랐다. 귀족을 함부로 대하는 모험가라니.

“혹시 건우님도 귀족 출신이신 겁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여태껏 무사하신 겁니까?”

귀족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 자신을 욕보인 자가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면 끝까지 복수를 할 것이었다. 박태정이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오히려 제가 못 들어가서 걱정입니다. 저 아니면 말릴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

헨릭은 강건우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실력을 숨길 엄청난 강자였다니. 사람은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대는 한참을 이어졌다. 박태정과 헨릭은 응접실 밖의 소파에 앉아 독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때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시종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헨릭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프라이어 공자님. 후작 각하께서 뵙기를 원하십니다.”

“아···. 괜찮습니다.”

헨릭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색은 안 했지만, 자신을 몰라보는 후작가 사람들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문득 실종된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문 앞에 선 헨릭이 심호흡했다. 자신의 가문에게 쓰인 누명을 꼭 벗어야만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응접실로 들어섰다.

응접실 안에는 후작과 강건우가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야기가 잘 풀린 모양이었다. 헨릭을 발견한 하만 후작이 입을 열었다.

“오···. 자네가 리차드 백작의 아들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후작님. 헨릭 프라이어입니다.”

“아버지의 일은 안 됐네···. 참 훌륭한 무인이었지.”

하만 후작이 헨릭을 위로했다. 왠지 모를 서러움에 헨릭이 울컥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감사합니다. 꼭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암···. 그래야지. 꼭 돌아올 거라 믿고 있네.”

헨릭이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하만 후작이 헨릭에게 말했다.

“이리 와서 앉게.”

“네.”

헨릭이 자리에 앉자 시종장이 차를 내왔다. 차가 놓이자 후작이 마실 것을 권했다. 헨릭이 차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던 후작이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마족이 자네 가문의 저택에서 머무른 흔적이 발견됐다고 들었네. 사실인가?”

“아닙니다! 후작 각하.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하지만 증거가 나왔다고 하던데?”

“누군가가 조작한 겁니다.”

헨릭이 어젯밤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헨릭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갔다. 설명을 듣는 내내 후작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질문을 하고는 했다. 특히 근무를 바꾸자 한 기사가 레오 공작가와 연관이 있다는 대목에서는 눈을 빛내기도 했다.

“과연···. 그렇게 된 것이군···.”

“그렇습니다. 저희 가문은 정말 억울합니다.”

헨릭의 설명을 모두 들은 하만 후작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헨릭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후작을 바라보았다. 만약 후작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문은 끝이라고 봐야 했다.

“후작님, 제 생각에는 레오 공작의 술수 인 거 같습니다.

강건우가 헨릭의 편을 들었다. 헨릭이 감동한 눈빛으로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하만 후작이 생각을 마쳤다. 자세를 고쳐잡으며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네···. 예전부터 레오 공작가는 신흥 귀족들을 짓밟은 전례가 있었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헨릭이 깜짝 놀라 물었다. 하만 후작이 대답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레오 공작가의 선조는 황족의 방계출신이네. 그러면서도 제국의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는 거로도 유명하지.“

”귀족파의 수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헨릭의 말에 하만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예전부터 황제에게 힘이 될만한 귀족들은 온갖 술수를 다 써서 몰락시키고는 했지.“

”그럼! 설마? 저희 아버지가 실종된 것도?“

”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는 말게. 하지만 어젯밤 일어난 일과 연관시켜보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군.“

하만 후작의 말에 헨릭의 눈이 분노로 벌게졌다. 꽉 쥐어진 주먹에서는 혈관이 툭툭 터졌다. 엄청난 분노에 헨릭의 이빨이 덜덜 떨렸다.

”진정하게···. 분노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헨릭의 질문에 하만 후작이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간단하네. 자네가 직접 마족과 무관함을 밝히면 되네.“

강건우가 씨익 웃었다. 하만 후작의 말을 이해한 것이었다. 헨릭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준 강건우가 말했다.

”같이 가시죠.“

”네? 어디를?“

”어디긴 어딥니까? 어젯밤 도망친 마족을 잡으러 갈 겁니다. 동행하시죠.“

헨릭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만 후작이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헨릭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꼭 누명을 벗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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