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가르 제국(3)
박태정과 수도경비 기사단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박태정의 주변으로는 몇 명의 기사들이 기절해 있었다. 이 상황에 주변의 행인들도 숨을 죽였다. 수도경비 기사단의 조장인 마크가 부하들을 향해 고함쳤다.
“뭣들 하는 거야? 기사단의 명예에 먹칠할 셈이냐?”
마크가 잔뜩 화난 얼굴로 박태정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위대한 제국의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제국의 황도였다. 평범해 보이는 모험가에게 수도를 경비하는 기사들이 단체로 당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자신은 문책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빨리 움직여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란 말이야!”
“네! 마크 조장님.”
“알겠습니다.”
마크가 신경질적으로 명령했다. 여태껏 지켜보던 고참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무기를 빼 들고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덤벼들지는 못했다. 기사들을 방패로만 제압하던 모습 때문이었다.
박태정이 헨릭을 힐끗 바라보았다.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빨리 도망치십시오. 저들은 수도경비 기사단입니다.”
“에일린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동생의 이름이 나오자 헨릭의 눈동자가 동요했다. 어젯밤의 사건 이후로 제국 내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의 표정은 강직해 보였다.
“아직 한 몸 빼낼 힘은 남았습니다.”
헨릭이 박태정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봐도 좋아 보이는 방패와 검을 장비하고 있었다. 망토 속에 가려진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눈앞의 사내가 무언가를 쓱 내밀었다.
“마시세요. 회복에 도움을 줄겁니다.”
회복 포션이었다. 헨릭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상태는 비관적이었다. 무리하게 마나를 운용해 심장에 쌓은 마나 홀이 금이 간 상태였다. 포션으로 치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감사하지만 저는 이미 틀렸습니다. 동생을 부탁드립니다.”
“빨리 마시십시오. 어떤 상태이든지 이 포션이 치료해 줄 겁니다.”
헨릭이 마지못해 포션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마셨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신에서 줄줄 새나가던 마나가 다시 돌아왔다. 헨릭의 몸이 푸른색으로 빛났다. 금이 갔던 마나 홀이 새것처럼 돌아왔다. 믿을 수 없는 일에 헨릭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 이게···. 무슨···.”
“완벽히 나으려면 당분간 마나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을 겁니다.”
박태정이 무심하게 말했다. 헨릭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런 귀한 포션을···.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저 인파 너머로 내가 모시는 분이 동생을 보호하고 있을 겁니다. 제가 포위망을 뚫어주겠습니다.”
“은인께서는?”
헨릭의 말에 박태정이 검을 꺼내 들었다. 엄청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심하십시오. 기사들이 더 지원 올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제국의 공권력인 기사단이었다. 눈앞의 사내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준비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박태정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으악!”
“막아! 막으라고.”
“감히 제국의 기사에게 덤비다니!”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에 헨릭의 눈이 크게 떠졌다. 기사단의 핵심전력인 고참 기사들이 허무하게 쓰러져가고 있었다. 박태정은 단지 방패만을 이용할 뿐이었다. 마나가 넘실거리는 검도 소용없었다. 단숨에 갈라질 것 같은 방패에 기사들이 역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기사단의 조장인 마크가 경악한 얼굴로 박태정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강자였다. 근위 기사단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헨릭을 잡아 오라 했다.
“오셔, 빨리 근위 기사단으로 달려가서 지금의 상황을 전해라.”
“네, 조장님.”
마크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저자를 꺾고 헨릭을 체포하는 것은 무리였다. 근위 기사의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모두 포위망을 유지하고 시간을 끌어라.”
“네!”
“예!”
기사들이 방패를 들고 서로의 간격을 줄였다. 박태정이 헨릭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피하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박태정의 무위에 넋이 나갔던 헨릭이 깜짝 놀랐다.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 준다 했었다. 잠시 한눈 판 사이 빠져나갈 기회를 놓쳤다. 자신도 기사였다. 전장이나 다름없는 지금 한눈을 팔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입니다.”
“네···. 네!”
박태정이 소리치며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헨릭이 빠져나갈 공간을 막았다. 쾅! 쾅! 박태정이 발차기로 방패를 걷어찼다.
“큭! 엄청난 힘이다.”
“쿨럭!”
기사들이 방패를 놓치며 나뒹굴었다. 포위망이 뚫리자 헨릭이 빠져나가려 했다.
“헨릭! 도망칠 생각은 버려라.”
“마크! 비켜!”
“흥! 내가 아직도 네놈 가문의 기사로 보이나 보지?”
“....”
마크가 몇 명의 부하들과 함께 길을 막았다. 헨릭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기사 마크는 프라이어 가문소속의 기사였다. 하지만 프라이어 가문이 몰락하자 레오 공작에게로 달라붙었다.
“곧 근위 기사단이 도착할 거다. 순순히 포박을 받아.”
“나 하나 잡자고 근위 기사단까지 동원하다니. 공작은 무슨 속셈이지?”
“무슨 헛소리냐! 죄인을 잡으려는 것뿐이다.”
뻔뻔한 태도에 헨릭이 분노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조심스럽게 마나를 운용해보았다. 가슴이 살짝 저릿했지만 참을만했다. 검에 마나를 집중하자 푸른색 마나가 검에 솟아났다. 그 모습에 마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떻게? 분명 마나 홀이 깨졌을 텐데?”
“네놈이 알 바 아니다!”
헨릭이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마크와 기사들이 황급히 막아섰다. 하지만 헨릭은 강자였다. 마나가 실린 검을 크게 휘둘렀다.
“크흑!”
“제길! 뚫렸어.”
“못 지나가게 막아!”
기사들이 악을 쓰며 막아섰다. 하지만 헨릭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박태정이 그 장면을 확인하고 몸을 빼냈다. 박태정과 헨릭이 모두 빠져나갔다. 공터에는 신음을 흘리는 기사들만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습에 마크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제길! 빨리 공작 각하에게 알려야 해.”
공작에게 사실을 알린다면 엄청난 문책을 받을 것이었다. 마크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출세를 위해 배신도 서슴지 않았다. 오늘의 실수로 공작이 눈 밖에 난다면 자신은 끝이었다.
“씨발! 어떤 새끼인지 반드시 찾아낸다.”
마크가 박태정을 떠올리며 욕설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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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를 뚫고 나온 헨릭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박태정이 헨릭이 옆으로 나타났다.
“동생을 찾는 거라면 저와 함께 가지죠.”
“아···. 무사히 빠져나오셨군요.”
“별거 아닙니다. 가시죠.”
말을 마친 박태정이 앞장섰다. 강건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았다.
‘묵고 있는 여관으로 가셨나 보군···.’
박태정이 일행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헨릭이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잠시 후 박태정과 헨릭이 여관 앞에 도착했다. [별빛이 머무는 집] 강건우와 일행이 묵는 여관이었다.
‘꼬리가 붙지는 않은 것 같군.’
주변을 살펴본 박태정이 여관 안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1층에는 많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때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진호가 박태정을 발견했다.
“태정 형님! 여깁니다.”
“진호야. 건우님은?”
박태정이 테이블로 다가가며 물었다. 이진호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2층 숙소에 계십니다. 같이 온 꼬마가 아픈 거 같더군요.”
“에일린은 괜찮은 겁니까?!”
이진호의 말에 헨릭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진호가 박태정을 바라보았다.
“건우님이랑 같이 온 여자애의 오빠다.”
박태정의 말에 이진호가 헨릭을 바라보았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건우님이 포션을 먹여서 지금은 잠들어 있을 겁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빨리 만나게 해주십시오.”
“같이 가시죠.”
이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헨릭을 향해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일행이 머무는 여관의 2층은 조용했다. 강건우 일행이 통째로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이진호가 복도의 끝에 있는 방에 멈춰섰다.
“여깁니다. 들어가시죠.”
이진호가 방문을 노크했다. 안쪽에서 강건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건우님, 박태정입니다. 에일린의 오빠를 못 왔습니다.”
방문이 열리며 강건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헨릭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에일린의 오빠 헨릭 프라이어입니다. 동생을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헨릭의 소개에 강건우가 깜짝 놀랐다. 프라이어 가문이라면 유명한 가문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강건우입니다. 에일린은 지금 편안히 자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헨릭의 연거푸 감사 인사를 했다. 평소 몸이 유약한 에일린이었다. 자신과 도망치는 과정에서 무리한 것이 화근이었다. 가문이 몰락하자 모두가 자신을 외면했었다. 그중에는 프레이어 가문에 큰 도움을 받은 가문도 많았다. 헨릭의 눈이 벌게졌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 이렇게 큰 도움을 주다니. 의지할 곳 없어 다잡던 마음이 한순간 무너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에일린은 그저 과로로 몸살이 난 것뿐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강건우가 헨릭을 위로했다. 묵묵히 바라보던 박태정이 입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네.”
헨릭과 박태정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에는 에일린이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헨릭이 에일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옆에 있던 박태정이 헨릭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제국기사들에 쫓기게 된 겁니까?”
“그게···. 어젯밤 황궁에 마족이 침입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헨릭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마족들이 저희 가문의 저택에 흔적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래서 마족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습니다.”
강건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프라이어 가문의 저택이라면 경비를 서는 병력도 많을 것이었다. 그중에는 기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백작가 정도 되는 곳에 마족이 흔적을 남길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군가 내통이라도 한 겁니까?”
“.......”
강건우의 질문에 헨릭이 잠시 침묵했다. 가문의 상황을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것이었다. 지켜본단 박태정이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저희는 제국기사단과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두 분을 구했습니다. 사정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 생각만 했군요···.”
헨릭의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왔다. 강건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명이 맞다면 저희가 해결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헨릭이 깜짝 놀랐다. 일개 모험가 일행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상황을 해결해줄 능력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송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우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방문이 열리며 송기현과 한 명의 기사가 나타났다. 헨릭이 기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기사가 강건우에게 살짝 목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만 후작가의 기사 폴먼입니다.”
“반갑습니다. 강건우입니다.”
“하만 후작님께서 저택으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강건우가 헨릭을 힐끗 바라보았다.
“헨릭님 같이 가시죠.”
“감사합니다!”
헨릭이 얼굴에 기쁨이 차올랐다. 레오 공작과 대척점에 있는 하만 후작이었다. 자신의 누명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실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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