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71화 (72/99)

아스가르 제국(2)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진 대전 안에 아스가르 제국의 중신들이 모여 있었다.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는 중신들이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황제인 아스가르 4세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옥좌의 왼편 앞줄에 서 있던 노귀족 한 명이 차분히 말했다.

“불가합니다. 출신도 분명하지 않은 무리에게 이런 큰일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노귀족의 말이 끝나자 뒤편에서 동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습니다. 제국 근위기사단이라면 충분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꼴이 될 겁니다.”

그때 반대편의 앞줄에 서 있던 젊은 귀족이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근위기사단은 황실의 안전을 위해 움직여선 안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이번일 벌인 마족이 바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외부의 힘을 빌려 은밀히 처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근위기사단의 외부행은 불가합니다.”

귀족들의 말을 듣고 있던 황제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툼이 멈추고 침묵이 찾아왔다. 황좌에 앉아 좌중을 둘러본 황제가 입을 열었다.

“제국을 세운 초대황제부터 내려오던 제국의 신물이 마족에게 도난당했다.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기에 그대들은 어찌 편을 갈라 싸우기만 한단 말인가!”

황제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당당한 체격에 범 같은 얼굴이 황제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서웠다. 아스가르 4세는 자신도 소드마스터에 이른 강자였다. 그 기세에 문신인 귀족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귀족들을 쏘아보던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물러가라. 그대들의 의견은 더 듣고 싶지 않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아스가르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공작과 후작은 남아라.”

황제의 말이 끝나자 귀족들이 물밀 듯 대전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빠져나간 대전에 황제와 공작 그리고 후작만이 남았다. 황제가 노년의 귀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레오 공작.”

“네, 폐하. 말씀하십시오.”

“이번에는 그대가 물러서야겠다.”

“폐하!”

“그만! 지난밤 마족이 다시 황궁에 침입했다. 근위기사단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황제의 호통에 공작이 침묵했다. 황궁을 지키는 근위기사단의 단장은 공장의 둘째 아들이었다. 황제가 죄를 묻는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만 후작.”

“네, 폐하.”

“그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

황제의 질문에 하만 후작의 얼굴이 득의양양해졌다. 평소 공작과 대척점에 서 있는 후작이었다.

“황도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부르신다면 한걸음에 달려올 것입니다.”

"음······. 조만간 황궁으로 은밀히 부르도록 하여라.“

“네, 폐하.”

말을 마친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을 빠져나갔다. 황제가 사라지자 공작과 후작이 숙였던 허리를 폈다.

“후작. 꼭 그렇게 해야만 속이 후련하겠나?”

“공작 각하, 근위기사단은 황실을 지키는 것이 본래의 임무 아니겠습니까?”

“외부인일세. 더군다나 실력은 검증되지도 않았어!”

얼마 전 제국의 신물인 영광의 홀이 도난당했다. 그 배후로 지목된 것은 마족이였다. 그 과정에서 신물을 지키던 근위 기사들이 여럿 죽었다. 그중에는 공작의 손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국은 신물을 되찾기 위해 추격대를 편성했다. 하지만 강력한 마족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력은 확실합니다. 소드마스터급 1명, 대마법사급 1명에 보기 드문 보우 마스터까지 그리고 나머지 동료들의 실력도 근위 기사들 이상입니다.”

“그런 실력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단 말일세. 신원이 확실치 않아.”

“신원은 제가 보장합니다. 그럼 된거 아닙니까?”

하만 후작의 말에 레오 공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보다 한참 젊은 나이의 하만 후작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양대 가문중 하나인 하만가문의 현 가주였다.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다.

“그들이 실수한다면 자네도 무사할순 없을걸세.”

“실수한다면 말이겠죠.”

레오 공작이 하만 후작을 사납게 노려 보았다. 자신의 손자가 죽었다. 둘째 아들은 신물을 도난 당한 책임을 질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만회해야만 했다. 하지만 황제의 명이 떨어진 이상 도리가 없었다. 레오 공작이 등을 돌려 대전을 빠져 나갔다. 그 모습에 하만 후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아스가르 제국의 황도 아스가르. 대륙 최강의 제국 수도 답게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그런 사람들의 일상과는 달리 수도의 경비대와 기사단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여행자 망토로 전신을 둘러싼 두 명의 남성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힐끗 쳐다볼뿐 별다른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흔한 여행장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건우님, 후작에게서 연락이 올까요?”

“올거야, 우리 아니면 대안이 없을걸?”

거리를 걷던 두 남성은 강건우와 박태정이었다. 하만 후작을 만나기위해 황도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났다. 다른 일행은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간단한 물품을 사고 정보를 얻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었다.

“예상대로 백성들의 분위기는 별다를 게 없네.”

“네, 하지만 경비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기사들의 순찰도 흔치 않은 일이라 하더군요.”

“지난밤, 파괴신의 진영에서 침입한 게 분명한가 보군.”

강건우와 일행은 아스가르 제국의 변방에서 공략을 시작했다. 퀘스트를 완료하면 할수록 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제국의 모든 곳에서 던전이 아닌 진짜 현실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중 던전에 파괴신과 수호신진영의 각성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말 충격 그 자체였지···. A 랭크 던전은 기존이 던전과는 다른 개념이었어.’

던전인 줄 알고 들어온 것이 아직 신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현실이었던 것이었다. 아스가르 제국은 파괴신과 수호신의 진영 모두가 경쟁을 하고 있었다. 진영마다 퀘스트를 완료하며 최종목표를 향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최종목표는 신들의 파편 4개를 모두 모으는 것···. 그리고 제국 황실에 마지막 남은 파편이 도난당했다.’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잠자고 있는 3개의 파편을 떠올렸다. 지난 반년 동안 파편을 모두 모으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강건우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루만 일찍 왔어도.”

“건우님, 우린 최대한 빨리 온 겁니다.”

그때 인파의 한쪽이 시끄러워졌다. 고함이 오가더니 곧이어 무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강건우와 박태정이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쓸데없는 소란에 휘말기 싫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험가이신가요? 용병이신가요? 제발 저희 오빠를 살려주세요.”

인파를 뚫고 튕겨 나온 소녀 한 명이 강건우와 박태정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소녀는 박태정의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고 있었다. 당황한 박태정이 소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파란색 머리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꼬마야, 무슨 일인지 이것 좀 놓고 말해줄래?”

“도와주세요! 제발 우리 오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해요.”

그때였다. 인파를 헤치고 중무장한 기사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소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저기 있다. 잡아!”

“어이, 보아하니 어중이떠중이들 같은데 말썽부리지 말고 꺼져.”

기사들이 살기를 띄우며 다가왔다. 청발의 소녀가 하얗게 질려 박태정의 뒤로 숨었다. 그 모습에 강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어? 죽고 싶나? 엉?”

“잭, 긴말할 거 없어 잡아들여. 반항하면 싹 다 죽여버리자고!”

기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다가왔다. 박태정의 얼굴에 은은한 노기가 떠올랐다. 박태정이 뒤에 숨은 청발 소녀를 안심시켰다.

“이름이 뭐지?”

“에일린이에요.”

“오빠는 정말 죄가 없는 거니?”

“전 거짓말 하지 않아요!”

박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눈빛에서 거짓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강건우가 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하? 이 새끼가?”

“죽여주지.”

비릿한 웃음을 지은 기사들이 박태정에게 달려들었다. 마나가 실린 검이 박태정에게로 쏟아졌다. 캉! 박태정이 방패를 휘둘러 일시에 쳐냈다.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기사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평범한 모험가나 용병일 것으로 생각했다. 더군다나 검에 마나도 두르지 않은 상대였다.

“크흑! 강자다. 다들 조심해!”

“제길···. 한꺼번에 덤벼!”

기사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박태정이 무심한 표정으로 땅을 박차고 나갔다. 텅! 텅! 박태정의 방패가 휘둘러졌다. 기사들이 갑옷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기사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꼴좋다!”

“흥!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모험가님들 최고예요!”

기사들이 쓰러지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박태정이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오빠를 구하고 오겠습니다.”

“응, 너무 심하게 다루지는 말고.”

박태정이 인파를 뚫고 소녀의 오빠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열 댓 명이 넘는 기사들이 젊은 기사 한 명을 압박하고 있었다. 망토에 새겨져 있는 방패문양이 인상적이었다.

‘저 문양은 황도 경비 기사단이군···.’

박태정이 시선을 돌렸다. 젊은 기사 역시 망토에 방패문양이 있었다. 푸른색 머리카락이 에일린의 오빠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힘에 부친 듯 검을 땅에 꽂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대치하고 있는 기사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갑옷은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몇 명은 상처를 입은 채 자리에 주저앉아있었다.

“헨릭, 그만 저항하고 포박을 받아!”

“마크! 오해다. 나는 마족과 내통한 적 없어!”

“그건 조사하면 밝혀지겠지.”

마크가 비릿하게 웃었다. 헨릭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젯밤 마족의 침입에 자신의 가문이 협력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제길···. 근무를 바꿔 달라는 게 음모였을 줄이야···.’

어젯밤 비번이었던 자신에게 동료기사가 찾아왔다. 급한 일이 생겼다며 근무를 대신 서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평소 흔히 있는 일이기에 흔쾌히 응했다.

‘내가 저택을 비운 사이 누군가 마족의 물건들을 두고 갔다. 이건 우리 가문을 완벽히 제거하기 위한 음모가 분명해.’

헨릭이 아버지와 가문의 기사단을 떠올렸다. 헨릭의 가문인 프라이어 백작가는 제국에 떠오르는 신흥 강자였다. 헨릭의 아버지는 수도경비 기사단장을 역임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어느 날 황궁에서 내려진 임무를 위해 기사단과 출정한 뒤 소식이 끊겼다.

‘일사천리로 경비단장이 바뀌고 가문의 주요 사업장은 압류되었지···.’

그리고 오늘 자신에게 누명을 씌어 잡아가려 하고 있었다. 헨릭이 여동생이 도망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에일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에일린······.’

헨릭이 검을 고쳐 잡았다. 온몸이 물에 젖은 듯 무거웠다. 무리하게 마나를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쉽게 끌려갈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 남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가슴 부분이 저릿해 왔다.

“끝까지 저항하다니 어리석군.”

마크가 뒤를 돌아보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부하 기사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헨릭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기사들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쾅! 하는 폭음과 기사들이 튕겨 나갔다.

“에일린의 오빠가 맞습니까?”

헨릭이 눈이 크게 떠졌다. 망토로 전신을 두른 남성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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