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2)
화려한 건물들과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를 강건우와 유아린이 걷고 있었다. 빌딩들은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네모반듯한 지구의 건물양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빠. 이게 전부 팔크람님과 드워프 장인들의 솜씨래요. 정말 대단하죠?”
“그러게.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강건우가 감탄성을 내뱉었다. 장비 제작소를 세우기 위해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때의 황량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곡 이외의 곳도 궁금하긴 한데···.”
“음···. 다른 곳도 비슷해요. 강서구 외곽 쪽은 안전상의 문제로 사람들 거주가 제한적이긴 하지만요.”
“사람들이 많이 늘었던데. 치안 문제는 별로 없는 거야?”
강건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아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업무적인 대화만 나누는 것에 뿔이 난 것이었다.
“그런 거는 태정 오빠한테 물어보세요.”
“아···. 미안. 일 이야기는 그만할게.”
강건우가 미안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유아린이 밝게 웃으며 강건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밥 사준다고 하셨죠? 가요. 여기 꼭 가보고 싶은 데가 있었어요.”
“그···. 그래. 가자.”
갑자기 잡힌 손에 강건우가 당황했다. 그래도 좋은 기분이 들었다. 강건우와 유아린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걷던 시민 중 일부가 강건우를 알아보았다. 일부 여성들이 작은 비명을 내뱉었다. 하지만 유아린의 존재에 주눅이 들었는지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 모습에 유아린이 새침하게 말했다.
“인기 많아서 좋겠네요!”
“아니···. 뭐···.”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유아린도 마주 웃음을 터트렸다. 식당으로 향하던 길에 강건우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일부 시민들은 그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아크로폴리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강건우를 못 알아보는 것이었다.
잠시 후. 강건우와 유아린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아린이 간판을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예요. 이 집 고기가 아주 맛있어요. 특별한 고기를 쓰거든요.”
강건우가 고개를 들어 간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호가 너무 생소했다.
[갤럭시 화로구이]
강건우가 실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가게 이름이 이래?”
“헤헷. 들어가 보시면 알 겁니다.”
유아린이 혀를 내밀며 강건우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게 안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불판 위에는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에 강건우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때 덩치가 산만 한 남성이 다가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용 식칼을 든 모습이 압권이었다. 그 모습에 강건우가 흠칫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엇? 건우님 아닙니까?”
“안녕하세요? 저를 아십니까?”
“우하핫! 아크로폴리스에서 건우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남성의 말에 강건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모르는 사람도 많던데요···.”
“하하. 최근에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긴 했지요.”
말을 마친 남성이 옆에 서 있는 유아린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찡긋했다.
“하하. 좋은 나이입니다. 특별히 별실로 모시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사장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별실로 향했다. 그 뒤를 강건우와 유아린이 뒤따라갔다. 별실은 아늑한 분위기였다.
“제 소개를 깜빡했습니다. 갤럭시 화로구이 사장 정덕겸 입니다.”
“네, 강건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아린입니다.”
통성명이 끝나자 남성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태블릿 형태의 메뉴판이었다. 강건우가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로 태블릿을 살펴보았다.
“하하···. 고깃집에 태블릿 메뉴판이라 안 어울리죠?”
“네···. 신기하긴 하네요.”
“드워프들의 기술이라는 게 참 대단하더군요. 우리 집이 취급하는 부위가 많은데 그 태블릿 하나면 부위별 설명부터 맞춤형 주문까지 가능합니다. 물론 식사가 끝난 후에는 포인트를 이용한 결제도 가능합니다.”
남성의 설명에 강건우가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물론 처음 보는 명칭의 고기들이 적혀 있었다.
“포포의 목살? 이건 무슨 고기입니까?”
“아···. 그건 C 랭크 던전인 루난 마을에서 키우는 가축입니다. 돼지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맛이 훨씬 좋고 기름기도 적어 인기 만점입니다.”
“신기하군요···.”
강건우의 말에 정덕겸이 껄껄 웃었다.
“하하. 뭐 음식뿐이겠습니까? 던전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로 만들어진 제품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하긴···. 그렇군요···. 그럼 포포의 목살로 2인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아···. 메뉴판 좀 더 보겠습니다.“
“네, 얼마든지요.”
정덕겸이 주문을 받고 별실을 나갔다. 강건우가 태블릿을 조작해 이런저런 메뉴들을 살펴보았다. 그 모습에 유아린이 미소를 지었다.
“오빠는 어느 때 보면 참 순수해서 좋아요.”
“응? 내가?”
강건우가 태블릿을 내려놓고 유아린을 바라보았다. 유아린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잖아요. 오빠 덕분에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여기가 아마겟돈 전보다 더 살기 좋다고도 해요.”
“하하···. 그런가?”
“네, 그런데도 오빠는 흔히 말하는 갑질? 그런 게 없잖아요? 오빠가 여기의 주인인데 말이에요.”
유아린의 말에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원체 그런 성격이 아니라···. 그리고 나 혼자 왕처럼 살면 뭐해? 다 행복해야지.”
“그래서 제가 오빠를 좋아하나 봐요.”
“응? 뭐라고?”
“아···. 아니에요. 아 고기 나왔네요. 빨리 먹어요. 우리.”
유아린이 새빨개진 얼굴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 뒤로 맛있는 식사가 이어졌다. 강건우와 유아린은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가 끝나자 강건우가 태블릿을 이용해 계산했다.
“맛있어서 너무 많이 먹었나?”
“오빠, 밥값 많이 나왔어요?”
유아린이 미안한 듯 물었다. 각성자인 두 사람이 먹은 고기의 양은 10인분이 훌쩍 넘어갔다.
“아니, 나 돈···. 아니 포인트 많다. 내가 쏘니까 걱정하지 마!”
“오빠. 최고!”
유아린이 엄지를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강건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태블릿을 이용해 계산을 끝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두 사람을 정덕겸이 마중 나왔다.
“하하.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정말 맛있더군요.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다음번에도 아린 씨와 같이 오신다면 반값 할인입니다.”
정덕겸의 말에 유아린의 웃음을 터트렸다. 강건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했다. 고깃집을 나선 두 사람이 근처의 카페에서 음료를 샀다. 그리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오빠, 이제 어디로 갈까요?”
“음···. 이 근처에 백화점이 다시 운영 중이라고 하던데?”
“네, 여기서 가까워요. 저 앞에 신호등만 건네면 돼요.”
“그럼 안내 좀 부탁할게.”
유아린이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였다.
“넵, 대장님!”
“하하. 그게 뭐야.”
두 사람이 장난을 치며 건널목에 도착했다. 신호를 기다리던 두 사람의 앞으로 자동차가 멈춰섰다. 창문이 내려가며 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는 유아린을 향해 반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린아! 오늘 근무라고 하지 않았어?”
“안녕하세요. 오늘 약속이 생겨서 조퇴했어요.”
유아린의 말에 남자가 강건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래? 급한 거 아니면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어서 타.”
남자가 조수석을 가리키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강건우가 남자를 벙찐얼굴로 바라보았다. 예의라고는 시궁창에 처박아 놓은 행동이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랑 약속이 있어서요. 이야기는 다음에 하시죠.”
“아···. 이거 죄송하게 됐군요. 저는 이번에 새로 창설될 강제 각성 5팀의 팀장 예정자 차경한이라고 합니다.”
“아···. 네 저는···.”
남자의 인사에 강건우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차경한이 강건우의 말을 끊으며 들어왔다.
“팀원 구성문제로 급하게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그럽니다. 일반인이라 모르시나 본데. 얼마 전 있던 일로 지금 각성팀 전체가 비상사태나 다름없습니다. 아린이와는 다음에 다시 만나시죠.”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분이 누군지 알고···.”
참고 있던 유아린이 결국 폭발했다. 강건우가 유아린을 자신의 뒤쪽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남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린이도 싫다고 하고 저와의 선약이 있으니 다음에 이야기하시죠.”
강건우의 눈빛에 차경한이 움찔했다. 그사이 횡단보도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강건우가 유아린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차경한이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내리쳤다.
“뭐야? 지금 내가 일반인의 눈빛에 움찔한 거라고? 시발. 유아린 네가 언제까지 튕기나 보자.”
차경한이 창문을 올리고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횡단보도를 건넌 두 사람에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유아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죄송해요······.”
“네가 뭐가 죄송해? 근데 그 사람 뭐야?”
강건우가 유아린을 위로하며 물었다. 차경한을 떠올린 유아린이 잔뜩 화가나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 전 아크로폴리스로 들어온 사람이에요. 지금은 같은 4팀 소속이고요. 루난 마을 던전에서 가축을 얻는 퀘스트를 발견한 공략팀원이기도 하고요.”
“능력은 있나 보네?”
“능력이 있으면 뭐해요. 인성이 엉망이에요. 포인트를 제법 벌더니 사람들 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아주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굴어요.”
유아린이 잔뜩 화가나 열변을 토했다. 화를 내는 모습까지 아름다웠다.
“그런데 5팀의 팀장 내정자라고?”
“그것도. 자기 아니면 누가 되겠냐고 떠벌리고 다니는 거죠!”
유아린의 말에 강건우가 실소를 지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그렇군···. 참교육이 필요한 젊은이였어.”
강건우가 차경환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가슴에 새겼다. 시간을 내 참교육을 해줄 생각이었다. 강건우와 유아린이 백화점에 도착했다. 로비부터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유아린은 잔뜩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오빠! 얼른 들어가요.”
“알겠어.”
유아린이 앞장을 섰다. 백화점 안에 들어온 강건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름다운 내부장식과 최신식 시설들이 조화가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1층에는 보석상과 화장품 가게가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유아린이 어느 보석 상점 앞에 멈춰섰다.
“오빠, 이거 너무 이쁘죠?”
유아린이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건우가 다가오자 점원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 목걸이는 드워프 장인들이 지구의 다이아몬드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제품입니다. 기존의 세공기술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로 깎았습니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보석을 바라보았다.
“얼마입니까?”
강건우의 말에 유아린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강건우의 팔을 잡아당겼다.
“오빠, 구경만 한 거예요. 딴 데 보러 가요.”
“3만 포인트입니다.”
판매원의 말에 강건우가 보석을 사기로 했다. 그때였다. 두 사람의 뒤쪽에서 차경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인 따위가 사줄 만한 가격이 아닌데 말이지? 아린아 오빠가 사줄게.”
차경한의 말을 들은 보석상 직원이 뜨악한 얼굴을 했다. 도대체 눈앞의 인물에게 참신한 개소리를 하는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직원이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강건우의 입이 씰룩이고 있었다. 직원이 속으로 차경한에게 애도를 표했다.
‘저 남자. 건우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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