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1)
회복실 안이 드워프 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각종 장비를 설치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강건우와 팔크람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건우, 해병대원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 동족을 구할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동안 내 연구가 진전이 없던 이유는 던전화의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였어. 해병대원들의 상태가 중요한 열쇠가 될 거야.”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팔크람은 의욕에 불타는 눈이었다. 차원 왜곡 현상과 던전화의 비밀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동족의 치료는 물론 신의 힘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었다.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있던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릴까?”
“글쎄···. 그건 알 수 없어.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한참 걸릴 수도 있고···.”
“해병대원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
강건우의 말에 팔크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내가 인간들 생명을 담보로 뭐라도 한다는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치료가 길어지면 위험하지 않겠냐는 거지···.”
강건우의 말에 팔크람이 눈을 흘겼다. 그리고 드워프 들이 설치한 장비 쪽으로 향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드워프 연구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팔크람이 드워프의 손에서 차트를 낚아챘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한참을 읽은 팔크람이 차트를 드워프 연구원의 손에 넘겼다. 그리고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은걸? 차원의 힘에 노출된 시간이 매우 짧았나 봐?”
“길게 잡아야 하루? 아마 반나절 안팎일걸?”
“와우! 이건 뭐 실험데이터를 위해 주어진 선물 같은데?”
팔크람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 강건우의 품에 있던 카라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팔크람님, 치료는 가능한 거죠?”
“그럼, 이 정도는 나에게 맡겨만 달라고.”
팔크람이 가슴을 탕탕치며 호언장담했다. 그 모습에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꼭 부탁한다.”
“알겠어. 그나저나 마정석을 이용한 연구는 좀 기다려야겠어.”
“응. 일단 해병대원들의 일을 최우선으로 해줘.”
“알겠어.”
대화를 마친 강건우가 박태정을 바라보았다.
“형은 기현 씨가 깨어나면 나한테 말해주고.”
“알겠습니다.”
강건우가 회복실을 나왔다. 그리고 조율자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율자의 방에 도착한 강건우가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급한 일들은 해결한 거 같고. 이제 앞으로의 일이 문제인데···.’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 수호자와 파괴자는 각각의 본거지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조만간 응축된 힘을 폭발시킬 시기가 올 것이었다.
강건우가 아크로폴리스의 상황을 떠올렸다. 강제 각성자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시민들도 꾸준히 받아들여 어느새 수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사람이 늘어난 부작용도 있었지만, 인구수는 곳 힘이었다.
‘스킬스톤의 연구가 핵심이야···. 강제 각성자들에게 스킬을 줄 수만 있다면···.’
생각을 마친 강건우가 자신의 상태창을 호출했다.
“상태창.”
이름 : 강건우
진 영 : 중 립
직 업 : 조율자
각성등급 / 잠재등급 : S 랭크 / SSS 랭크
보유 포인트 : 13535200P
보유 스킬 ( 6 / 6 ) : 홍염의 칼날[Epic], 고귀한 후계자[Unique], 태초의 함성[Legend], 수호의 힘[Unique], 파괴의 힘[Unique], 전역 도발[Epic], 조율의 힘[Unique]
‘음···. 크라켄처럼 강력한 크리쳐를 상대하려면 내가 업그레이드되는 수밖에 없겠어.’
강건우가 크라켄을 떠올렸다. 거대한 크기에 걸맞은 강력함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상대한 것은 본체가 아닌 촉수일 뿐이었다. 그런 존재가 한국의 앞바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치워야 할 존재지···. 더군다나 그런 크리쳐가 크라켄 하나일 리도 없고.’
생각을 마친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했다. 그리고 장비목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거대 크리쳐를 상대하기 위한 장비를 찾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거대한 크리쳐 들을 상대하기는 무리지···.’
한참을 살펴봤지만 마땅한 무기를 찾지 못했다. 강건우가 접속을 끊고 카라를 바라보았다. 카라는 조율자의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먹고 있었다.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카라, 그만 먹고 나 좀 봐.”
“잠시만요, 이것만 마저 먹고요.”
“하···. 못 말린다 진짜.”
카라가 씨익 웃으며 강건우에게 날아왔다. 어깨에 앉은 카라를 쓰다듬어준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카라, 크라켄을 잡을만한 무기는 없는 거야?”
“왜 없겠어요. 당연히 있죠.”
“무기 상점에는 쓸만한 게 없던데?”
강건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카라가 싱긋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특별한 아이템들은 포인트는 물론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었죠?”
“기억나.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설명해 줬었지.”
“맞아요. 일반무기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무기는 진품을 토대로 한 양산품들이 대부분이에요.”
카라의 설명에 강건우가 호기심을 보였다. 조율자의 상점은 아직 숨기고 있는 비밀이 많았다.
“진품이라면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그런 무기도 있겠네?”
“네, 있어요. 전 우주의 위대한 영웅들의 무기와 방어구. 이제는 죽은 신들의 무기도 있고요.”
“와우! 엄청나군. 그래서 그 무기들이라면 크라켄 같은 크리쳐도 상대 가능한 거야?”
“크라켄뿐이겠어요?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도 있어요.”
카라가 콧대를 잔뜩 세웠다. 그 모습에 강건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무기는 사기 위한 조건이라는 게 뭐야??”
“무기마다 다른데요. 일단 크라켄을 잡기 위한 무기인 [포세이돈의 창]을 예로 들면요.”
카라가 말을 멈췄다. 그러자 강건우가 빨리 말하라며 재촉했다.
“카라, 빨리 말해줘. 뭔데?”
“포세이돈의 힘이 담긴 파편을 찾아야 해요.”
“신의 파편을 말하는 거야?”
“네, 맞아요.”
강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포세이돈의 힘이 담긴 파편을 찾으라니. 크라켄을 처치하는 것보다 힘든 일일 수도 있었다.
“완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잖아.”
강건우가 낙담하자 카라가 용기를 복 돋아 주었다.
“그래도 저희는 지구의 신들과 접점이 있잖아요. 한번 물어나 보죠.”
“하···. 자기들 진명도 입에 담지 못하는 수준인데 정보를 알려 줄 수 있을까?”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요. 잠시만요.”
말을 마친 카라가 가이아의 상자로 날아갔다. 카라의 몸이 녹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구의 신들과 카라의 대화가 시작됐다. 강건우는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카라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접속을 끝낸 카라가 가이아의 상자를 발로 찼다.
“후아···. 이 사람···. 아니 신들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카라, 왜 그래?”
강건우가 카라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아니,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잖아요. 아직 진명을 알려줄 수 없으므로 정보를 줄 수 없대요.”
“아니 왜 그렇게 몸을 사리는 거냐?”
“아마 수호신과 파괴신의 만신전에 노출되는 걸 꺼리는 거겠죠.”
강건우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크라켄을 처치하는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분명 엄청난 보상이 쏟아질 텐데 말이지···.”
“그러니까요. 잡기야 정말 힘들기는 하겠지만요.”
“크라켄은 나중에 생각하자.”
강건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모두 시간이 필요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고 싶은데 말이지···.”
강건우의 말을 들은 카라가 깜짝 놀랐다.
“설마, 저번처럼 위장이라도 하실 생각인가요?”
“아니? 왜?”
카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 끔찍했던 복장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어서 가시죠.”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정말.”
강건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율자의 방을 나선 강건우가 문득 유아린을 떠올렸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강건우가 이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신호음이 끊기며 유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건우 오빠?-
“어. 나야. 지금 뭐 해?”
-지금, 순찰 근무 중이에요.-
유아린의 말에 강건우가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 언제 끝나는데?”
-저녁에요······.-
“그렇구나···. 순찰 끝나면 힘들겠네···. 알았어. 수고해.”
강건우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무슨 일로 그러세요?-
“별건 아니고. 아크로폴리스 좀 둘러보려고 했지.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그런 거라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유아린이 전화를 끊었다. 강건우가 휴대폰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유아린의 목소리가 사뭇 귀여웠다. 그때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건우가 전화를 받았다.
-오빠! 저 지금 갈 수 있어요. 어디로 갈까요?-
“근무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조퇴했어요. 어디로 갈까요?-
“그래? 그럼 내가 데리러 갈게. 지금 어디야?”
강건우의 말에 유아린의 목소리가 잔뜩 들떴다.
-여기. 마곡동에 있는 통신 타워 쪽이에요.-
“알겠어. 금세 갈게.”
-네. 오빠. 조심히 오세요.-
유아린과의 통화가 끝났다. 강건우가 자신과 가족들이 머무는 층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집이었다. 부모님과 강지우는 모두 나가고 없었다. 강건우가 입고 나갈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카라가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건우님, 제발! 그 옷만은.”
“알았다고. 내가 바보냐?”
강건우가 툴툴거리며 옷을 골라 입었다. 깔끔한 스타일의 캐쥬얼이었다. 카라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어때? 이래도 내가 패션 고자냐?”
“뭐···. 그 정도면 봐줄 만하네요.”
강건우가 씨익 웃으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각성한 이후 탄탄해진 몸매에 옷발이 살아있었다. 얼굴도 왠지 잘생겨진 느낌이었다.
“자. 가볼까?”
준비를 마친 강건우가 차고로 향했다. 롤스로이스 팬텀이 강건우를 맞아 주었다. 차에 올라탄 강건우가 시동을 걸었다. 듣기 좋은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액셀을 밟자 차가 부드럽게 나아갔다.
거리는 사람들과 차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그 모습에 강건우의 마음이 뿌듯해졌다. 차를 천천히 몰며 아크로폴리스의 풍경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그때 강건우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강지우였다. 전화를 받은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어.”
-오빠! 아린이 만나기로 했다며!?“
“그건 또 어디서 들었냐?”
강건우가 실소를 지었다.
-아린이가 전화 와서 근무 좀 바꿔 달라길래.-
“아? 그래?”
-그래! 근데 웬 열? 오빠가 먼저 연락을 다 하고?“
“간만에 시간이 좀 생겨서. 시내도 좀 둘러볼 겸.”
강건우의 말에 강지우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래그래. 잘했어. 데이트 잘해!-
“데이트는 무슨······.”
강건우가 얼버무렸다. 그러자 강지우가 더욱 크게 웃었다.
“할 말 없으면 끊는다.”
-오늘 진도 좀 나가라고.-
“뭐래.”
강건우가 전화를 끊었다.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 후 롤스로이스 팬텀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저깄다.”
강건우가 유아린을 발견했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천사 같았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였다. 강건우의 입가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차를 몰아 유아린의 앞에 도착한 강건우가 창문을 내렸다.
“아린아.”
“오빠. 오셨어요.”
“응, 타라.”
“네···.”
유아린이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강건우가 안전벨트를 메주였다.
“자···. 그럼 안내 좀 부탁할까?”
“네? 아···. 네···. 먼저 마곡 시내로 가요.”
“오케이.”
강건우가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차를 몰아 시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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