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1)
항상 차로 붐비던 올림픽 대로. 두 대의 바이크와 십여 대의 트럭이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해병대원들을 구해 아크로폴리스로 돌아가는 강건우 일행이었다.
끼이익!
한참을 달리던 두 대의 바이크가 옆쪽으로 미끄러지듯 멈춰섰다. 전방의 도로는 망가진 차들로 막혀있었다. 강건우가 헬멧속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트럭은 지나갈 수 없겠는데?”
“누가 이런 짓을 해놓은 걸까요?”
강건우가 이진호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시 말을 높이고 있었다.
“그냥 편하게 말하면 안 될까?”
“싫습니다.”
강건우가 실소를 흘렸다. 그 모습에 이진호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불편해도 참으십시오.”
“후···. 알겠어.”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이 차량으로 막혀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모습이 인위적이었다. 더군다나 지원팀이 지나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진호야, 지원팀에게 가서 주변 경계를 강화하라고 전해줘.”
“설마, 파괴자 놈들 짓인 겁니까?”
“글쎄···.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길을 막아놨어.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제길! 그놈들은 안 끼는 데가 없군요.”
“확실한 건 아니니까.”
이진호가 지원팀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트럭에서 쉬고 있던 강제 각성자들이 하나둘씩 하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트럭을 둥글게 감싸기 시작했다.
“역시 훈련이 잘 돼 있어.”
순식간에 방어대형이 완성됐다. 강건우가 그 모습에 만족감을 느꼈다.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린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손검과 방패였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프로텍트 쉴드[Epic] 스킬스톤도 구매했다.
준비를 마친 강건우가 이진호에게 무전을 보냈다.
“진호야, 내가 먼저 반대편을 확인하고 올게.”
-알겠습니다. 일이 생기면 바로 지원하겠습니다.-
무전을 마친 강건우가 차 벽의 좁은 틈으로 반대편으로 향했다.
한편 차 벽의 반대편에는 나상천을 비롯한 파괴자 진영의 초기 각성자들이 모여 있었다. 도로 옆쪽으로 늘어선 차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였다.
“상천님, 정말 강제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행렬이 맞습니까?”
“그래,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런데 정말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여긴 강서구랑 너무 가깝습니다.”
계속되는 부하들의 걱정에 나상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새끼들! 겁만 많아서! 민철님의 명령이야. 우리 처지 잘 알지? 시키는 대로 해.”
나상천의 말에 부하들이 침묵했다. 주상혁이 허무하게 죽은 뒤 나상천과 남은 부하들은 안민철에게 몸을 의탁했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안민철의 부하들에게는 굴러온 돌이었다. 은연중에 가해지는 차별과 무시에 힘든 날이 이어졌다.
“오늘 임무만 잘 해내면 우리 무시하는 놈들한테 한 방 먹일 수 있어.”
“알겠습니다···. 그래도 강건우가 나타나면 도망치는 겁니다?”
“도망은 가능하고? 걱정하지 마. 강건우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어.”
“으으···. 다행입니다.”
부하 각성자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떨었다. 지난번 자신들을 학살하던 강건우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었다.
나상천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비롯한 부하들은 엘리트인 초기 각성자였다. 자신은 수호자와 붙는다 해도 쉽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단지 강건우라는 존재가 사기일 뿐이었다. 혼자서 초기 각성자 여럿을 학살하다니. 상위 랭크의 수호자나 파괴자도 힘든 일이었다.
“하···. 알겠어.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죄송합니다.”
나상천과 부하가 의기소침해졌다. 그때 차 벽의 좁은 틈으로 한 명의 남성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발견한 부하가 나상천에게 소리쳤다.
"적의 정찰병입니다!“
“적이 나타났다. 저놈은 내가 맡는다. 나머지는 벽 너머로 달려!”
“와아아!”
“상혁님의 복수다!”
나상천과 부하들이 노도와 같이 달려나갔다. 나상천이 주먹을 움켜쥐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당한 만큼 돌려주는 거다! 자비를 베풀지 마!”
“네!”
“가자! 한 놈도 살려두지 마!”
부하들이 차 벽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강건우가 그 모습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상천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혼자 온걸 원망해라!”
쾅! 나상천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일격에 죽어 나갈 적이 불쌍했다. 하지만 곧이어 드러난 광경에 나상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야? 이걸 막아?”
강건우가 전방을 확인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주상혁의 오른팔 나상천이였다. 강건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아마 지원팀을 노린 것 같은데···.’
생각에 빠진 강건우의 귓가로 나상천의 고함이 들려왔다.
“씨발! 강제 각성자가 내 주먹을 막아?!”
“뭐래?”
강건우가 당황한 나상천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텅! 방패에 가격당한 나상천이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크헉! 누구냐?”
나상천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상당한 타격을 받았는지 몸이 떨리고 있었다.
“기껏 도망가더니 죽으러 돌아왔나?
강건우가 헬멧을 벗었다. 얼굴을 확인한 나상천이 손가락을 들어 강건우를 가리켰다.
“가···. 강건우?! 씨발!”
나상천이 당황하며 욕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번에는 아주 씨를 말려줄게.”
강건우의 말에 나상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상천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차 벽 너머의 네 부하! 지금 위험할 텐데?!”
“하···?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강건우가 코웃음을 치며 나상천에게 달려들었다. 잔뜩 겁먹은 나상천이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한발 앞선 강건우가 방패로 등을 후려쳤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상천이 꼬꾸라졌다. 강건우가 쓰러진 나상천을 걷어찼다. 쿵! 나상천이 도로 옆쪽의 차에 처박혀 의식을 잃었다. 나상천을 처리한 강건우가 차 벽의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반대편의 상황은 백중세였다. 강제 각성자들은 트럭을 중심으로 방진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상천의 부하들은 방진을 뚫기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트럭 위에 올라간 이진호가 사격으로 적들을 견제했다.
“뭉쳐! 흩어지지 마!”
“힘내! 건우님이 금세 돌아오실 거야.”
“제길! 영미야! 누가 영미 좀 옮겨줘.”
강제 각성자들로는 초기 각성자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방어가 뚫리기 시작했다. 이진호가 마나 런쳐로 열심히 견제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모든 곳을 커버할 수는 없었다. 차위로 올라 상황을 파악한 강건우가 우렁찬 소리를 내뱉었다. 태초의 함성을 사용한 것이었다.
“흐아압!
태초의 함성이 발동했다. 아크로폴리스의 각성자들의 몸이 회복되고 힘이 넘쳐났다.
“이게···. 말로만 듣던 건우님의 스킬···.”
“대박이다!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어.”
“온몸에 힘이 가득 찼어.”
각성자들의 환호성과 함께 강건우가 전장에 뛰어들었다. 홍염을 두른 한손검을 휘두를 때마다 한 명의 적이 쓰러졌다. 나상천의 부하들이 공포에 질렸다.
“가···. 강건우다···!”
“도망쳐!”
“씨발!”
파괴자 진영의 초기 각성자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건우의 추격과 이진호의 저격에 한 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적들을 모두 처치한 강건우가 검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냈다.
“건우님, 역시 파괴자들의 짓이었습니다.”
곁으로 다가온 이진호가 분노에 차이었다. 강건우와 자신이 없었더라면 강제 각성자들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강건우가 씩씩거리는 이진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품속에 있던 카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건우님, 반대편에 각성자는 어쩌실 거에요?”
“사로잡아서 아크로폴리스로 옮겨야지.”
강건우의 말에 이진호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A 랭크 초기 각성자입니다. 아크로폴리스 안에 두기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했다. 포인트가 빠져나가며 하나의 아이템이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강건우가 아이템을 꺼내 카라에게 건냈다.
“가자 카라.”
“네, 깨어나기 전에 마무리하죠.”
강건우가 차 벽을 뛰어넘어 나상천에게로 향했다. 그 뒤를 이진호가 뒤따랐다. 차 벽의 건너편에는 나상천이 아직 기절해 있었다. 엉망으로 망가진 나상천의 상태에 이진호가 혀를 내둘렀다.
“A 랭크 각성자를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그나마 힘 조절 한 거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카라가 나상천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동그란 보석이 박혀있는 팔찌를 손목에 채웠다. 나상천이 옅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진호가 강건우에게 물었다.
“저건 뭡니까?”
“각성자 구속장치. 중앙에 박혀있는 보석이 각성자의 힘을 억제해 일반인처럼 만들어.”
“헐···. 완전 크립톤 나이트군요.”
“그런 셈인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카라가 돌아왔다.
“이제 차 벽을 처리해야죠?”
카라의 말에 강건우와 이진호가 차 벽으로 다가갔다. 정상으로 뛰어오른 두 사람이 차량을 한 대씩 강으로 던졌다. 차가 빠질 때마다 물기둥이 일어났다. 잠시 후 트럭이 지나갈 만한 공간이 확보됐다.
“이 정도만 치우자.”
“휴···. 알겠습니다. 상당히 힘드네요.”
이진호가 엄살을 부렸다. 강건우보다 근력이 약한 직업 이긴 헸다. 벌어진 틈으로 대기하고 있던 지원팀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차 벽의 꼭대기로 4팀장 정원석이 다가왔다. 그리고 현황보고를 시작했다.
“건우님, 3팀에 경상자 7명, 중상자 2명. 4팀은 경상자 1명입니다.”
“중상자는 상태가 심각한가?”
“네, 아크로폴리스로 빨리 옮겨야 합니다.”
정원석의 보고에 강건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호가 정원석에게 말했다.
“현장을 빠르게 정리하고 복귀한다.”
“네. 알겠습니다.”
정원석이 지원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건우님, 너무 맘 상해 하지 마십시오. 전쟁 아닙니까?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알고 있어.”
강건우가 짧게 대답하고 차 벽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바이크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이진호도 뒤따라 바이크에 올라탔다.
“빨리 돌아가서 다친 사람들부터 치료해야겠어.”
“모두 무사히 회복할 겁니다.”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이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정원석과 지원팀을 태운 트럭도 곧이어 출발했다.
잠시 후 강건우 일행이 떠난 자리에 안민철과 부하들이 나타났다. 쓰러져 있는 초기 각성자들의 생가를 확인했지만 모두 죽어있었다. 씁쓸한 표정의 각성자 한 명이 안민철에게 다가왔다.
“정말 지켜보기만 한 게 잘한 걸까요?”
“어쩔 수 없었어. 설마 강건우가 여기에 나타날 줄은···.”
“이제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부하들의 질문에 안민철이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판단미스로 본거지가 날아가 버렸다. 다시 본거지를 세우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퀘스트를 해결해야만 했다. 막대한 양의 포인트도 필요했다.
안민철이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하들의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일단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그놈한테 비벼봐야지 뭐···.”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겁니까?”
안민철의 말에 부하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잠시 후 안민철과 부하들이 자리를 떠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