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61화 (62/99)

강화도(4)

방어진지에서 참성단을 겨누고 있던 이진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참성단의 폭주가 멈추자 주변에 기이한 현상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귀신이야?”

이진호가 기겁하며 방어진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진지 안쪽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희미한 사람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이진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희미한 형태의 정체는 사라졌던 해병대원들이었다.

“돌아오고 있어?”

그때 이진호의 옆으로 송기현과 강건우가 나타났다. 강건우가 하얗게 질린 이진호의 얼굴을 발견했다.

“진호야, 왜 그래?”

“어? 건우야. 방어진지 안에 있는데 오싹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래서 뛰쳐 나왔지.”

“잘했네. 제단의 일은 잘 마무리됐다.”

“응, 나도 확인했다. 그나저나 저 사람 각성자였어?”

이진호와 강건우가 송기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정상에서부터 뛰어온 송기현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강건우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산정상에서부터 이곳까지는 300m 남짓이었다. 송기현의 뒤를 따라잡기 위해 제법 속도를 내야만 했었다.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상하군···. 분명 일반인 일 텐데. 제단에서의 일과 연관이 있는 건가?’

강건우가 생각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악!”

방어진지를 향해 뛰어가던 송기현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고 있었다. 다시 일어났지만 계속 튕겨 나갔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카라가 강건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건우님, 방어진지에 생긴 저 투명한 막 보이시죠?”

“응, 보여. 무슨 일인지 알고 있어?”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살짝 웃었다. 특유의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이진호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죠. 지금 저건 차원 동기화 현상이에요. 마니산의 던전화가 중지돼는 바람에 원래대로 돌아오는 중인 거죠.”

카라의 설명에 멀리 있던 송기현이 깜짝 놀라며 달려왔다. 제법 떨어져 있었음에도 카라의 설명을 똑똑히 들은 것이었다.

“신의 사자님, 차원 동기화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태도였다. 카라가 잠시 움찔하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참성단에 모여있던 신의 힘이 폭주한 작용으로 마니산의 던전화가 진행 중이었어요. 그러다 안정을 찾으면서 원래 차원으로 돌아오는 중이고요. 그 과정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게 생겨난 거죠.”

카라의 설명에 송기현이 멍한 얼굴을 했다. 던전이라든지 차원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카라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강건우가 송기현을 향해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해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지금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송기현이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건우도 방어진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이잉. 투명한 장막 속에서 공명음이 들려왔다. 사람들의 형상도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장막이 걷히며 안쪽에서 번쩍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선배님!”

송기현이 중년의 남성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장막 안의 중년 남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주변에 나타난 해병대원들도 정신을 차리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아! 제단은 무사한 거냐?”

“선배님, 제단은 무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모르겠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의식을 잃었었는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곁으로 강건우와 이진호가 다가왔다. 송기현이 중년남성에게 두 사람을 소개했다.

“선배님, 여기는 신의 사장님들이십니다.”

“신의 사자? 그게 무슨 말이냐?”

의아해하는 중년 남성에게 송기현이 참성단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중년 남성이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해병대 중령 권율입니다. 참성단의 일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건우라고 합니다.”

“충성. 예비역 중위 이진호입니다.”

이진호가 권율을 향해 거수경례했다. 자신이 겪었던 상관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끝까지 남아 항전한 군인정신에 존경심이 들었다. 권율 중령이 경례하는 이진호를 호의가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예비역? 아직 군인 냄새가 많이 나는데. 언제 전역했나?”

“그게···. 전역이라기보다는···.”

말을 얼버무리는 이진 호의 모습에 권율 중령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이진호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 사연을 물어 뭣하겠나?”

“네! 감사합니다.”

이진호와의 대화를 마친 권율 중령이 강건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건우가 권율 중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강인한 인상에 꾹 다문 입술이 강직한 심성을 대변했다. 잠시 시선을 마주친 강건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권율 중령의 손을 마주 잡았다.

“군인이라지만 크리쳐에 맞선 용기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공치사를 듣자고 한 일이 아니네···. 기현이한테 듣자 하니 각성자 인 거 같은데 맞나?”

권율 중령의 말에 강건우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권율 중령이 또다시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뭘 그리 놀라나. 정부와 군 관계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일세.”

강건우가 정부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렇긴 하군요. 그보다 조금 전의 일들에 대한 기억은 없으십니까?”

“일? 무슨일 말인가···. 눈앞이 번쩍하더니 잠시 의식을 잃었던 일 말인가?”

권율 중령의 말에 강건우가 카라를 바라보았다. 강건우의 품 안에 있던 카라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 모습에 권율 중령이 깜짝 놀랐다.

“뭐···. 뭔가! 이거는?”

권율 중령의 외침에 카라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강건우의 품에서 빠져 나와 권율 중령의 앞으로 날아갔다.

“이거라니요! 전 카라에요!”

“미안하네. 처음 보는 존재라 놀라서 그랬네.”

권율 중령의 사과를 카라가 도도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권율 중령과 해병대원들의 상태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권율 중령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특히 던전화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는 식은땀까지 흘렸다. 카라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권율 중령이 침음성을 흘렸다.

“음···.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글쎄요. 차원 너머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었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던전마다 시간 배율이 다르게 설정되니까요. 지금처럼 던전화가 마무리되지 못하고 원래 차원으로 동기화가 일어난다면 일반인의 몸에는 커다란 무리가 갈 거예요.”

권율 중령이 입을 벌린 채 카라를 바라보았다. 묵묵히 듣고 있던 송기현이 카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신의 사자님, 한마디로 선배님과 해병대원들이 위험하다는 말씀입니까?”

“네, 맞아요.”

그때였다. 권율 중령의 명령으로 방어진지를 정비 중이던 병력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툭툭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던 권율 중령도 어지러움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으으···. 기현아···.”

신음성과 함께 쓰러지는 권율 중령의 몸을 송기현이 부축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강건우와 이진호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카라가 권율 중령의 몸으로 날아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잠시 집중하던 카라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지구로 돌아오면서 몸에 엄청난 무리가 왔어요. 빨리 치료해야 해요.”

“카라, 포션이면 되겠지?”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하려 했다. 그러자 카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포션으로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신의 사자님, 제발 선배님과 해병대원들을 살려주십시오!”

송기현이 금세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표정으로 카라에게 애원했다. 이진호가 그런 송기현의 어깨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는 강건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건우야, 도와줄 거지? 부탁한다.”

강건우가 팔크람과 드워프들을 떠올렸다. 해병대원들을 치료하고 연구하면 드워프들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고민을 끝낸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방법이 없겠어?”

“아크로폴리스의 회복 캡슐을 이용하면 당분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 그다음 방법을 찾아 보면 돼요.”

카라의 말을 들은 이진호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같은 군인 출신의 해병대원들이 유난히 걱정하고 있었다.

“신의 사자님, 감사합니다.”

카라의 말을 들은 송기현이 기어코 눈물을 쏟아냈다. 이진호가 그런 송기현을 위로했다.

“카라, 이 많은 수의 사람을 어떻게 옮긴단 말이야?”

강건우가 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핏 봐도 50명이 넘는 인원이 쓰러져 있었다. 다른 진지를 수색한다면 인원수는 더 늘어날 것이었다. 강건우의 말을 들은 이진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연대급이면···. 못해도 천 단위 병력일 텐데···.”

“아닙니다. 권율 중령님과 함께 남은 병력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송기현의 설명에 이진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부대원들이 없는 연대장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선배님이 지휘하던 부대는 정부의 지시로 후퇴했습니다. 여기 남은 병사들은 전부 대종교 소속의 해병대원들입니다. 숫자는 20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강건우와 이진호가 깜짝 놀랐다. 같은 부대에 200명이나 되는 대종교인을 심어놓았다. 거대한 규모의 단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읽은 송기현이 입을 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대종교는 비밀리에 민족의 성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송기현이 설명을 이어갔다. 대종교는 강화도의 참성단을 비롯한 여러 곳의 성지를 수호하기 위해 지킴이를 육성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군에 입대할 나이가 된 청년들은 성지가 있는 인근 부대에 자원하거나 배치받았다. 그리고 평범한 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지금 같은 유사시에는 권율 중령 같은 군 간부의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

“대단하군요.”

“와! 군 생활하면서 생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설명을 모두 들은 강건우와 이진호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알려진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성단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젊은이들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송기현이 재차 애원했다. 두 사람이 설명을 듣는 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카라가 방법이 생각난 듯 크게 말했다.

“제가 아크로폴리스로 연락을 취해서 지원병력과 수송수단을 요청할게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 사이 해병대원들에게 별일이 없을까?”

“일단은 포션으로 임시처방을 하면서 버텨야죠.”

강건우와 카라의 대화를 듣던 이진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리가 끊겨서 차들이 들어올 방법이 없잖아? 바다를 통해 옮긴다 해도 문제고···.”

이진호의 말에 강건우가 바다에 있는 존재를 떠올렸다.

“크라켄······.”

“신의 힘이 회수되기 전에는 이 근처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결국에는 처치해야 한단 말이잖아?”

강건우의 말에 이진호가 몸을 떨었다. 거대한 크기에 강력한 힘을 가진 크라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쉬는 강건우와 이진호에게 송기현이 물었다.

“크라켄이라면 바다에 나타난 커다란 괴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강화도에 들어올 때도 그놈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강건우의 말에 송기현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문제라면···. 제가 어찌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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