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1)
회복실에 도착한 강건우를 카라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의식을 잃기 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활발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강건우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건우 님, 다녀 왔습니다.”
“카라! 별일 없었어? 걱정했어.”
카라가 날갯짓을 하며 강건우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아니 그 무례한 놈들이. 건우 님이 스트롱홀드를 두 개나 파괴했다며 규정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바람에 제가 열이 받아서요!”
“잉? 그러니까 파괴신들이 널 붙잡아 놓은 게 아니라는 말이야?
“파괴신들이 저를요? 큰일 날 말을 하세요. 그런 이유도 능력도 없어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왜 그리 걱정을 했나 싶었다.
“그래서 만신전까지 행차하셔서 무얼 하고 오셨나?”
“엣헴. 파괴자들이 아크로폴리스를 공격하려 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추가로 삥을 좀 뜯어왔죠.”
강건우가 실소를 흘렸다. 처음 만났을 때의 순수했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싫은 변화는 아녔다.
“삥이라는 단어는 누구한테 배운 거야?”
“누구긴 누구예요?”
카라가 눈을 흘기며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머쓱해진 강건우가 헛기침했다.
“흠흠···. 나였나.”
말을 마친 강건우와 카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웃고 난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그럼 얼마나 삥을 잘 뜯어왔는지 확인해볼까?”
“기대하세요. 건우 님처럼 소심하게 삥뜯어오지는 않았어요.”
강건우가 멍한 얼굴로 카라를 바라보았다. 카라가 찡긋 윙크했다.
“그냥 부수입 정도로만 생각해 주세요. 500만 포인트를 삥뜯었습니다.”
“와! 대단해 카라. 그럼 잘 쓰도록 할게.”
강건우가 손뼉 치며 좋아했다. 그 모습에 카라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건우 님, 이 포인트는 제건데요?”
“응? 무슨 말이야?”
강건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카라가 그 표정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도 포인트가 필요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 제가 해내는 일들이 다 공짜는 아니었거든요?”
“아···. 그런 거였어?”
“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요?”
카라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보다 카라 우리 마니산에 가야 해.”
“마니산이요? 거긴 왜요?”
강건우가 지구의 신과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카라가 팔짱을 끼며 생각에 빠졌다.
“카라, 무슨 생각을 그리 해?”
“마니산에서 신의 파편을 발견할 수도 있겠는데요?”
“헐? 그럼 대박 아니야?”
강건우가 깜짝 놀라며 카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지구의 신들이 힘을 회복하려면 제단에 남아있는 힘이 필요할 거에요.”
“그래? 그런데 왜 나한테 별말이 없었을까?”
“아마 수호결계를 설치하고 나면 회수하려 했겠죠.”
“그래? 신의 힘이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건가? 무슨 제단에 막 굴러다녀?”
강건우의 말에 카라가 설명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신에게 공물을 바치던 곳이잖아요. 신앙심의 정수가 모여 있겠죠.”
“알았어. 이번엔 진호만 데리고 다녀오자고.”
“네, 그러세요.”
말을 마친 강건우가 회복실을 나섰다. 그리고 중앙관제실로 박태정을 찾아가 마니산행을 통보했다.
****
부아앙!
뻥 뚫린 올림픽대로를 두 대의 바이크가 굉음을 내뿜으며 질주하고 있었다. 도로는 보수가 되지 않아 여기저기 파여 있었다. 또한, 도로를 달리다 멈추어선 자동차들이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두 대의 바이크는 초지대교에 이르러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짙은 안개가 초지대교를 감싸고 있었다. 바로 앞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였다. 강건우가 헬멧을 바이크에 올려놓았다. 뒤따라오던 바이크에서 내린 이진호가 옆으로 다가왔다.
“건우야, 일반적인 안개치고는 너무 짙은 거 같은데?”
“그러게. 위험해 보이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편안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둘만 있을 때는 말을 놓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진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강건우는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강화도로 들어가려면 초지대교를 건너야 하는데 말이지.”
“바다를 건너는 건 너무 위험하겠지?”
강화도로 들어가는 바닷길은 그리 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동할 수단도 마땅치 않았다. 바닷속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고민에 빠져있자 카라가 강건우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다리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그 모습에 강건우와 이진호가 화들짝 놀랐다.
“카라! 어디 가는 거야?”
“위험합니다!”
두 사람의 외침에 카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떤 상황인지 살짝 보고만 올게요.”
“야! 카라!”
카라의 모습이 안개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건우가 한숨을 쉬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진호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렇게 카라가 사라지고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어? 카라 님이다!
바이크에 기대있던 이진호가 몸을 일으키며 다리를 가리켰다. 그 소리를 들은 강건우도 초지대교를 바라보았다. 다리 한가운데서 카라가 다급히 날갯짓하며 날아오고 있었다. 다급한 얼굴이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이크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날아온 카라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강건우의 어깨 위에 앉았다.
“건우 님, 다리가 아예 끊겨 있어요. 더 큰 문제는 바닷속에 강력한 힘을 가진 크리쳐의 기운이 느껴져요.”
말을 하던 카라가 크리쳐의 힘이 떠올랐는지 몸을 한 차례 떨었다. 카라의 말을 들은 강건우가 다리 쪽을 바라보았다.
“다리도 끊긴 데다가 바닷속에는 정체를 모를 크리쳐까지···. 방법이 없을까?”
“건우야, 주변에 버려진 선박이 있나 찾아볼까?”
이진호의 말에 강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동안 크리쳐의 공격을 받는다면 매우 곤란해질 것이었다.
“아니, 일단은 다리가 연결된 부분까지 가보자고.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
“건우 님, 안개 속에도 크리쳐 들이 숨어 있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알겠어.”
말을 마친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이진호도 마나 런쳐를 꺼내 어깨에 견착시켰다. 카라는 강건우의 품 안으로 숨었다. 준비를 마친 강건우와 이진호가 다리를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안개를 뚫고 강건우와 이진호가 다리 안으로 진입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시야에 강건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래서는 크리쳐가 어딨는지도 모르겠는데?”
“건우야, 내가 앞장설게.”
이진호가 강건우의 앞으로 나섰다. 이진호는 창공의 사수라는 직업 덕택에 다른 각성자들보다 뛰어난 시력을 가졌다. 지금과 같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주변을 살피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래, 부탁할게.”
“가자고.”
이진호가 마나 런쳐를 견착한 상태로 사방을 경계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강건우도 검과 방패를 정면으로 들고 언제든지 지원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자 다리가 끊겨 있는 시작점에 도착했다. 이진호가 다리를 바라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리자드맨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사체들은 하나 같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음···. 이건 리자드맨인가?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지?”
“진호야, 카라가 느꼈다던 강력한 크리쳐의 짓이 아닐까?”
그때였다. 리자드맨의 사체를 살펴보던 카라가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해요! 크라켄이에요!”
“뭐······. 뭣?!”
“크라켄?! 그게 왜 여깄어?”
강건우와 이진호가 소리를 치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때 끊긴 다리 밑의 바다에서 굉음과 함께 크라켄의 촉수가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강건우와 이진호를 향해 빛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쾅! 쾅!
강건우와 이진호가 이리저리 촉수를 피해 움직였다. 빗나간 촉수가 다리에 꽂히며 폭음이 들려왔다. 미친듯한 속도로 다리를 벗어난 두 사람이 바이크가 세워진 곳으로 돌아왔다.
“헉헉···. 내가 아는 그 크라켄 맞지? 신화에나 나온다던?”
이진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강건우가 검과 방패를 둘러메고는 한숨을 쉬었다.
“맞는 거 같다. 무슨 촉수 크기가 집채만 한 게···.”
“건우 님, S 랭크 크리쳐 크라켄이에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크게 놀랐다. S 랭크 크리쳐라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경험상 아마겟돈에는 A 랭크 던전과 A 랭크 유니크 크리쳐가 최대치였었다.
“S 랭크? 크리쳐는 A 랭크 유니크가 끝 아니었어?"
“아마겟돈 초기에는 A 랭크가 최대치가 맞아요.”
“그런데 S 랭크라니 어떻게 된 거야?”
카라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려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생각을 끝낸 카라가 눈을 떴다. 그리고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마니산에 모여 있는 신의 힘이 원인인 것 같아요.”
“신의 힘이요? 그거랑 크리쳐랑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진호의 질문에 카라가 대답했다.
“잠들어있던 S 랭크 크리쳐가 마니산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힘에 반응해 깨어난 거예요.”
“음···. 지구의 신들이 깨어난 게 영향을 준 것이군···.”
“건우 님, 정확해요.”
강건우는 전생에서 아마겟돈의 초반부까지만 겪어 보았었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알 수가 없었다. 심각한 표정의 강건우에게 카라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S 랭크 던전과 크리쳐는 존재해요. 다만 모든 A 랭크 던전과 크리쳐가 최초공략이 끝나기 전까지 봉인되어 있던 거죠.”
카라의 설명에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곤란한 일이나 생각할 것이 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저 바다를 건너야 하고. 크라켄은 우리를 보내줄 마음은 없는 거 같고. 어쩐다···.”
“건우야, 일단 돌아가서 주환이 형님이라도 모셔오자.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이진호의 제안에 강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안전하게 싸울 장소만 확보된다면 사냥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크라켄은 우리 둘이서 잡자.”
“가능할까?”
“바다에서 싸우는 게 위험하지 싸울만한 장소만 확보한다면 못할 거도 없지.”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강건우가 이진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카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카라, 크라켄을 해안가로 유인할 방법은 없을까?”
“음···. 신의 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로 봐서 신의 파편이 있다면 최고겠지만요.”
“지금 없잖아?”
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남은 신의 파편은 지난번 팔크람의 일로 모두 사용하고 난 후였다. 강건우와 이진호가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강건우와 이진호를 놓친 것에 화가 난 크라켄이 촉수를 마구 휘저으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카라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생각났어요! 방법!”
강건우와 이진호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역시! 카라야!”
“카라 님, 어떤 방법입니까?”
카라가 씨익 웃으며 이진호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진 이진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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