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57화 (58/99)

지구의 신(2)

조율자의 성에 있는 회복실. 강건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회복 캡슐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곁을 심각한 표정의 박태정이 함께하고 있었다. 파괴신의 비석에 접속해 의식을 잃은 지 벌써 몇 시간이나 흘렀다.

“건우 님, 파괴신들이 카라 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겪는 거라···.”

짧은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이 묵묵히 회복 캡슐로 시선을 돌렸다. 카라는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마치 잠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카라 님이라면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응. 그러겠지.”

박태정의 위로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신과 파괴신들도 카라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었다. 해코지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강건우가 회복실을 나섰다. 그리고 조율자의 방으로 향했다. 가이아의 상자에 접속해보기 위해서였다.

‘카라가 저런 상태니 상자를 통하는 수밖에 없겠네.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거지?’

조율자의 방에 도착한 강건우가 가이아의 상자 앞에 섰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상자에 손을 올렸다. 은은한 초록색으로 빛나던 상자가 살짝 떨렸다. 빛이 강건우를 감쌌다.

“음······. 여긴?”

강건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낮은 동산. 그 위에 낯익은 나무가 있었다.

“여길 또 오네.”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동산 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리며 지난번 이름 모를 신이 나타났다.

-어서 와라. 카라의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도 된다.-

“알고 있었습니까?”

-비록 힘을 잃었다 해도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수는 없지. 더군다나 가이아의 상자가 있지 않은가?-

이름 모를 신의 말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고 있는 겁니까?”

-얼마 전 스트롱홀드가 두 개나 파괴되지 않았나? 그 일로 파괴신들 사이에서 격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하더군.-

강건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아크로폴리스를 침략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파괴자들이었다. 자신의 행동에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강건우의 표정을 읽은 이름 모를 신이 입을 열었다.

-파괴신 입장에서는 손을 써보기도 전에 박살이 났으니 열이 잔뜩 받은 거겠지. 아마 침략의 의도는 숨기고 카라에게 항의하는 것 같군.-

“그거랑 카라가 의식을 잃은 게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이 왜 없나? 카라의 영혼은 지금 파괴신의 만신전에 머물고 있을 걸세.-

이름 모를 신의 말에 강건우가 생각에 빠졌다.

‘만신전으로 신들을 만나러 간 것이라면 무사히 돌아온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생각해도 좋네. 태초의 힘이 깃든 카라를 어찌할 담력들은 없을걸세-

“그럼, 정말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저를 보자고 한 이유는 뭡니까?”

강건우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름 모를 신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카라도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강건우의 생각을 읽은 이름 모를 신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아직 우리사이에 신뢰가 부족한가 보군.-

“제 생각을 읽는 것부터 멈추시는 게 좋겠군요.”

강건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물론 나쁜 의도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이 적나라하게 읽힌다는 게 기분 좋을 수는 없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네, 자제해주세요.”

강건우와 이름 모를 신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카라의 부재가 더욱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럴 때 중간에 끼어들어 분위기를 풀어주던 카라였기 때문이었다. 강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만하고 빨리 말해보세요.”

-알겠네. 그대와 계약 이후 첫 임무가 되겠군. 말로 하는 것보다 그대가 익숙한 방법이 좋겠지?-

이름 모를 신이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강건우의 눈앞으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임무 퀘스트]

목표 – 마니산 조사

내용: 지구의 신 여러 신중 한 명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존재하는 마니산. 지금 그 장소를 크리쳐 들이 더럽히고 있다. 그곳을 정화하고 제단을 지키는 수호결계를 설치하자.

보상 : 마정석, 500000P

퀘스트를 읽어내려간 강건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상에 있는 마정석 때문이었다.

“마정석은 딱히 쓸모가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무기를 강화하기 위한 필수 재료로 알고 있다.-

강건우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생에서 수호자나 파괴자들만 사용하던 마정석이였다. 그런 용도가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카라도 이제껏 말해주지 않은 사실 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꼭 필요한 물건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정도 보상을 준비하는 겁니까?”

-이번에 그대가 스트롱홀드를 파괴하면서 얻은 포인트가 있지 않은가?-

이름 모를 신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강건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음···. 그렇군···. 네?! 누구 마음대로 그 포인트를 사용하는 겁니까?”

-지난번 계약 당시 말하지 않았던가? 그대가 강해질수록 우리도 힘을 되찾는다고.-

“으으. 그게 이런 뜻이었습니까?”

-카라는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

카라는 알고 있었을 거라는 말에 강건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설명을 빼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딱히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태정이 형이랑 주환이 형의 경쟁자가 늘어난 건가?’

본거지에 쌓인 포인트를 두고 경쟁할 두 사람과 여러 신을 떠올랐다. 든든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아마겟돈이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신과 소통하고 경쟁하는 인간이라니···.’

생각에 빠진 강건우의 귓가에 이름 모를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퀘스트는 수락하는 건가?-

“제단의 주인이 제가 생각하는 그분 맞습니까?”

강건우가 한반도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신화를 떠올리며 물었다. 이름 모를 신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우리는 진명을 입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자네의 생각은 맞는 거 같군.-

“알겠습니다. 카라가 깨어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강건우가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러자 인벤토리로 수호의 결계석 아이템이 들어왔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군. 제단의 주인이 보통 성화가 아니라서···.-

이름 모를 신의 말에 강건우가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카라에게 가보겠습니다.”

-알겠네. 앞으로도 급할 때는 종종 유신일을 통해 소식 전하겠네.-

“웬만하면 그쪽은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강건우의 말이 끝나자 이름 모를 신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강건우도 조율자의 방으로 돌아왔다. 수호의 결계석을 꺼내 확인을 마친 강건우가 회복실로 이동했다. 카라의 상태를 지켜보던 박태정이 강건우를 발견했다.

“건우 님, 중앙관제실에서 대량의 포인트가 빠져나간 일이 발생했습니다.”

다급하게 말하는 박태정의 모습에 강건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지구의 신들과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포인트가 빠져나가도 너무 놀라지 말라고.”

“아무리 신들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말도 없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살짝 기분이 상한 박태정이였다. 신들이 포인트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강건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고 나면 많은 포인트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데?”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희도 계획이 있으니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알겠어. 카라가 깨어나는 데로 전해주라고 할게.”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이 회복 캡슐로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감고 있는 카라는 깨어날 줄을 몰랐다. 강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태정이 형, 난 팔크람에게 가봐야 해서. 카라가 깨어나면 상황을 설명해주고 나한테도 연락 부탁해.”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박태정이 강건우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안심시켜 주었다. 강건우가 회복실을 나서 자신의 애마가 주차되어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롤스로이스가 조율자의 성을 나서 도로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

온갖 최신식 연구장치가 가득한 방에 팔크람이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스킬스톤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큰 난제에 부딪힌 것이었다.

“크아악! 원리는 알겠는데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괴성을 지르는 팔크람의 옆으로 여러 명의 드워프 연구원이 서 있었다. 팔크람이 연구원 중 한 명의 연구 차트를 신경질적으로 빼앗았다. 차트를 빼앗긴 드워프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도대체가. 연구를 주제로 토론이 가능해야 말이지!”

크리쳐로 변해버린 드워프 들은 팔크람이 명령에 절대복종했다. 시키는 일은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하지만 팔크람의 명령이 없이는 살아있는 인형에 불과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나 의문점을 토론하고 나눌 대상이 없었다.

“팔크람. 너 성질이 점점 나빠진다?”

팔크람이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강건우가 문가에 기대어 있었다.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였다. 강건우를 발견한 팔크람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강건우! 언제 돌아왔어?”

“응, 얼마 안 됐어. 그나저나 뭐가 문제야?”

“스킬스톤의 생성원리는 파악이 끝났어. 그런데 만들어진 재료와 작업방식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

“벌써 거기까지 연구가 진행된 거야? 대단한데?”

강건우의 칭찬에 팔크람이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끼며 으스댔다.

“흥! 이정도야 알아내는 건 쉽지. 저기 연구원들이 제 상태였으면 진작에 제작까지 가능했을걸?”

팔크람이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자랑했다. 스킬스톤의 원리를 벌써 알아내다니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팔크람이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갑자기 왜 찾아온 거야?”

“이번에 마정석을 입수할 기회가 생겼어.”

강건우의 말에 팔크람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강건우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진짜? 진짜야!? 빨리 말해봐 어디서?”

“야야! 이것 좀 놓고 말해.”

“아···. 미안. 마정석을 너무 보고 싶었어···.”

강건우가 팔크람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이해해. 원래 드워프 들이 새로운 광물에 환장하잖아?”

“맞아! 그래서 그래.”

“하하. 이번에 지구의 신들에게 퀘스트를 하나 받았는데 보상이 마정석이야.”

“그래? 그럼 그거 나 줄 거지?”

자신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팔크람이었다. 강건우가 팔짱을 끼며 거드름을 피웠다.

“글쎄. 그걸로 장비 강화도 가능하다던데. 생각 좀 해보고.”

“제발. 나 주라 응?”

팔크람이 강건우의 팔에 매달리며 간절히 말했다. 강건우가 피식 웃었다.

“알겠어. 그보다 스킬스톤은 아직 생산이 불가능한 거야?”

“응. 하지만 핵심재료만 알아낸다면 낮은 랭크의 스킬은 바로 생산할 수 있어.”

“핵심재료라···.”

“혹시 마정석이 관련 있지는 않을까 생각 중이야.”

“그래? 꼭 가져다 줘야겠네.”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스톤의 생산이 가능하다면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었다. 물론 강건우가 스킬을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줄 수 있는 스킬도 제한적이었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만약 강제 각성자들이 스킬을 하나라도 배울 수 있다면 말 그대로 혁명이지.’

강건우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강건우의 휴대전화가 울려댔다. 발신자를 확인한 강건우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건우 님, 접니다. 지금 카라 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박태정의 말에 강건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바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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