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신(1)
타임스퀘어의 정문 앞. 강건우와 오민석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민석 형님, 아크로폴리스에 꼭 들려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저 말고 저한테 도움 요청하시고요.”
“하하하.”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강건우의 시선에 오민석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곳에서 겪은 일들로 두 사람의 사이는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강건우가 그 틈새를 비집고 말을 놓자고 했지만 거절당한 것은 덤이었다.
‘일단은 친해진 거로 만족해야 하는 건가.’
오민석과 악수하는 강건우의 마음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더 붙잡고 있을 방법도 없었다. 친분을 쌓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건승하기 바랍니다.”
“네, 형님. 부디 몸조심하세요.”
오민석이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등을 돌려 떠나갔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건우도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몸을 날려 나아가는 강건우에게 카라가 말을 걸어왔다.
“건우 님, 파괴자들의 침략이 무산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가? 어차피 쳐들어 왔어 봐야 상대도 안 됐을걸?”
“그건 그래요.“
잠시 말을 건네던 카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민석 님. 저대로 보내도 되겠어요? 수호자 김한나의 성격상 오늘 있었던 일을 들으면 곤욕을 치를 텐데요.”
“나도 알아. 아마 스트롱홀드를 나한테 홀랑 넘긴 일을 짚고 넘어가겠지. 잘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을걸?:
강건우가 김한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욕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다. 스트롱홀드를 차지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사실 이번 일을 통해서 김한나랑 민석이 형의 관계가 틀어졌음 하는 것도 있지.’
강건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민석이 고생은 하겠지만 다칠 일은 없었다. 누가 뭐래도 B 랭크에 이르는 초기 각성자가 아니던가. 김한나도 함부로 대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그저 충성심이 강한 오민석의 마음에 약간의 금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와! 건우 님, 지금 표정 엄청난 음모를 계획하는 악당 같았어요.”
강건우의 표정을 목격한 카라가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런 카라를 강건우가 거칠게 쓰다듬어 주었다. 카라가 볼을 잔뜩 부풀리며 항의했다.
“아야! 아파요.”
“카라, 이제 강북으로 가자. 아직 주워야 할 포인트가 남았잖아?”
“네! 수호자 김한나가 손쓰기 전에 빨리 가요.”
말을 마친 강건우와 카라가 강북으로 향했다. 강북에는 주상혁의 스트롱홀드가 있었다. 주상혁이 죽은 지금 무주공산일 것이었다. 본거지를 파괴하고 포인트를 수집할 생각에 강건우의 마음이 날아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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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와 강서구의 경계에 강건우가 나타났다. 강북에 있는 주상혁의 스트롱홀드를 파괴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강건우의 얼굴은 매우 밝았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보호막을 바라보니 마음도 차분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다들 잘하고 있으려나.”
강건우가 기지개를 쭈욱 피며 성문으로 향했다. 그때 품속의 카라가 머리를 내밀었다.
“건우 님, 주변에서 강력한 각성자의 힘이 느껴져요.”
“오호? 그래?”
강건우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누구인지 예상되는 인물이 있었다. 다른 초기 각성자들과 강제 각성자들을 이끄는 최철우였다.
‘아마 주변에서 개입할 타이밍을 보고 있겠지. 며칠 개고생 좀 하게 놔둬야겠군.’
어딘가에 숨어 힘겨운 잠복을 하고 있을 최철우가 떠올랐다. 찾아가 패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오민석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는 싫었다. 다짜고짜 동료를 해하는 사람을 좋게 생각할 리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강건우가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을 지키던 강제 각성자들이 강건우를 발견했다. 커다란 함성이 터지며 성문이 활짝 열렸다.
“건우야! 무사했구나?”
“건우 님, 역시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강건우가 성문을 통해 들어섰다. 김주환과 박태정 그리고 아크로폴리스의 주요인물들이 맞아주었다. 카라를 통해 귀환을 미리 알렸기 때문이었다. 좌중을 흩어 본 강건우의 마음이 따듯해졌다.
“다들 걱정 많았지? 이제 걱정하지 마. 파괴자들은 아크로폴리스로 올 수 없게 됐으니까.”
강건우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본단 강건우가 김주환과 박태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원탁회의실로 가자. 상의해야 할 일이 생겼어.”
“그래? 좋은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가시죠. 건우 님”
세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원탁회의실로 향했다. 잠시 후 회의실에 도착한 세 사람이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박태정이 강건우가 자리를 비운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뒤이어 김주환이 강제 각성자 훈련상황과 다음 기수 선발예정에 관해 설명했다.
두 사람의 보고를 모두 들은 강건우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파괴자 주상혁을 처치한 일과 스트롱홀드의 파괴에 관한 이야기였다. 강건우의 말을 듣던 김주환이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아무튼, 잘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라고.”
강건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박태정이 강건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했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환이나 진호를 대동하십시오.”
“걱정하지 마. 나를 어쩔 수 있는 사람이 어딨다고.”
자신 넘치는 강건우의 말이었다. 박태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건우 님의 목숨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 그리고 이번에 내가 본거지에 쓰일 포인트를 대량으로 얻어왔어.”
강건우의 말에 박태정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박태정의 모습은 보너스를 받아온 남편의 말에 기뻐하는 주부 같았다.
박태정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가뜩이나 포인트가 부족해 허덕이던 참입니다. 얼마나 얻으신 겁니까?”
강건우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 5개를 펼쳤다. 그 모습에 박태정이 살짝 실망한 얼굴을 지었다.
“5백만입니까?”
“아니. 5천만.”
“맙소사! 정말입니까?”
“헐! 대박!”
강건우의 말에 박태정과 김주환이 비명을 질렀다. 아크로폴리스는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수 때문에 만성적인 포인트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직 인구수보다 각성자의 수가 현격히 적었다. 던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포인트도 한정적이었다. 강제 각성자들과 시민들에게 세금처럼 포인트를 받고 있었지만 턱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거지 발전에 쓰일 5천만 포인트는 가뭄에 단비 같았다.
“진짜 엄청난 일입니다. 그 정도 포인트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건우야, 일단 트레이닝 센터부터 확장하자. 강제 각성자의 수를 빨리 늘려야 해.”
“맞습니다. 그다음 각종 편의 시설도 확충해야 합니다. 인구수가 늘어나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두 사람의 속사포 같은 말에 강건우가 혀를 내둘렀다. 어려운 일들은 두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싸움만 하고 다닐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응. 어차피 이 포인트는 본거지에만 사용 가능하다니까. 마음껏 쓰도록 해.”
“흐흐흐.”
“감사합니다.”
강건우의 허락이 떨어졌다. 김주환과 박태정은 포인트를 어디에 사용할지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김주환은 아크로폴리스의 전투력을 올리는 일에 투자하기를 원했다. 박태정은 전반적인 사회시설과 연구시설을 확충하기를 바랐다.
“각성자들이 늘어나고 상위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거둬들이는 포인트도 늘어 날거라니까?”
“아니.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지. 하지만 기본시설과 연구시설은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야.”
“아 답답해. 그러니까 각성자들이 포인트를 많이 벌어야 순환이 이루어 질 거 아니냐고.”
“기본시설과 연구시설을 확장해 아크로폴리스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게 먼저다.”
두 사람의 열띤 논의는 끝날 줄을 몰랐다. 한참을 지켜보던 카라가 강건우에게 말했다.
“건우 님, 팝콘 좀요.”
“응? 아 맞아. 이거 팝콘 각이긴 하네.”
강건우와 상점에서 팝콘을 구매했다. 그리고 카라와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팝콘이 바닥을 드러내던 무렵이었다. 기나긴 설전에 종지부가 찍혔다.
“좋아. 6:4 더는 양보 못 해.”
“그래. 내가 6, 네가 4다.”
“에이. 알았다고.”
적당한 합의를 본 김주환과 박태정이 악수를 했다. 그리고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크로폴리스를 위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자! 오늘 같은 날 술이 빠질 수 없지.”
강건우가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러자 상점에서 각종 안줏거리와 술이 쏟아졌다. 마치 구매 즐겨찾기를 해놓은 것처럼 신속했다. 곧이어 술판이 벌어졌다. 강건우는 긴장감이 풀어졌는지 거침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취하지도 않는구먼.’
생각에 빠진 강건우를 박태정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주환도 어느새 강건우를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건우 님, 사람···. 많이 죽이신 겁니까?”
“건우야, 잘한 거야 나 같았어도 그 새끼들 가만히 안 둬.”
두 사람의 말에 강건우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과장된 행동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지랄 같은 세상에 어쩔 수 없지. 언젠가는 있을 일이었어.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
“.....”
강건우의 말에 두 사람이 침묵했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 매번 자신들을 위로하고 이끌어주고 있었다. 무거워진 공기가 싫었는지 강건우가 농담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형들 이제 본거지도 안정된 거 같으니 연예들이나 좀 하지?”
“전 아크로폴리스와 결혼했습니다.”
“웩! 이놈 말하는 거 보소.”
“파하하! 그게 뭐야 형!”
박태정의 묵직한 농담에 세 사람이 폭소를 터트렸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강건우와 두 사람은 밤을 새울 기세로 먹고 마셔댔다. 그렇게 강건우의 복귀 첫날이 지나갔다.
다음 날. 강건우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 아···. 맞다 나 숙취 없지.”
아무리 마셔도 생기지 않는 숙취였다. 왜인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강건우가 부모님의 방에 들려 안부 인사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그 자리에 있던 강지영은 유아린과 점심을 함께하자며 강제로 약속을 정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아들. 같은 성에 있는데 자주 좀 찾아와.”
“흠···. 남자가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신경 쓰지 마라.”
강건우가 강경식과 설현숙의 배웅을 받으며 조율자의 방으로 향했다. 스트롱홀드를 파괴한 일로 파괴신 진영의 분위기를 살펴볼 요량이었다.
“카라, 비석을 통해 만신전의 분위기 좀 파악해줘.”
“네, 알겠습니다.”
강건우의 부탁에 카라가 파괴신의 비석에 접속했다. 눈을 감고 집중하는 카라의 모습은 신비로웠다. 그때였다. 강건우의 귓가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우야, 잘 지냈니?”
“어?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일로?”
강건우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유신일이였다.
“그게 말이다. 네가 하도 가이아의 상자에 접속하지 않아서 나한테 부탁을 하시더구나.”
“네? 뭐 급한 일이라도 있대요?”
“응, 그건 나도 모르겠고. 일단 카라 님을 통해 연결을 원하시더구나.”
강건우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의 신들이 무엇이 급한 것일지 알 수 없었다.
“네, 카라의 볼일이 끝나는 대로 연결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그럼 나는 돌아가마.”
“아저씨, 여기까지 오셨는데 차라도 한잔하시죠.”
강건우의 말에 유신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팔크람님과 연구를 도와주는 중이라서 빨리 가봐야 해.”
“네? 팔크람 이랑요?”
“자세한 건 나중에 팔크람님에게 들도록 하려무나.”
“네. 알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강건우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팔크람에게 묻기로 했다. 유신일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배웅을 마친 강건우가 카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카라, 급히 해야 할 일이···.”
카라의 모습을 발견한 강건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다급히 카라를 향해 다가갔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카라를 강건우가 안아 들었다.
“카라!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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