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55화 (56/99)

파괴자(4)

타임스퀘어 내부에 생겨난 파괴신의 신전. 살기가 짖게 느껴지는 신상 앞에 안민철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는 얼굴에는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신상에 깃들었던 파괴적인 기운이 사라졌다. 안민철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일어섰다.

“제길! 주상혁. 이 병신새끼. 적당히 시간만 끌라니까.”

스트롱홀드의 안정을 위해 신전에 머무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이 합류할 때까지 시간만 끌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주상혁은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자신이 손써볼 틈도 없이 죽고 말았다. 파괴자의 죽음에 분노한 신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제길···. 앞으로가 더 큰 일이야.”

주상혁의 죽음으로 한국에서의 균형이 무너졌다. 단지 오늘의 위기가 문제가 아녔다. 앞으로 있을 세력싸움에 큰 차질이 생겼다. 안민철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다급한 표정을 지은 나상천이 나타났다.

“민철님, 큰일 났습니다. 상혁님이 놈에게 당했습니다.”

“알고 있어. 도대체 네놈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안민철이 한숨을 쉬며 질책했다. 그 모습에 나상천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당하실 줄 몰랐습니다.”

“강건우 그놈은 지금 어딨어?”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쪽으로 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상천의 말에 안민철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전투력에서는 주상혁이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런 주상혁과 초기 각성자들을 짚단 베듯 처리해버린 놈이었다. 지금 자신의 전력으로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안민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트롱홀드 설정은 끝냈으니 일단 몸을 피해야겠어. 어차피 그놈한테는 이곳은 계륵일 거야.’

상대는 수호자가 아니었다. 스트롱홀드를 파괴할 방법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재빠르게 셈을 마친 안민철이 나상천을 바라보았다.

“옛말에도 소나기는 피하라고 했다. 애들한테 전해 당분간 던전으로 피해 있는다.”

“네?! 그럼 스트롱홀드를 포기하시는 겁니까?”

“그놈은 수호자가 아니잖아. 여기에 별 관심 없을 거다. 본거지 정보석을 부수는 건 수호자만 가능해.”

안민철의 말에 나상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혹시나 강건우와 전투를 벌일까 두려웠던 탓이었다. 나상천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안민철이 신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구궁! 신전의 문이 닫히자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고 신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일단 이 정도면 신전의 위치를 찾기도 힘들겠지. 일단 던전으로 가야겠어.“

안민철이 영등포로 향하던 중 발견한 C 랭크 던전을 떠올렸다. 몸을 피하기에는 C 랭크 던전이 안전하고 공략을 완료하기도 쉬웠다. 안민철이 던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강건우와 오민석이 타임스퀘어 안쪽의 광장에 도착했다. 조금 전 전투 이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특히 강건우의 표정은 담담했다. 온몸에 묻은 피는 말끔하게 씻겨있었다. 강건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쇼핑몰이던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강건우가 오민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안쪽을 더 살펴볼 생각입니다. 계속 같이 가실 겁니까?”

강건우의 질문에 오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괴자 주상혁의 본거지는 강북에 있었다. 이곳에 스트롱홀드가 생겼다면 다른 파괴자 한 명이 서울에 있다는 뜻이었다. 한국에는 3명의 파괴자가 있었다. 만약 새로운 파괴자가 한국에 합류한 것이라면 중대한 사건이었다.

“네, 방해가 안 된다면 부탁드립니다.”

“방해라니요. 같이 가시죠.”

강건우와 오민석이 타임스퀘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카라, 신전을 찾아야 해.”

“네, 건우님. 아마 신전을 은폐해 놓은 거 같아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오민석이 정신을 집중했다.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던 오민석이 무언가를 느꼈다. 강건우가 그 모습을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민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난히 신력이 뛰어난 형이었지. 파괴신의 기운을 감지하고 있나 보군.’

오민석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이질적인 파괴신의 기운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최상층 영화관이 있던 곳에 신전을 만든 거 같습니다.”

“가시죠.“

일말의 의심도 없는 강건우의 행동이었다. 오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만남부터 자신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상했지만 무언가 스킬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오민석이 강건우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학살을 벌인 후였다.

“괜찮으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오민석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었지만 친근감이 느껴졌다.

‘어리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졌군. 멋있는 남자야.’

그때였다. 강건우의 품에 있던 카라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리고 여기저기를 세심히 살펴보았다.

“여기에요! 파괴신의 기운이 느껴져요.”

“진짜? 잘했어. 역시 카라야.”

강건우가 반색하며 카라가 말한 장소로 달려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사하던 오민석도 황급히 달려왔다. 신비로운 빛을 흘리는 카라를 힐끗 바라본 오민석이 입을 열었다.

“카라님은 콜로세움의 화이트님과 블랙님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하하. 그런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카라가 입을 삐죽였다. 콜로세움의 도우미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었다.

“흥! 블랙과 화이트는 제 앞에서 말도 못 꺼낼걸요?”

“아···. 죄송합니다.”

오민석이 머리를 긁으며 카라에게 사과했다.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까칠한 면모가 있는 카라였다.

“그래서 정확한 위치는 어디야?”

“잠시만요. 대략의 위치는 찾았으니까 이제 금세에요.”

말을 마친 카라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민석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숨겨진 신전의 위치를 찾아내는 능력이라니. 수호자나 파괴자는 물론 그 어떤 초기 각성자도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신전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겁니까?”

오민석의 질문에 강건우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라는 신의 파편을 감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신의 힘을 정확히 느낄 수 있다는 말이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오민석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건우의 사기적인 전투능력에 카라의 완벽한 서포트 능력이었다. 아마겟돈을 조율하기 위한 존재라는 말이 실감이 됐다. 저런 사람을 적으로 돌린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영화관의 한쪽에서 검은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카라가 당당한 표정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짜잔! 찾았습니다. 신전 입구.”

카라가 가리킨 곳에는 파괴적인 기운이 넘실거리는 거대한 석문이 있었다. 스트롱홀드의 중추인 파괴신의 신전이었다. 강건우가 카라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

“네, 제가 문을 열게요.”

카라가 석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민석이 크게 놀라며 말렸다. 적의 신전에 함부로 들어가다니 너무 위험했다. 신들이 유일하게 힘을 투사할 수 있는 곳이 신전이기 때문이었다.

“잠시만! 파괴신들이 공격해 올 수 있습니다. 철저히 준비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강건우와 카라가 오민석을 향해 싱긋 웃었다. 카라가 석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강건우와 카라가 신전 안쪽을 바라보았다.

“들어가시죠. 별일 없을 겁니다.”

“민석님, 빨리요.”

말을 마친 두 사람이 신전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고민하던 오민석이 이내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안으로 들어선 오민석의 깜짝 놀랐다. 강건우와 카라가 스트롱홀드의 정보석 앞에 서 있었다. 허무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 콜로세움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호자와 파괴자간의 모의전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적의 신전에 있는 정보석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파괴신의 강력한 방어를 뚫어야만 했다. 수호자와 각성자가 많은 성장을 거쳐 강해져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겟돈 초기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그런 이유로 아마겟돈 초기에는 서로가 세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율자라는 강건우는 달랐다. 마치 파괴신들이 무장해제를 당한 것처럼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살짝 당황한 오민석에게 강건우가 말했다.

“신들은 저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게 룰이라서요.”

“....”

강건우의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모습에 오민석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카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근데 파괴자랑 부하들은 다 어디 간 거야?”

“도망이라도 친 걸까요?”

“도망? 아니 자기들 본거지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강건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거지가 파괴될 경우 그동안 모아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수호자의 경우 생츄어리의 인구수를 모두 잃어 신앙심의 기반이 무너진다. 파괴자의 경우 모아온 크리쳐 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었다. 그 밖에도 본거지에 발전에 투자했던 포인트도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었다.

“수호자가 없으면 정보석을 깨트릴 수 없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오민석의 설명에 카라가 입을 열었다.

“그럼 누군지 몰라도 큰일 났네요.”

“큰일?”

강건우의 반문에 카라가 설명을 시작했다.

“대박 났어요. 건우님, 정보석을 파괴해 대량의 포인트를 얻거나. 스트롱홀드를 아크로폴리스의 영지로 편입할 수 있어요.”

“와우! 진짜 대박이네.”

카라의 말에 오민석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정보석을 파괴해 대량의 포인트를 얻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신의 본거지로 편입시킬 수 있다니 엄청난 일이었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아직 성장 중인 아크로폴리스가 이곳까지 품기에는 시기상조였다. 강건우가 결심을 내렸다.

“카라, 정보석을 파괴하고 포인트를 얻어야겠어.”

“건우 님, 신중히 생각해 보세요. 생츄어리나 스트롱홀드를 본거지로 편입시키는 기회는 흔치 않아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다시 고민했다. 스트롱홀드를 얻는다면 파괴자처럼 크리쳐를 부릴 수 있을 것이었다. 넓어지는 영역은 덤이었다. 강건우의 고민이 깊어지자 오민석이 조심스럽게 조언을 했다.

“아직 아마겟돈의 초반입니다. 포인트를 이용해 본거지의 발전에 투자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오민석의 말이 좀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거지를 잃은 파괴자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다시 본거지를 만들 것이었다. 스트롱홀드가 아쉽다면 언제든지 얻을 기회는 있었다.

강건우가 본거지 정보석으로 다가갔다. 손을 쭈욱 뻗어 정보석에 올렸다. 강건우의 눈앞으로 알림음이 울렸다.

[스트롱홀드의 파괴 – 보상 50000000P]

[스트롱홀드의 정복 – 아크로폴리스의 영역으로 편입.]

두 개의 선택지를 읽어내려간 강건우가 한가지 선택지를 선택했다. 그러자 정보석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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