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50화 (51/99)

시련과 보상(3)

정신을 차린 강건우의 눈앞에 유아린과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감정이 없는 듯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중년남성을 살펴본 강건우가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남성의 정체는 바로 유아린의 아버지 유신일이였다. 비록 얼굴을 본지 오래되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린아!”

유아린을 발견한 강건우가 반가움에 인사를 하려다 멈칫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유아린이 강건우를 향해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자신은 안전하다는 몸짓이었다. 그때 유아린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강건우,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

“누구십니까?”

강건우가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평소와는 다른 태도였다. 왜인지 모를 친근감이 들어서였다.

-난 지구의 신 중 한 명이다. 지금은 잊혀 내 진명조차 입에 담을 수 없지만.-

“지구의 신 말입니까?

강건우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신일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모든 행성에는 신이 존재한다. 지구라고 예외일 리 없지 않은가?-

“지구에 존재하는 신은 얼마나 됩니까?”

강건우의 질문에 유신일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신을 만나고 당황하지 않는 인간이라니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허허. 의외로 우리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는군.-

“이제 와서 못 받아들일 일도 아니죠.”

이미 여러 신을 만나본 강건우였다. 담담한 표정으로 유신일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유신일의 얼굴에 씁쓸한 감정이 떠올랐다.

-지구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는 아마겟돈이 지구의 신들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건가. 역설적이군.-

“기회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신의 존재는 잊혀 갔지. 이제는 몇몇 신들만이 그 세를 유지하고 있지.-

유신일의 몸에 들어온 신이 자조 석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묵묵히 듣고 있는 강건우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아마겟돈이 시작되고 지구가 다른 행성 신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신들을 믿기 시작하겠지.-

“그렇다면 기회가 아니라 위기 아닙니까?”

-태초부터 지구는 아마겟돈의 무대로 정해져 있었다. 지구의 신들은 오랜 약속 때문에 인간에게 직접적인 행사를 하는 것이 어려웠지.-

강건우가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겟돈의 시작으로 그 제약이 풀린 거군요.”

-정확하다. 하지만 지구의 신들은 이미 너무 약해졌어···.-

유신일이 강건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강건우도 담담히 마주 보았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힘을 되찾으려는 방법이라면 수호신이나 파괴신의 만신전에 가담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럴 생각이었다. 강건우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제 와서 어느 쪽에 가담하던 우리는 철저히 소외될 게 뻔하다.-

강건우가 팔짱을 끼며 생각에 빠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신일의 눈빛에는 열망이 가득했다.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다고···.’

강건우의 생각을 뚫고 유신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엄 어린 목소리였지만 미약한 떨림은 숨 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지구의 신들은 앞으로 있을 아마겟돈에서 조율자의 편에 서기로 했다.-

유신일의 선언이 끝났다. 그러자 넓은 들판이 있는 차원이 크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차원의 흔들림이 멈추자 동산 위의 나무가 빛을 뿜었다.

빛이 사라지고 강건우의 눈앞에 나무로 만들어진 보물상자와 나무열쇠가 나타났다.

-열쇠를 잡으면 우리의 계약은 이루어진다. 강건우 어떻게 하겠나?-

순식간에 지나간 일들에 강건우가 당황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유신일에게 말했다.

“저는 각성자일 뿐입니다. 신들이 저의 편에 선다는 것은 규정 위반 아닙니까?”

-물론 다른 행성의 신들에게는 규정 위반이 맞다. 하지만 아마겟돈이 예정되던 때 지구의 신들은 힘을 제약당하는 대신 선택의 자유를 허락받았다.-

“도대체 신들의 힘을 제약하고 아마겟돈의 시스템을 만들어낸 존재는 누구입니까?”

강건우가 항상 가지고 있던 의문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유신일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아직 알려 하지 않는 게 좋다. 자! 선택해라 강건우.-

“저는 그저 제 가족들과 주변 일들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강건우가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말했다. 결국, 지구의 신들이 바라는 것은 명확했다. 수호자나 파괴자처럼 신들이 힘을 키우는 데 자신을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를 이용할 계획이 없다. 그저 우리와 계약을 해주길 바랄 뿐이다.-

“제 생각까지 읽는 겁니까?”

강건우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유신일이 미소를 지었다.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법. 그대가 원치 않아도 결국 아마겟돈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

강건우가 침묵했다.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유신일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승리의 날에 그대의 옆에 서기를 원한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서둘러라. 이곳을 유지할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신일의 재촉에 강건우가 카라를 흔들어 깨워보았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강건우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결심을 내렸다.

‘규정 위반이 아니라면 손해 볼 건 없을지도 몰라. 여차하면 계약을 파기해도 되.’

강건우가 전생이 기억을 떠올렸다. 수호자나 파괴자들이 세력이 커지면서 자신을 후원하는 신을 갈아타는 경우도 존재했다. 물론 계약파기를 위해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강건우가 물었다.

“아린이의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자의 몸은 신들이 인계에 내려오기 위한 통로였다. 나를 위해 몸을 내주었으니 합당한 대가가 있을 것이다.-

강건우가 유신일의 옆에 서 있는 유아린을 쳐다보았다.

신과 이야기하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던 유아린이였다. 간절한 유아린의 눈빛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앞에 떠 있는 나무열쇠를 움켜잡았다.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오며 알림음이 쏟아졌다.

[축하합니다. 지구의 신들과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조율자의 방에 가이아의 보물상자가 생겨납니다.]

[아크로폴리스에 신들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보상으로 50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음이 끝나자 카라의 몸에 푸른색 빛이 한차례 번쩍였다. 죽은 듯이 자고 있던 카라가 움찔거리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신일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용법은 카라에게 주입해 놓았다. 강건우 앞으로 잘 부탁한다.-

짧은 인사와 함께 유신일의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 장면을 목격한 유아린이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유신일의 몸을 부축했다. 그와 동시에 카라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으음···. 건우 님, 이번 고비도 무사히 넘겼어요.”

“그래. 다 네 덕분이다.”

“헤헷···.”

강건우의 칭찬에 카라가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옆쪽에는 의식을 회복한 유신일과 유아린이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 부녀의 상봉을 지켜보는 강건우의 코끝이 찡해졌다.

갑자기 집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랐다.

‘오늘 저녁은 부모님과 함께해야겠어.’

강건우가 나무가 있던 자리에 생겨난 포탈을 바라보았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유신일 부녀도 어느새 강건우의 옆에 와있었다.

“돌아갑시다. 집으로.”

“네, 건우 님.”

강건우가 포탈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 뒤를 유신일 부녀가 뒤따랐다.

***

아크로폴리스의 사람들이 포털을 통해 돌아온 강건우를 격하게 반겼다. 사방에서 환호성과 강건우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건우가 조만간 회식한다는 조건을 걸고서야 간신히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조율자의 성에 있는 원탁회의실에 강건우와 유신일 부녀가 모여있었다. 포탈을 넘어 아크로폴리스로 돌아오자마자 이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강건우가 머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아까는 정신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네요. 오랜만에 뵈어요.”

“아니다. 아까 그 분위기에서는 그럴 만도 했지.”

유신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강건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수많은 남자의 뜨거운 환호성이 다시 떠올랐다.

“몸은 괜찮으신 건가요?”

“응, 아주 날아갈 것 같구나. 내 평생 이렇게 건강한 느낌은 처음이다.”

“오빠, 우리 아빠는 어렸을 적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했어요.”

유아린의 설명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유아린의 가족이 외국을 나간 것도 유신일의 건강 탓이 컸다.

“내 증조부님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안은 알아주는 박수 무당이었다고 하더구나.”

“박수 무당이요?”

“그래, 박수 무당. 내 아버지가 말씀해주시길 증조부님이 무당의 대물림을 않으시려고 큰 굿판을 벌이셨다는구나.”

들을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강건우가 점점 빠져들었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에 유신일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다행히 성공을 거두셔서 내 할아버지 대부터는 평범하게 사셨다고 들었다.”

“음···. 그럼 신이 아저씨의 몸에 강림한 게?”

강건우의 질문에 유아린이 재빨리 대답했다.

“네, 오빠, 나무가 있던 동산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신에게 들었어요. 건우 오빠를 만나기 위해 아빠의 몸을 잠시 빌린 거라고요.”

“그럼 그동안 아저씨가 의식이 없으셨던 이유도?”

“그건 아니에요. 아버지가 크리쳐의 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던 것은 맞아요. 건우 오빠를 만나기 위해 방법을 찾던 신들이 아버지의 몸을 발견한 거예요.”

유아린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신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까지 평생을 신이 내릴까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저주받은 핏줄이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핏줄이 결국 자신을 살렸다.

“내 몸이 너무 망가진 상태라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간신히 가능했다고 하시더구나.”

“그런데 어떻게 차원 왜곡을 일으킨 겁니까?”

강건우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카라가 품속에서 뛰쳐나오며 말했다.

“그건 제가 그동안 모아왔던 힘 덕분에 가능했어요.”

“힘? 카라 네가 무슨 힘을 모아?”

강건우가 깜짝 놀라며 카라를 바라보았다. 카라가 씨익 웃으며 허리에 손을 척 올렸다.

“건우 님이 성장하면서 얻은 힘만큼 저도 강해 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 맞아. 그랬었지.”

강건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에 유아린과 유신일이 작게 웃었다.

“병실에서 처음 신일 님을 봤을 때 신의 존재를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몸 안의 신과 연결을 시도했죠. 결국, 연결은 성공했어요. 그다음부턴 건우 님도 아시죠?”

“알지. 진짜 십년감수 했다.”

강건우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평소와는 달리 오버하는 모습에 유아린이 밝게 웃었다. 아크로폴리스를 위험에 빠트릴뻔한 자신과 아버지를 위해 하는 행동인 것을 알았다.

“오빠, 정말 모든 게 다 고마워요. 앞으로 두고두고 갚을게요.”

“건우야, 정말 고맙다.”

강건우가 인사를 해오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번에 벌어진 일은 전화위복 그 자체였다.

“아니에요. 저도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게 많아요.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린이 너도 마찬가지야.”

“고맙다. 앞으로 우리 아린이 잘 부탁하마.”

“아···. 아빠!”

유신일의 기습공격에 유아린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다. 강건우 또한 붉어진 얼굴로 연신 헛기침을 했다. 한 번의 기습공격을 감행한 유신일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자리를 일어섰다.

“그럼, 나는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 먼저 일어서마.”

“아···. 아빠, 나도 같이 가요. 건우 오빠 연락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회의실을 나서는 유신일을 유아린이 다급히 쫓아나갔다. 강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을 했다. 잠시 후 원탁회의실에 강건우와 카라만이 남았다. 잠시 카라를 바라보던 강건우가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이번에 얻은 보상은 다른 때와 달리 강건우를 흥분시켰다.

“흐흐. 카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지?”

“헤헤. 저도 기대되는걸요? 어서 가요.”

강건우와 카라가 설레는 마음으로 조율자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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