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보상(1)
원탁의 중앙에 영롱한 빛을 뽐내는 스킬스톤이 놓여있었다. 황홀한 눈빛으로 스킬스톤을 쳐다보고 있던 팔크람이 입을 열었다.
“건우, 신의 파편과 느껴지는 힘은 비슷해.”
“그렇지, 아무래도 스킬이라는 자체가 어디서 생겨났나를 생각해보면 답은 뻔하니까.”
강건우의 말에 팔크람의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신들은 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인지 자신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네. 어차피 신들은 자신의 행성에서는 절대자의 위치에 있잖아?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해서 얻는데 뭐가 있을까?”
“글쎄. 우리 같은 피조물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겠지.”
고개를 끄덕인 팔크람이 몽롱한 눈빛으로 스킬스톤을 쳐다보았다.
“일단 스킬스톤을 내가 좀 가져가도 될까? 연구소에 있는 장비들로 실험을 좀 해봐야겠어.”
“응, 알겠어.”
팔크람의 부탁에 강건우가 흔쾌히 스킬스톤을 건네주었다. 스킬스톤을 소중히 감싸 안은 팔크람이 강건우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나는 연구소로 돌아가 볼게. 당분간 찾지 마! 굉장히 바쁠 예정이거든.”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가려는 팔크람을 강건우가 불러 세웠다.
“팔크람, 너 돌아가는 길은 알아?”
“.....모르는데?”
황당한 얼굴의 팔크람을 보던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강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어디야?
“아우! 귀 떨어지겠다. 어디긴 어디야 성안이지.”
-잘됐네! 나 오빠한테 할 말 있어 성안 어디야?
“원탁회의실로 와.”
-알았어. 딱 기다려.
통화를 끝낸 강건우가 팔크람에게 말했다.
“내 동생이 올 거야. 동생보고 차로 데려다주라고 할 게 인사도 할 겸 기다려.”
“강건우 동생이라니 기대되는데?”
“기대하지 마라. 왈가닥 그 자체다.“
“오! 딱 내 스타일인데?”
팔크람의 말에 강건우가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팔크람 또한 만만치 않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때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강지우가 나타났다. 그 곁에는 수줍은 표정의 유아린도 함께였다.
“오빠! 내가 돌아오면 일빠로 연락하라고 했지!”
“와우! 건우 네 동생 맘에 드는데?”
터프한 강지우의 모습에 팔크람이 감탄했다. 팔크람의 존재를 발견한 강지우가 잠시 흠칫하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그 드워프라던 팔크람 언니세요?”
“응. 안녕?”
팔크람의 말에 강지우가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강건우에게 말로만 듣던 존재를 직접 보니 저도 모르게 반가웠다.
“저는 강지우라고 해요. 아 그리고 여기는 제 친구 유아린이에요.”
“안녕하세요. 지우 친구 유아린입니다.”
강건우를 슬쩍 바라보며 인사하는 유아린이였다. 그 모습을 팔크람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안녕? 너 참 예쁘구나. 앞으로 잘 부탁해.
“네. 언니.”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세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아린이도 왔네? 오랜만이다.”
“네, 오빠 던전 무사히 잘 다녀오셨어요?”
“하하! C 랭크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유아린이 강건우와 대화를 나누며 연신 얼굴을 붉혔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반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가 끝나자 강건우가 본론을 꺼냈다.
“근데 지우야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아니 딱히 할 말은 없어. 그냥 아린이가 오빠 무사히 돌아왔는지 궁금해하길래.”
“야! 내가 언제?”
“헐 이놈의 기지배 보소. 오빠 연락 없냐고 하고많은 날 연락해 놓고는.”
“......”
티격태격 되는 두 사람에게 강건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너넨 하는 짓이 옛날이랑 똑같네. 하여간 걱정해줘서 고맙다.”
“네···. 오빠···.”
“이제 얼굴 봤으니 됐고. 지우 네가 내 차로 팔크람 좀 데려다주고 와라.”
강건우의 부탁에 강지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평소 강건우의 애마를 호시탐탐 노리던 터였다.
“앗싸! 그럼 팔크람 언니 데려다주고 와서 아린이랑 셋이 맛있는 거 먹자.”
“응? 너희 오늘 근무 없어?”
“응. 둘 다 비번이시라고.”
강건우가 미소를 지은 채 대화를 듣고 있던 팔크람을 바라보았다.
“팔크람, 그럼 너도 밥 먹고 갈래?”
강건우의 제안에 팔크람이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 그렇게 눈치 없는 여자 아니거든? 쯧쯧···.”
“무슨 말이야?”
“에휴···. 순진한 것인지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무튼 난 갈래. 지우야 가자.”
팔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강건우의 손에서 차 열쇠를 냉큼 집어 든 강지우가 뒤를 따랐다.
“아린, 금세 올게. 넌 여기 있어.”
“빨리 와야 해.”
팔크람과 강지우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혼자 남은 유아린이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아린아. 여기 와서 앉아.”
“네? 네! 오빠.”
유아린이 강건우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러자 품속에 있던 카라가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건우 님, 여성분을 앉혀놓고 뭐라도 말을 해야죠.”
“응? 그런가···. 아린아 뭐라도 좀 마실래?”
“네, 전 커피요.”
유아린의 대답에 카라가 상점에서 커피 두 잔을 준비했다. 처음 보는 카라의 모습에 유아린이 신기한 표정으로 살펴보았다.
“고마워요. 카라 님.”
“헤헤. 그냥 편하게 카라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건우 님은 진짜 똥 멍청이에게요.”
“호호. 고마워 카라.
카라의 말에 유아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건우는 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건우가 유아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린아, 오빠가 지금 할 일이 좀 있어서. 잠깐만.”
“네···. 볼일 보세요.”
순간 샐쭉해진 유아린의 표정에 강건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할 일을 떠올렸다.
“카라, 이번에 얻은 포인트로 스킬을 장착해야겠어.”
“하아···. 멍청이···. 알겠어요.”
“응? 앞에 뭐라고 했어?”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니에요. 이번에는 어떤 스킬을 장착하시려고요?”
“음···. 아무래도 조율의 힘[Legend]이 좋을 것 같은데?”
“잘 생각하셨어요. 앞으로 수호자나 파괴자하고 부딪힐 일이 많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강건우가 300만 포인트를 투자해 스킬 슬롯을 확장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잠자고 있던 스킬스톤 조율의 힘[Legend]을 꺼내 사용했다. 흑백의 영롱한 빛이 강건우를 한차례 휘감았다. 강건우의 눈에서 은은한 빛이 흐르며 스킬의 습득이 끝났다.
“이제 당분간 스킬 슬롯확장은 어렵겠군.”
“다음에 필요한 포인트는 600만이에요.”
카라의 설명에 강건우가 질린 표정을 했다. 포인트는 정말 많아도 더 필요했다. 부자들이 왜 더 많은 부를 쌓는 것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됐다. 상태창을 점검하는 강건우를 카라가 툭툭 치며 말했다.
“건우 님, 상태창 좀 적당히 보세요. 숙녀를 앉혀놓고 실례라고요.”
“아···. 미안.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카라의 지적에 강건우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유아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잘 지내고 있어요. 팀원들도 잘 빌려주고요.”
“아···. 맞다. 몇 팀 소속이라고 했지?”
“지우랑 같이 4팀 소속이에요.”
짧은 대화를 끝으로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카라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유아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린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고 하셨죠?”
카라의 질문에 유아린의 얼굴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아버지가 떠오른 것이었다.
“응. 아버지가 몇 개월째 의식을 못 찾고 계셔.”
“카라,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어두워진 유아린의 표정에 강건우가 카라를 질책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평소의 카라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강건우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카라가 말을 이어갔다.
“포션을 써도 회복이 되지 않으시는 거죠?”
“응. 의사들은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해. 매우 건강한 상태인데 이상하게 의식을 찾지 못하고 계셔···.”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유아린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음. 일단 상점에 해결방법이 없나 찾아봐야겠어.’
생각을 마친 강건우가 유아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린아, 오빠가 방법을 찾아볼게.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 지금 주시는 포션만으로도 너무 죄송한데···.”
“아니야, 네가 남이냐?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봐.”
“네···. 고마워요. 오빠.”
강건우의 호탕한 말에 유아린이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그 후로 강건우와 유아린의 소소한 대화가 이어졌다. 예전 추억을 이야기하며 때로는 웃고 부끄러워하는 유아린의 모습은 천사 같았다.
‘아린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아마겟돈 이후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순수한 기쁨이 낯설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팔크람을 데려다주고 강지우가 돌아왔다.
“오빠, 아린아, 나 왔어. 이열? 두 사람 분위기 좋은데?”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얼른 앉기나 해.”
강건우가 당황하며 강지우를 나무랐다. 그 모습에 유아린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건우도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세 사람의 화기애애한 식사가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유아린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그럼 오빠가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는 거지?”
“응, 일단 카라가 먼저 아린이 아버지의 상태를 살펴봐야 할 것 같아.”
“건우 오빠, 정말 고마워요.”
유아린이 고마움을 표했다. 강건우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흠흠. 뭐 아직 치료제가 있는 게 확실한 게 아니니까.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
“그래도요.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는데요···.”
“참 보기 좋은 모습이네.”
강지우가 두 사람의 모습에 만족스러운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즐거웠던 식사시간이 끝났다.
“오빠, 그럼 다음에 또 봐요.”
“건우 님, 다녀올게요.”
유아린과 카라가 자리를 떠났다.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한 것이었다. 강건우와 둘만 남자 강지우가 허리에 손을 척하니 올리며 말했다.
“오빠! 아린이한테 신경 좀 써.”
“아니. 뭘 더 신경 쓰라는 거야?”
강건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강지우가 버럭했다.
“아무튼! 연락도 좀 자주 하고. 맛있는 거도 좀 잘 사주고. 가끔 드라이브도 좀 시켜주고.”
“음···.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되지만 노력은 해볼게.”
강지우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숙맥인지 아니면 알고도 그러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대화를 끝낸 강건우와 강지우가 조율자의 성 내부에 있는 부모님의 거처로 향했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오냐는 부모님의 질책 아닌 질책을 한참을 들었다.
그날 밤, 강건우가 소름 끼치는 느낌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강건우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제길······. 카라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랬다. 지난번 팔크람의 연구소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카라와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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