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girl Bad girl(2)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팔크람의 연구소에는 50여 명이 넘는 드워프 연구원과 100여 명의 드워프 강습병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드워프 연구원들은 뛰어난 과학자임과 동시에 금속을 다루는 것에 뛰어난 장인이기도 했다.
“미···. 미안······.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지 몰랐네···.”
“팔크람, 진짜야 나랑 건우는 최선을 다했어. 믿어달라니까?”
강건우와 김주환이 잔뜩 골이나 있는 팔크람의 기분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는지 알아?”
“미안. 팔크람 정말 몰랐다니까.”
강건우가 다시 한번 사과했다.
조금 전 소환이 끝나자 만난 팔크람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조율자의 상점에 들어간 팔크람의 연구소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 머물렀다고 한다. 주변은 우주의 한가운데처럼 적막했고 어떤 생물이나 풍경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무려 10년이야! 진짜 기다리다 지쳐 죽는 줄 알았다고.”
“진짜 억울하네! 지구의 시간으로는 고작 몇 개월이 지났다니까?”
“김주환! 너는 딱 입 다물고 있지?”
김주환이 가슴을 탕탕 치며 억울해서 했다. 저 드워프 공주님의 성격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아오! 저 왈가닥.”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팔크람과 김주환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강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던전에서 팔크람과 만나 알게 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짧았던 대화를 통해 많은 감정적 교류를 나눈 세 사람이었다. 다시 만난 반가움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팔크람이 사용하는 연구실의 문이 열리며 카라가 나타났다. 평소의 활발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우울한 표정이었다.
“건우님, 다녀왔어요.”
“카라, 결과가 좋지 않은 거야?”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팔크람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카라는 던전 연구소의 드워프 들을 살펴보고 오는 길이였다. 드워프 들이 오랜 시간 신의 파편에 노출돼 크리쳐가 되었기 때문이다.
“네, 팔크람님을 제외한 다른 드워프 들은 크리쳐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어요.”
“그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릴 방법은 없는 거야?”
“카라, 너무 신경 쓰지 마.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팔크람님···.”
팔크람이 카라를 위로하듯 말했다. 하지만 슬픈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아크로폴리스로 소환된다면 백성들을 다시 원상태로 돌릴 거라 기대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생전에 자기들이 원하던 일을 이제 원 없이 할 수 있으니까!”
“팔크람, 정말 괜찮겠어? 드워프 들은 상점으로 돌려보내고 인간들이랑 일하지그래?”
김주환의 제안에 팔크람이 고개를 저었다. 드워프 들은 자의식을 상실하고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크리쳐였다. 하지만 모두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는 것이 싫었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건우 너라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잖아?”
팔크람이 강건우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 시선을 받은 강건우가 미소를 지었다.
“장담은 못 하지만 방법이 있다면 좋겠네.”
“건우님,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강건우와 카라의 말에 팔크람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김주환이 우울한 분위기를 끝내려 손뼉을 치며 일어섰다.
“자자! 그럼 어디 연구소 견학 좀 해볼까?”
“저도 찬성이에요!”
카라가 공중을 빙글 돌며 호응했다.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노력에 팔크람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수천 년 드워프 과학의 총아가 담긴 연구소를 볼 준비는 되셨나?”
“오케이!”
“고고고!”
강건우가 유난히 오버하는 김주환과 카라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문을 나선 팔크람을 뒤따라 나갔다.
제일 먼저 일행이 향한 곳은 격납고였다. 예전과 똑같은 모습을 한 강습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지난번 강습병들이 습격을 떠올린 김주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아. 여길 이렇게 또 오다니.”
“그러게 지난번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강건우와 김주환의 말에 팔크람이 씨익 웃으며 강습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장갑차의 문이 열리며 강습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 정식으로 소개할 게. 소랄 제국의 최강의 부대인 강습 장갑 친위대야.”
팔크람의 소개와 함께 강습병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어 사열했다. 절도 있고 강렬한 모습에 강건우와 김주환이 감탄했다.
“팔크람, 역시 드워프 전사들답게 용맹한 모습이네.”
“건우야, 이제 같은 편인 거잖아?”
두 사람의 말에 팔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연구소를 지키는 병력이지만 유사시에는 아크로폴리스를 지키기 위해 싸울 거야.”
“건우 님, 정말 큰 전력을 얻으셨어요. 강습병들 하나하나가 C 랭크 각성자 이상의 힘을 가졌어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의 얼굴에 커다란 만족감이 차올랐다.
그 모습에 팔크람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강습병들에 해산을 명령했다. 일사불란하게 장갑차 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본 김주환이 물었다.
“그런데. 저 안에서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을까? 먹고 자는 것도 저기서 해결하는 거야?”
“주환님!”
김주환의 말에 카라가 뾰족하게 소리쳤다. 크리쳐가 돼버린 드워프 들은 욕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최소한의 영양분과 수면만 필요했다.
“아···. 맞다···. 미안해 팔크람.”
“괜찮아. 벌써 오래전부터 저렇게 살아왔는걸···.”
팔크람이 씁쓸한 표정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강건우가 미안함에 어찌할 줄 몰라하는 김주환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뒤따랐다.
“여기는 각종 연구 관련 서적들이 존재하는 기록보관실이야···. 저번에 왔었지?”
“기억나. 여기서 책을 뽑는 바람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었지?”
강건우의 말에 팔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맞아. 그때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기나 해?”
“.....”
“.....”
아무 말 못 하는 강건우와 김주환이였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사고를 쳐 팔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었기 때문이었다.
“자 여기는 별거 없고. 이제부터 처음 가보는 곳이겠네? 가자.”
팔크람이 복도로 나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는 드워프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다음으로 들릴 곳은 드워프 공방이야. 각종 장비와 무기, 방어구 등을 생산해 내는 곳이지.”
미래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법한 연구소 내부의 모습이었다. 강건우와 김주환은 꿈만 같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우리 우주도 나갈 수 있는 걸까?”
김주환의 말을 들은 팔크람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음···. 지금 연구소에 있는 원자재들로는 우주선을 만들기는 부족해. 지구에 우리가 사용하는 재료들이 존재하는지 먼저 조사해봐야 할 거 같은데?”
농담 식으로 던진 말에 진지한 대답이 들려오자 김주환이 화들짝 놀랐다.
“야야···. 농담이야. 우주에 나가서 뭘 한다고.”
“형, 못갈 것도 없지.”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강건우와 일행이 공방의 입구에 도착했다. 문 너머로 느껴지는 거대한 열기가 이곳이 공방임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공방의 문이 열리며 드러난 내부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다. 드워프 연구원들이 거대한 용광로를 중심으로 흩어져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단 아크로폴리스에 도착한 기념으로 강건우, 네 동상을 제작 중이야.”
팔크람의 충격적인 발언에 강건우가 펄쩍 뛰었다. 동상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뭐!? 아니 내 동상을 왜 만들어?”
“푸흡···. 강건우 출세했네?”
김주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팔크람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 있어? 강건우 네가 여기의 주인이라며? 그럼 당연히 멋진 동상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아니! 안돼! 그건 나를 죽이는 일이야.”
강건우의 강력한 반대에 팔크람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우리 드워프들의 동상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고. 예쁘게 만들어 줄게.”
“크흑...”
“푸···. 풉.”
팔크람의 말에 김주환과 카라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팔크람을 바라보는 강건우가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맘대로 해라. 드워프 고집을 누가 꺾겠니.”
“잘 생각했어. 아주 크고 아름다운 놈으로 뽑아줄게.”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다음 안건을 꺼냈다. 바로 각성자들의 장비제작과 아크로폴리스의 시설개선 문제였다.
“팔크람, 여기 공방에서 각성자들이 사용할 장비들의 생산이 가능할까?”
강건우의 질문에 팔크람이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음···. 일단 우리 행성과 지구의 재료들을 비교해봐야 할 거 같은데?”
“그렇군. 그럼 우리 쪽에서 도울 일은 없을까?”
“일단 크리쳐 들을 사냥해서 얻는 부산물들을 제공해줬으면 해. 그리고 지구에서 사용하던 광물들도.”
김주환이 강건우를 향해 말했다.
“일단 사용하지 않는 차들이나 전자제품 등을 수거해서 제공하면 되겠네.”
“응, 그리고 태정이 형한테 말해서 부산물들을 제공해주라고 해야지.”
팔크람이 새로운 연구 소재가 생기는 것에 들뜬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의 과학력이라면 금세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아크로폴리스의 시설물들을 관리하는데 일손을 빌려줄 수 있겠어?”
아크로폴리스는 강서구라는 넓은 범위에 비교해 부족한 기술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로 사용되는 중심부를 제외한 외곽지역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앞으로 늘어날 인구수를 대비하려면 재정비는 필수였다.
강건우의 부탁에 팔크람이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 강습병들은 전사인 동시에 훌륭한 기술자들이기도 해.”
“고마워, 팔크람.”
“뭘, 이제는 여기가 우리의 집인걸.”
공방을 둘러보는 것을 끝낸 강건우와 팔크람이 마지막 장소로 이동했다. 바로 차원 이동을 했던 연구실이었다.
“여기도 왔었지? 여기가 바로 연구소의 핵심시설인 연구실이야.”
“지난번이랑은 구조가 약간 다르네?”
김주환의 질문에 팔크람이 대답했다.
“저번에는 신의 파편을 이용해서 만든 허상 차원의 연구실이었고. 여기가 진짜 연구실이야.”
“팔크람, 여기 진짜 대단하다. 없는 게 없네?”
강건우가 연구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그러다 중앙의 분석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분석기에는 정체 모를 금속의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팔크람, 분석기에서 연구하고 있는 금속은 뭐야?”
“저거? 소랄 행성에서도 구하기 힘든 미토늄 금속이야. 연구소로 대피하면서 어렵게 가져왔지.”
다른 곳을 둘러보던 김주환이 팔크람의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얼마나 단단한데?”
“푸하. 넌 금속이 단단하기만 하면 끝인 줄 아니?”
“쇳댕이가 튼튼하기만 하면 됐지!”
팔크람이 한심하다는 듯 김주환을 바라보았다.
미토늄 금속은 신의 육체라 표현할 만큼 대단한 금속이었다. 강도는 물론이고 신의 힘을 있는 그대로 발현할 수 있는 매개체기도 했다.
미토늄으로 만든 장비는 사도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장비였다.
“바보야. 저 금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신의 힘을 전부 담아낼 수 있는 엄청난 몸이시라고.”
“대단해요. 저 금속으로 만든 장비라면 각성자들의 능력을 한껏 담아낼 수 있을 거예요.”
카라가 미토늄을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조율자의 상점에 존재하는 여러 장비도 각성자들을 위한 장비였다. 하지만 미토늄처럼 훌륭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장비는 찾기 힘들었다.
“만약. 저 금속을 양산해 낼 수만 있다면. 아마겟돈에 커다란 획을 그을 대사건이 될 거에요.”
“맞아. 하지만 백 프로 구현해 내는 건 힘들 거야. 만들어도 아마 마이너 버전이 되겠지.”
팔크람이 카라의 말을 보충 설명했다. 담담히 듣고 있던 강건우가 팔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낌없이 지원을 해줄 테니까 연구를 진행해줘.”
“응, 알겠어. 강건우.”
그렇게 강건우가 연구소를 모두 둘러보았다. 조율자의 성으로 돌아가기로 한 강건우가 팔크람을 대동했다. 박태정과 이진호 등 주요인물들과 만나 안면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연구소를 나와 차에 도착한 강건우가 팔크람을 향해 말했다.
“간단히 밥이라도 한 끼라면서 얼굴만 익히자고.”
“그···. 그게···. 사람들이 놀라지는 않을까?”
팔크람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모습에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야! 갑자기 무슨 요조숙녀 흉내를 내?”
“푸하핫.”
강건우의 말에 김주환이 폭소했다. 팔크람이 짧은 다리로 김주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악!”
“김주환! 너 죽는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강건우의 롤스로이스 팬텀이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려나갔다. 그때였다. 돌연 긴급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크로폴리스 내부에 침입자 발생. 경계태세 발령입니다. 모든 시민은 급히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건우 님께서는 지금 바로 성으로 복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강건우가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침입자 발생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강건우가 차 안의 일행을 향해 말했다.
“꽉 잡아!”
강건우의 말과 동시에 롤스로이스 팬텀이 굉음을 내뿜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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